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인간의 탐욕을 고발하다
참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내용이 쉽지 않으니 미리 공부하고 가는 것이 좋다는 평을 보고 조금 공부한 뒤 극장을 찾았다. 정말 흥미롭게 보았다. 극장에 가면 어느 순간 스르르 잠들곤 하는 아내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재미있는 영화가 있으면 또 보자고 했다.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바탕으로 한다. 주인공은 그리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다. 그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한다. 그리스 연합군은 트로이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10년 동안 싸우지만, 승리를 얻지 못한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꾀를 낸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트로이의 목마’ 계략이다. 결국 트로이는 함락되고 오디세우스는 영웅이 되어 고향 이타카로 돌아간다.
하지만 귀환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신들의 저주 속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무려 10년 동안 바다와 섬을 떠돈다. 그 사이 이타카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죽었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왕이 없는 틈을 타 왕좌를 차지하려는 청혼자들이 궁전을 점령하고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탐욕’이었다. 트로이전쟁에도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전쟁에는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이 붙지만, 그 뒤에는 다른 욕망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영화 속 전쟁 역시 단순히 한 여인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트로이의 무역로와 이익을 차지하려는 욕망이 전쟁의 배경에 있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길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도 탐욕과 연결된다. 외눈박이 거인과의 악연도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한 욕심에서 비롯된다. 그의 부하들 역시 배고픔과 욕망을 이기지 못해 여러 차례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더 큰 고난으로 돌아온다.
이타카의 청혼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디세우스가 없는 틈을 타 궁전을 차지하고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한다. 왕이 될 자격이나 실력은 없으면서 권력만 탐한다.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페넬로페는 지혜로 이들을 상대한다. 결혼 조건으로 오디세우스의 활에 시위를 끼울 것을 요구한다. 누구도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힘을 과시하던 사람들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지략이나 무예가 아니었다. 그것은 ‘염치’였다. 오디세우스는 뛰어난 지혜와 용기를 가진 영웅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의 판단 때문에 부하들이 죽은 것은 아닌지 괴로워한다. 전쟁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전통적인 영웅은 강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승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승리 뒤에 남겨진 죽음과 상처를 바라본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인간적인 영웅으로 다가온다. 죽은 부하들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이 저지른 선택에 대한 회한은 그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우리는 여전히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러우 전쟁, 미국과 이란의 전쟁도 명분의 밑바닥에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고 있다. 욕망을 버리지 않은 한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만이 아니다. 오디세우스가 보여준 염치와 성찰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그것을 얻기 위해 누군가가 상처받지는 않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진정한 영웅은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자신이 한 일을 돌아보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영웅일 것이다.
비록 신화이긴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험난한 귀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울림을 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의 탐욕은 세상을 무너뜨리지만, 염치와 성찰은 무너진 세상을 다시 일으키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