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km 남았단다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저런 표시가 지루함도 달래주고
앞으로 갈 거리나 일정 조정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걸어도 걸어도 이것 밖에 못걸었어!'하는
괴로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갈리시아는 끝까지 저렇게 숫자로 남은 거리를 알려준다
이런 길 나오면 괜히 아래쪽 물웅덩이로 막 걷고 그런다
어렸을 때 비오는 날 장화신고 물웅덩이서 철벅이며 놀았던 것처럼..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라고 이렇게 만든건가?
아님, 오고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건가?
난 이런 길이 나오면 가운데 풀 위로 폭신폭신함을 느끼며 걷는다ㅎ
나도 안다, 성격 특이하다
그나저나 하늘도 꾸물꾸물하고
어느덧 오후 4시 15분...
알베르게 걱정도 되고 너무 늦은 시각도 걱정이고..
사모스 궁시렁궁시렁 그러면서 걸었더랬다
101km
아싸~ 1km만 더 가면 100이네
사진찍을 생각에 괜히 혼자 흥분하고
두근두근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좀 사소한데 신나한다ㅎㅎ
어느덧 가브리엘은 내 뒤로 한참 처져서 걷는다
"킴, 내 무릎이 이상해"
어이쿠, 그렇게 내가 좋아?
무리해서 나를 따라 오게?
아님, 경쟁심리였나?
아무튼 저 집 꽃 이쁘네
아니, 이 신발들은 뭐야
100 이다!
여기까지 엄청 천천히 걸어 왔는데도 가브리엘이 나타날 기미가 안보인다
갑자기 '또로, 바까' 하면서 놀던 피레네가 생각난다
도메우, 파블로, 클로린다, 시은...함께 걷던 그 친구들 생각이 간절해진다
역시 친구는 하루라도 오랜 친구가 좋은가봐^^;;
아놔, 이게 뭐냐고
그냥 자갈길이었으면
발바닥의 물집들이 또 아우성이었을테니 그나마 다행인가?
징검다리 건너듯 처음엔 폴짝 폴짝 즐겁게 놀며 걷다가
나중엔 힘빠지고 지루하고 지쳤다
가브리엘이 너무 안온다
조금 걷다 기다리고 조금 걷다 기다리고를 반복하다가
아예 근처 돌담에 기대어 그녀를 기다린다
지나가는 나비도 발로 찍어 보고...아, 지루
그나저나 무슨 일 있나
지루해 하고 있는데 멕시코 총각 알렉스와 지윤이 지나간다
"같이 걷던 친구가 너무 안와 징징징"
"언니 친구 저 밑에서 개울에 발 담그고 놀고 있던데요?"
아놔.........;;;;
한참만에 드디어 나타난 그녀
다리 괜찮냐 했더니 쉬어서 괜찮단다
저 등산화 마인들, 이거 유명한 회사꺼래더라...
까미노 출발전에 어떤 까페 분께 강추 받았던 제품인데...
모두들 매트를 하나씩 달고 있네
아, 불안하다 불안하다
오후 6시가 다 되어 가는데 그 좁은 알베르게에 자리가 있을까나...
일단 머물기로 한 Ferreiros에 도착했다
무지 불안하게도 사람도 무지 많이 모여 있고 우릴 동정의 눈으로 본다
게다가 자기네 배낭마저 침대가 아닌 야외 바닥에 내던져 놓았다
당연히 침대가 없단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데
지윤과 알렉스는 이곳 야외 풀밭에서 비박을 하겠단다
샤워는 알베르게에서 할 수 있으니까..
매트가 없어서 나는 안된다고 했더니
본인들도 매트가 없단다, 튼튼한 침낭으로 버틸거란다
갑자기 가벼움과 부피로만 선택했던 내 침낭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풀밭에서 그냥 자면 저게 추위를 견뎌줄 수 있을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스카우트 애들도 한무더기 모여서 텐트를 치고 잘 준비를 한다
빠에 한국인 무리가 보인다
무려 6명, 부지런한 한국인들의 특성처럼
새벽같이 출발하고 일찍 도착하여
(알베르게를 위해 걸은 거리도 짧게 잡았단다) 침대를 배정받았다
그들의 여유있는 식사, 샤워 후 상큼한 모습 흑흑...진정 부럽다
그나저나 한국인 대박 많구나
빠에서 문제가 터졌다
가브리엘이 빠의 종업원 아줌마랑 싸우기 시작한 것
아놔.......못말릴 채식주의자의 까탈...
같이 있는데 챙피해서 살짝 피했더니
그녀가 나를 불러서 종업원한데 뭐라고 전해달라고 시킨다ㅠ.ㅠ
나 무지 챙피해, 가브리엘ㅠ.ㅠ
그녀는 포르토마린으로 갈거란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에 포르토마린까지 걷겠다 했으니
같이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것
"너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힘들잖아?"
"괜찮아. 킴이랑 난 포르토마린으로 갈거야"
"난 미안한데 여기서 비박하고 갈래."
이미 시각도 늦었고(오후 6시),
포르토마린에도 자리가 없을지 모른다는 불길함이...
나랑 같이 하겠다던 그녀가
자기 혼자만 메뉴를 시켜 밥을 먹는다
독일인의 습성이 아닐까 싶다
너는 밥 안먹냐 한 번은 물어보는게 사람 아닌가,
독일은 나랑 참 문화가 안맞는 듯
난 옆에서 콜라를 한 잔 하면서 드디어 결단을 내려 버렸다
"난 포르토마린으로 지금 출발할거야."
"킴! 난 지금 음식을 주문했어. 난 지금 못가!!!!!"
그녀가 막 화낸다
흑...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난 더이상 너랑 있기 싫어~
지윤이는 샤워하러 가고 없어서
알렉스에게 대신 작별인사를 전해 달라고 하고
가브리엘이 없는 포르토마린으로 달리듯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