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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여행 (4)
지난 3편의 이야기를 통해 4차원 시공간의 지형도와 중력에 의해 찌그러진 슈바르츠실트의 해를 설명했다. 자, 이제 모든 준비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시공간이 무한대로 찌그러진 공간인 블랙홀로 여행을 떠나보자.
때는 2345년. 절친한 사이인 J씨와 K씨가 우주여행을 하고 있었다. 둘은 지구를 떠나 우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버뮤다 삼각지대와 같은 블랙홀과 마주하게 되었다. 목숨을 건 모험을 즐기는 J씨는 이때다 싶어 블랙홀을 향해 멋진 번지점프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반대로 소심한 K씨는 모선에 남아 J씨의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여행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통신 장비를 나눠 갖고 작별인사를 했다. 통신 장비에는 심장의 박동을 감지해 전파로 날려주는 기능이 있었다.
K씨는 이를 통해 J씨의 생사를 알아볼 참이었다. 한 번뿐인 블랙홀 번지점프를 기록에 남기기 위해 J씨는 안전모에 캠코더를 장착하고 K씨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내 K씨가 J씨를 향해 ‘점프’ 신호를 보냈고, 드디어 역사적인 J씨의 블랙홀 번지점프가 시작되었다. 놀랄 필요는 없다. 절대 끊어지지 않고 무한대로 늘어나는 고무줄을 매달고 뛰어내렸으니 언제든지 끌어 올려주면 되니 말이다.
과연 J씨는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J씨는 자유낙하를 경험하게 된다. 뉴턴역학에서 배웠듯이 가속 운동을 하면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럼 J씨는 얼마 만에 블랙홀에 도착하게 될까? 이 문제는 고등학교 물리에 나오는 연직 자유낙하 운동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속도가 빨라지면 뉴턴역학을 적용할 수 없고, 또 시공간의 찌그러짐도 고려해야 하므로 일반상대론에 의한 운동방정식을 풀어야 답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필자가 미리 계산한 결과를 가지고 답만 알아보도록 하자.
필자는 우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태양과 같은 질량을 가진 블랙홀을 가정하였다. 지난 글에서 계산해 본 바와 같이 이 경우 블랙홀의 슈바르츠실트 반경()은 약 3km 정도가 된다. (사실 이 가정은 가정 자체가 틀린 것인데, 왜냐하면 태양은 블랙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양이 왜 블랙홀이 될 수 없는가는 본문 맨 뒤 박스 글을 참조하자.) J씨가 블랙홀에 도달할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하려면 먼저 번지점프를 한 최초의 높이를 알 필요가 있다. 편의상 모선의 위치가 각각 슈바르츠실트 반경의 4배인 경우, 6배, 8배, 10배인 경우를 고려해보자. 10배인 경우는 대략 블랙홀의 중심에서 30km 떨어진 곳이 된다. 필자의 계산은 아래 그림과 같다.
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공 30km에서 사건의 지평선까지 도달하는 데는 대략 480마이크로초면 되고, 이후 블랙홀 중심까지 떨어지는데 490 마이크로초면 충분하다. 30km의 거리를 490마이크로초에 달린 것이니 평균적으로 광속의 1/5이란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진 것이 된다.
신기한 것은 J씨는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블랙홀의 중심으로 계속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사건의 지평선은 무슨 지구의 표면 같이 뚜렷이 발 디딜 데가 있는 곳이 아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수학적인 계산에 의해 나온 것이지, ‘이곳이 사건의 지평선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물리적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어떤 경계면이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자유낙하를 하고 있는 J씨 입장에서는 그냥 똑같은 공간의 연속이어서, 마치 바다 위 국경처럼 아무 방해 없이 지나갈 수 있다. 200해리까지가 한 국가의 배타적경제수역으로 정의는 돼 있지만, 배를 타고 가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해경이 경고를 하겠지만, 블랙홀에는 사건의 지평선임을 알려주는 해경은 없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선 J씨는 그럼 어떻게 될까? 위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건의 지평선부터 r=0인 곳까지는 정말로 얼마 안 걸린다. 대략 7마이크로초면 블랙홀의 중심에 도달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슈바르츠실트 반경인 3km인데, 이 거리를 7마이크로초에 달린 것이니, 사실상 광속도보다 더 빨리 떨어진 것이 된다. 정말 그럴까? 사실 7마이크로초는 J씨가 잰 시간이고, 3km는 외부관찰자가 본 좌표거리다. 따라서 이 둘을 나누어 속도를 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J씨가 이동한 거리를 구해서 속도를 구해야만 한다.
하여간 J씨가 느끼는 고통은 금방 끝난다. 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30 km 상공에서 블랙홀의 중심까지는 대략 0.5밀리초 정도 걸리는 것이므로, 이는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다. 일반적으로 신경이 전달되는 속도가 120m/s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온몸의 고통이 뇌에 도달하는 데까지는 10밀리초 정도가 걸릴 것이다. 이는 J씨가 블랙홀 중심에 도달하는 시간보다 긴 시간이다. 따라서 J씨는 죽음의 고통이 뇌에 전달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게 된다. 고통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번엔 입장을 바꿔 모선에 남아 J씨를 지켜보는 K씨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알아보자. 편의상 J씨의 심장박동이 1초에 1회라 하자. 앞에서 계산해 봤듯이 별의 중심으로 가면 갈수록 시간은 느리게 간다. 따라서 떨어지고 있는 J씨가 블랙홀에서 r만큼 떨어진 곳에 있다면, 심장박동수는 만큼 느리게 뛰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J씨가 , 즉 블랙홀 중심에서 대략 4km 상공까지 떨어졌다고 하자. 그러면 가 되어 J씨의 심장박동수는 2초에 한 번 뛰게 된다. J씨가 점점 더 슈바르츠실트 반경(사건의 지평선) Rs에 가깝게 가면 갈수록 J씨의 심장박동수는 느려진다. J씨가 이제 까지 갔다고 하자, 그러면 이제 이 되어 J의 심장은 10초에 한 번 뛰는 것처럼 관측된다. 즉 K씨에겐 J씨의 시간이 점점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선에 남아 있는 K씨는 J씨가 블랙홀에 다가가기는 하는데, 갈수록 J씨의 시간이 느리게 가서, J씨가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하는 모습은 결국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된다.
제논의 역설을 잠시 떠올려보자. 제논은 화살이 과녁에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궤변을 만들어냈다. 이 궤변에 의하면 화살이 과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로의 1/2인 지점을 통과해야만 하고, 그다음은 그 중간점과 과녁 사이의 1/2인 지점을 또 통과해야만 하고, 이를 반복하다 보면 영원히 과녁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J씨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게 K씨가 관측하기에는 영원히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무한히 접근만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끝없는 우주로 항해해 나가는 배를 쳐다보면 결코 무한대에 도달하지 못하고 소실점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한 점으로 관찰되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K씨는 J씨의 심장박동수 몇 번을 기다리다 먼저 늙어 죽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숨을 걸고 뛰어내린 친구는 영생을 얻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기로 했던 소심한 K씨가 먼저 죽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J씨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금방 생각해보면 J씨는 자유낙하를 하고 있으므로 중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가속운동을 하면서 사건의 지평선을 유유히 넘어 블랙홀의 중심으로 떨어질 것이 예상된다. 그럼 J씨는 과연 특이점까지 목숨을 잃지 않고 도달할 수 있을까? 사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엄밀히 따져보면 J씨는 자유낙하를 하지만 완전히 무중력 상태에 놓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J씨는 블랙홀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강한 조석력을 받게 된다.
조석력은 지구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미치는 달의 인력에 차이가 있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조석력 때문에 대양의 모습이 찌그러지고, 그래서 지구의 자전에 맞추어 조수간만의 차가 생기는 것이다. 행성 주위를 도는 위성들도 조석력을 받는다. 위성이 행성에 너무 가까워지면 조석력이 너무 강해져 위성 자체가 부서진다. 그래서 위성이 다가갈 수 있는 임계거리가 있는데, 이를 ‘로슈의 한계(Roche limit)’라 한다. 토성의 고리가 바로 조석력이 너무 강해 부서진 위성의 잔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마찬가지로 J씨가 블랙홀로 다가가면 갈수록 높이에 따른 중력 차이가 심해져 J씨는 강한 조석력을 받게 된다. 굳이 따지자면 J씨의 발에 작용하는 중력과 머리가 받는 중력이 크게 차이가 나서 J씨는 위아래로 잡아당겨 지는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어쩌면 머리와 다리가 빠져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양옆으로는 심하게 조여들어 J씨는 스파게티 면처럼 가늘고 길게 늘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키 크고 날씬해지려고 블랙홀을 찾지는 말자.) 결국 로슈의 한계를 넘어 위성이 부서져 가루가 되듯이 J씨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고, 따라서 J씨는 특이점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가루가 되게 된다.
[그림 4] (ㄱ) 블랙홀에 의해 강한 조석력이 생긴다. (ㄴ) 자유낙하를 하는 관측자가 보면 머리와 발을 잡아당기는 힘으로 나타난다. (ㄷ) 스파게티 면처럼 가늘고 길게 늘어난다.
생각해보니 J씨는 무한히 늘어날 수 있는 로프를 매달고 뛰어내렸다. 그렇다면 과연 K씨는 우주선을 다시 출발시켜 J씨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어차피 K씨의 입장에선 J씨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 것을 볼 수 없고 영원히 사건의 지평선 밖에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답은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기로 남겨두고자 한다.
하여간 일단 J씨를 끌어올렸다고 가정하고, J씨의 머리에 매달았던 캠코더에 어떤 장면이 찍혀 있을까를 생각해보자. 사실 일반적인 캠코더로는 아무런 장면도 찍혀있지 않을 것이다. 전체 여행시간이 워낙 짧기 때문에, 초고속 카메라가 아니고서는 한 장면도 찍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침 J씨가 촬영한 영상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앤드루 해밀턴 교수의 “슈바르츠실트 블랙홀로의 여행”이란 유명한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주소는 참고문헌에 올려놓았다. 다만 해밀턴 교수의 시뮬레이션은 블랙홀로의 여행을 수십 초간 지속할 수 있도록 매우 거대한 질량을 가진 블랙홀을 대상으로 하였다.
사실 태양과 같은 별은 질량이 작아 블랙홀이 될 수가 없다.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별은 모든 핵융합 과정을 마치고 나면 불이 꺼지고 천천히 식으면서 백색왜성(白色矮星, White dwarf)이 되어 생을 마친다. 불 꺼진 별은 마치 용광로에서 식은 쇳덩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쇠는 알고 보면 전자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다. 사실 쇠 속에 원자핵들이 차지하는 부피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공간은 다 전자들로 채워져 있다. 방 안에 공기분자들이 가득 차 있듯이, 금속 안에는 자유전자들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공기분자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압력을 만들어 내듯이, 전자들도 서로 배척을 하며 압력을 만들어 낸다. 전자들이 서로 밀어내는 원인이라면 당연히 쿨롱의 전기력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더 중요한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파울리의 배타원리다.
전자는 페르미온 입자다. 양자역학에서 페르미온 입자는 한 개의 양자상태에 한 개의 입자만이 들어올 수 있다. 강의실의 의자를 한 학생이 차지하면, 두 번째로 들어온 학생은 다른 좌석에 앉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페르미온들은 모두 서로 다른 양자상태를 갖는다. 예를 들어, 전자들을 어느 특정 공간에 가두어 놓으면 양자역학에 의하여 에너지 상태가 양자화된다. 양자화된 에너지상태란 아파트와 같이 1층, 2층, 3층, 이런 식으로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 흔히 에너지 준위라 표현하고, 전자들은 각 에너지 준위에 하나씩만 들어갈 수 있어, 최종적으로는 모두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갖게 된다. 특히 온도가 낮은 상태이거나 또는 전자가 매우 많은 상태라면, 제일 낮은 에너지 준위부터 높은 준위로 가면서 전자들이 차곡차곡 모든 층을 채우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에너지 준위가 다 차 있는 상태를 축퇴(縮退, degenerate)된 상태라 부른다. 전자들이 축퇴된 상태에 있을 땐, 공간을 압축시키면 시킬수록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여 전자들이 갖는 운동량이 증가하고, 따라서 일종의 압력을 발생시킨다. 이 압력을 축퇴압이라 부른다.
한편 금속의 성질은 전자들이 에너지 준위를 채운 상태로 잘 설명되어, 금속을 축퇴물질이라고도 부른다. 백색왜성도 금속처럼 전자들로 구성된 기체 상태로 볼 수 있고 축퇴물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백색왜성은 전자들이 만들어내는 축퇴압력을 갖게 되고, 중력에 의해 더 수축되지 않고 어떤 특정한 크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1930년에 찬드라세카르는 이 축퇴압력으로 유지될 수 있는 별의 질량에 한계(‘찬드라세카르 한계’라 함)가 있음을 알아냈는데, 그의 계산에 따르면 태양의 1.4배 이상의 질량을 갖는 별은 중력 수축이 축퇴압력보다 커져 백색왜성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
1932년에 중성자가 발견되자, 란다우는 곧바로 중성자별의 존재를 예측하게 된다. 중성자 역시 페르미온 입자이고 따라서 전자와 같이 축퇴압을 만들어 낸다. 중성자는 전자와는 달리 전기적으로 중성이어서 쿨롱 반발력은 없지만, 핵력에 의한 더 큰 반발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런 모든 힘을 계산에 넣고 계산해보면 중성자별이 가질 수 있은 질량의 한계는 대략 태양 질량의 2~3배 정도가 된다. 이를 보통 ‘란다우-오펜하이머 한계’라 부르는데, 이 한계보다 더 큰 질량의 별은 어떠한 압력으로도 중력 수축을 이겨낼 수 없어 블랙홀이 된다고 여겨진다.
발행일 : 2017. 0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