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없는 꽃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우린 곧잘 국화꽃을 들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하얀 서리가 내린 들녘에 핀 들국화는 뭍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다른 잎새들은 갈색으로 변하지만 무더기로 핀 들국화 꽃을 살펴보면 유명 새 보다는 덜 아름다운 것 같은데 향기야 시샌 말로 끝내 주는 것이니 모두들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작은 욕심이 들었다.
자연에 두고 보는 것보다 화분에 심어 가까이서 국향을 맛보기 위해 작년에 캐 온 들국화 뿌리를 화분에 심고 정성껏 가꾸기 시작했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도 울었나……하는 윤동주님의 시구처럼 봄부터 가을까지 다듬고 가지를 바로 잡아 주고 또한 많은 꽃을 보기 위해 현애국을 키우듯 손질을 하였더니 제법 멋진 화분으로 변하였다.
‘들국화야 어서 빨리 피어라.’
이 꽃이 피면 자랑을 해야지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향기를 감상할 수 있게 공공 장소에 선물을 해야지 그야말로 머리 속에는 부푼 꿈이 가득하였다. 한 개의 화분 속에서 꿈과 희망과 나날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꾸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보람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 화분에 꽃망울이 맺히더니 하나 둘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향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내 코가 잘못 되었나 아직 감기가 덜 나은 게 아닌가? 의심도 했다. 얼마를 지나 꽃이 만개를 하였는데 역시 향기라고 없는 꽃으로 변하였다. 내가 그 동안 정성을 들이고 희망에 부풀었던 모든 것들이 순간에 무너지는 게 아닌가? 우리 집에서 핀 들국화는 향기가 전혀 없었다.
아~ 나의 허망된 욕심! 넓디넓은 대자연에서 자라야 하는 들국화를 찌들고 탁한 오염이 심한 도심의 옥상에서 자라게 하였으니 어찌 향기가 나겠는가? 집에서 길렀으니 들국화가 아니고 집 국화가 되었으니 향기 또한 없는 게 당연한 것을……
자연의 오묘한 법칙과 조화 앞에서 감히 도전을 하였으니 향기가 날리 만무한 것이다.
이것 뿐이 아니였다. 옥상에서 심은 상추를 정성껏 다듬어 주니 식구가 하는 말, 별로 신통찮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나는 청정채소요. 무공해 채소라는 자긍심 마져 느끼는데 반응이 시큰둥하니 정말 이상하였다.
이유인즉 시중의 상추보다 맛이 없다는 것이다. 보기에는 다를 게 없는데 옥상에서 기른 것이 대접을 못 받는 것은 집사람의 심통쯤으로 착각했는데 맛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식물은 자연 환경 그대로에서 자란 것이라야 된다는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나의 무지가 탄로 난 셈이다.
또 한 가지 더 들은 이야기로 어느 기관의 작은 연못에서 관상용으로 기른 붕어를 매운탕을 하여 먹으니 맛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금붕어 사료 즉, 물고기의 사료가 개발되기 전의 이야기인데 사람이 먹는 밥을 조금씩 남겼다가 붕어 먹이로 이용했는데 어느 날은 밥을 너무 많이 주어 갑자기 고기가 죽게 되어 그 고기를 이웃집 식당에 주어 매운탕 요리를 했는데 그렇게도 맛이 없어서 결국은 버렸다는 이야기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들국화 꽃의 향기가 없는 것과 좁은 공간에서 한정된 먹이만 먹은 물고기가 맛이 없는 것, 도심의 옥상에서 물만 먹고 자란 상추가 제 맛을 못내는 것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한 예에 불과하다.
동식물은 원래 자기가 자란 환경과 같아야만 된다는 작은 원칙을 무시하면 결과는 엉뚱하다는 큰 깨달음을 맛보게 하였다.
정말 자연은 자연 그대로 잘 보존해야겠다.
2000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