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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욱의 소설작법-?
새로운 시대의
소설작법
다매체 디지털 시대에서 소설,
소설을 쓴다는 것
허만욱
지금 우리 문학이 상당한 변화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변화의 추세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시대는 달라지고 사회도 바뀌고 있는데 브레히트가 루카치를 보고 탄식한 것처럼 문학만이 변화를 거부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학이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급속도로 다변화되는 다매체 디지털시대에서 융합과 통섭은 생존의 근간이라 할 만큼 그 중요성과 필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위기와 소멸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급변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심층적 인식 공유와 문학의 변화에 대한 부단한 작가들의 열린 의식과 글쓰기다.
최근 프랑스 비평계에서 주목받은 한국소설을 보면, 소재와 주제가 현대적이며 새로운 서사 구조를 시도한 실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주목할 만한 실험으로 소설의 새 경지를 열어 보이거나,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제재의 다양성과 다변화로 다원적 세계를 수용하는 등 작가들은 급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인식하고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고자 소설의 변화를 시도하는 등 부단히 연구한다. 예컨대 신경숙은 자신의 소설이 세계시장에 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번역자들이 드라이한 제 문체를 여운과 울림이 강한 소설로 소통시킨 덕분”이라고 번역의 중요성을 지적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소설 창출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세계는 나날이 달라지고 있는데, 만약 소설과 작가가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갈수록 소설과 작가들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이 시점에서 이는 분명 소설의 위기를 불러오는 또다른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 다매체 융합시대, 문화적 향유의 핵심인 서사
오늘날 서사는 이야기를 지닌 모든 것을 의미하며, 인간 활동의 거의 모든 측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하나의 양식이 되고 있다. 설화, 동화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나 일기, 기행문 등도 서사에 속한다. 언어로 된 서사뿐만 아니라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뮤직, 비디오, 만화, 컴퓨터 게임, 광고 등 비언어적 서사들도 많이 있다. 이렇듯 스토리텔링은 서사 형식의 원형질로 존재하는 가운데, 하나의 스토리텔링은 다른 매체로 옮겨가면서 매체 변주를 하게 되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획득하게 된다. 즉 각각의 장르들은 스토리텔링이란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매체의 특성 때문에 형식상의 차이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이야기가 종이 매체에서 표현될 경우 문학이 되고, 영상 매체에서 표현될 경우 영화가 되며, 디지털 매체에서 표현될 경우 게임 등 디지털 서사가 된다. 하나의 콘텐츠가 여러 매체의 콘텐츠로 변주되면서 문화상품을 양산하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같이 다매체 융합의 문화시대에도 문화적 향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서사다. 즉 이야기를 짓고,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이야기의 재미를 나누며, 들었던 이야기를 상기하는, 한마디로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시대를 초월해 지속되어 온 인간의 문화적 향유 방식이다. 곧 문학이든 영화든 작품으로서의 이야기는 시대에 관계없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동안 기술 서사, 영상 서사, 디지털 서사 또는 소위 ‘통합 서사’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있어 왔고, 디지털 영상 문화의 시대에도 결국 중요한 것은 서사의 힘이다. 더구나 디지털시대에 콘텐츠가 중요해지면서 이른바 문화산업에서 서사의 비중은 이미 확대되어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러한 다매체 시대에서 작가들은 서사 매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소설을 써야하는데, 창의적이며 대중적 표현,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문화적 소양, 투철한 장인적 작가정신, 감각적이고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참신하고 경쾌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문장 등으로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을 써야한다. 그러나 많은 체험과 독서를 하여도 좋은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와 문화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소설 창작법이다.
■ 매체 환경의 변화, 소설의 정체성과 문학적 상상력
영화가 신기한 재현 매체의 수준을 넘어 이야기 예술로서 도약하려고 하던 시기에 소설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로서, 영화는 영화로서 고유의 서사 문법을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시각적 인지가 중요해진 현대문화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서사물로서 소설과 영화는 대등한 관계에서 동질감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상호 연관을 맺어오고 있다. 영화와 소설은 우선 서사성을 가진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고, 소통체계와 기호체계 면에서 유사성을 가진다는 점이 영화와 소설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논리적 기반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의 판매량이 말해 주듯이 소설의 독자층은 줄어들었고 영화의 관객층은 현저하게 두터워졌다. 흔히 대중적이라는 관형사 속에서 통속적 취향으로 쉽게 폄하해 온 대중의 기호는 하루가 다르게 다원화되며 영화 발전의 저변을 형성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설은 영상매체의 등장과 확대에 따른 위기감의 타개책으로 오랜 동안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해 온 영화와 더욱 긴밀하고 적극적인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설은 소설, 영화는 영화라는 엄연한 사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소설이 대중과의 대화 속에서도 오랜 세월 확보해 온 지성과 저항의 힘을 버리고 자본의 흐름에 영합하여 영상 매체인 영화와의 관계에 경도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소설의 현 상황을 검토해 보는 것은 소설의 정체성을 점검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판단된다.
우리 사회가 최근의 변화를 거치면서 한국문학은 시대담론에 대한 진중한 작품에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재기발랄한 문학으로 변모되었다. 우리 주변의 변화한 생활방식을 다양한 상상력으로 구현해 내고 있는 소설들이 나타났고, 그런 변화의 배경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지만 이런 변화는 마땅히 나타났어야 하는 일정한 시대적 흐름 속에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편향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세계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이다. 변화를 통하여 다양한 작품들이 나타나는 것 자체는 좋아 보인다. 다만 소설 구성이 대부분 상상력 쪽에 치중해 있을 뿐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함께 보여 주는 작품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세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펼친다고 해서 그들의 작품이 가볍고 경박하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지한 주제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소설문학은 시대의 징후를 예민하게 포착하여 자생력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을 통해 항상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글쓰기가 나타났듯이, 앞으로도 거대담론의 해체와 서사구조의 파편화 등의 글쓰기가 앞으로 더욱 확대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대의 징후를 예민하게 포착하여 거기에 누구보다도 빨리 문학의 깃발을 꽂으며 다양한 문화 코드들을 소설로 소화해 내어 젊은 독자층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신예 소설가 한유주도 한국 소설문학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낯설고도 파격적인 소설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수상작 단편소설 「막」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이야기 과잉 시대에 그 교묘하게 재단된 이야기 자체의 진실성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있는 소설”이라고 하며 “이야기를 거부하면서도 어떻게 소설이 구축될 수 있는지를, 그때 드러나는 소설의 다른 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그에게는 소설 언어 자체가 소설적 탐구의 대상이 되는, 또 다른 변이의 공간을 생성해 내는 것이다. 앞으로 소설문학은 지금까지 추구해 온 대중성과의 결합과 타 장르와의 융합과 통섭을 더욱 구체화하고 가속화할 것이다. 오히려 현대소설의 발전은 타 장르 혹은 비활자 매체와의 융합 및 통섭과의 실천에 달려있다. 10년 뒤면 컴퓨터와 대화하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듯이 10~20년 후의 세상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업 경영에서는 테크놀로지뿐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은 창의적 상상력과 테크놀로지가 융합돼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므로 요즘 IT업계가 흔히 사용하는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단지 기술만의 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와 인문학, 혹은 예술과의 결합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소설문학이 타 장르 혹은 비활자 매체를 수용하는 경향을 총체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것은 소설의 위기, 더 나아가 문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이 시대에, 소설이 통합 장르로서의 정체성을 이 시대에도 발휘하며 스스로 자생력과 갱신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접 장르 수용에 있어 이미지 모사模寫의 영상미학이 소설 고유의 영역에 침투됨으로써 소설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다. 전통적인 소설 문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와 비활자 매체를 자신의 몸 속에 용해시키는 것은 소설의 본질적 속성과 관련이 있다. 소설은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미완성의 장르이며, 타 장르와 비활자 매체를 수용해도 소설의 기본 형질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활자 매체로서의 소설이 속도와 몰입의 특성을 갖는 영상물을 받아들여도 문학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느림과 지속성을 바탕으로 그것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곧 이러한 속성은 다매체 디지털시대에서 소설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타 장르와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소설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하지만 소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소설의 주류가 이제는 영화나 게임의 보완 서사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예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가능성이 있다면, 바로 소설이 지닌 그 다른 상상력, 영화와 게임의 상상력으로 대체될 수 없는 그 상상력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아직도 대다수의 문인들은 문학적 상상력이 인간의 정신력 중에서 가장 많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문학적 상상력은 과학적 사고에서부터 단순한 환상까지를 빚어낼 수 있는 저력을 지니고 있다. 작품으로 구현되는 문학적 상상력은 우리의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부문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또다른 동력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디지털로 상징되는 정보와 기계문명의 시대에서 환상적 마법 세계를 그린 「해리 포터」 시리즈를 들 수가 있다. 이 작품이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떠오른 이유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능숙하게 부리는 작가의 역량에 있다.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문체와, 끊임없는 반전을 통해 독자들의 눈을 붙잡아 놓는 장치, 즉 이야기의 탄탄한 구조가 그 생명력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롤링은 구조주의자가 말하는 설화적 결합론, 즉 이야기를 생성하는 얼개를 구축하여‘이야기’라는 운용을 생성해 내는 설화의 능력을 갈파한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동화적이며 환상적인 상상력과 인간적 마법의 세계를 재미있게 그려 놓았다는 점이다. 특히 디지털시대에 상상력과 마법의 세계를 훌륭하게 되살려 놓은 환상의 마법적 상상력이‘해리 포터’의 매력을 극대화한다고 할 수 있다. 비트bit의 지배에 대항하는 영혼의 위엄 같은 것이 이 작품에 아우라aura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것이 비루한 우리 현대인들을 끊임없이 매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신비로운 힘을 상정하고 그 힘과 인간 마음과의 긴밀한 상호 연관성을 주장하는 마법의 원리가 사람들을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었다. 사실 근대 과학도 그런 상상력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디지털시대에서의 소설쓰기, 투철한 언어의식과 치열한 글쓰기
지금은 세상 누구나가 다른 누군가에게 글을 쓰고, 국경과 시간대를 뛰어넘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온 세상에 블로거들이 넘쳐나는 디지털시대다. 이러한 새로운 조류는 매우 반갑기도 하거니와 글쓰기의 두려움을 줄여주는 발명품들은 에어컨이나 전구만큼이나 편리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이들은 글쓰기의 본질이 고쳐 쓰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글을 막힘없이 술술 써낸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바로 마술 같은 전자기술이 넘치는 새로운 시대에도 기본은 투철한 언어의식과 적확하고 정제된 치열한 글쓰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시대에서도 작가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본연의 자질과 태도는 예술가적 장인 정신이다. 아울러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장인적 태도는 고전주의 시대부터 예술가에게 권고되어 온 미덕이기도 하다. 더욱이 오늘의 작가에게 있어서 장인 정신이란 단순한 예술적 성취에의 정신적 자세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와 미래 문화에 그것의 허위성을 부정하고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불순성과 은폐성을 폭로하며 진실을 발굴해 내는 창조적 작업의 방법론으로 기능할 것이다.
적절한 어휘 하나를 선택해 내려는 작가적 고뇌, 또는 오직 자기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형식에의 모험은 때때로 매우 답답하거나, 혹은 전시대의 귀족주의적 창작 태도로 매도될 수 있다. 그렇지만 바로 그 고민과 고뇌와 모험을 통해서 이 시대와 사회가 은폐하고 있는 거짓과 상투성이 극복되고, 고통스런 진실 발견의 성과가 성취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치열한 장인적 글쓰기는 여전히 요구되고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엄숙한 창작 태도다.
그런데 작가에게 글쓰기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작업이며, 더욱이 치열한 글쓰기는 될 수 있다면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창작 과정일는지 모른다. 작품이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서도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창작에 임하는 치열한 자세다. 우리는 투철한 언어의식과 치열한 글쓰기를 몸소 실천한 작가 이태준에게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이태준은 어느 작가보다도 작가로서의 장인의식이 투철하였다. 선명한 소설관과 예술가적인 작가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나아가 철저한 장인의식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장인의식은 소설을 발표한 후에도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개작하는 성실성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즉 이태준의 꾸준한 작품 다듬기는 그의 투철한 작가의식을 바탕으로 작품 발표 후에도 계속된다. 한 편의 소설이 창조되는 데에는 착상에서 인쇄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친다. 활자화되어 독자들 앞에 내어놓는 것이 이태준에게는 결코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작품을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후에도 이태준은 이를 단행본으로 묶으며 다시 고쳤고, 때로는 단행본으로 묶은 후에도 고쳤다. 이태준 소설의 여러 가지 진정성 가운데, 그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작품을 발표한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스스로 개작했던 작가였다는 점이 매우 특징적이다. 개제改題에서부터 보다 정확한 묘사를 위한 단어와 문장을 다듬었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사건과 인물의 구성 자체를 발표 당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이태준은 어느 작가보다도 작가로서의 장인의식이 투철한 소설가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심오하다거나 경직되어 있다거나 하는 사상이나 풍자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내면화되어 균형잡힌 정감情感의 조화가 빈틈없이 짜여짐으로써 미적이며 유기적인 플롯을 이루고 있다. 바로 그의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치열한 장인적 작가의식에서 비롯되는 소설미학이자, 새로운 시대에서도 변하지 않는 소설작법이다.
허만욱 / 196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으며 1999년 『조선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공룡의 땅』, 『가을예감』이 있고 저서로 『문학과 비평의 이해』, 『문예창작의 이해』, 『현대소설의 이해와 비평적 감상』 외 다수가 있다. 현재 남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