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육아일기♡
[4화] 2/27
걸.렸.다. 젠장..
한 박자만 더 빨랐다면 그대로 도망갔을 수도 있었을텐데.
"이 백화점 안에서 가긴 어딜 가. 그냥 살 거 없나 하고 둘러보는 거지."
"흐음, 그래? 믿어주지. 나도 뭐 살거 없나 둘러보는 중이었는데 같이 가자."
"그래, 같이 가면 되겠네. 원래 쇼핑은 여럿이서 하는 게 제격이잖아."
제격이긴 뭐가 제격이야? 소란스럽기만 하고 쓸 데 없이 이것저것 막 사게 될텐데.
하여간 짜증나는 전개라니까.
으으~ 아무래도 도망가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저 둘이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이상은.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있는 이제 단 하나.
하윤의 입을 막는 것 밖에는 없는데..
도망가기를 실패했으면 이거라도 잘 해야지.
그 둘은 지들 멋대로 같이 쇼핑하는 걸로 정해버리곤, 그제서야 내 옆에 딸린 꼬마를 봤다.
"응? 그런데 이 꼬마는 누구야?"
그 꼬마가 누구냐고? 나보고 엄마라고 부르는 약간 정신이 이상한 꼬마지.
더불어 미키마우스를 보고 이쁘다고 하는 눈이 삔 꼬마이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둘리를 두고 그 쥐새끼가 이쁘다는 거지?
"우와, 진짜 귀여워. 나 이렇게 귀여운 꼬마는 처음 봐."
나도 처음엔 그 귀엽고 순진한 얼굴에 넘어갔지.
하지만 속지 마. 그 뒤에는 너처럼 싸가지 없음이 숨겨져 있을 테니까.
게다가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는 끈질김이 이젠 징글징글해.
"영화사 인물들이 봤다면 아역 배우감으로 찍었겠다."
"꼬마야 몇 살이야?"
이윽고 하윤이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보이며 귀엽게 말했다.
하윤이가 웃자 배경상으론 주위에서 이름 모를 잡꽃들이 활짝 피었다.
하윤의 실체를 아는 나도 진짜 코피 터질 것 같은데 하린이야 오죽하겠는가.
완전히 넘어갔다.
"다섯 살."
"으끼야~ 너무너무 귀엽다. 나 얘 납치해서 데리고 살래."
[끼야오]에 이어서 [으끼야]라.. 언제 들어도 독특하다니까.
그런데 하린아. 너 방금 뭐라고 했지? 납치해서 데리고 산다고?
그럼 내가 이렇게 무릎 꿇고 부탁하마. 제발 납치해서 같이 살아다오.
제발 부탁이다, 부탁.
"이름은 뭐니?"
"신하윤."
조그만 입술로 오물오물 거리며 말하는 게, 주위의 시선을 뺏는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어제부터 지겹도록 봐 왔건만, 귀여움 만큼은 질리지 않았다.
"그런데 너 혹시.. 서현이 아들이냐?"
뭐? 뭐라, 케켁..고?
얘가 미쳤나, 무슨 망발을 입에 담아?
눈을 부라리는 내 모습을 봤는지 하린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말했다.
"아니라고 보기에는 너무 닮았다. 코하고, 입술하고, 피부하고.
머리카락 색도 완전히 똑같잖아. 특히 그 중에서도 닮은 건 눈동자!!
크고 까맣고 특유의 분위기를 담은 게 복사판이야. 그치?"
"응. 하윤이한테 속쌍커플 있는 거 빼면 완전히 판박이네. 혹시 동생 아니야?"
"하지만 서현이는 16살짜리 남동생 하나에다 올해 22살인 오빠밖에 없잖아."
"그럼 친척인가?"
이 때다. 이 때 끼어들어서 말해야겠어.
"그, 그래!! 친척이야, 친척. 사촌동생이거든."
여기서 그냥 이야기가 진행되기만 한다면 이것들한테 [애엄마]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 기대에 부풀어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헛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겐 이 기대를 순식간에 말소시킬 수 있는 하윤이 있었던 것이다.
기쁨에 한순간 하윤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던 나였다.
"이 사람들은 누구야, 엄.마?"
"-0-.."
"-0-.."
버엉.. 버엉..
입을 쩌억 벌리고 [나 엄청 놀랐수!!]를 외치는 지우와 하린.
결국은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마는 구나.
어서 이들에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지금은 건드릴 때가 아니란 걸 안다.
저렇게 멍해져 있는데 무슨 말을 한들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조금 기다리면 자연히 풀릴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의외로 생각 정리가 빨랐나 보다.
1분쯤 지나고 고개를 마구 흔들며 망상에서 깨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곤 궁금한 듯이 묻는 것이었다.
"너.. 사실이냐?"
여기서 말을 잘 해야 되겠지?
아까처럼 방심하다가 하윤이한테 당하면 안 돼.
"아니야. 생각을 해 봐라. 내 나이에 이만한 꼬마가 어떻게 모자지간이 될 수 있겠냐?
사촌지간이라니까. 작은 아버지네도 우리처럼 바쁘셔서 어릴 때 얘를 내가 거의 다 봤거든.
그래서 자기 딴에는 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부르지 말라고 해도 계속 부르네."
나름대로 잘 둘러댄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는 게 납득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어져 나오는 물음에 전! 혀! 납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애 아빠는 누구야?"
그렇게 말할 거면 고개를 끄덕인 건 도대체 뭐였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짜고짜 [애 아빠는 누구야?] 라니..
"충격 받더니 미쳤냐? 사촌동생이라니까."
"하윤아. 쟤 너 엄마 맞지?"
그러자 하윤은 아주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응!"
"봐라, 신서현. 어차피 다 알게 될 사실인데 똑바로 불지 그러냐?
애가 니 아들이라고 하잖아. 자고로 어린 애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말씀!! 그치?"
"그렇지! 어떻게 순수한 어린애가 거짓말을 할 수 있겠어?
게다가 이렇게 눈이 반짝반짝한 하윤이는 거짓말이란 걸 아예 모르는 애 같다구."
완전히 둘이서 편 짜고 날 놀리는 거냐, 뭐냐?
오늘 처음 보는 꼬마의 말보다는 친구의 말을 믿는 게 정상 아니야?
내가 이렇게 신용이 없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무시무시한 소름이 쫘악 끼쳐온다.
지금쯤이면..
"후후, 뭐야? [개차반을 삶아먹는 개망나니]에서 세 글자가 더 추가되었잖아?
[개차반을 삶아먹는 개망나니 애엄마]. 푸후훗! 짱이다, 짱."
"하윤아, 우리는 니 엄마 친구니까.. 음.. 그래! 이모란다, 이모.
나는 큰 이모, 얘는 작은 이모."
"내가 왜 작은 이모야? 내가 더 빨리 태어났어."
"정신적 연령으로는 내가 더 성숙하지."
또 하나 생겨났군.
[개차반을 삶아먹는 개망나니 애엄마.]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는다. 하기사 지금까지도 마음에 든 별명은 없었고.
후우-
"야. 그런데 웬만하면 애들한테는 말하지 마라?"
"뭐 말이야? 니가 애엄마라는 거?"
애엄마라니~ 아니라구, 아니야!!
단지 그냥 맡아주는 사람일 뿐이라구. 그렇게 당연한 듯이 말하지 마.
"아.니. 나한테 엄마라고 부르는 약간 모자란 애를 맡아준다는 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얘랑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아이야.
그냥 얘 부모를 찾아줄 때까지 내가 맡아서 길러주는 것 뿐이라구."
"하윤아. 너희 엄마 지금 거짓말한다. 그치?"
거짓말이라니? 아으, 거짓말 아니라고!!
내 절규가 정녕 보이지 않는다 말이더냐? 나의 이 두 눈동자를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고!
아무리 내가 양심에 털 났다고 해도 이런 거 가지고 거짓말은 안 한다 말이다, 이 년들아.
그렇게 친구를 못 믿냐?
내가 자기를 뚫어져라 노려본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하윤은 그저 실실 웃으며 말한다.
"헤헤, 응. 엄마 맞는데 계속 아니라고 해."
"참 몹쓸 엄마지. 자기 자식을 부정하다니.."
그래, 너희 둘이서 짝짜꿍 하고 놀아라. 하윤이 너도,
[응! 몹쓸 엄마야. 나보고 막 짜증내고 미키마우스보고 쥐새끼라고 그래.]
라고 하면서 맞춰주던가.
하지만 그럴 줄 알았던 하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지우와 하린의 깊은 속으로부터 의문부호가 나올 말을 해줬다.
"아니야. 우리 엄마 몹쓸 엄마 아니야. 우리 엄마는 좋은 엄마야.
오늘도 옷이랑 책이랑 다 사준댔어. 집에 가보면 이따~만한 방도 만들어줬다?"
헤헤, 자식. 눈은 있어가지고..
[엄마]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앞에 [좋은]은 마음에 드네.
"하윤아.. 너.. 너희 엄마한테 협박 받았구나?
서현이가 저녁 안 준댔니?"
"그런 거 아닌.."
"불쌍한 것.. 맞았구나?"
아까는 둘이서 짝짜꿍 하면서 졸지에 [애엄마]로 만들더니,
이젠 [협박자]로 만들어 버린다. 내가 진짜 미쳐.
하윤이가 눈을 통해 [이 사람들, 아니 이 이모들 왜 이래?] 라고 묻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 하윤이한테도 말해주는 게 낫겠지?
아무리 애라도 이것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았을테니.
"하윤아. 자신을 큰이모라고 부르는 이쪽은 선우하린이라고 하는 광기여아야.
다른 한편으로는 개싸이코라고 불리지."
"광기여아? 개싸이코? 야!! 너는 개망나니.."
"(무시무시) 그리고 이쪽은 현지우라고 하는, 세상에 다시 없을 악덕여아.
둘 다 정상이 아니니까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아."
"악덕여아라니?! 나보다 더 착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난 말이야.."
"이 세상을 자비로움과 사랑을 가지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며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해내는 이 세대의 진정한 챔피언 같은 개소리는 집어치워주면 좋을 듯 해.
자, 하윤아. 보다시피 웃기는 소리를 섞은 발악을 하는 걸로 봐서 정상이 아니지?"
내 말을 듣곤 크게 공감하는 듯, 하윤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너도 이해가 빠르구나.
믿었던 하윤이마저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진다.
어때? 너희들도 그 기분 알겠지? 하윤이와 내가 짝짜꿍 맞춰가며 너희들을
광기여아, 악덕여아로 몰아붙이는 그 기분을.
너희와 내가 단 하나 틀린 점이 있다면, 니들은 사실이지만 나는 억울하단 것.
솔직히 니들은 광기여아와 악덕여아가 맞지만, 나는 애엄마가 아니라구.
"아참! 너 그거 모르지?"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말하는 지우.
그러면서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상당히 불길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뭐 말인데?"
"후.후.후.. 신소율, 걔가 우리 반으로 전학왔어."
신소율?
내 기억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신소율이라고 하는 이름은 발견하지 못했다.
신소율이 누구지? 저번에 붙었던 패싸움의 주동자인가?
아닌데.. 걔는 이지환이라고 하는 할 짓 없는 개놈인데..
내 기억 속에서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물어봤다.
"신소율? 그건 또 뭐하는 놈인데?"
"걔 있잖아, 걔. 니가 개양아치라고 불렀던.."
내가 개양아치라고 불렀던..?
개양아치.. 개양아치.. 개양아치.. 아치.. 아치.. 아아치이?
그 오락실에서 만났던..
"뭐어어? 그 싸가지라고는 한 올도 찾아볼 수 없는 개양아치?
개싸이코 강하고와 같이 있던 그 놈? 나한테 치욕스런 별명을 안겨준 그 놈 말이야?"
"응. 우리 반으로 전학왔던데? 너 나가고 바로 다음 시간에 왔었어."
아아, 뒷골이야.
그 자식이 전학을 왔단 말이지? 그것도 우리 반으로?
뭐 이런 짜증날 뿐만 아니라 어이없고 더럽게 황당하고 불쾌하고 웃기고 엿같고
개같고 열받을 수밖에 없는 말도 안 되는 전개가 다 있냐? 엉?!
설마 또 소설의 법칙에 맞게 나랑 그 자식을 엮을 생각은 아니겠지?
생각만 해도 하윤을 맡게 된 것보다 더 암울하고 암담해.
"자자, 하윤아. 우리는 쇼핑하러 가자."
멍하게 서 있는 내 손에서 쇼핑 카트를 낚아채듯이 가져갔다.
내 손을 잡고 있던 하윤이도 데려갔지만.. 전혀 감각이 없다.
"엄마는?"
"엄마는 지금 충격을 너무 많이 받은 상태니까 건들면 안 돼요. 아주 큰~ 일 나요. 알았지?"
"응. 엄마 빨리 와."
빨리 와라구? 너 같으면 빨리 가게 생겼냐?!!
애꿎은 하윤이에게 화풀이하고 있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러기엔.. 온 몸이 얼어있었다.
이런 제엔자앙~~
+오늘의 육아일기+
.. 망했다. 정말 아주 상당히 많이 망했다.
나의 망할 친구X들이.. 우리집에 기생하는 하윤이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하하.
역시나.. 내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계속 아빠가 누구냐고만 묻는다.
나쁜 것들. 아무리 사촌동생이라고 말해도 도무지 믿지를 않으니.
게다가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개차반을 삶아먹는 개망나니 애엄마] 라며
신들린 듯 놀려댔다. 이게 다 신하윤 너 때문이잖아!! 으아악~
어떻게 된 게 그 놈의 [엄마] 라는 소리는 절대 빼먹지 않는다.
신하윤!! 정말 좋아하려고 해도 좋아할 수가 없다.
P.S. 결국 일요일날에도 쓰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은 바빠서 못 쓸 것 같았는데, 그 남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썼답니다.
그 때문에 좀 이상한 점이 많을지도 몰라요.
아아, 오늘 졸업 예배가 있었어요.
이제 우리 밑으로도 학생회 인원이 들어오겠군요.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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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좌충우돌 육아일기♡ [4화]
백랑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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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0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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