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고비마다 늘 내밀던 손이 있었어요” 정성화는 모든 것이 ‘믿음’이었다고 말한다. 이미지가 아닌 실력을 믿고 캐스팅한 감독들이나 뮤지컬 제작사 대표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늘 지지해준 여자친구와 부모님까지…. 한결같이 믿어주고 응원한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있다.
제4회 더 뮤지컬 어워드 남우주연상은 정성화의 것이었다. 수상소감을 말하려고 마이크로 다가간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수상소감이 적힌 종이였다. “수상소감은 매년 준비했습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소감의 주제는 ‘믿음’이었다. 뭘 해도 중간 이하였고 특별한 열정도 없던 저를 뮤지컬에 빠져들게 한 데에는 설도윤 대표님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말에도 저를 돈키호테로 서게 하신 신춘수 대표의 믿음, 또한 서글서글하고 별 카리스마 없던 저를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연기할 수 있게 한 것도 민호진 대표의 믿음이었습니다. “정성화도 할 수 있어”라고 했던 사랑하는 관객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을 걱정하고 함께한 사랑하는 부모님과 제 동생, 사랑합니다. 내년에 결혼할 약혼녀가 없었다면, 전 햇볕 없는 다이아몬드였을 겁니다.
“해마다 ‘혹시 모르니까’ 하고 늘 수상소감은 준비했어요. 이번에는 확률이 높다는 말에 수상소감을 써 갔죠. 그게 부적이 돼서 상을 타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종이를 꺼내 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막상 무대에 나가보니 아무 생각이 안 나더군요. 그동안 섰던 무대를 통틀어 가장 떨리는 자리였어요.”
그는 미리 준비해간 수상소감 덕을 톡톡히 봤다. 그 덕분에 꼭 감사를 전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를 수 있었고, 당황하거나 펑펑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는 듯 울먹거렸다.
“대상 호명을 받자마자 떠오르는 사람은 부모님이었어요. 누구보다 가장 기다리셨던 분들이니까요. ‘상 같은 건 연연해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눈빛에서 그래도 꼭 한 번 탔으면 하는 바람이 읽혀졌어요. 상 타는 순간 ‘얼마나 기뻐하실까’ 싶었죠.” 정성화의 부모는 이날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혹시 수상자 명단에서 빠지게 되면 그 실망이 얼마나 크실까 싶어 초대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상을 타지 못했다면 저 혼자 삭이면 그만이지만, 부모님까지 계시면 곤란할 것 같았어요. 두 분은 일을 하시다가 식당에서 TV로 시상식을 보셨대요. 제가 수상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두 분이 엉엉 우셨다고….”
‘예능 장학금’을 받은 학생의 녹록지 않은 방송국 생활
기자가 ‘정성화’를 처음 기억하는 시점은 1999년 방영된 인기드라마 <카이스트> 부터다. 이은주, 채림, 이나영, 지성 등 선남선녀 배우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는 비타민과도 같았다. ‘신인배우인가? 어쩜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코믹 연기를 잘하지?’ 감탄하고 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팬들은 기자처럼 그를 배우로 기억하고, 어떤 팬들은 그를 개그맨으로 떠올리고, 또 어떤 팬들은 그를 뮤지컬 배우라고 부른다. 모두 맞다. 그는 SBS 개그맨으로 데뷔했고, 탤런트로 시청자들과 친숙해졌으며, 뮤지컬 배우로 정상에 올랐다.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여러 부류가 있어요. 지방에 계신 분들은 개그맨이나 코믹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기억하시죠. 그래도 수도권에서는 뮤지컬 배우로 통해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끼가 넘쳤다. 학교 행사 MC를 도맡았는데, 그의 끼를 재능으로 인정한 교장선생님이 ‘예능 장학금’을 만들어줄 정도였다. 이후 개그맨의 꿈을 품고 서울예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고, 모든 개그맨들의 통과의례처럼 개그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SBS 개그맨 공채시험에 합격한 것도 이때였다. 이때만 해도 인생이 술술 풀리는 듯했다.
“개그 프로그램의 몇몇 코너에서 연기하다가 틴틴파이브 멤버로 들어가게 됐어요. 그 당시 틴틴파이브가 인기가 많았는데, 홍록기 씨 대신 제가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된 거죠. 3개월 정도 활동했나? 쉽지 않았어요.”
연예계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개그맨 생활에 지쳤을 때 그는 대학로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6개월간 먹고 자면서 연극에 매달렸다.
“말장난식 개그가 아닌, 연기를 잘하는 희극배우로서 웃기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연극 무대에서 연기력을 다진 후 개그맨으로 복귀했을 때는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코믹 드라마 위주로 활동했죠. ‘반전드라마’, ‘흑과백’ 등 한창 그런 포맷의 개그가 유행했을 때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