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를 끝내고
늙은 학자가 걸어본 발칸의 골목길 –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저물 무렵,
여행이란 참으로 낯선 선물처럼 다가온다.
이른바 ‘발칸 반도’, 나의 지도 속에서 늘 변방이었던 그 땅을 나는 이제야 찾았다.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지중해의 남쪽 끄트머리에서,
나는 사람 사는 냄새를 맡았고,
역사의 먼지를 털어내듯 돌길을 걸었다.
1. 부트린트, 문명과 자연이 맞닿는 자리 – 알바니아
부트린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비잔틴을 품은 유적지였지만
정작 나를 멈춰 세운 건,
무너진 극장의 곁에서 들려오던 이방인의 피리 소리였다.
"문명은 무너지고, 음악은 남는다."
그날 나는 그렇게 적었다.
2. 히마라 – 바람이 말 걸어온 바닷마을
알바니아 남쪽 해변 마을 히마라에서는
햇살보다 더 반짝이는 노인의 인사를 받았다.
나는 영어도, 알바니아어도 못했지만
그 손짓과 미소만으로 한 끼 식사를 청했고,
무화과 와인을 한 모금 받아 마셨다.
“세상 어디서든, 사람은 따뜻하구나.”
그 문장이 입 안에서 천천히 녹아들었다.
3. 코토르, 중세가 아직 끝나지 않은 도시 – 몬테네그로
두브로브니크보다 조용했고,
스플리트보다 더 촘촘했다.
코토르 구시가지의 성벽을 따라 오르다 보면,
내가 역사 속의 한 조각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저녁 무렵,
조용히 다가온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다리 곁에 앉았다.
낯선 도시에서
나를 기억해주는 생명체가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4. 페라스트, 멈춰진 시간을 걷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작은 섬에 선 예배당,
물가에 다정히 앉은 연인들,
그리고 오래된 종탑 너머로
무심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다고,
그렇게 느꼈다.
비록 젊지 않아도.
그리고 돌아와, 책상 위에 앉아
이 여행은 내게 젊음 대신 깊이를 주었고,
속도 대신 온기를 가르쳐 주었다.
내 발은 느렸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멀리 다녀왔다.
혹시 당신이 지금,
인생의 후반부 어디쯤 서 있다면
이 작은 발칸의 도시들을 걸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내가 늙은 학자로서 말할 수 있는 건,
세상은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여행은 그 가장 따뜻한 교과서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