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풍선 부는 사람이 있다. 푸른 눈의 미국인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방에는 풍선을 담고 다닌다. 그는 천식과 알러지 비염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에게로 간다.
그는 길게 늘어나는 풍선만 분다. 불어진 풍선을 비틀어 생쥐나 뱀 등의 형상을 만들어 아이들의 머리에 모자처럼 씌워주기도 하고 생쥐를 만들어 날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나르는 생쥐이다. 아이들은 하늘로 날아가는 생쥐를 보며 손뼉을 치고 그는 깔깔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보람을 느낀다.
그는 왜 풍선을 불고 다닐까. 왜 하필 길다란 풍선만 불까.
그는 한국에서 미군으로 30년간 복무하다가 현재는 환경담당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58세의 그는 13살 난 딸을 천식으로 잃었다. 그가 길다란 풍선을 부는 것은 발작으로 기도가 좁아져 숨을 거둔 딸을 생각해서이다. 천국에서라도 기도가 넓어져 숨을 편히 쉬게 해 달라는 염원에서 그렇게 하고 다닌다. 그는 부풀어지는 풍선을 보며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현실을 살아가는 어떤 방식에는 그 전의 삶이 영향을 끼친다. 반복되는 행동에는 아직 그 행동의 근원으로부터 마음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숨을 불어주며 기도를 넓혀 딸을 살려내고 싶어 한 아버지의 열망이 풍선을 불면서라도 풀어진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누가, 누구의 삶에 말꼬리를 달 수라도 있을까.
자기 지게에 진 자기 인생내력이 무거워 그렇게라도 덜고 싶은데 무어라 말할 것인가.
그 미국인이 아무 내력도 제시하지 않고 “나는 밤마다 풍선부는 꿈을 꾼답니다”라고 한다면 누가 기도를 넓히고 싶은 열망이 그렇게 이미지화 하는 지 이해할 것인가.
행동은 마음의 그림자다. 그러나, 손바닥이 나비가 되고 손가락이 염소의 입이 되는 그림자 놀이처럼 마음이 낳는 행동 또한 신비경이니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금방 알 수 있고, 다 알면 무슨 재미로 산담.
오 정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