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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화)
1.6시
2.운동일지
-.운동하지 않았다.
3.mempry
-.오늘 4시에 처남집에서 출발하는 처남차(카니발)을 타고 부산에 가기로 하였다. 친정에 가고 싶어 하는 아내의 말을 들어준 것이다.
어머니께 추석 때 부산에 간다는 전화를 하니, 어머니께서는 "재철형님 내외만 내려 온다고 하여, 큰 형님, 재균형님에게 전화를 하여 한명 더 내려 와 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내려 오지 않겠다고 하여 걱정이 많았다." 고 하신다.
아내에게 부산에 가는 대신, 추석날 차례만 모시고 도망치듯 빠져 나오지 말고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에 집을 나와 처가에 가자고 했건만 시원한 답을 하지 않는다.
하루만 먼저 내려 가고, 처가에 가는 시간을 몇 시간만 늦추어도 어머니께서 기쁘하실 텐데, 우리 집안의 며느리들은 그걸 하지 않는다. 서로 시합하듯이 시가를 나가버린다. 점심을 먹고 있으면 씨누이 혹은 집안 친척들이 올 수 있고 부득불 시간이 연장되어 친정에 가는 시간이 늦어지는 걸 경계하는 걸로 생각된다.
이번 추석엔 안 가려던 부산에 가는 대신 명절 날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이후에 집을 나서 처가로 가도록 해보자.
-.단골 미장원이 영등포구청 앞에 있는데, 10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어제 저녁에 헤어컷을 해야 하는데, 막걸리 한잔에 빠져 깜빡 잊고 그냥 집에 왔다.
10가 되기를 기다리니 아내가 염색을 해 주겠다고 한다. 염색을 하고 영등포구청 앞에 있는 단골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았다. 가격은 6,000원인데, 원장이 꼼꼼하게 머리를 잘 깎아 준다.
특히, 구렛나루가 약한 나의 구렛나루 손질을 잘 해 준다. 그냥 앉아 있으면 내가 원하는 머리형으로 깎아 준다. 단골의 편리함이다.
-.추석 연휴 전날이어서 고객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찾는 전화도 물론 없었다.
점심을 먹고 3시 반에 사무실을 나섰다. 4시에 처남집에서 아내와 만나 처남 가족과 카니발을 타고 떠나기로 되어 있다. 사무실을 나올 때 풍이사가 급하게 봉투 하나를 두고 갔는데, 전철 안에서 봉투를 열어 보니 간단한 편지와 상품권이 들어 있다.
상품권의 액수가 생각보다 커서 계약이 많지 않은 풍이사의 얇은 지갑이 걱정되었다. 회사 규정은 전속권을 딴 직원에게 전속물건의 임대차시에 수수료 일부를 주기로 되어 있다.
내가 전속권을 딴 삼목정공 사옥이 풍이사의 노력으로 임대가 되어 받은 수수료의 일부를 나에게 주려 했으나, 풍이사의 어려움을 아는 나로서는 받을 수가 없었다. 풍이사는 이런 나의 배려에 대한 고마움으로 상품권을 준 것같은데 상품권 금액이 커서 나의 배려가 무색해지는 듯하다.
풍이사에게 이런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처남네 가족과 우리 부부가 5시에 도곡동 처남네 아파트에서 출발하였다. 카니발은 6명 이상이 승차를 하면 고속도로 전용차선 이용이 가능하다.
상습 정체구간인 안성-평택 구간을 전용차선을 이용하여 총알처럼 빠져 나갔다. 밀려 있는 승용차를 보면서 빠져 나가는 느낌은 완장을 찬 듯하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새로 생긴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속리산 인근에 있는 화서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메뉴가 거의 대동소이하다. 쇠고기국밥, 돈까스, 김치찌개가 주 메뉴이고 분식류 등이 있다. 라면백반이라는 메뉴가 특이하게 보여 선택했는데, 라면에 밥 한공기가 더 있는 게 다다.
고속도로 휴게소 메뉴 페스티발(경연대회) 등을 열어 휴게소마다 특화된 메뉴가 있으면 휴게소를 선택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네비게이션이 고속도로 이용을 편리하게 해 주고, 주유소를 지날 때 기름 판매가가 기록되는 서비스가 있는데, 이 처럼 휴게소의 대표 메뉴를 입력시키는 서비스를 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11시 20분에 부산교대 앞에 있는 처가집에 도착하였다. 1시간 저녁시간을 빼면 5시간 20분이 걸린 귀향길이 되었다. 고속도로가 많아졌고, 대전(청원)까지 전용차선을 이용해서 고민되는 귀성길을 빠르게 올 수 있었다.
9/18(수)
-.6시에 일어나 처가집 앞에 있는 해수목욕탕으로 갔다. 방문 앞에는 장모님께서 목욕탕 할인권 1장을 놓아 두셨다. 10장을 사면 10% 할인된다는 할인권을 장모님을 사용하시는데, 내가 가면 항상 1장씩 방문 앞에 두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장모님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새벽 목욕탕의 정결함이 있고, 해수(소금기가 있는 지하암반수)라고 하지만 바닷물이 아니어서 그리 짜지는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목욕을 끝내고, 아침을 먹었다. 장인어른은 등산을 좋아 하시고, 등산을 가시면 채집하는 걸 즐기시는데, 요즘은 부산에서 울산 방향에 있는 산인데, 경사가 심해 주인이 수확을 포기한 밤이 많아 오늘은 밤 주워러 가신다고 한다.
큰 처남이 따라 나섰고, 나와 아내는 대연동에 있는 어머님 집으로 갔다.
집에는 막 도착했다는 셋째 형님 부부가 우릴 반긴다. 아버님 기제사 후 열흘만에 뵙는 어머니께서는 백내장 수술 후 눈이 "머들머들" 하시다며 안경을 쓰고 계셨다.
셋째형님 부부는 부산까지 오는 표를 구하지 못해 서울역-천안, 대전-부산 까지 분리된 표를 구했고, 천안-대전까지는 표 없이 KTX 안을 왔다갔다 하였다고 한다. 표가 없는 구간에서 여객전무가 급하게 지나가 버려 일부 무임승차가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며느리 둘과 차례상 준비를 위한 재료 구입에 대해 의논을 하였다. 집 앞에 있는 메가마트로 가 차례상에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전자제품 코너를 지날 때, 어머니께서 녹즙기가 필요하시다며 구입을 원하셨다. 재철형님은 녹즙기는 사용이 어렵다며 만류했으나, 나는 어머니께서 필요하시며 구입하시라고 하여 어머니께서 녹즙기를 구입하셨다. 가격이 32만원이었다.
제수용품 코너에 있는 과일들은 일반 과일에 비해 약간 컸으나 가격이 2배 이상이 되었다. 메가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다 샀고, 재철형님이 계산을 하였다. 녹즙기 가격이 있어 제법 큰 금액이 되어 내가 반을 내려 했으나 재철형님이 용납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아내가 미안했던지 생선회를 비롯한 재래시장에서 사야 하는 건 나보고 내라고 한다.
마트에서 산 물건이 많아 집에서 가져간 작은 카터를 끌기에 제법 힘이 들었다. 나와 어머니는 집으로 갔고, 셋째형님 부부와 아내가 재래시장이 있는 남천동해변시장으로 갔다.
제수용 재료들을 정리하고, 녹즙기를 끄내 조립을 하였다. 조립이 예상 외로 어렵고, 즙을 짜기 위해서는 압력이 필요하여서인지 마지막에 기구를 조이는데 힘이 필요하였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실사용자인 어머니께 한번 해 보시라고 했다. 어머니의 힘으로는 녹즙기의 조립이 쉽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 보던 재철형님이 약탕기, 녹즙기 등은 조립 및 사용이 쉽지 않고, 특히 녹즙기는 야채를 짜서 액기스만 먹는 건 야채의 좋은 것은 빼고 나쁜 것만 먹는 경우가 되기 때문에 약리학적으로 좋은 게 아니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재철형님은 녹즙기 구입을 만류했는데, 의욕이 앞서는 어머니를 만류하지 않고 오히려 고무한 나의 권유가 미안해졌다.
남천동 해변시장에서 사온 전어, 광어회를 점심으로 먹었다. 어머니께서는 반주를 식탁에 꼭 있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신다. 술을 즐겨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생선회를 안주로 형님과 소주 한잔을 하였다. 부산에서 인기좋은 술은 대선주조에서 나오는 '좋은데이' 인데 도수가 16.5도이다.
물 같은 술을 술꾼이 형제가 마시니 금방 4병이 사라진다.
점심을 마치고 셋째형수와 아내는 차례음식 장만에 들어갔고, 나와 형님은 집 청소와 '콩나물 다리 따기' 를 하고 나니 별 다른 일이 없었다.
부치는 전을 안주로 술 한잔을 더 하였다. 일 손이 날랜 셋째형수의 활약으로 차례용 음식 장만이 오후 5시경에 끝났다.
쉬시겠다는 어머니는 집에 계시고, 나머지는 경치가 좋은 이기대 전망대 커피점 '뷰' 로 갔다. 광안대교와 해운대의 고층아파트가 마천루처럼 쏫은 모습이 한 눈에 조망된다.
고층아파트들로 해운대 동백점이 한 점으로 조그맣게 보인다. 동백섬에서 해운대 백사장을 지나 해운대의 끝인 미포(청사포) 끝으로 동해남부선의 작은 터널이 점을 이루던 옛 풍경은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커피점을 나와 광안리에서 이기대를 거쳐 용호동 오륙도까지 이어지는 갈멧길을 걸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작은 다리, 다리 밑 절벽으로 밀려오는 파도, 해안 동굴 등 절경이 이어진다.
다시 오륙도까지 걷고 싶었으나, 형수와 아내는 운동화와 슬리퍼 차림이어서 많이 갈 수는 없었다. 해 지려는 무렵이어서 돌아가기로 하였고, 이기대를 지나자 돌아가신 아버지 운동화를 신고 온 재철형님이 운동화 바닥이 떨어져 나갔다며 맨발이 된다.
형수와 아내를 아파트 앞에 내려다 주고선 구서동에 있는 누나집으로 갔다.
자형이 이북 출신이어서 누나집의 음식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이북식 음식이 많다. 빈대떡은 필수이고, 왕만두, 갈비찜 등이 주다.
뉴욕 출장이 잦은 지원이가 엊그제 왔고, 질부와 지원이의 딸 아들이 나를 반긴다. 말수가 적은 자형을 닮아서인지 조카 지원이, 지원이 아이들 등 3대가 과묵한 편이다. 누나와 재철형님, 나 등 양씨 3명만 이야기하다 나온 듯하다.
9시께 집에 오니, 어머니께서 녹즙기를 반품하시겠다고 하여 늦은 시간이고 이미 사용한 것을 반품하기 어렵다고 재철형님이 만류했으나 고집이 센 어머니께서 혼자서 메가마트에 늦은 시간에 나가셨다.
늦은 시간이어서 걱정되었으나, 어머니께서 10시를 넘긴 시간에 돌아오셔서 반품이 가능하다며 내일 반품을 하자고 하신다. 32만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 마음에 걸리시는 모양이다.
녹즙기로 해프닝이 벌어진 명절 연휴의 시작이다.
9/19(목)
-.6시에 일어나 재철형님과 목욕을 갔다. 남천동 해변시장 앞에 있는 작은 동네목욕탕인데 명절날 아침에는 이 집을 찾게 된다. 큰 목욕탕은 명절날 아침에 문을 열지 않으나 이 집은 항상 열려 있다.
거의 샤워만 하는 재철형님의 속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7시부터 차례 준비를 하였다. 기제사 때는 축문을 읽으나 명절제사에는 축문을 읽지 않는다고 하여 축문을 따로 적지 않았다. 대신, 지방을 한자로 적었다. 싸인펜으로 적어서인지 지방이 영 초라하게 보인다.
사진으로 대체할까 하다 그냥 지방을 차례상에 올렸다. 다음부터는 붓펜을 준비하여 적어야 겠다.
"형식이 실질을 지배한다."는 원칙 아래 기제사는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었으나, 차례는 별로 할 게 없다. 차례상에 맞는 아버지 한시 한수를 챙겨 왔을 뿐이다.
제사 참석자도 재철형님 부부, 우리 부부 밖에 없으니 영 쓸쓸한 제사가 되는 듯하다. 다음부터는 차례에도 준비를 좀 하여 내실있는 제사(형식이 있는 제사)가 되도록 해야겠다.
아버지께 올린 한시는 아버님 자자 한시모음에서 고른 유가야산이라는 한시다.
遊加倻山(2007. 11. 2.)
가야산의 갈대 숲엔 가을이 왔으며
나무마다 홍장을 하니 속세를 벗어 났고
발 아래 단풍은 계곡 물에 비치며
눈길따라 백안은 저녁 구름 가르고
병상에 누워 명생전에서 방황하며
꿈속에서 지우와 이별의 잔을 돌리네
그 누가 아랴 백발 옹의 상심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 이별을 재촉하네.
첨언; 병으로 가야산행에 불참, 병상에서 작시
2007년 말경이 되면 아버님은 감기 증세로 몹시 고생을 하시고, 바깥 출입을 삼가시게 되는 시기이다. 가야산에서 시부가 있었으나, 참가하지 못하고 병상에서 시를 적으신 듯하다.
명절날마다 접하는 아버님의 한시이지만, 시를 접할 때 아버님의 맑은 모습이 떠오른다.
9시에 차례를 마치고, 번개처럼 장내 정리를 하였다. 제주로 올린 청주로 형님과 한잔을 하며 아침을 먹었다.
12시 기차편으로 상경한다는 재철형님과는 달리 처가로 가는 나에게 점심을 먹고 가라고 권했으나, 이번에도 아내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재철형님 부부와 함께 집을 나섰다.
어머니께서는 아파트 앞 택시 승강장까지 나오셔서 우리 형제 부부를 배웅해 주셨다.
처가집에 도착하니 장인어른, 장모님만 계셨다. 처남들은 작은집 차례에 갔다고 한다. 장인어른과 밤 주워러 가고 싶었으나, 오늘은 일정에 없다고 하여, 아내와 같이 범냇골에 있는 처삼촌집으로 갔다.
처가집은 장인어른 형제 분들의 팀웍이 좋다. 친 처남 둘, 4촌 처남들이 아직 젊어 아이들이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많다. 매번 명절 때마다 만나는 아이들의 성장세가 놀랍다.
9/20(금)
-.큰 처남네 아이들의 중간고사가 다음 주에 있다고 한다. 오늘 아침 일찍 서울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9시에 처가집을 떠나 상경하였다. 상경길도 길이 잘 빠져 6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처남집에 세워 둔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한강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2시간간 걷고, 가볍게 한다는 한잔 술이 길어져 과음하였다.
9/21(토)
-.아침에 일어나 처가집에서 가져온 추어탕으로 아침을 먹기로 하였고, 현석에게 전화를 해 두었다. 추어탕만 달랑 들고 가기 뭣해 바로 아침 식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장모님이 주신 민어(반건조)를 굽고, 마늘과 풋고추를 다져 추어탕 양념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우리집 별미인 밑반찬(가죽, 부추김치, 김장김치)를 챙겼다. 유난히 맛있다는 장모님표 막장도 작은 병에 담았다.
재균형님집에 들어서자 현석이가 "작은 아버지께서 10분 내로 간다고 하여 기다렸는데 한시간이 되도 오시지 않아 여러 생각이 머리에서 오갔습니다." 라며 반긴다.
맛에 예민한 현석과 재균형님은 솜씨가 좋은 우리 장모님이 하신 경상도식 추어탕을 먹어 보더니 대단한 맛이다며 감탄을 한다. 둘째형수도 밑반찬, 막장이 맛있다며 "음식 솜씨가 좋은 분들이 부러워요." 라는 말을 한다.
경상도식 아침을 먹어서인지 명절 기분이 된다고 재균형님이 말한다. 부산에 못간 게 음식으로 해소되지 않겠지만, 아침을 통해 잠시 고향에 다녀온 느낌이 되는 모양이다.
강남으로 간다는 현석이를 태워 당산역에 내려 주고, 귀가하여 깊은 잠에 들었다. 며칠 간의 명절 일정의 피로가 밀려 왔기 때문이리라. 잠에서 깨니 오후 3시여서 짜파게티를 해 먹고, 다시 누워서 미적거렸다.
시간이 잘 간다. 밥해 먹기 좋아 하는 평소와는 달리 끝없는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다. 저녁은 컵라면으로 대신해 먹었고 스마트폰을 통해 야구 중계를 보다 잠 들었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하루가 되었다.
9/22(일)
-.아침에 원석이 전화가 왔다. 겨울 이불을 빨래하려는데 어떻게 말려야 하는지를 묻는다. 실내에서 말리면 냄새가 날 수 있으므로 햇볕에 말려야 한다는 걸 전해 주었다. 이불이 없어질 수 있기에 이불을 지키면서 자신도 말리겠다고 한다.
내가 군대생활을 할 때에는 모포 말리는 게 일상이었다. 옴 등의 기생충 방지를 위해 모포의 일광욕은 중요한 일과였고, 휴일날에는 모포 일광욕을 위해 당번조 편성을 열심히 하였다. 중요 보급품인 모포 분실 방지를 위해서였고, 졸병들의 몫이 되었다.
원석이는 과거 같으면 해당사항이 없었던 모포를 자신이 직접 빨고 지켜야 하는 수고를 병장 계급에도 해야 하는 것이다. 졸병 시절이 편하면 고참이 되어도 잡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해야 하는 것처럼 졸병시절 고생도 사서 해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니 고참시절이 없는 것이다.
어제 하루 종일 누워지내서인지 허리가 아팠다. 등산을 가기로 하고,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으로 갔다.
서울 서쪽 지역에 사는 나는 강화도가 가깝다. 또한 강화도에 가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단군의 흔적인 참성단, 원의 침입을 피해 고려 왕조가 잠시 옮긴 곳, 삼별초의 대몽항쟁기지,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 등 근세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 철종 임금의 요람, 광해군의 유배지 등 한국사를 관통하는 모든 게 있는 곳이 강화도이다.
가깝게 있으면서도 마니산에는 간 적이 없어 오늘 강화도 마니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마니산 국민관광지 주차장에서 참성단이 있는 곳을 우회하여 올랐다. 마니산 하면 계단이 많다는 걸 들었기 때문에 계단길을 우회한 것이다.
1시간 쯤 올라 등선을 탈 수 있었고, 능선에서 석모도 등의 강화도 근처 섬들이 첩첩히 보이고, 간척지 들판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우회길의 마지막에 372계단이 나왔다. 1,300계단이 있는 청계산을 가본 적이 있기에 쉽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마니산 372계단은 계단 한칸으로는 높은 30cm정도의 일정한 높이로 되어 있었다.
계단을 지나 100m 정도를 가자 참성단이 나왔다. 전국체전 성화 채화를 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 참성단은 작고 아담한 규모였다. 전국에서 기가 가장 센 곳으로 소개되어 있었고, 산과 들, 바다가 이어지는 정상의 경치를 즐겼다.
정상주 한잔과 점심을 먹고, 내려 가는 길은 계단 길을 택했다. 마니산 하면 계단이 생각난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섬에 있는 산으로 472m의 높이는 높은 산이다. 472m가 거의 계단으로 되어 있다는 걸 상상해 보라.
참성단 계단길을 내려오면서 계단들이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생각되었다. 내려 가는 길이 이렇게 어려우면 이 길로 올라오면 어떨까? 2배의 힘이 들 것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심정으로 참성단으로 가는 계단 길을 다음 산행에선 오르고 싶다.
강화도에서 일몰이 좋다는 망양돈대로 갔다. 포대를 설치했다는 곳인데, 경치가 좋았다. 해변길을 돌아 강화도를 떠나면서 강화도를 도보로 걸으면서 강화도에 묻힌 역사를 체험하고 싶어졌다.
강화도 도보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단군신화, 고려시대 대몽항쟁기, 조선말 양이의 침입 등의 역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삼별초의 대몽항쟁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긴다.
운동이 주는 상쾌함이 이번 추석연휴를 의미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