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초 타이렐사(The Tyrell Corporation)는 리플리컨트(복제인간: Replicants)라고 알려진 사실상 인간과 동일한 진보적 넥서스 단계(Nexus phase)의 로봇 진화(Robot Evolution)를 이뤘다. 이중 넥서스 6(Nexus 6 Replicants)은 힘(strength)과 민첩성(agility)에 있어선 그들의 창조주인 유전공학자들(the genetic engineers)을 능가했고 지능(inteligence)에 있어선 최소한 그들과 대등했다. 복제인간들은 다른 행성(Off-world)들의 식민지화에 이용된 노예였는데, 어느 넥서스 6 전투팀(a nexus 6 combat team)이 식민 행성에서 유혈 폭동을 일으키자 지구로 잠입한 복제 인간들에겐 사형 선고가 내려졌고, 특수경찰대(special police squads)인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Units)는 복제인간들을 사살하란 임무를 하달 받는다. 그 임무는 사형 집행(execution)이 아니라 해고(retirement)라고 불리웠다.}
2019년 11월 LA. 400층이나 되는 높이의 건물들로 가득 찬 거리와 끊임없이 번쩍이는 레온등과 광적 행위가 만발한 도시, 지구의 파괴와 엄청난 인구증가로 인해 다른 행성을 식민지 이주가 본격화된다. 한편, 2주전 남자 셋, 여자 셋이 식면행성에서 탈출, 23명을 죽이고 우주선을 탈취하여 지구로 잠입한다. 이들은 외견상 진짜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한 복제 인간 리플리컨트. 때문에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되어 있다.
두목격인 전투용 로이 베티(Roy Batty: 룻거 하우어 분)와 역시 전투용 리온(Leon: 브라이언 제임스 분), 살인 훈련을 받은 조라(Zhora: 조안나 캐시디 분), 식민행성 군인 클럽 소속의 위안부 프리스(Pris: 다릴 한나 분)가 그들이다. 이들은 '타이렐'사에 침입하려다 한 사람이 죽고, 직원으로 위장한 리온이 조사중이던 블레이드 러너 홀든(Holden: 모간 폴 분)을 살해하고 도주한다. 이에 경찰(Captain Bryant: M. 에머트 월쉬 분)은 노련한 전문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Deckard: 해리슨 포드 분)를 호출하는데.
[스포일러] 블레이드 러너는 고도의 감정이입과 반응 테스트를 통해 인간과 복제 인간을 구별할 능력을 지닌 경찰. 타이렐사를 방문한 데커드는 타이렐 박사(Tyrell: 조 터켈 분)가 자신의 조카의 기억을 이식해 만든 미모의 레이첼(Rachael: 숀 영 분)을 만나는데, 몇가지 질문 테스트를 통해 그녀가 복제 인간임을 알아낸다. 증거를 포착해 수사를 해 나가던 데커드는 뱀쇼를 하는 조라를 사살하는데 성공하지만, 레온의 공격으로 위험에 빠진다. 이때 레이첼이 나타나 레온을 사살하고, 두 사람은 어느덧 사랑에 빠진다.
한편, 프리스는 조로증에 빠진 유전 과학자 세바스찬(J.F. Sebastian: 윌리암 샌더슨 분)에게 접근, 로이와 함께 타이렐 박사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4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안 로이는 분노하여 타이렐 박사와 세바스찬을 살해한다. 이에 데커드는 세바스찬의 아파트에서 프리스를 발견하고 사살하지만, 이때 들이닥친 강력한 로이에게 쫓겨 고공의 건물 난간에 매달린다. 위기의 순간 데커드를 살려주고 수명을 마치는 로이. 그의 모습을 통해 데커드는 복제 인간의 처절한 아픔과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는다. 마침내 레이첼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하는 데커드.
어제 커이블 어제 커이블 티비에서 <<브레이드 런너>>를 보았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 초인데,, 21세기에 다시 보아도,, 화면 구성, 질감...
그리고 문제의식, 내용 등이..
전혀 구닥다리로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의 배경은 2017년..
(음.. 이제 16년 밖에 남지 않았군..)
인간복제는 이미 성공하고,,
우주 식민지 건설에 이들 복제인간이 투입되는데,,
복제인간 6인이 여기서 탈출,, 지구로 잠입하고,,
이들의 "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복제인간 사냥꾼,,
즉, 블레이드 런너(해리슨 포드)가 이 일에 투입된다.
복제인간은 인간의 생물학적 형질을 그대로 이식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육안으로 이들을 인간과 구분할 수는 없다.
더욱이 이들을 생산한 '타이렐 사'의 모토는 인간보다 인간
다운 복제인간의 생산이었던 바..
이들을 인간과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고,,
그 전문가가 바로 해리슨 포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복제인간을 구분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억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실제 경험의 축
적을 통한 기억이다. 복제인간은 바로 기억이 없다.
영화에서 복제인간의 보스 로이는 2016년 산으로..
몸은 성인남자의 그것이나..
그의 기억은 1년 남짓 생활한 그것뿐이다.
따라서 브레이드 런너는..
복제인간으로 의심되는 존재를 앉혀놓고..
과거의 기억이 있는지의 여부를 묻는 질문들을 던지고,,
눈의 홍체 변화를 통해,,
그의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고..
그가 인간인가,복제인간인가 판별해 낸다.
부연하건데,,
복제인간은 기억이 없기 때문에,,
어린 시절이 없었고,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없다.
따라서,, 어린 시절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물으면..
거짓말을 하게되고,,
그에따른 무의식적 반응..
육체적으로 무의식적인 홍체의 팽창이나 충혈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복제인간이 단지 이론적으로 가능했던 시절에..
복제인간의 인권 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복제인간은 기억의 유무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구분되는 점이 없는 인간보다 인간적인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죽이고, 착취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이들의 저항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속에서..
한 복제인간의 대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 철학의
패러디는 정말..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
게 된다.
몇년 전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의 실험 성공에서..
올해 게놈 프로잭트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브레이드 런너>>가 그리고 있는 사회로의
급격한 이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너무 묵시록 적이지만,,
재앙이 예상된다. 자명해 보인다.
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만이 있을 뿐이지..
그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다.
20세기 초의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히로시마 , 나가사끼 옥폭 투하 등의 비극이..
21세기에 재현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의 만연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것이 초래할 재앙이 21세기에 재현된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복제 분야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
나만의 기우일까?
소논문 )
Blade Runner
김 덕 희
1. SF영화의 묘미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이자 불가능한 일을 사실처럼 보여주는 눈속임이기도 하다. 특히, SF 영화는 '사실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눈속임'을 벌이기 위해 상상력에서 모든 것을 시작한다. SF는 과학기술이 궁극적으로 문명의 진보를 보장하리라는 전망, 즉 유토피아적 전망과 묵시록적 예측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두 가지는 흔히 같은 영화에 함께 나타나기 마련이다. SF가 특수효과에 의한 '구경거리'라는 측면과 묵시록적 예측의 이러한 두 갈래 긴장은 서로 관련을 맺으며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에 따라 SF는 단일 장르에 고착하지 않고 다른 장르와의 끊임없는 결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같은 SF영화 중에서 필자가 <블레이드 러너〉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두 가지의 특징에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지만, 이 영화 역시 과학과 영화의 단순한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SF라는 자칫 허무맹랑한 틀 안에서 철학적 접근을 할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앞으로 〈블레이드 러너〉가 보여주는 외재적 모습과 현대 인간 모습을 나타내는 내재적 측면을 분석해 볼 것이다. 외재적 측면에서 살펴볼 것은 영화의 줄거리와 미래의 시각화 방법,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으로 본 영화의 특징이며, 내재적 측면에서는 영화 속의 눈동자와 인간의 관계, 유니콘의 상징의미, 페미니즘 시각의 적용, 〈블레이드 러너〉가 말하고자 하는 현대 인간의 모습이 포함된다.
Ⅱ. 〈블레이드 러너〉의 표상
A. 2019년. 로스앤젤레스
2019년에도 어떻게 세상이 변할지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미래가 필자의 눈앞에서 또 하나의 눈으로 다가왔다. 법을 어기는 복제 인간을 제거하는 특수 경찰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타이렐 회사에서 제조한 복제 인간 넥서스 네 명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들은 명령을 어기고 우주선을 탈취해 지구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들이 외 지구로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이들 네 명은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들은 어떻게 복제 인간을 구분할까? 그것은 눈동자 반응을 보면서 가능해 진다. 한편, 데커드의 검사 대상이 된 타이렐 회사의 신제품 레이첼은 자신이 복제 인간인지도 모르고 있다. 과거의 기억까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복제 인간들은 자신들을 개발해 낸 타이렐을 찾지만 수명을 연장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레이첼과 사랑에 빠진 데커드는 조라와 프리스를 제거하고, 로이는 자신에게 쫓기다 옥상난간에 매달린 데커드를 구해줌으로써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모습으로 최후를 맞는다. 데커드는 집으로 돌아와 레이첼을 데리고 떠난다. 복도에서 데커드는 종이로 접은 유니콘을 발견하고 개트가 왔음을 깨닫고 승강기를 탄다. 이러한 줄거리를 가진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살펴보도록 하자.
B. 묵시록적 미래 사회
2019년의 로스앤젤레스는 온갖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잡종의 도시로 그려지고 있다. 그 곳은 조명과 세트의 미술로 '악몽'의 도시로 변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구회영(1997).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도서출판 한울), 168쪽 ) 암울하게 느껴지며 그 속의 건물 사이로 흐르는 빛이 삭막하기까지 한 〈블레이드 러너〉의 도시 장면에서 건물은 모두 모형이며, 불이 켜진 창들은 모두 광섬유를 꽂아 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C. 해체로서의 혼합
현대 영화에서는 장르의 스타일을 쉽게 감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관객은 이야기의 흐름만 언뜻 알뿐이지, 카메라 등이 이끌어 가는 영화의 서술방법은 알아채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를 포스트 모더니즘과 관련시키면 탈 장르로서의 같은 장르영화가 분리되어진다. 공통된 특성으로 패스티쉬, 패러디, 자기반영성, 탈장르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특징이 하나라도 보이면, 포스트 모더니스트 영화라고 불린다. 이것은 탈 장르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술 영역 전방에 걸친 논의가 아니라 한 영역에서만 국한하여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여기서는〈블레이드 러너〉에서 특히 잘 나타나는 요소들만을 알아보도록 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단순한 SF가 아니다. 그것은 또다른 SF영화 〈스타워즈〉처럼 복합 장르에 속한다. 형사 드릴러 양식, 필름 누아르적 내용이 전반적인 축을 이루며 이 영화를 이끌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면 아버지와 가족이 지니는 의미를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며, 인간과 복제 인간의 대립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인 만큼 휴머니즘에 대한 시각도 이 영화에서는 얼마든지 통한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화 적용은 SF영화의 전형적 특성이 해체되고 또 그것의 혼합이 이루어지는 긴밀한 관계를 뜻한다.
Ⅲ. 복제 인간의 인간화
A. 넌 진짜? 가짜?
블레이드 러너가 복제 인간을 진짜 인간과 구별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시작되는데 눈에 초점을 맞춘 채 그 변화를 감시하는 테스터 '보이크 켐프'가 인상적이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생굴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개고기 요리가 나온다면?" 인간은 이런 황당한 질문을 받으면 감정적 파동을 일으켜 안구 근육의 긴장으로 인해 테스터의 모니터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냉담한 복제 인간은 감정적 반응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다. 여기서 눈동자는 인간의 특수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런 의미는 타이렐이 큰 안경을 껴서 눈이 커 보이는 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레이첼처럼 추억이 이식되어 있는 복제 인간은 경험에 의한 감정 반음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질문을 통해서만이 가짜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눈동자는 복제 인간의 기억을 저장해 가는 도구이며 세계를 인식하는 수단이다. 최후의 넥서스 로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는 오리온 전투에도 참가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보았다고 한다.
앞에 것과는 달리 부정적 의미를 지니는 행위에서 눈동자의 의미를 살펴보자. 로이는 타이렐의 눈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빼낸다. 이것은 복제 인간이 자신을 만든 인간에 대한 복수와 인간 질서에 대한 저항을 느끼게 해 준다. 타이렐을 죽은 복제 인간은 인간의 질서에 도전한 복제 인간을 표상하기도 한다
B. 날아라 유니콘
<블레이드 러너〉에서 유일하게 밝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화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유니콘이 등장한다. 그럼, 유니콘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니콘은 예로부터 순결성을 상징했다. 초반에 술에 취한 데커드는 피아노를 치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는데 이때 유니콘이 나온다. 그것은 데커드가 레이첼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로 안하여 그녀는 ( 데커드에게 ) 인간이 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개프가 접은 종이 유니콘은 데커드를 조롱하기 위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유니콘은 처녀만이 잡을 수 있고, 멸종한 동물이라고 한다. 개프는 레이첼 또한 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유니콘과 같다고 본 듯하다. 하지만 개프는 종이 유니콘을 통해 데커드에게 말하고 있다. 레이첼과 도망칠 수는 있어도 그녀가 살아남지는 못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개프의 의도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르게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C. 페미니즘의 시각을 가지고
영화의 갈등 구조가 고조된 시점에서 로이는 타이렐을 찾아간다. 이때 그의 호칭에 주목해 보자.
" 더 살게 해 주세요, 아버지."
아버지의 거대한 힘에 겁먹은 아이처럼 말하는 로이의 대사에는 어색함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움이 발견된다. 아버지는 전통적 힘의 상징이며, 타이렐 역시 복제 인가들을 창조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자리가 절대적이니 만큼 로이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는 행동한다. 그의 아버지, 타이렐을 죽임으로써 절대적 힘 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남성의 상실로 여성의 상대적 가치가 높아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에는 여성 힘으로 묘사되는 이가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해석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또한 복제 인간들에게는 가족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사회화 과정은 같은 출신의 그들끼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가족의 실종 역시 가족 테두리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성을 그 곳으로부터 탈피시키고 있다. 아버지와 가족의 의미는 전통적인 페미니스트의 1차 인격화 대상의 법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복제 인간의 사회에서만 의미를 지닐까? 안타깝게도 이 물음에 대비되는 설정이 있다. 그것은 레이첼의 인간화이다. 데커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레이첼이 동료 복제 인간을 총으로 쏘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그녀는 지배적 남성에게 기꺼이 복종하는 수동적인 여성으로 총을 쥔 채 서 있었다. 이런 상황들이야말로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의문을 가시지 않게 해 주었다.
D. 아니! 자본주의의 모순까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측면이 이 영화에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복제 인간을 만들어 그들을 노예화하는 타이렐 회사는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최고 권력을 가진 회사로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극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자본주의의 권력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타락한 도시임을 느끼게 해 주는 안개 속에는 흐느적거리는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오염된 지구로브터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본주의는 권력을 유지함으로써 근원적 인간 사회가 해체되는 공간 가운데에 영속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데커드의 인간성 상실에 관한 문제이다. 데커드는 블레이드 러너 - 복제 인간을 처치하는 특수 경찰 - 이다. 그는 약속한 넥서스를 찾아내어 무자비하게 그들을 죽인다. " 무기도 없는 상대를 죽여? 아주 잔인하군! 여자만 죽이냐?" 폐쇄된 방세서 로이의 이러한 외침은 섬뜩하게 들리며, 이것은 데커드의 인간성을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데커드는 이제 로이로부터 쫓김을 당하고 조롱 받는다. 인간의 중심으로 보이던 데커드의 처지는 우리에게 가지 확장될 수도 있다. 끝내 옥상 난간에 매달리게 된 데커드는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다. 이때 실망스러운 것은 데커드의 눈이 인간성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들의 손으로 만든 복제 인간의 구원의 손을 기다리는 인간으로 전락했다. 데커드는 로이에 의해 구조되지만 그가 가진 인간성은 저 아래 아득히 먼 곳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인간을 구해주는 '복제 인간'과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복제 인간에 의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인간 사이에는 극명한 대립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 존재가치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마지막 레이첼과 떠나는 데커드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 되어 돌아오려면 얼마나 많은 인간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할 지를 생각하게 한다.
Ⅳ. 유토피아적 2019년을 꿈꾸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블레이드 러너〉에 나타난 표상과 그 속에 담겨진 의미들은 간단한 해석으로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큰 가치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동자는 인간과 복제 인간의 벽을 확실히 구별지을 수 있는 매체이다. 하지만 이에는 조건이 따른다. 그것은 그들 복제 인간들에게 기억이 인식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눈동자는 인간의 가치를 투영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두 번 나오는 유니콘은 레이첼의 인간화를 나타내기도 하며 데커드의 인간적 조롱을 나타내기도 하는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 영화는 남성의 상징과 틀이 무너짐에 따라 상대적인 여성의 성장을 기대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또 〈블레이드 러너〉에서 데커드와 로이로 대표되는 인간과 복제 인간의 대립을 통해, 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는 복제 인간의 최후와 그와는 반대로 구체화된 데커드의 인간성은 우리에게까지 확장되어 인간성 상실의 조소를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영화〈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의 모든 도덕적 자신감을 흔들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그 틈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신 자신이 그런 실험을 받은 적이 있나요?" 라는 레이첼의 질문을 통해 데커드가 인간인지 복제 인간인지조차 필자를 혼란스럽게 했을 만큼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에 대한 충고나 비판을 115분 동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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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참고문헌
1) 구회영(1997).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 도서출판 한울 2) 김병관(1997). 인간질서에 도전한 리플리컨트,<과학동아>(1997. 4월호). 동아일보사 3) 김진우(1995). <하이테크 시대의 SF영화>. 도서출판 한나래 4) 박상준(1995). 묵시록적 미래의 시각 디자인,<씨네21>(1995. 제3호). 한겨레 출판사 5) 이재경(1995). 복제 인간과 안티, <창작과 비평>(1995.여름호).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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