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흠(李信欽)
1570년(선조 3)~1631년(인조 9)
조선중기 『사천장팔경도』, 『초충도』 등을 그린 도화서 화원으로,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경립(敬立).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이희량(李希良)의 아들이다. 도화서화원(圖畫署畫員)으로 부사직과 첨추(僉樞)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아래와 같이 원종공신에 다섯번이나 녹훈된 까닭은 공신들의 초상화를 그려 그들을 위무(慰撫)한 데 있다.
①종계변무(宗系辨誣)에 성공(1589년)한 이듬해인 1590년(선조23) ‘광국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이 되었고, 또한
②정여립(鄭汝立)의 난이 평정(1989년)되고 나서 1590년에 ‘평난원종공신(平亂原從功臣)’ 삼등(三等)이 되었으며,
③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4년(선조37)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이등(二等)이 되었다. 이후
④1625년(인조3)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으로 ‘정사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이 되었고,
⑤1624년(인조2) 일어났던 이괄(李适)의 난을 진압한 후에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이 되었다.
『태안이씨가보(泰安李氏家譜)』에 의하면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는데, 특히 초상을 잘 그려 붓을 들고 한번 그리면 거의 터럭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고 하였다. 유작으로 『사천장팔경도(斜川庄八景圖)』와 『초충도(草蟲圖)』가 전하고 있다.
『사천장팔경도, 1608년 작품』는 일종의 계회도(契會圖)로서 조선 중기에 유행하던 절파화풍(浙派畫風)이 깃들어 있으며, 『초충도』에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의 화풍이 엿보인다.
[참고문헌]
『화사양가보록(畵寫兩家譜錄)』
『한국회화소사(韓國繪畵小史)』(이동주, 서문당, 1972)
『한국회화대관(韓國繪畵大觀)』(유복렬 편, 문교원, 1969)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애서운동가 백민의 '신 잡동산이'(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