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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마를 탄 여호와의 사자 (슥1:7-17)
성전 재건 사역을 중단한 채 신앙적으로 나태한 상태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조들의 선례를 들어 회개를 촉구한 스가랴 선지자는 첫 번째 메시지를 선포한 지 약 3,4개월이 지난 바사 제국의 다리오 왕 2년 곧 B.C 520년 11월24일 한 날, 한 시에 여덟 가지 환상을 보게 됩니다.
스가랴 환상의 특징은 단순한 환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설하는 천사가 선지자에게 환상의 의미를 해석해 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 8대 환상의 주제는 ‘새로운 희망과 용기’ 즉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 가운데 처음 세 가지 환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대적을 물리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보여줌으로써 먼저 대적들의 흥왕으로 인해 낙심한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내용입니다.
성전 건축 공사를 중단한 채 실의와 좌절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재건하려는 모든 용기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실로 영적인 밤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잠을 깨우는 8대 환상의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 날은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한지 꼭 5개월이 되는 날입니다.
*학1:14-15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때는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더라.
그 밤에 스가랴는 첫 번째 환상에서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 사이에 붉은 말을 타고 있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습니다.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 중에서 그 첫 번째 환상인 ‘홍마를 탄 여호와의 사자’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1.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고 있는 사람의 정체는 누구입니까.
*슥1:8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내가 밤에 보니’ 라는 말은 ‘내가 밤에 계시를 받았다.’ 는 것입니다. 스가랴는 비몽사몽간에 영적인 황홀 상태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가 보니 한 사람이 홍마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홍마를 타고 오신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1:8에 ‘사람’ 이라고 하였습니다. 1:9에 ‘주’ 라고 하였습니다. 1:11에 ‘여호와의 사자’ 라고 하였습니다. 1;12에 ‘여호와의 사자’ 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호와의 사자는 구약시대에 종종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하였는데 언제나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언급되었습니다.
이 여호와의 사자는 광야에서 목을 놓아 울고 있던 하갈에게 나타났습니다.
*창16:7-8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 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하갈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사자의 이름을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호와의 사자는 사사시대에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마노아 부부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삿13:15-16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리나 내가 너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찌니라. 하니 이는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지 못함을 인함이었더라.
마노아 부부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사자는 기묘자였습니다.
이 분은 바로 성삼위 중에 인성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화육강세하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날 밤에 주님이 홍마를 타고 오셨습니다. ‘붉은 색’ 은 피 빛을 연상시켜 주므로 ‘홍마’ 는 ‘진노’ 혹은 ‘피 흘림’ 으로 해석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홍마를 타고 오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원수들에게 진노하시며 심판을 행하심으로써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이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홍마를 타고 오신 주님은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계셨습니다. 화석류 나무는 팔레스틴 북쪽의 구릉 지대에 많이 서식하는 나무로 잎은 짙은 녹색이고 꽃은 희며 아름답습니다. 열매는 향기롭고 날 것 혹은 말린 것을 먹습니다. 이 나무는 지중해 연안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관목으로서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표상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에 기거할 초막을 짓는 재료로 감람나무, 종려나무 가지와 함께 화석류 나무 가지를 사용하였습니다.
*느8;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였는지라.
이 화석류 나무는 특히 골짜기에서 잘 자라는 특성을 지녔습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초막을 짓는데 사용된 화석류 나무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골짜기는 어두운 곳, 침침한 곳이라는 뜻으로 환난과 질고가 극심한 현재의 상황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서서 있다.’ 함은 어떤 중요한 기지를 점령하고 파수하는 병사처럼 깨어 있는 군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바로 살아 계신 주님이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하는 예루살렘 현장에 직접 오셔서 저들을 보호하고, 위로하고, 감독하고, 격려하고 계시는 모습으로써 주님의 임재를 표현하는 자기 계시입니다.
또 주님의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따르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나 그 말 위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천사는 여호와의 부리심에 신속히 반응하는 종들로서 세 명의 천사가 주님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첫째 말은 홍마인데 이는 전쟁이나 하나님의 진노, 심판을 주관하는 천사입니다.
*계6:3-4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이 홍마를 탄 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수를 심판하기 위해 파송된 천사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성전 공사를 방해하고 백성들을 핍박하던 대적들은 철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 말은 자마인데 자색은 붉은 색과 흰색이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환난의 때든지, 기쁨의 때든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파송된 천사를 말합니다. 동시에 심판과 구원을 주관하는 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말은 흰색인데 승리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천사로서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를 주관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주님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성전 공사 재건의 성공을 위하여 이렇게 필요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신속한 행동을 취할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홍마를 타고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는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슥1:9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그 때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비단 이스라엘 지경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11절에 말하는 ‘온 땅’ 으로써 여호와의 주권이 온 세상에 미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자신이 골짜기 화석류 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전 세계를 감찰하시는 우주의 주권자요, 통치자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사자의 중보기도
우리는 가끔 세상 역사의 배후에서 세심한 손길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데 관심을 쏟으시지만 타락한 현실에 깊이 관여하시지 않을 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만일 하나님이 역사의 모든 부분에 개입하신다면 이토록 악하고 추한 세상을 허용하실 리가 만무하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 역사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마지막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직접 돌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민족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계시며 자신의 뜻대로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스가랴의 환상을 통해서도 이 사실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루살렘이 열국에 의해 삼킨바 되었다가 다시금 회복되는 일련의 진전과정은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홍마를 타고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계신 여호와의 사자 앞에서 땅에 두루 다니도록 보내심을 받은 천사들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에 수종을 드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여호와의 사자의 명령을 받고 온 땅을 두루 다니면서 살펴 본 결과는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다.’ 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사단도 온 땅을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
*욥1:7-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사단은 악을 도모하며 멸망으로 이끌기 위해 이 땅을 두루 다니는 반면에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도움을 주기 위해 온 땅을 다닙니다.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스가랴 선지자가 사역을 시작한 B.C 520년경은 바사제국의 최 전성기로써 가장 넓은 영토에 제국의 신민들은 부유와 평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바사 제국의 평안과 번영은 비록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기는 했어도 결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영광과 번영을 회복하지 못한 이스라엘과는 아주 대조적인 상태를 보여주었으며 이스라엘의 기대와 소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망은 학개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자신들을 괴롭히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열방들이 흔들리며 열 왕들의 권세가 깨어지는 메시야의 날이 속히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학2:21-22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고난의 중심에 있는데 오히려 열방은 평안하고 정온하였던 것입니다.
천사들의 이러한 보고를 받은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사 제국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곤고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아시고 깊이 탄식하시면서 하나님께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슥1: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여호와의 사자의 중보 기도는 그 내용이 분명합니다.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징치 기간 70년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야 할 때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인 열방은 태평성대를 누리는데 유독 예루살렘만은 회복되지 않고 방치된 채로 버려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포로로 잡혀간 시점부터 스룹바벨의 1차 귀환까지 70년이 경과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고 기도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위로와 소망의 말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복음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첫 번째 위로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시온을 크게 사랑하고 있다.’ 고 하였습니다.
*슥1: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이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질투하며 또한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한다.’입니다. 여기서 ‘질투한다.’ 는 말 ‘카나’는 단순히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열정을 발휘하다.’ 는 뜻으로 곧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질투는 사랑의 속성이요, 열정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위로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대적 열국을 향하여 심히 진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슥1:15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진노가 ‘조금’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70년의 바벨론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조금만 노하고 약간 때렸다고 했습니다.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쳐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잠시 징계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 도구로 사용된 열국은 아예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그 정도를 넘어서 고난을 더하였습니다. 이처럼 역사의 주관자의 뜻을 거스려 오만방자하게 행동한 열국을 엄정하게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위로의 복음의 말씀은 애정의 회복입니다.
*슥1: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이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말합니다. 애정의 복구입니다. 예전에 좋았던 사랑의 시절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셨으니 식었던 사랑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날이 도래한 것입니다.
네 번째 위로의 복음의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입니다.
*슥1:16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더 이상 성전의 공사가 중단 되지 않고 완공될 것이라는 확신과 소망을 심어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마련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히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겠다는 자기 의지의 표현입니다. 성전의 건축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광이요, 꿈입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의 힘이요, 능력의 구심점이며 그들의 자부심이요, 자존심입니다. 성전이 무너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얼마나 참담했으며 절망했습니까. 이국 만리 바벨론에서 얼마나 고국을 바라보며 울었습니까. 그들은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서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놓고 울었습니다. 고국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입니다. 성전이 완공되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예를 다할 것입니다. 이제 이 일을 하나님이 이루시겠다고 허락 하셨습니다. 이것은 종교적 복구입니다.
다섯 번째 위로의 복음의 말씀은 예루살렘 성곽의 재건이었습니다.
*슥1:16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먹줄은 건축을 할 때 목수들이 치는 측량줄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는다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국권 회복과 민족 회복 전반에 걸친 완전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방인에 의해 몰락해버린 이스라엘의 명예를 다시 회복하고 당당한 국권을 회복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크게 세운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정치, 군사적 복구입니다.
여섯 번째 위로의 복음의 말씀은 번영의 축복입니다.
*슥1:17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성전과 예루살렘 성의 복구뿐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성읍들이 옛날과 같은 번영을 다시 누리게 된다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선민의 특권과 축복을 다시 회복한 것입니다. 성읍마다, 거리마다 사람들의 물결로 넘실거릴 것이며 모든 물자는 풍족하고 집집마다, 가정마다 행복의 꽃을 피울 것입니다. 노인들은 어린 자녀들을 하나님의 도로 가르칠 것이며 마을마다 학교가 세워지고 백성들은 풍요를 기뻐하며 노래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 경제적 회복입니다.
일곱 번째 위로의 복음의 말씀은 시온의 안위와 선택입니다.
*슥1:17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이 다시 시온을 기억하심으로 외적의 침입을 받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며 백성들은 평강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찢으셨으나 반드시 싸매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신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이 취소되었다가 새롭게 선택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이 상실했던 것은 선민으로서의 특권과 축복이지 선민의 신분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다시 택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던 예배의 중심지로서 예루살렘의 특권이 회복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방인들이 볼 때 하나님의 도성으로서 완전히 버림을 받았던 것처럼 여겨지던 예루살렘이 다시 재건되어 그 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경배와 찬양의 중심지로 우뚝 선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시고 그 가운데 서 계신 분은 바로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현현입니다.
화석류는 아름다운 관목입니다. 비록 그늘지고 음침하고 축축한 골짜기 속에 자리 잡은 나무일지라도 그 잎사귀들은 항상 푸르고 윤기가 넘치고, 향기로운 꽃들은 희거나 분홍색 빛으로 별처럼 생겼습니다. 특별히 이 나무의 파란 잎사귀들은 상처를 입을 땐 물씬 향기를 토해냅니다. 화석류 나무는 사막이 관개가 잘 되는 곳으로 변화시킨다는 이유로 광야나 사막에 심습니다. 이는 종말론적 변화와 관련하여 이스라엘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사41:19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사55:13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바로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는 열강 세력들 가운데 자리 잡은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바로 오늘 세상 속에 자리 잡은 그리스도인들이요, 우리 교회의 모습입니다. 중대한 진리는 그 화석류 사이에 주님이 홍마를 타시고 서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악인을 심판하고 선민을 보호하고, 구원하고, 축복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공사 현장에 자기 기지를 삼고 서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의 부리는 천사들은 세계의 정황을 두루 살피고, 사실대로 낱낱이 보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 하셔서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도록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중보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새 역사를 창조하는 이스라엘의 7대 축복, 7대 위로와 승리의 복음을 우리는 받고 있습니다.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애정의 회복,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성취, 예루살렘 성곽의 복구, 이스라엘의 번영, 그리고 신령한 예배의 회복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영광은 빛나는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향한 전 우주적이고 항구적인 예배와 경배의 성산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시78:68-69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
*시132:13-17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시온의 회복! 시온의 영광이 오늘 우리 교회와 지상의 모든 교회의 회복과 영광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