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지방선거가 50일도 남지 않았다. 오는 6월 1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지역사정을 잘 알고, 지역 비전을 보여줄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다. 지역을 위해 제대로 일할 사람이 나서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지역일꾼’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별다른 지역 연고가 없는 인사들이 갑자기 경선에 뛰어드는 등 지역은 없고 중앙정치만 보이는 실정이다. 지역 비전을 두고 경쟁해야 할 당내 경선이 중앙정치 각축전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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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4선 유승민 경기지사출마...인천5선 송영길 서울시장 출마...“빨간등” - 서울 출신 충북지사 출마 이혜훈 ‘컷오프’ 대구시장 김재원.유영하 ‘눈살’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이 끝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은 채 치러진다는 점에서 중앙정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딛고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여소야대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지방선거 승리가 절실하다. 나아가 4년 전 참패한 지방권력을 탈환해야 한다. 지난 대선 결과가 0.73% 박빙의 차이였다는 점에서 중앙정치 세 대결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앙정치 예속화는 풀뿌리 민주주의 취지에 어긋난다. 특히 지방선거 공천을 둘러싼 여야의 분위기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의 연장전 같은 느낌이다. 지역 연고가 없는 이들이 지역발전에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채 지방선거에 뛰어든 모습이다. 지방 정치의 자리에 중앙 정치가 밀고 들어가는 형국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번 지방선거가 유독 심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 기반 둔 송영길, 당내, 서울시장 출마 비판
실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로 연일 떠들썩하다. 민주당 내에서는 서울 민심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는 전략공천 지역으로 돌려 최상의 인물이 나서야 한다는 분위기다. 최근 송 전 대표가 출마를 결심하며 현재로선 오세훈 시장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힌다. 당 일각에서는 송 전 대표의 출마는 ‘이재명 의중’이 반영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당내 비토 여론이 강하다.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당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에 나서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전직 대표가 직접 등판하면서 정치 신인들이 나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대표 출신이 나선 상황에서 정치 신인이 도전하기 쉽지 않다는 논리다. 나아가 승리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새로운 인물을 통해 ‘이렇게 민주당이 변화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 가능성을 송 전 대표가 막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송 전 대표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옮겨 출마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 실제 송 전 대표는 인천에서 5선과 인천시장을 지냈다. 고향은 전남 고흥이지만 정치적 고향은 인천인 셈이다. 더구나 정치 거물로 키워준 인천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비판 여론까지 형성된 상태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인사는 “서울시장에 이어 인천시장 선거 등 전국 선거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인천시장 때부터 대권 도전을 고려했던 만큼 서울시장 선거를 발판으로 대권 도전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1일 비대위 회의에서 “서울은 새로운 후보를 더 찾아야 한다”며 “비대위가 더 적극적으로 경쟁력 있는 의원들의 출마를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지역 의원을 포함한 지역위원장 49명도 “서울시장 후보군에서 파격적인 새 얼굴을 발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당은 서울시장 등 4곳을 ‘전략선거구’로 지정하고 경쟁력 있는 후보 선출에 주력하기로 했다. 당 지도부가 특정 후보를 지목해 경선을 치르지 않고 당 후보를 확정하는 전략공천과 달리 전략선거구 지정은 선거 전략상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선거구로서 전략공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경선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기로 한 셈이다.
유승민, 이혜훈, 김영환, 출마했지만 ‘연고’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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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대구 출신인 유승민 전 의원도 뚜렷한 연고가 없는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다. 유 전 의원은 경기도지사 승리를 대권 재도전 디딤돌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오죽 경기도지사 후보가 없으면 경기도와 단 1의 연고가 없는 대구 출신 유승민이란 분이 소환되고 있을까”라며 “오만의 정치”라고 지적했다.
당내 경쟁자인 김은혜 의원도 유 전 의원이 경기도 연고가 없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번 선거에 나오기 전에 저에게는 경기도의 고민이 있었고, 유 전 의원은 정계 은퇴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지 않냐”며 경기도에 지역구를 둔 자신에게 출마 명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 미묘한 차이가 다른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유 전 의원은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유 전 의원의 말한 경쟁력이 힘을 받지 못하고, 경쟁자인 김 의원과 접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인일보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이틀간 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천7명을 대상으로 경기지사 선거 여론조사를 한 결과 김 의원(17.6%)이 유 전 의원(14.6%)을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40.8%가 김 의원을 지지했고, 23.5%가 유 전 의원을 지지했다. 유 전 의원의 경선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충북도지사 예비후보군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연고가 없는 총선 낙선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영환, 이혜훈 전 의원이 그렇다. 컷오프를 통과한 김 전 의원은 충북 괴산 출신이지만 정치적 기반은 수도권이다. 안산에서 4선을 했고 경기도지사에 도전했으며 마지막에는 고양에서 출마했다.
이혜훈 전 의원은 “아버지 고향이 충북 제천인 충북의 딸”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도 서울 서초에서 3선을 했고 지난 총선에선 서울 동대문에서 뛰었다. 이로 인한 지역민들의 여론은 좋지 않다. 충북도청 앞에는 ‘김영환·이혜훈 철새 정치 그만두라’, ‘김영환·이혜훈 돌아가라’ 등의 근조화환이 설치돼 있다. 나아가 충북학생연합은 지난 4일 충북도청 앞에서 두 후보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김영환 후보는 경기 고양병 당협위원장, 이혜훈 후보는 서울 동대문구 당협위원장이다. 충북이 만만하냐. 집으로 돌아가라”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혜훈 전 의원은 컷오프됐고 김 전 의원은 비록 통과했으나 본선 티켓을 거머쥘 지는 미지수다.
정치고향 버린 김재원, 박근혜 후광 유영하 ‘눈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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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장 선거는 더더욱 코미디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컷오프를 통한 김재원 전 최고위원, 유영하 변호사는 대구와의 연고가 얕다고 볼 수 있다.
검사 출신인 김 전 최고위원은 경북 군위, 의성, 청송을 지역구로 3선 의원을 지냈다. 그런 그가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 연착륙하기 위한 명분으로 평리중·심인고 졸업과 산격동 경북도청 근무 경력을 내세우고 있으나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한 인사는 “경북 출신 3선 국회의원으로서 경북도지사 출마가 타당하지 않느냐”며 대구시장 출마 자체에 대한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래전부터 대구에 애정을 가졌다면 정치행보도 달랐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유영하 변호사도 대구 서부초등학교를 잠시 다닌 것 외에는 대구와의 인연이 전혀 없다. 부산에서 태어나 1살 때 대구 서구로 이사왔고 초등학교 6학년까지 대구에서 생활한 후 경기도에 정착했다. 2004년 경기도 군포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내리 3번 모두 낙선했고, 서울 송파을에서도 출마했으나 공천이 취소됐다. 그런 그가 대구시장에 출마한 것은 단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출마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민의힘이 탄핵의 강을 건넌 상황에서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 한 인사는 “정치적 재개, 차기 대권을 향한 발판 등으로 인해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 의미가 완전히 퇴색되어버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