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우리와 인연도 많고 비슷한 것도 많은 나라다. 요즘은 아니지만 한자도 썼고 상명하복의 유교 문화에 익숙했고 중국식 관료제도를 도입했다. 외침도 많았고 그래서 민족적 자존감도 높지만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됐고 분단도 됐다. 그리고 작은 공통점 하나 구정, 즉 음력 설을 성대하게 치른다는 것.
1968년 설날은 1월30일이었다.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났고 마을마다 귀향객이 흘러넘쳤다. 베트남 말로 ‘테트’라고 하는 구정만큼은 좀 한갓지게 넘어가고픈 것이 미군과 남베트남 정부의 바램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구정을 기해 베트콩은 대공세를 펼칠 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 귀향버스를 가장한 버스가 베트콩들을 그득그득 채우고 각 지방으로 흘러들었고 시신 대신 무기를 가득 채운 장례 행렬이 넘쳐났다.
그리고 베트콩 구정 대공세가 시작됐다.
남북으로 긴 베트남의 국토 곳곳의 도시들이 베트콩들의 공격을 받았고 수도 사이공에서는 미국 대사관을 습격받았다. 그러나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구정대공세는 전술적으로는 대참패였다. 베트콩의 조직은 사실상 괴멸될만큼 타격을 입고 북베트남군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전략적으로는 베트콩의 승리였다. 전쟁의 이면을 속속들이 전하고 있던 언론에 구정 대공세가 생중계 되면서 그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미국 대사관에서 벌어지는 총격전도 그랬지만 1968년 2월 1일 사이공 시내에서 일어난 한 사건과 그로 인해 남은 사진 한 장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사이공의 경찰 책임자 ‘구엔 곡 로앙(Nguyen Ngoc Loan)’이 공포에 질린 한 남자의 머리에 총을 대고 사살하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에서 구엔 곡로앙은 정면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사살 당하는 이의 앞 모습은 그대로 드러난다. 일그러진 입, 애써 총구를 피하는 눈, 두려움으로 구겨진 얼굴은 사진을 접한 그의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당시 AP통신 미국 종군기자 애디 아담스(Eddie Adams)와 NBC 카메라맨 보 수 (Vo Suu) 였다. 애디 아담스는 “난 포로가 서 있는 곳에서 불과 2미터도 안되는 곳에 서 있었어. 그런데 그가 천천히 총 쪽으로 손을 가져가더군. 위협일 것 같았어. 그런데 그가 총을 꺼내들고 팔을 들어올렸지. 나도 카메라를 들었고. 그리고 방아쇠를 당겨 버리더군. 그 순간 나도 셔터를 누르고 있었지.”라고 회상한다.
딸 둘과 뱃속의 아들의 아버지였던 한 남자는 머리가 박살나서 죽었다.
이 사진은 미국인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도대체 우리 전우가 이런 ‘X’자식이란 말인가? 백주 대로변에서 비무장 포로의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겨 버리는 야만인이란 말인가? 대체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며 누구를 위해 군비를 바치는가?
1968년 2월 1일 촬영된 이 한 장의 사진의 힘은 대단히 컸다. 당장 구엔 곡 로앙은 미국의 압력에 의해 경찰 책임자 자리에서 쫓겨났다. 2월 1일의 희생자 외에도 베트콩 포로를 죽여 버리기로 악명 높았던 (동시에 3개국어를 하는 교양인이었고 자애로운 아버지이기도 했던) ‘베트콩의 도살자’는 그렇게 물러났다.
구엔의 명은 길었다. 그는 패망 직전 남베트남을 떠난 최후의 베트남인 가운데 하나였고, 미국에서 피자집과 스파게티 집을 운영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숨 쉬고 농담도 하고 때 되면 쌀국수 들이키던 한 남자의 생명이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하나의 힘에 사위어가는 순간을 기록한 이 사진의 의미는 깊고도 컸다. 월남전은 이렇듯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에 뛰어든 종군기자들의 영웅담이 기록된 거의 마지막 기회가 된다.
이후 미국 정부는 저널리스트들의 전쟁터 취재를 제한했다. 기자들은 겨우 정부가 제시하는 영상을 보며 전황이나 설명하는 심부름 꾼으로 전락했다. 그와 동시에 전쟁은 현실이 아닌 비디오 게임같은 구경거리로 변모했다. 군과 알력을 빚으며 최전방의 생활을 자청했던 종군기자들은 사라지고 아늑한 프레스센터에서 앉아 있다가 챔피언이 나타나면 우우우 달려들어 플래쉬 터뜨리며 브리핑을 잘 받아 적는 받아쓰기 기자들만 양산됐다.
수십만의 이라크인과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어떻게 죽어 갔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를 미군이 조종하는 카메라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된 것이다. 아주 가끔 인터넷 같은 비공식 매체로 ‘현장의 진실’이 흘러나오긴 하지만.
그 연원 중의 하나가 이 사진에 있었다.
그 도살자 Nguyen Ngoc Loan 장군은 1930년생으로 당시 베트남 경찰 총책임자였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자 미국으로 탈출하였고, 워싱턴 DC 롤링 밸리 몰에서 피자 가게를 하며 여생을 지내다 1998년 암으로 사망했다.
(글쓴이 : 김형민 /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055837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