1. 2월27일 (화) 기간제교사 차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의 날 피켓시위
아직 어두운 새벽 시간 나른한 고양이들의 시선이 계속해서 나를 좇는다. 방학 내도록 같이 뒹굴던 집사가 씻고 챙기느라 부산을 떠니 이상했을 게다. 갔다 올게. 금방 올 거야 오늘도 편히 있어. 인사하며 길을 나섰다.
서울행 7시 25분 비행기를 탔다. 이륙 후 45분이면 서울 도착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45분밖에 안 걸리다니... 서울이 더 이상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김포에서 광화문 행 지하철을 타고 정부서울청사 앞에 도착했다. 집에서 나온 지 3시간 30분 만이다.
오전 10시.
우리 쪽 4명, 전교조도 4명 정도(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모였다. 휑하다. 우리는 오늘 기간제교사 차별 폐지를 위한 피켓시위와 집회 성격의 기자회견을 한다. 지난 주말 날이 따뜻해 외투를 챙기지 않았는데... 휑한 광장 앞은 뼛속까지 춥다.
‘안녕하세요. 시민 여러분 저희는 기간제교사입니다. 저희가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는...’ 이라고 시작되는 글을 우리 노조 위원장님과 전교조 특위 분들이 번갈아 가며 반복해 읽는다. 마이크를 들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청사 앞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피켓을 읽어봐 주길 바라며 주르륵 서 있다. 이렇게 춥고 손 시린 날 새벽부터 부산에서 올라와 오가는 이 별로 없는 광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왜 정부는 우리를 잠재적 마약중독자로 취급하는지. 왜 매년 채용검진서를 제출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인데. 왜 이렇게 자꾸 사람을 서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2. 기간제교사 차별 폐지 기자회견
11시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인원이 많아졌다. 아는 얼굴은 몇 안 된다. 앞줄은 현수막을 들고 뒷줄부터는 자그만 피켓을 들고 있다. 마지막 줄은 큰 피켓을 두 팔 높이 들고 있다. 팔이 아프실 게다. 어쩌면 팔보다는 차별의 고통으로 마음이 더 아프실 게다.
앞줄은 발언할 각 대표가 서 있다. 위원장님, 전교조 분들, 우리를 지지하는 학부모, 교육공무직 본부에서 연대 오신 분. 과거 기간제교사였던 변호사님, 현직에 계시는 기간제 선생님(그중 한 분은 우리 조합원이다) 등. 한결같이 기간제교사 차별을 철폐하라고 호소한다. 현직 선생님 중 한 분은 부장 보직을 맡고 있었는데 정규교사의 조기 복직으로 계약기간 두어 달을 앞두고 계약 해지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인사도 못 하고 갑자기 사라지는 선생님. 듣는 내내 상황이 그려져 마음이 아프다. 씁쓸하지만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발언 사이사이 구호도 따라 외친다. 사회자는 우리가 차별받는 여러 가지를 구호로 만들어 선창했다. 새삼 내가 어떤 차별 속에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의 외침이 세상에 가 닿을지, 차별들이 언제쯤 시정될지. 아 모르겠다. 이가 덜덜 떨릴 만큼 추우니 일단 구호나 크게 외쳐보자 했다. 이렇게 외치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에게도 가 닿을 것이다.
전교조 몸짓패(이런 단어는 참 낯설다)가 ‘동네방네 공공성’이라는 노래를 안무와 함께 가르쳐 주셨다. 가사가 무겁지 않고 좋은 내용이다. 시작이 ‘당신의 노동으로 내가 살고 나의 노동으로 우리가 살아. 세상은 몇 사람만의 것이 아냐. 모두를 위한 노동이 되는 세상’ 경쾌하고 명쾌하다. 가끔 이 세상은 몇 사람의 큰 손으로 움직여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노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이 노래가 맞다. 청소 노동자들이 있어 깨끗한 거리를 걷고, 깨끗한 비행기,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기간제교사의 노동으로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 학교에는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한 많은 노동이 있다. 서로의 노동으로 서로가 살고 있다. 그러니 차별 없이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차별 없는 노동도 이루어져야 한다. (혹시나 가사가 궁금한 분을 위해 글 하단에 적어놨다.)
집회 성격의 기자회견이다 보니 기자들도 많이 왔고, 사진도 제법 찍혔다. 하지만 후드를 뒤집어쓰고 검은색 마스크를 한 나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혹여나 집회 참석으로 내 존재가 부각될까 두렵다면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나처럼 위장하면 된다. ‘위장‘이란 단어가 원래 이리 씁쓸한 단어던가... 있는 모습 그대로 참여하고 싶은 소망이 생긴다.
아쉬운 점도 있다. 기간제교사의 차별 철폐를 위해 집회를 한다고 해도 정작 당사자인 기간제교사의 참여는 저조하다. 위원장님은 그동안 기자회견이나 각종 집회에 2~3명, 많아도 5명이 참석했다며, 이날은 20명이 넘게 와서 장족의 발전이라 평했다. 그래서 더욱 힘이 난다고 하신다. 나는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생각되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출근하고, 선약이 있고, 저마다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일은 중요하다. 해주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좋지 않다. 무임승차도 그렇다. 그것이 내가 새벽부터 서둘러 이곳으로 온 이유다. 내 권익은 내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집회 등에는 더 많은 분이 용기를 내어주면 좋겠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함께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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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공공성> 노래 가사
당신의 노동으로 내가 살고 나의 노동으로 우리가 살아
세상은 몇 사람만의 것이 아냐 모두를 위한 노동이 되는 세상
당신의 권리가 나의 권리 나의 권리가 우리의 권리
짓밟고 앞서는건 능력이 아냐 경쟁에 숨막히는 세상은 그만
(후렴구 반복) 동네방네 공공성 구석구석 노동권 차별없게 누구나 행복하게 모두가
첫댓글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그리고 애 많이 쓰셨습니다.
경상지부장님~ 이렇게 소감문 올려 주시니 고맙습니다. 글을 읽노라니 울컥 하네요... 새벽부터 먼길 마다 않고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기자회견, 집회, 파업 등은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입니다. 저도 기간제교사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차별 받고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방법입니다. 기간제교사는 제도적 차별 속에 놓여 있고, 이 차별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단결된 힘이 필요하죠. 한 사람의 목소리보다는 10명, 100명, 1천 명이 외치는 것이 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7일 집회에 기간제교사 20여 명이 모였습니다. 파악된 분들이 이 정도이니 혹시 조용히 참여하시고 말 없이 가신 분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한 활동에서 이렇게 기간제교사가 많이 모인 것은 2017년 7,8,9월 정규직화 운동이후로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정말 장족의 발전이고 앞으로는 더 많은 분들이 분명히 참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기간제교사 파이팅! 기간제교사노조 파이팅!!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든 제도인데, 그 제도를 수용하는 이가 많아지니 그건 자신들이 베풀어준 혜택이니 차별을 수용하라고 하고 또 그 제도에 따른 수혜의 대가를 지불하라고 말하는 참 우스운 모양새입니다. 혜택을 누가 보고 있는데 그 따위 말들을 씨부리고... 다들 현장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차별철폐 꼭 이뤄질 것입니다!!
가족과의 선약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네요!!
(내년에는 미리 행사 계획이 나오면 꼭 함께 하겠습니다!!)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추운 날씨에 고생 많으셨어요. 노조가 있고 노조원들이 함께해서 그나마 지금까지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