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에서 온 스님 편지 - 동봉 스님
베낭 하나 메고 떠나 희망 심는 동봉 스님
“…하고 싶으신 분, 그렇다면 여기로 오세요”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조용필의 노래처럼 지난 2005년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로 떠났던 동봉 스님이 며칠 전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 우리절 주지였던 동봉스님이
처음엔 아프리카로 떠났다고 해서 믿기지 않았었지요.
그는 60~70년대 조계종 종정을 했던 고암 스님에게 출가해
용성선사의 어록집을 펴내고, 한자로 된 불교의 주요 경전들을
혼자 힘으로 번역한 일원곡을 13권까지 낸 실력파였습니다.
그런 그가 10년 간 혼혈을 다해 가꾼 우리절을 다른 스님에게 넘기고
배낭 하나 메고 홀연히 떠나간 것입니다.
그는 2004년 11월 말 20일 동안 탄자니아에 갔다가
아프리카 52개국 어디에도 ‘한국 불교’는 없다는 말을 듣고,
불현 듯 뼈를 묻어도 좋을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05년 5월 드디어 탄자니아의 수도 다레살람으로 떠났습니다.
적도 부근이어서 1년 내내 여름인 그곳에서 그는 밤이면
큰 나무 밑에 앉아 참선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무 밑에 쉬러 온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참선을 하느냐”고 물으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함께 참선하는 아프리카인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2000고지 기슭 3500평 땅에 보리가람 스쿨 건립 중
동봉 스님의 꿈은 킬리만자로에 한국 전통 사찰을 세워
누구나 와서 명상을 하는 명상센터로 가꾸는 것입니다.
눈 싸인 킬리만자로와 우리 절의 아름다움이 절묘한 조화를 빚은
세계적인 명물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킬리만자로가 있는 탄자니아는 한반도 4.5배 크기의 면적에
4천여만 명이 산답니다. 탄자니아는 킬리만자로와 세링게티가 있는
동물의 왕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 250달러의 빈국입니다.
연간 강수량이 우리나라 절반 정도인 700미리밖에 안 되는 탄자니아는
그나마 이 물마저 저장해 놓는 시설이 거의 없어
흘려 보내고 말아 건기가 되면
물이 없어 죽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스님은 아프리카에 희망을 심자면서 지난해엔 국내에 들어와
‘101일 국토대장정 고행정진’에 나서서
강원-경남북-전남북-충남북-경기도를 걷기도 했지요.
그는 지금 킬리만자로 기슭에 3500여평의 부지를 마련해
명상과 한국어, 과학영농, 건축, 스포츠 등을 가르칠
‘보리가람 스쿨’을 건립 중입니다. 아래는 동봉 스님이 보내온 편지입니다.
조 기자님, 평안하시지요?
아 이곳에 와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기자님이 쓴 은둔이라는 책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감명 깊게 읽었구요.
거기에 제가 쓴 ‘평상심이 도라 이르지 말라’라는
책을 인용한 것까지 밝혀주셨더군요. 고맙습니다.
오랫만에 연락드립니다. 지난여름 이곳에 와서
열심히 채마밭 일구고
벽돌 깨서(돌벽돌이라서) 토담집 짓고
현지인들과 어울려 그런대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적응도 그런대로 되어갑니다.
오늘 아침 그냥 쓰고 싶어서 쓴 글인데 한번 보냅니다.
읽고 나서 버리십시오. 모자란 비구 동봉 합장
그러니 그대여! 세상 잡다한 일일랑 잠시 접어두고
그냥 오십시오.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아주 다이나믹한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기상의 변화무쌍함을 통해 당신은 참 인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문명과 작별하여 수도승처럼 살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종일 가도 매연 없고 비행기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한적한 산중입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를 피하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산승이 머무는 2,000고지는
섭씨 22도 이상을 오르는 적이 없답니다.
그렇다고 추위 또한 싫다고요?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아무리 추워보았자 여기는 적도 아래에서 약간 비낀 곳이니까요.
대화가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밤이면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내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답니다.
사랑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좋은 사랑과 도피의 안식처는 매우 드물 것입니다.
그냥 죽고 싶다 생각되는 분이라면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그래도 살고 싶다 생각하는 분이라면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가슴이 답답한 분도, 뻥 뚫린 분도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삶에 절망을 느낀 분이라면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미래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분도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만남으로 설레는 분도, 이별을 준비하는 분도 그냥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킬리만자로는 당신의 모든 바람을 하나같이 이루어 줄 것입니다.
킬리만자로는 당신의 절친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킬리만자로는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킬리만자로는 당신의 소중한 연인이기 때문입니다.
킬리만자로는 당신의 따스한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킬리만자로는 바로 부처님의 자비롭고 너른 품이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는
당신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가꾸고
또한 보다 사랑스럽게 가꾸어가고자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산승이 머무는 2,000고지,
변화무쌍한 그 기상의 변화는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일 터입니다.
그러니 그대여!
세상의 잡다한 일일랑 잠시 접어두고
아프리카의 최고봉인 이 킬리만자로로 오십시오.
2007년 말 아침 8시 40분
킬리만자로에서 모자라는 比丘 一圓東峰(起泡)은 씁니다.
조현 기자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