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들의 분별 빈들의 분수
------------------------------------------------------
✛ 로마서12장1~3절 ✛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 피세정념(避世靜念) & 피세정령(避世靜靈)
지난 주 저는 2016년도 목회계획피정을 다녀왔습니다. 피정이란 말은 천주교에서 먼저 사용했던 말입니다.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피정이란 말은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준말입니다. 이 말은 세상을 떠나서 정신을 고요하게 하는 심신의 수련을 뜻합니다. 개인이 영신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신앙생활의 쇄신을 위해, 어느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과 자기 성찰기도를 드리면서 심신을 수련하기 위하여 고요한 곳으로 찾아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에는 개신교에서도 피정을 합니다. 담임목사가 자주 참석하는 <5-데이 영성형성아카데미>나 <관상목회피정>은 모두 목회자들의 피정 프로그램입니다. 형식으로만 보면 천주교 신부들이 하는 피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피정을 천주교에서 말하는 <피세정념(避世靜念)>으로 보지 않고 <피세정령(避世靜靈)>으로 봅니다. <피세정념>은 심신수련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피세정령>은 일상에서 물러나 고요와 침묵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목회계획 피정은 빈들공동체의 새해를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 주시는 지혜로 목회를 계획하게 됩니다. 이런 피정이 필요한 것은 저 자신은 참 나약하고, 또 우리 빈들공동체가 가야할 길을 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 세상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아미쉬공동체
그런데 세상 안에서 살면서 세상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아 피정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미쉬공동체가 그렇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아미쉬공동체를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세계제일의 경제 대국인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미쉬공동체 사람들은 미국 안에서 미국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 마차를 타고 다닌다거나, 일상생활에서는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들은 미국 안에서 미국과는 다르게-자기를 지키면서 살아갑니다.
아미쉬들은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을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가족, 공동체, 형제애를 중시하며 세속과 분리된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아미쉬들은 절대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평화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욕설이나 폭력적인 행동에 침묵으로 대답하도록 배웁니다. 그들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대주라'는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합니다. 뿐만 아니라 설령 외부인들의 공격을 받더라도 아미쉬인들은 반응하지 않고 지나갑니다.
절대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아미쉬들은 군대에 가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아미쉬인들이 감옥으로 갔고, 세계 제2차 대전 때는 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따라, 선거를 하지 않고 정부 일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또 정부로부터 지원도 받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이 자신들에게 잘못을 하더라도 법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아미쉬들이 조상 때부터 전통적으로 지켜오는 이런 독특한 삶의 양식은 그들의 신앙에서 나왔습니다.
✤ 영적 거인
그들은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미쉬공동체는 신앙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입니다. 오래전 그들의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신앙의 박해를 피해서, 종교적인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피난을 온 그들은 미국에서도 그들과 그 후손들은-약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미쉬의 삶을 그대로 유지해 나갔습니다. 그 아미쉬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그들은 소비에 중독된 미국 사회의 자본주의적인 삶을 본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말씀과 아미쉬의 역사를 기록한 책을 늘 함께 읽으면서 자신들의 삶의 옷깃을 가다듬고, 아미쉬의 자긍심으로-자녀들에게도 이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미쉬 아이들은 아미쉬공동체의 학교에서 8년-우리로 치면 중학교 2학년-을 마치면 학교 교육은 끝이 납니다. 또 이들은 피임을 전혀 하지 않고 아이들은 하나님 축복의 선물이라 주시는 대로 다 낳습니다. 가정마다 아이들이 많은 특징이 있습니다.
이처럼-여러 측면에서 아미쉬공동체는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미국의 문명사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삶을 미국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그들의 삶-아미쉬가 그렇게 고집스럽게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신앙입니다. 철저하게 신앙공동체인 아미쉬들은 그들 나름대로 지켜야할 신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아미쉬들은 세상과 전혀 다르게 세상에서 존재하는 신앙인들입니다.
아미쉬에 대해서 다른 모든 것은 다 접어놓고-제가 의미 있게 본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신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세상을 거슬러 간다는 겁니다. 아미쉬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주저 없이 세상을 등
지고 살아가는 영적거인(靈的巨人)들이었습니다. 이 아미쉬들과는 많이 다르지만 오늘 우리 빈들공동체도 많은 목회자들에게서-작지만 작지 않은 교회(little big church)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번 피정에서 저는 아미쉬라는 영적거인들의 신앙과 삶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우리 안에 새로운 교회라는 자만?
우리 안에는 아직도 여물지 못하고 설익은 점이 없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빈들공동체에 대한 다른 목사들의 평가가 결코 허언(虛言)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번 전교인 집담회에서는 우리가 반성할 것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성찰하고 반성하고 회개해야할 제목들이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서 저를 두고두고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든 것이 딱 하나가 있었습니다. 빈들공동체가 <새로운 교회라는 자만>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지적은 따갑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그 지적에 대해서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말 우리가 자만했는가를 두고 많은 성찰을 했습니다. 우리의 자긍심을 자만이라는 말로 지적할 때-비록 그가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그것도 우리 안에서 그 말이 나왔다는 점이 참 따가웠습니다.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는 빈들공동체의 정체성입니다. 존재의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정말 우리에게 진실로 ‘새로운 교회라는 <자만>’이 있다하면 우리는 반드시 반성하고 회개하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라는 빈들공동체의 창립고백과 존재의 이유와 자긍심과 자존감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자만이라고 했다 하면-그분이 누구인지 모르지만-빈들공동체 안에서 참 불행한 교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빈들공동체의 교인이면-지난 30년 역사를 통해서 빈들공동체의 자존감을 우리가 <분별>해야 합니다. 또 우리 <분수>에 넘치도록 받은 하나님 사랑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교회라는 자만>이 생각 없이 그냥 던진 말이라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기의 자존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을 누군가 <자만>하다 하면 그것은 그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아미쉬가 세상을 본받지 않고 자기를 지켜가는 것을 그들의 지독한 독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앙적인 전통과 영적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록 도도하고 꼿꼿하고 비타협적인 모습이 있다 해서 그들에게 자만스럽다고 한다면-그 생각은 악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예의에 벗어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 빈들의 부끄러움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도 당대에서는 독설입니다. 이런 독설을 따라가던 그리스도인들 역시 독설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대의 독설로 오늘이 존재할 수 있었던 역사-이 역사가 기독교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신 바울의 말씀이나-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잔인한(?) 말씀이나 모두가 당대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만든 독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대의 독설은 모두 오늘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되었습니다.
30년 전 창립 당시에도 우리 사회에는 수없이 많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또 하나의 교회로 빈들공동체가 필요한지에 대한 창립교인들의 깊은 성찰이 있었습니다. 그 성찰의 결과 우리 빈들교회는 <세상의 수많은 교회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가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빈들공동체를 지어오신 하나님의 손길은 분명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로 우리 빈들공동체를 자리 매겨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난 30년동안 빈들공동체를 사랑해주신 하나님 앞에서 지금 새로운 교회로-자신을 성찰할 때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자만>이 아닌 우리의 <부족함>이었습니다. 이번 목회계획 피정에서 저는 우리의 부족함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빈들공동체가 온전하게 <새로운 교회>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송하고 민망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라하신 그 길은 기어코 가야합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 길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우리는 도심 속의 맑은 영성 공동체를 지향해 가야합니다. 그 길을 가는 우리의 걸음은-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하나님에 대하여-우리 편에서 올려 드리는 사랑의 응답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버리시고, 십자가의 그 모진 고난을 겪으시고-흘리신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말씀이 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견지해야할 생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 주님을 따르는 삶=살아있는 예배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바울의 말씀은 내 몸을 인신제물로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몸>이란 단순히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존재와 생각과 가치와 삶을 포함한 총체적인 나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나 자신의 전부를 통째로 들어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은-지금 당장 내 존재 전부를 하나님의 발아래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씀하신 거룩한 산제물이요 우리가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거룩한 산제물과 합당한 예배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9:23)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이 말씀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은 그 자체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이것이 살아 움직이는 예배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통째로 들어서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놓는 사람-그가 진정한 예배자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자는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되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합당한 얘배]를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두 가지를 오늘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는 <분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분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빈들공동체의 <분별>과 빈들공동체의 <분수>를 묵상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한해를 마무리하는 즈음에 우리 빈들공동체를 다시 묵상하면서-빈들공동체가 자기의 영적인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면서, 진실하고 맑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빈들공동체가 도심 속의 맑은 영성공동체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기 <분수>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 <분별>과 <분수>를 깊이 묵상하면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여정을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로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