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원소, 분자
과학 서적이나 잡지, 컬럼에서 '원자'나 '원소'라는 단어가 나오거나, 우리가 과학에 관련한 내용을 말할 때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확실하게 그 의미나 차이를 알면서 쓴다기 보다는 거의 같은 의미로 혼용하기도 합니다.
보통은 '더 이상 나누어지지않는 물질의 최소 단위' 정도의 의미로 쓰이는데요.
정확하게 원소와 원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원자(原子, atom)는 물질의 기본적인 최소입자이며,
원소(元素, element)는 한 종류만의 원자로 만들어진 물질 및 그 홑원소물질의 구성요소입니다.
따라서 원자와 원소의 종류는 같습니다.
원자는 입자의 갯수를 말할 때 쓰기도 하는데, 이에 비해 원소는 그 종류를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물질을 아주 작게 점점 나눈다고 생각해 봅시다.
점점 작은 알갱이로 나뉘어지다가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입자가 남게되는데 이 때의 입자를 분자(分子, molecule)라고 부릅니다.
분자는 2개 이상의 원자들이 결합되어 있을 수 있는데 이 결합을 쪼개면 물질의 성질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 분자를 살펴보겠습니다.
물은 물분자가 많이 모인 것입니다.
물의 성질을 잃지않으며 물을 이루는 최소의 입자가 물 분자입니다.
그런데 물 분자는 산소와 수소의 결합으로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 분자 1개는 산소 원자 1개와 수소 원자 2개로 총 3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물 분자는 산소 원소와 수소 원소의 두 원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물 분자를 이루는 원자 갯수는 3개이고, 물을 이루는 원소는 2종류인 것입니다.
그리고 물 분자를 산소와 수소의 각각의 원소로 분해 할 수 있는데, 분해가 되면서 물의 성질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분자가 어떤 원소로 몇개의 원자로 이루어졌는지를 나타내는 표현식을 '분자식'이라고 합니다.
물의 분자식은 H2O라고 씁니다.
원자론의 부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기원전 470~380)'는 모든 물질은 변하지않고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와 이 원자가 운동하는 빈 공간(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원자론은 진공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물질은 4가지 원소(물, 불, 흙, 공기)의 비율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에 위배되며 자연의 모든 것을 영적 요소가 없는 물질적인 것으로만 본다는 이유로 배척되었습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은 약 2000년 동안 비주류적 이론으로 여겨져 오다가 1803년에 '존 돌턴(John Dalton, 1766~1844)'에 의해 부활되었습니다.
'돌턴'이 근대적 '원자론'을 주창하기까지는 16~17세기에 걸친 과학혁명의 시대를 거치며 중세 유럽의 철학과 자연과학의 근간이 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관에 대한 비판적 사조가 일어나며 '기계론적 자연관'라는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의 출현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천문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케플러', '갈릴레이'의 천문학적 발견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성립되어 중세 우주관을 지배했던 '지구중심설'은 '태양중심설'로의 혁명적 전환을 맞이하였습니다.
또한, '갈릴레이'에 의해 제기된 힘과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론은 '데카르트', '호이겐스', '라이프니츠' 등의 역학 연구를 거쳐 '아이작 뉴턴'의 역학이론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론을 기반으로하여 성립된 연금술은 말년의 '뉴턴'조차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만큼 중세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18세기 초까지 오랫동안 유행하며 그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연금술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영국의 화학자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이탈리아에서 '갈릴레오'의 업적에 대해 공부 할 기회를 가지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체의 운동과 천체 운행에 대한 학설이 반박 당하고 실험과 관찰을 통해 새로운 과학적 진실이 밝혀지는 학문의 분위기를 접하였습니다. 귀국 후 화학에서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각종 실험을 통해 ‘기체의 부피와 압력이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을 제시하였습니다(1662년). 그는 공기의 무게를 재었고, 생명현상과 화학반응에서 공기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습니다. '보일'은 1661년 출판된 <회의적 화학자 (The Skeptical Chemist)>라는 저서를 통해 연금술이 화학으로 변환되는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근본입자' 개념을 제시하여 종래의 원소의 개념을 파기하였으며, 화학물질을 원소와 화합물로 구분하였습니다.
1700년대에는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공기(기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환풍기를 발명한 영국의 '스티븐 헤일즈'는 화학 반응에서 발생하는 기체를 모으는 장치를 고안하였고, '조셉 블랙'에 의한 이산화탄소의 발견(1754년), '헨리 캐번디시'의 수소 발견(1766년)과 수소의 연소 후 물이 발생하는 실험을 통하여 원소라 믿어져 온 물은 화합물이고 공기는 혼합물임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조지프 프리스틀리(=프루스트)'에 의해 산소의 발견(1774년)도 이어졌습니다. 산소는 1773년경 '칼 빌헬름 셸레'도 발견하였으나, 먼저 발표한 쪽은 '프리스틀리'였습니다. 또한 '셸레'와 비교해서 '프리스틀리'는 산소의 성질에 대해 더욱 자세한 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의 '라부아지에'는 연소현상에 대하여 물질이 공기중의 산소와 반응하는 것임을 밝혀 그 당시의 연소에 대한 설명으
로 여겨지던 '플로지스톤설'을 폐기하였으며(1785년), 연소와 금속이 녹스는 것 등은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는 것이며, 섭취한 음식물의 소화 과정에서도 이런 연소가 천천히 일어나는 것임을 보였습니다.
또한 물의 분해 실험을 통하여 물은 산소와 수소의 화합물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라부아지에의 물의 분해 실험>
그는 화학반응의 전후에 있어서 물질은 보존되며, 따라서 생성되거나 소멸되는 것은 없고 단지 변형만이 있다고 하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표하였습니다(1789년).
'라부아지에'는 화학물질의 원소 조성과 특성을 반영하는 ‘화학명명법’ 제정을 주도하고, <화학요론>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화학적 지식을 보급하였습니다. 화학 이외에도 사회복지 등 여러 가지 사회 발전에 공헌하였으나, 안타깝게도 프랑스 혁명과정에서 1794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이로써 과학계는 가장 위대한 화학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라부아지에'의 '질량보존의 법칙'과 '조제프 프루스트'가 1799년에 발표한 '일정성분비의 법칙'은 '존 돌턴'이 '배수비례의 법칙'을 발전시키는데 기초적인 개념을 제공하였습니다.
'배수비례의 법칙'은 두 원소가 하나 이상의 화합물을 만드는 경우에는 첫 번째 원소 일정량과 결합하는 두 번째 원소의 질량 사이에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한다는 법칙입니다.
'존 돌턴'은 정량적인 원자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법칙을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데모크리토스'가 제안한 '원자론'을 부활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돌턴'의 원자설은 1805년 '게이뤼삭'이 발견한 '기체반응의 법칙'으로 모순점이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수소와 산소가 반응하면 수증기가 만들어지는데, 이때의 정수비는 2 : 1 : 2입니다. 이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자 모형으로 설명하면 반응식이 2H + O → 2HO½ 가 되어서 산소 원자가 쪼개지기 때문에 돌턴의 원자설에 위배되어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1811년에 이탈리아의 화학자 '아보가드로'는 '돌턴'의 원자 이론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게이뤼삭'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기체 물질은 몇 개의 원자가 결합된 분자로 존재한다'는 분자설을 제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아보가드로'는 분자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처음으로 분자(Molecule, 작은 입자라는 의미)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아보가드로' 이후에 화학이 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보가드로'는 분자 개념을 도입해서 '일정한 온도와 압력 하에서는 기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같은 부피에는 같은 개수의 분자가 들어 있다.'는 '아보가드로 법칙'을 확립했습니다.
원자구조 모형의 변천
현재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설명하는 원자 구조는 '슈뢰딩거' 등이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만든 오비탈 모형입니다.
양자 역학이 대두하기 이전에도 원자 구조에 대해 제안한 모형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형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댓글 원자구조모형의 탐구역사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약간의 노력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