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시절을 다시금 떠올리면 내가 너무 어린 시절에 시작했구나 싶다. 군대만큼 어려운 KBS기수 사이에서 똥오줌 가리기도 어렵고 걸음마저도 내시 비슷한 상황이랄까? 유재석은 20살, 난 21살. 김용만은 24. 김국진은 26. 하루하루가 허겁지겁 지나갔다. 그러다 김형곤 선배가 코미디 클럽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그곳에 나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곳은 야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었고 술을 팔았다. 동기 중에 그곳에 나가는 동료가 있었다. 부러운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의 라인을 탄다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이기도 한 순간이었다. 근데 한 켠으로는 그 시절이 주병진, 정재환이 뜨는 시절이라 깔끔함을 위해서는 밤업소를 나가면 아노딘다는 바람이 있는 시절이었다. 왜 그런거 있지 않나. 밤 업소는 취객이 많아서 물수건도 날아오고 과일 안주도 날아오고, 욕설이 난무하는.......
방송 풀연료 라는 것이 개 콧구멍 시절에는 ‘유명세는 방송에서 얻고 돈은 업소나 행사에서 벌어라’ 라는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월요일에 유머일번지 같은 프로그램 회의 때는 행사하는 개그맨과 못하는 개그맨 선배들의 자동차와 옷이 달랐다. 업소를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왜 개그맨은 술 마시는 사람 앞에서 코미디를 해야 할까? 사실 코미디는 양반이었다. 대부분 나이트클럽 DJ 일을 했다. 그나마신용카드 대란이 나면서 대부분 일이 없어졌다. 홍록기, 강호동은 업소의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
지난주. 나 같은 인간이 룸싸롱 가기 참 애매한 지금의 시절에 어느 카페에 갔다. 그곳은 음악 관련 전공자들이 나오는 곳이었다. 한켠에 앉아서 술을 따랐다. 클래식 연주를 하는 곳에 피아노, 플롯, 바이올린, 첼로 연주를 했다. 그러다 드는 느낌이 있지 않겠나. 저들이나 나나 개인의 장기를 갖고 사는 사람인데 연주 할 때 기분이 어떨까?
그러다보니 내가 세 번쯤 가본 요정이라는 곳의 국악 연주자들이 생각났다. 뭘까?
화루계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나 역시 예전에 태어났으면 남사당 패거리 중에 한명이었을 것이다. 뭐 대단한 시절에 나서 이런 호강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으나 어릴 때 우리 할아버지가 내가 안양예고 간 것을 두고 한숨을 500번 쉬셨다.
딸아이와 성남 모란장에 간 적이 있다. 장터의 이모저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쪽에 각설이 커플리 있었다. 그들은 어쩌면 내 모습 아닌가.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는가라고 말한다.
밤업소 뛰는 방송인은 돈에 찌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들 사정이 있다. (침실 말고도 사정은 있다) 그것을 갖고 이래저래 판단하던 시절이 우습다.
술자리 가면 연예인 함부로 하는 아저씨들을 꼭 본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내가 가수 누구를 때렸다느니 코미디언 누구 술 사줬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한다. 한때 잘나간 건달, 사업가, 한때 화류계 방랑자들이다. 그럴 때 마다 그들 역시 불쌍해 보인다.
예능 기질을 갖고 사는 이들은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이 드러운 꼴을 이길 것인가 각오를 해야 한다. 그것을 이기면 유사업종 이라도 버티고 사는 것이고 못하면 딴 일을 찾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 ‘꼭대기는 몇 명 못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