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길 4코스 인왕산구간(사직단~돈의문~숭례문) 후기
9시 50분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로 이동하는데 철제거울이 많이 전시되어있어 사진을 찍고 출구 밖으로 나아가니 앞쪽에 김명회 대표님이 보인다. 김 대표님은 이번에 선약이 있어 못 오신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반가운 마음에 빨리 달려가 인사를 나눴다. 선약을 취소하고 한양도성길을 가기 위해 오신 것이다. 김 대표님은 대표산악회 정기모임은 말할 것도 없고 번개 산행도 매우 열심히 다니시는 매니아다. 서울둘레길도 완주하고 완주 인증서도 받으셨다. 잠시 후 전화를 받으니 유진수 대표님도 거의 도착하신다고 하신다. 유 대표님도 번개 산행은 별로 오시지 않았는데 오신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잠시 후 유 대표님이 도착하고 10시 10분쯤 최 총무와 국 대표님이 오셨다. 3명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5명 대표님이 오셔서 마음이 든든하다. 특히 국 대표님은 서울 지리에 익숙하시고 명쾌한 두뇌를 가지고 계셔서 지도가 없어도 길을 잘 찾으신다. 단체사진을 찍고 사직단을 향한다. 사직단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기대가 크다. 5분 정도 걸어서 사직단에 도착하였다. 안내원도 계시고 사직단 안은 넓고 파란 잔디가 잘 조성되어 있었으며 중앙에는 제사를 지내는 목재로 된 대문 같은 모양이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사직단을 한 바퀴 돌고 바로 위의 단군성전으로 향한다. 단군성전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한양 도성길로 접어든다. 이정표를 보며 얼마를 갔을까? 인왕산 입구가 나왔다. 지난번에는 인왕산을 내려와 여기 바로 위 암문으로 빠져나왔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산길샘 앱을 작동시키지 않아 작동을 시작하고 인왕산입구를 사진 찍은 후 한양 도성길을 찾아 전진한다. 이정표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를 돌아 성곽을 오르니 우회하라는 글을 보았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니 성곽길이 막혀 있었고 다시 되돌아와 서대문을 향하여 나아가다보니 쉼터에서 장난감이나 책등을 50%세일 하는 곳이 있어 잠시 쉬며 물을 마시고 최총무가 가져오신 사과를 먹으며 판매원에게 돈의문 터의 위치를 알아보니 지명을 다르게 불러 지도를 보고 찾아 나서는데 쉼터 바로 위쪽으로 10m 위치에 있었다. 돈의문 터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도장을 찍는 곳을 알지 못하여 중구청 문화관광과로 전화를 걸었더니 못 찾겠으면 흥인지문으로 오면 대신 찍어주겠다고 한다. 알았다고 하고 여기까지 온 김에 서울 경교장에 들려 관람을 하기고 하고 입장하였다. 경교장은 1층에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이 인상적이었다. 2층으로 향한다. 2층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선생님의 응접실(집무실)이 있었고 옆에는 의자가 있었고 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안두희가 총으로 쏴 돌아가셨다고 한다. 1층 전시실에는 김구 선생님의 장례모습이 있었으며 추모사도 적혀있었다. 『추모사 :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은 가셨는데 무슨 말씀하오리까. 우리들은 다만 통곡할 뿐입니다. 울고 다시 울고, 눈물밖에 아무 할 말도 없습니다. 하늘이 선생님을 이 땅에 보내실 적에 이 민족을 구원하라 하심이니, 74년의 일생을 통하여 다만 고난과 팝박 밖에 없습니다. 청춘도 명예도 영화·안락도 다 버리고 만리 해외로 떠다니시며, 오직 일편단심 조국 광복만을 위하여 살으셨습니다. 선생님의 일생 행적을 헤아려 보면 오늘의 민족 해방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오, 역대의 충의의 피를 흘린 모든 의인·열사와 함께 거기 선생님의 지대한 공로가 들어 있음을 부인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검은머리로 고국을 떠나셨다가 머리에 백발을 이고 옛 땅을 찾아오시던 그 날, 기쁨이 얼굴에 가득 차고 춤을 추시는 듯 좋아하시던 그 모양을 우리는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찌 뜻하였으리요. 조국의 강토는 남북으로 양단 되고 사상의 조류는 좌우로 분열된 채 동족상잔이 나날이 치열하고, 전도의 광명이 각각으로 희박해 가되 그럴수록 선생님은 국토 통일과 완전 자주 이것만을 위하여 혀가 닳토록 절규하였고, 나물국 한 그릇에 쓴 김치 한 공기로 국민 최저생활을 몸소 맛보시며 지냈습니다. 선생님의 苦難一生 至誠一念이 이러했거늘, 마지막에 원수 아닌 동족의 손에 피를 뿜고 가시다니요. 그래 이것이 선생님에게 바친 최후의 보답입니까. 동포 형제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십시오. 선생님에게 드릴 선물이 이것밖에 없습데까. 선생님! 선생님! 민족을 걱정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저녁마다 듣자왔는데, 오늘 저녁부터는 뉘게 가서 이 말씀을 듣자 오리까. 선생님! 선생님! 민족을 걱정하시던 선생님의 얼굴을 아침마다 뵈웠는데, 내일 아침부터는 어데 가서 그 얼굴을 뵈오리까. 선생님은 가신대도 우리는 선생님을 붙들고 보내고 싶지 아니합니다. 남은 우리들은 목자 잃은 양떼와 같습니다. 이런 민족을 버리시고 차마 가실 수가 있습디까. 천지가 캄캄하고 강산이 적막합니다. 분하고 원통한 생각이 우리 가슴을 채우고도 넘쳐흘러 파도 같이 출렁거립니다. 여기 천언만어가 모두가 부질없습니다. 선생님은 가셨는데 무슨 말씀하오리까. 우리들은 다만 통곡할 뿐입니다. 울고, 울고, 다시 울고, 울음밖에 아무 말도 없습니다. 여기 잠깐 우리들은 ‘月印千江’이란 말을 생각합니다. 다시금 헤아려 보면 선생님은 결코 가시지 않았습니다. 삼천만 동포가 가슴마다에 계십니다. 몸은 무상하여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의 낙원으로 가셨을 것이로되, 그 뜻과 정신은 이 민족과 역사위에 길이길이 계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대마다에 새싹이 돋고 새움이 틀 것입니다. 민족을 위하여 苦難遇重의 일생을 보내신 선생님이 결코 헛되이 그냥 가실 리 있습니까. 선생님의 거룩한 희생으로 민족의 大統一·大和平·自由·民主에 의한 새 역사의 첫 페이지는 열릴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들은 선생님의 끼치신 뜻을 받들어 선생님의 발자욱을 따라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을 위하여 삶으로써, 선생님의 신도 되었던 아름답고 고귀한 의무를 다하기를 선생님의 위대하신 영전에 삼가 맹세합니다. 1949년 7월 5일 한국독립당원 일동 대표 엄항섭』 지하에는 김구 선생님의 생활상과 경교장의 역사가 적혀있었고 활동상도 적혀있었다. 사진을 찍고 경교장을 나와 숭례문으로 향한다. 정동 골목길을 걷는다.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주한뉴질랜드대사관, 주한노르웨이대사관 등 외국 대사관이 몰려있었다. 이화여고를 지나고 정동극장을 지난다. 정동에 들어서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다니는데 이때가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러 가거나 식사 후 돌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조금 더 내려오니 골목길에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어 사진을 찍으니 김명회 대표님이 여기가 바로 미국 대사관이라고 한다. 역시 미국대사관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 주변의 분수대, 축소된 거인들 상, 화려한 빨간 국화꽃 조형물 등을 지나니 어느덧 덕수궁 돌담길이다. 덕수궁은 정면 앞으로만 다녔는데 덕수궁 돌담길은 결혼 이 후 처음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도 깨끗하고 중간중간에 의자도 예술적으로 만들어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앉아 담소를 나눈다. 우리도 의자에 앉아 국 대표님이 가져오신 원두커피를 마시면 낭만을 느껴본다. 그런데 스피커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는데 한참을 듣다보니 꼭 데모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와 덕수궁에서 왜 이런 노래 소리가 들리나 했는데 지나가면서 보니 길가에 조그만 스피커가 있었고 그곳에서 커다란 음악소리가 나오는데 택시기사들이 무엇인가 불만이 있어 스피커를 틀고 몇몇이 데모를 하는 것이 보였다. 덕수궁(대한문) 정문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남대문(숭례문)으로 향한다. 주변에는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건물들이 줄지어 널어서있다. 이제 남대문이 보인다. 입구가 반대편이라 반 바퀴를 돌아 정문에 도착하였다. 정문에서 서울 한양 도성길 스탬프투어 종이가 없으신 회원님들은 다시 한 장씩 받아 숭례문에 힘차게 스탬프를 찍었다. 그곳에서 돈의문(서대문)에서 도장을 못 찍었다고 하자 스탬프 찍는 종이 제일 하단에 자세히 적혀있다고 한다. 돈의문은 강북삼성 병원 정문 보안실 앞에 설치되어 있다고 하여 찾아보니 경고장 입구 옆에 있었는데 우리가 찾지 못했던 것이다. 남대문(숭례문)으로 들어가 중간에서 숭례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서울의 온도가 30도를 오르내린다고 하였고 도시 한가운데만으로 다녀서인가 땀이 많이 났고 힘들어하시는 회원님도 계셔서 여기까지만 관광하기로 하고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남대문시장으로 들어가니 시장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얼마를 더 가니 어떤 남자가 마이크로 큰소리로 야단을 치는데 들어보니 장사하는 가계가 있고 중간에는 리어카와 좌판으로 이루어진 판매대가 있었는데 시장 가운데는 온통 마비되다시피 복잡한데 이것을 상인대표? 가 판매대를 치우라고 고함을 치는 소리였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물어 갈치전문 음식점으로 향했다. 중앙시장 갈치조림 집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도 줄을 섰는데 5명이라 바로 안내를 해줘 2층으로 오르고 8천 원짜리 갈치조림을 주문하였고 맥주 1병과 막걸리1병을 주문하여 먹었다. 모두 47,000원이 나왔고 식후에는 가져온 사과와 포도, 방울토마토 등을 내놓고 먹은 후 식당을 나왔다. 3천원은 시장에서 붕어빵을 사서 먹었다. 이후 유 대표님과 김 대표님은 집으로 향하고 나와 최 총무, 국 대표님은 다시 강북삼성병원입구로 되돌아가 돈의문에 스탬프를 찍기로 하고 다시 되돌아간다. 대한문(덕수궁)에 도착하니 경비대의 교대행사가 진행되고 있어 관람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서울 경교장 입구 옆에 설치된 스탬프로 돈의문에 도장을 찍고 서대문 역으로 이동하여 전철로 집으로 향했다. 오늘 이동 거리는 9km이고 시간은 3시간 45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