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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비극이 일어나고 처음 글을 쓰는 것 같네요. 뭔가 농구 얘기를 할 기분이 아니어서 댓글이나 글을 쓰려다 지운게 여러번 같습니다. 그런데 추억이 깃든 L.A.에 오고 보니 예전 생각도 나고 해서 몇 마디 적습니다.
새해를 맞아 22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에 올 계획을 세웠을 때 제 일정의 첫 머리를 차지한게 바로 NBA였죠. 그런데 표를 사고 보니 하필이면 올스타 주간 전이고 클리퍼스는 제 여행 일정 중 동부 원정, 결국 퍼시픽 디비전에서 볼 수 있는 경기가 세 경기 밖에 안되더군요. 그 중 피닉스 vs 워리어스 전은 일정이 빠듯해서 포기, 레이커스 vs 피닉스 전과 로켓츠 vs 워리어스 전을 예매했습니다.
그 중 레이커스 전은 하필 도착하는 당일, 피곤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걸 포기하면 레이커스 경기를 아예 볼 수 없기에 강행했습니다. 올해만큼은 꼭 스테이플스 센터를 방문하고 싶기도 했고요.
지옥같은 405번 고속도로를 지나 도착한 경기장, 스테이플스 센터는 실물론 처음 봅니다. 99시즌까지 레이커스는 그레이트 웨스턴 포럼을 썼고, 제가 귀국한 이듬해에야 이 경기장이 개장했으니까요. 00 파이널 1차전 당시 칙 헌 옹께서 "Welcome to the beautiful Staples Center. Tonight, the real season begins"란 멘트로 시리즈를 여셨는데, 그게 실감이 가더군요. 밤에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경기장은 정말 예뻤습니다. 이제 지은지 20년 좀 넘은 경기장이지만 아직도 깨끗하고 세련되어 보이더군요.
입장을 하자 딱 봐도 뭔가 비범해보이는 미녀들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입장로 구석 구석에 배치되어있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공식 응원단 Laker Girls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확실히 평범한 옷을 입었는데 다르긴 다르더군요. 연예인 같았습니다.
스테이플스 센터 내부는 정말 넓으면서도 어디서든 잘 보이게 구성을 잘 해놓았습니다. 저는 1층의 16번째 줄에 앉았는데 거의 선수들 표정까지 보이더군요. 반대쪽 코트사이드에는 드레이크처럼 생긴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진짜 그였는지, 닮은 사람인진 모르겠습니다. 잭 니콜슨도 찾아봤는데 안 보이더군요.
연습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선수는 당연하지만 르브론 제임스였습니다. 그러나 제 눈길을 가장 끈 선수는 드와이트 하워드였습니다. 이제 완연히 노장이 된 선수임에도 정말 가벼운 몸놀림에 놀라운 점프력, 특히 연습 중에 08년 덩크 콘테스트에서 우승할때 했던, 볼을 튕긴 다음에 왼손으로 탭해서 백보드에 튕기고 오른손으로 잡아서 덩크,를 가볍게 선보이더군요. 몇번이나 멋진 덩크를 보고서야 문득 떠올라 폰 카메라를 켰지만 그때부턴 3점 연습을 하더군요. 연습 때도 안 들어갑디다 (맥기도 마찬가지;;;).
제대로 안 보이지만 킹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진을 평소에 잘 안 찍어서 저 따위로 찍은지도 몰랐네요;;
사실 제가 경기에 너무 열중해서 정작 경기 때는 사진 찍는 걸 깜빡했습니다. 그리고 연습 때 찍은 사진 중 대부분은 흔들려서 건질게 없더군요. 그래도 오랜만에 본 NBA경기는 정말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스타팅 라인업 소개부터 시작해 Laker Girls의 공연, 다양한 이벤트도 눈길을 끌고 말이죠.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저 거대한 선수들이 저렇게 민첩하게 움직이는 건 언제봐도 신기했습니다. 특히 르브론은 그 거대한 몸으로 휙 하고 들어갈 때나, 포스트업으로 퉁퉁 치고 들어갈 땐 "저걸 어떻게 막나" 싶었습니다. 늙은 르브론인데도 말이죠.
아쉬운 건 르브론과 데빈 부커, 둘 다 슛이 부진했다는 점 정도였습니다. 르브론은 그래도 후반엔 좀 살아났지만 부커는 결국 야투율 두개에 그쳤습니다. 경기도 3쿼터부터 이미 기울기 시작했죠. 그래도 초반에 접전일 때 나온 플레이들은 볼 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론도의 날이더군요. 기호가 나는 족족 3점을 던지는데 무려 5개 중 4개나 성공, 양 팀 통틀어 최다였습니다. 이 날만큼은 론도에게 쏟아지는 환호가 르브론 못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차 때문에 막판에 졸음이 쏟아졌고, 승부도 비교적 빨리 기울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사실 NBA경기는 재미없기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경기력도 쩔고, 워낙 볼거리가 많아서 그렇죠. 헌데 제가 스테이플스 센터행을 강행한 건 경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실은 낮에 경기장을 찾아왔습니다. 주차하는 공간을 먼저 보려고 말이죠. 도착해서 팀 LA스토어에 들어가 가장 먼저 찾은게 있습니다. 바로 코비 추모 패치였죠.
P.S. 혹시 경기장을 찾아 기념품이나 초, 꽃 등을 놓고자 하는 분들은, 팀과 경기장 차원에서 그런 것들은 정중히 거부한다고 표지판을 놓아뒀더군요. 대신 mambasportsfoundation.org 혹은 mambaonthree.org를 통해 기부를 받는다고 합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꽃이랑 코비 져지를 갖고 갔는데 뻘쭘하게 그냥 들고 왔습니다. 한 백인 아저씨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꽃 한송이를 들고 난감해하다가 다시 가져가시더군요.
사실 저는 코비 팬인 적은 없습니다. 제가 농구를 보기 시작했을 땐 코비는 데뷔하기도 전이었고, 저희 세대의 영웅은 단연 마이클 조던이었죠. 다들 아시겠지만 조던은 완벽에 가장 가까운 선수였습니다. 그런 조던의 움직임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18세의 어린 코비는 그리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시 LA지역에 살던 어린이들에게 레이커스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존재였습니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은 어느 정도 공감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우리는 국가대표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나가면 우승"이란 생각이 크기도 했고요. 저는 반대로 NBA만 봤기에 한국 국가대표에 별 관심이 없었죠.
그런 우리에게 "우리 팀"은 바로 레이커스였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레이커스는 "우리 팀"이었고, 레이커스 선수들은 "우리 선수"였죠. 전 조던 팬이었지만, 좋으나 싫으나 레이커스는 우리 편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리오넬 메시의 광팬이면서 한국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한국인이랄까요? 다행이랄까 저는 91년 이후에 NBA를 접한지라 플레이오프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96년에 어린 코비가 드래프트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보다도 한참 나이가 많은 형인데도 우리 또래들은 코비를 친근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 어린 놈 취급하니까 우리랑 같이 어리게 느꼈던 걸까요. 당시 Da Kid라고 불리던 케빈 가넷도 마찬가지였죠.
그런 코비는...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저 어린 나이에 NBA에서 뛰다니 부럽다", "그렇게까지 대단하지도 않은데 왜 다들 오버야?" "와, 대박인데?" 생각해보면 이미 최강의 선수였던 조던처럼 그냥 우러러보지 않고 같이 성장하면서 응원할 수 있었던 첫 존재가 바로 코비였던 것 같습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응원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지켜봤죠. 커리어동안 내내... 그렇게 열광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 팀"의 "우리 선수"였으니까요.
00년 방학 때 LA에 잠깐 갔을 때 자연스럽게 코비 티셔츠를 샀죠. 이후 유럽에서 NBA상점에 갔을땐 자연스럽게 그때만 해도 썬데이 져지라 불리던 하얀색 코비 져지를 샀습니다. 정작 조던 져지는 없었는데 말이죠. 그냥 뭔가 져지를 산다면 코비 걸 먼저 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코비를 보면서 감탄도 많이 하고, 감동도 많이 하고, 욕도 많이 했습니다. 그가 위대한 선수지만 욕 먹을 짓을 안 한 건 아니었죠. 특히 말년에 경기력 관련해서요. 어쨌든 우리 선수니까 경기 보면서 욕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느낀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국가대표 경기 욕 하면서 챙겨보듯이요. 그런 그가 은퇴할때는 뭔가가 빠져나간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팬은 아니었기에 슬프다거나 그렇진 않았지만 못내 아쉬웠습니다. "20년동안 봐온 저놈을 이제 못 본다고?" 이상하더군요. 심지어 조던이 은퇴할 때도 이렇진 않았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에 그를 영영 떠나보내고 나서 한동안 무력감이 들었습니다. 농구 얘기도 하기 싫고, 그냥 뭘 하기 싫더라고요. 생각해보면 20년동안 그를 보면서 정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스포츠란게 어떻게 보면 웃기죠. 어떻게 얼굴도 한 번 못 마주치고 얘기도 못해본, 공통점도 거의 없는 사람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같이 느끼게 할 수 있을까요?
코비는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완벽한 농구선수도 아니죠. 그는 저나 여러분처럼 수 많은 실수를 거듭해왔고, 빛나는 성과 이면에 어두운 면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죠. 농구 향한, 수도승을 연상케 하는 진지함과 근엄함, 이와 대비되는 순수한 열정과 애정, 이 모든 것이 그를 바라보면서 아이에서 청년으로, 10년차 직장인으로 성장하는 제가 그에게 공감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들이죠. 그러나 삶을 살면서 그와 같이 무언가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갖고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느꼈기에 그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심을 표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것에 진정으로 아쉬움과 애석함, 슬픔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네요.
누가 뭐래도 그의 집이었던 스테이플스 센터에 오니 유독 코비에 대한 생각이 나더군요. 그가 없는 레이커스, NBA는 이전같지 않을 것 같아 즐거우면서도 새삼 씁쓸한 하루였습니다.
경기장 옆에 붙은 추모 메시지입니다.
레이커스 셔츠 옆에 붙힌 코비 추모 패치입니다. 환상적으로 불친절한 점원 아가씨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영수증을 보니 가격은 7달러 53센트더군요.
스테이플스 센터 밖에 있는 레이커스 전설들의 동상들입니다. 위에서부터 매직 존슨, 카림 압둘자바, 제리 웨스트, 엘진 베일러, 그리고 샤킬 오닐입니다. 오닐은 덩크하는 포즈라 그런지 유일하게 밑의 건물 위쪽에 붙어 있더군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코비의 동상도 당연히 세워질 텐데, 2018년쯤에 지니 버스가 "샤크의 경우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때 동상 제막식을 했으니, 코비가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를 때쯤 (제막 시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며 코비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때 동상이 공개될 거라 암시한 적이 있습니다. 코비는 올해 4월에 발표될 2020 클래스의 일원으로, 팀 던컨, 케빈 가넷 등과 같이 후보에 올라와 있습니다. 외계인 침공, 운석 충돌, 지구 폭발 등이 없는 이상 세 명 모두 헌액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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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알럽인들의 꿈이네요
ㅎㅎ 소원성취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덤덤하면서도 슬픔이 느껴집니다. 먹먹하네요
저도 웬지 모르게 먹먹하게 느껴지더라고요 ㅠㅠ
아직도 스태이플스 센터하면 코비의 집처럼 느껴지는데 ㅠㅠ
계속해서 코비의 집으로 남을 겁니다. 동상 완성되면 다시 한번 와봐야죠
글을 읽으니 다시 아쉬움이 짙게 마음으로 스며드네요. 감사합니다. 잘 계시다가 오세요.
감사합니다. 코비란 선수를 떠나서 그란 사람 자체에 이런저런 정이 들었는데...가도 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정말 아까운 사람이 일찍 떠났어요.
분위기를 느끼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NBA경기장은 그 분위기 때문에라도 가볼만한 것 같아요
잘봤습니다. 게시물을 보면서 12년전에 스테이플스 센터 가서 코비를 직접봤던게 떠오르네요..ㅜㅠ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 현실...
저는 포럼 시절에 봤는데....저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코비가 죽은 사람이란게 실감이 안 나요. 그냥 코비는 코비일 것 같은...
헐 저도 다녀왔는데. 같은날 가셨었나보네요.ㅎㄷ
오옷!! 신기하네요 ㅎㅎ 님 기준으로 오른쪽 구역에 제가 있었습니다. 코트 정면으로 (로고 뒤집혀서) 보이는 자리요. 그러고보니 경기장에 한국분들 여러 분 계셨는데 벤대협 님과 저도 모르게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ㅎㅎ
재미나게 보셨나요? 전 바로 지난주에 스테이플스 센터에 다녀왔네요...VS 스퍼스, VS로켓츠 보고 왔지요...아실테지만 스퍼스전은 릅의 5연속 3점때는 경기장이 떠나갈듯 해서 분위기 최고!! 휴스턴전은 지리멸렬했지만요...
NBA팬된지 이제 30년을 넘어서 처음으로 직관을 갔는데, 첫경기때는 정말로 감회가 남다르더군요...오버하자면 약간 숙연? ㅎㅎ
릅팬인것도 있지만, 직관을 간 가장 첫 이유는 현지인들과 으쌰으쌰 하면서 응원하면 보는걸 기대하고 갔는데, 주변에 왠 중국인들만 가득한지....전 정면 1층8번째줄, 두번째 경기는 골대뒤 4번째줄...
뭔가 주변 관중이 너무 얌전해서 그 부분이 좀 아쉽긴 했습니다.
별개로 경기장 주변에 코비죽음을 핑계로 한몫하려는 잡상인들이 어마어마 하더군요....심지어 릅의 셔츠도 단 한장도 파는사람이 없이 온통 코비추모 싸구려 셔츠 및 굿즈 파는 잡상인들 어림잡아 100팀 이상은 본듯...
LA다니는 버스에는 RIP KB가 정말 많이 보이더군요. 이제 언제 또 한번 보러 가게 될지 몰라 과감하게 질렀는데, 뭔가 허무한 느낌도 드네요...
그리고 스텁허브는 너무 비싸네요...경기가 가까워오면 많이 싸지긴 하지만 ,자리가 없어질수 있다는 불안감에 그때까지 기다릴수도 없구요.
그래도 한번쯤은 경험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거 같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ㅎㅎ 이번 경기는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추모 분위기보단 그냥 평상시 경기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언제까지 슬픔에 젖어 있을수만은 없으니...다행이랄까? 말씀하신 잡상인은 이제 한명도 없더라고요
정성스러운 게시물
감사히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짧은 필력으로 끄적거려 봤습니다 ㅎㅎ
역시 매버릭님 글 좋네요. 잘봤습니다. 저도 올해는 꼭 가고 싶네요.
항상 격려 감사합니다 ㅎㅎ 올해 꼭 가셔서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