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시에 대한 구부러진 잣대
이단사냥꾼들이 비본질적인 견해 차이 즉 이단사설이 아닌 이설을 가지고 이단으로 몰다가 여의치 않으면 꺼내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직통계시입니다. 우리 교회도 구원론을 트집 잡아 이단으로 매도하다가 여의치 않자 결국 직통계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런데 계시에 대한 이들의 잣대는 가장 구부러진 잣대 중 하나입니다.
'직통계시 이단'은 이단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주된 수법입니다. 그런데 직통계시는 그 용어 자체가 모순입니다. 계시는 당연히 직통으로 오는 것이지 쓰리쿠션으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이 과연 어떤 의미로 '직통계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지 자못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고는 경악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이든지 직접 받으면 그것이 직통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잣대를 들이대면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이단이 됩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직통계시를 이단정죄의 잣대로 삼으면,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세기의 성자'라 일컬어지는 성 프랜시스, 수도사들의 선조이며 '대 안토니'라 불리는 성 안토니, 기독교 고전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와 포스퀘어 교단의 창시자 에이미 샘플 맥퍼슨,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인도의 성자' 썬다 싱, 오랄로버츠대학의 설립자이며 강력한 복음전도자인 오랄 로버츠, 세계적인 선교단체인 예수전도단,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 주안장로교회 나겸일 목사,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모두 이단이 됩니다. 저는 이 외에도 직통계시 이단으로 이름을 올려야 할 수천 명의 목회자들의 이름을 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여기에 동의하겠습니까? 사실이 이런데도 이단사냥꾼들이나 교단들이 아직까지 그런 구시대적인 잣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울 뿐입니다.
물론 '계시'라는 단어를 특별 계시인 성경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안식교에서는 엘렌 G. 화잇이 받았던 계시들을 권위 있는 특별 계시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런데 이단사냥꾼들은 그런 이단적인 계시가 아니라 성령께로부터 오는 꿈, 환상, 예언, 입신 심지어는 흔한 레마(이 용어의 사용이 바람직힌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도 의문입니다만)까지 직통계시로 봅니다. 그래서 이단으로 매도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성령의 조명 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잘못된 신학사조 즉 은사중지론에서 파생된 매우 잘못된 기준입니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심각한 오류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단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직통계시'라는 기준이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여러분에게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1) 계시에 대한 이단사냥꾼들의 심각한 무지
왜 이단사냥꾼들은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이단으로 몰려고 할까요? 그것은 그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최근 통합 특별사면위는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신청인은 '성령의 직접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한다'고 계시론에 이단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로 지적하는 성령의 직접계시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귀 교단에서 우리 교회를 조사 연구할 때 이대위 전문위원이었던 최삼경 목사는 '계시'의 의미를 협의적인 의미, 즉 정경기록을 위해 주어지는 것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계시'라는 단어를 사용하므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에 무엇인가를 가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 역시 계시는 종결되었다고 믿고 있으며, 사역을 위해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일반적인 의미의 계시만 존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입장은 정통 신학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국내외의 많은 정통 신학자들이 '계시'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됨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번 포이트레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개혁·보수 신학자들이 '계시'라는 말을 전문술어로 지나치게 좁게 정의하여 '특별 계시는 곧 성경 말씀'이라고 단정 지어버리기 때문에 개핀과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성경에는 '계시' 또는 '계시하다'라는 말이 꼭 정확무오한 '특별 계시 곧 성경말씀'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것(롬1:18), 신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마11:25), 하나님을 더욱 잘 알아가는 것(엡1:17)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또, 저명한 신학자 D. A. 카슨도 조직신학자가 사용하는 좁은 의미의 '계시'와 성경이 말하는 넓은 의미의 계시의 정의를 혼동하는 오류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했습니다. 그는 『성경해석의 오류』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4:30에서 예언의 은사가 계시에 의존한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정경의 완결성을 위협할 정도로 권위 있는 형태의 계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개신교의 조직신학 용어를 성경 저자들의 용어와 혼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트리니티의복음주의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를 거쳐 현재 피닉스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세계적인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 박사도 그가 쓴 『조직신학』과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지금도 사용되는 예언의 은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고전14:30) 바울은 '계시'라는 단어를 신학자들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진 말씀에 대해 사용하는 기술적 방식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계시하다'와 '계시'라는 용어는 성경으로 기록된 말씀 또는 기록된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말씀(마11:27, 롬1:18, 엡1:17, 빌3:15를 보라)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세계적 석학인 하워드 마샬 교수의 지도로 신약학 박사를 취득한 총신대 이한수 교수님이 『교회의 세속화 문제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동일한 주장을 했습니다.
'개핀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계시라고 해서 다 동일한 계시라고 할 수 없다. 어떤 계시는 성경을 기록하는 것과 같은 '성경적 계시'도 있지만 어떤 계시는 좀 더 사적이고 신자의 매일의 생활과 관련된 '조명적 계시'도 있다.'
심지어, 개신대 나용화 총장님은 <계시·은사중지론은 교회 죽이는 신학>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잘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보수 정통 신학을 자랑하는 신학대학교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가지고 성령으로 지금도 계시하고 계신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8장 8항; 대요리 43문댑; 소요리 24문답)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계시종결론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은사중지론 즉 성령의 계시적 은사(예언)와 방언의 은사 및 신유와 축사의 은사가 사도시대 이후로는 중지되었다고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계시종결론과 은사중지론을 가지고 이단시비를 하여 이단 아닌 이단을 만들어 정죄한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
계시종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선지직뿐 아니라 성령의 계시 행위를 부정함으로써 성령의 역동적인 계시 활동을 제한하기 때문에, 사실상 그리스도의 교회를 죽이는 것이다. 계시종결론과 은사중지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계시의 수단들과 관련하여 꿈과 환상과 음성이 지금도 성도들에게 체험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뿐 아니라 이단으로 정죄한다. 그리고 예언의 은사와 방언의 은사는 물론 치유사역과 축사사역도 부정하고 이단으로 정죄한다. 이 같은 이단정죄 행위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를 죽이는 죄와 악을 범하고 있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이단사냥꾼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계시에 성경기록을 위한 특별 계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기록과 무관한 계시들이 있고 그것을 계시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거나 계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이단은 아닙니다. 놀랍게도 최삼경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로 최삼경과 진용식이 함께 저술한 『안식일 교회 대논쟁』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요엘서나 고린도전사가 말하는 것은 성경 외의 다른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성령의 은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교에서 선지자로 믿고 있는 화잇의 계시는 보편적인 은사로서의 계시가 아니다. 안식교의 교리들은 성경의 계시처럼 화잇의 계시에 의하여 세워졌고 실질적으로는 성경 위의 계시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최삼경도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보편적인 은사로서의 계시' 즉 성령의 은사로 임하는 계시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계시에 '정경기록을 위한 계시'와 '사적 계시'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교회를 의도적으로 직통계시 이단으로 몬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2) 성경에 나오는 성경기록과 무관한 '계시'
많은 학자들과 이단사냥꾼들이 계시라는 단어를 편협하게 성경기록과만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해드린 대로 계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고, 실제로 성경은 계시를 구원을 비롯하여 신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함께 그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마태복음 11:27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영생은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즉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해서 아는 것과 달리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려면 반드시 계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복음을 듣는 각 개인에게 내적 계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각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성경 이외의 계시를 개인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문맥을 보면 그런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70인 제자가 나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듣는 자들 중에 자기가 지혜롭고 슬기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에게는 복음의 비밀이 감추어졌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들을 때 내적인 계시를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어린아이같이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성령님이 복음의 비밀을 나타내셨습니다. 즉 그 마음에 계시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을 두고 예수님의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계시'는 성경 이외의 계시가 아니라 성경의 복음과 진리를 전할 때 성령님이 듣는 자들의 마음과 귀를 여셔서 깨닫게 하시는 내적인 계시를 뜻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계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계시가 끝났다는 주장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구원에 계시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곳은 고린도후서 4장 3-6절입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여기서 '가리어졌다'는 말은 헬라어 '칼륍시스'(kalupsis)를 번역한 것으로 "숨기다, 감싸다, 덮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와 관련된 용어 가운데 '계시' 혹은 '묵시'를 뜻하는 '아포칼륍시스'(apokalupsi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칼륍시스'(kalupsis)에 접두사 '아포'(apo)를 첨가한 것입니다. '아포'는 "~을 이탈하여, 벗어나서, 멀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계시'의 문자적인 의미는 베일을 걷어내는 것, 덮개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이 세상의 신인 마귀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베일로 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의 광채를 볼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들의 마음을 가리고 있는 베일을 걷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분이 성령님이고 그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결국 계시가 없으면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계시가 끝나고 없다니 그 말이 가당키나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