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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코드의 추억
김철웅 | 2015/01/31 03:34 | 노래가 위로다
요즘 노래는 화성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해졌지만 옛날 노래는 단순 질박했다. 이걸 기타 코드로 얘기하자면 옛날 노래는 서너 개, 많아야 대여섯 개 정도의 코드만 구사하면 부를 수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통기타 시대를 연 1970년대 포크송을 예로 살펴보자. 이장희가 부른 (1973·이장희 작사 작곡)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드 네 개(Em-D-C-B7)로 코드가 진행된다.
Em D C B7 Em D C B7
모두들 잠들은 고요한 이 밤에/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루나
Em D C B7 Em D C B7 Em
넘기는 책 속에 수많은 글들이/ 어이해 한 자도 보이질 않나
D Em D Em D Em D Em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1절 가사
이런 단순한 멜로디(코드가 단순하다는 건 멜로디가 그렇다는 말과 같다)와 가사는 당시 청소년들에게 충격적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첨엔 ‘듣보잡’ 같은 노래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친숙해졌다. 그만큼 잡아끄는 힘, 호소력이 있었다. 당국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이유로 금지곡 결정을 했지만 참 웃기는 구실이었다.
조용필은 자작곡 (1980·박건호 작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이른바 ‘패밀리 코드’ 5, 6개로 모든 음악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다른 코드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세븐 코드를 에 적용해 리듬과 멜로디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이 노래에 당시에는 쓰지 않던 메이저 세븐 코드를 사용한 이유가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주1】그가 패밀리 코드라고 한 건 장·단조의 기본 코드 6개 정도를 말한 것 같다. 가령 C장조의 C, F, G와 나란한조의 Am, Dm, E7 총 6개 코드다. 세븐 코드를 절묘하게 구사한 노래로 기억나는 것은 (1989·강인원 작사 작곡,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 노래)가 있다. 비오는 거리 풍경 묘사에 세븐 코드가 동원된 것이 몽환적 느낌을 강하게 준다. 마치 비오는 거리를 걷는 것 같은.
어찌됐든 1970년대 포크송엔 즐겨 사용되는 몇 가지 코드 패턴이 있었다. 앞서 예를 든 의 패턴을 여러 곡에서 발견할 수 있다. 편의상 이 패턴을 다장조 C(또는 나란한조인 Am)로 조바꿈하면 Am-G-F-E7가 된다.
4월과 5월의 (1972·백순진 작사 작곡)가 그 경우다.
Am G F E7 Am G F E7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Am Dm Am Dm Am Dm E7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Am G F E7 Am G F E7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Am Dm Am Dm Am Dm E7
오늘도 애 태우며 또 너를 생각했다/ 오늘도 애 태우며
Am G Am G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Am G Am G Am C E7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되면/ 화 안된다 더 가지마
1절 가사
1971년 당대 최고의 춤꾼 김추자가 부른 (김희갑 작사 작곡)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같은 코드 진행, Am-G-F-E7을 반복한다. 그래서 지루하냐 하면 리듬과 선율, 도발적 창법에 스르르 도취되고 만다. 이 경우 반복은 상당한 중독성을 발휘한다.
Am G F E7 Am G F E7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그 누구라도/ 한번쯤은 사랑하고 헤어지지만
Am G F E7
아 아 아 아(후렴구)
Am G F E7 Am G F E7
파도처럼 왔다가는 눈물만 주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후렴구)
Am G F E7 Am G F E7
둘이 뜨겁게 둘이 뜨겁게 사랑하다가/ 혼자 그렇게 혼자 그렇게 가시겠다니 (후렴구)
Am G F E7 Am G F E7
날 두고 정말 그럴 수가 있나요/ 날 두고 정말 그럴 수가 있나요
가사
1971년 은희가 노래해 그해 최고 히트송이 된 (은희 작사, 외국곡)와 1972년 양희은이 부른 (김정신 작사 작곡)은 화성 진행이 매우 비슷하다. C-Am-Dm-G7 패턴이 반복된다. 는 F장조로 돼 있지만 그걸 C장조로 조바꿈하면 똑같은 패턴이다. 박자도 같은 4분의 4박자이기 때문에 아르페지오로 기타를 치면 어느 곡에도 맞는 반주가 될 수 있다.
F Dm Gm C7 F Dm Gm C7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끼고
F Dm Gm C7 F Dm Gm C7 F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
1절 가사
C Am Dm G7 C Am Dm G7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
C Am Dm G7 C Am Dm G7
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안녕 안녕 목메인 그 한마디
C Am Dm G7 C Am Dm G7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음…
1절 가사
우리 가요사에서 김민기는 (1971)과 같은 사회 의식을 드러낸 작곡가로 기록돼 있지만, 처음으로 자기 음악에 다양한 코드를 구사한 뮤지션이기도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형찬은 이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일련의 코드 진행을 사용하여 뛰어난 음악적 형상화를 이룩한다. (1971)의 첫 소절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의 반복되는 ‘미’ 음은 끝없는 바다를 의미하고 여기에 부여되는 C-CM7-C7-F의 코드 진행은 끝없는 바다 위에 내리는 비를 연상하게 하여 가사의 시각화·공간화를 달성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인다.”【주2】이영미는 이렇게 말했다. “, (1972·이장희 작사 작곡 노래) 같은 작품은 화성적인 반주가 없으면 노래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주 선율이 재미가 없다. 는 무려 11음절의 가사를 ‘미’ 한 음으로만 일관하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선율 재미로 노래를 부르는 당시 우리나라 대중이 매우 부르기 어려운 노래이며…”【주3】요컨대 좀처럼 쓰지 않는 단조로운 멜로디의 반복을 풍부한 화성진행으로 극복했다.
C CM7 C7 F C Am D7 G7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C CM7 C7 F Fm C Am Dm G7 C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C Gm6 A Dm G7 C Gm6 A A7 Dm D7 G G7
눈 앞에 떠오 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 잎 위에 어른거리오
C Gm6 A Dm G7 C Gm6 F A D7 G7 C
저 멀리 들리 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1절 가사
는 김민기가 고교 시절 만든 작품이다. 동해안에 여름 야영을 갔다가 후배 한 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났다. 돌아오는 야간열차 안에서 참혹한 심경을 담은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데, 고교생이 작곡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성 진행이 세련되고 가사가 깊이 있다. 죽음은 가요의 친숙한 주제는 아니다. 대중음악이 죽음을 주제로 다루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 점만으로도 이 노래는 독보성을 인정할 만하다. 이 때문에 70·80년대 학원 사태로 대학을 떠난 동료들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로 사랑받았다.
그런데 노래는 다양한 화성과 코드가 절대적 기준인 건 아니다. 이른바 쓰리코드란 게 있다. 주요 3화음의 코드만 쓰는 노래다. C장조일 경우 C-G-F-C로 진행하는 식이다. 산울림의 (1977·김창완 작사 작곡)가 대표적인 곡이다. A장조인 이 곡은 딱 A, E, D 3개 코드만으로 연주된다. 이렇게 화음 구성을 극소화시켜 단순하면서도 힘있고 질주하는 음악을 펑크(punk), 펑크 록이라고 한다. 산울림은 최초의 펑크 밴드인 셈이다.
“펑크는 일부러 단순한 음악을 만들었다. 록의 기준에서 보자면 형편없는 음악이었다. 밴드의 연주는 바로 어제 결성한 듯 엉성했고 보컬은 초절정 고음 대신 악다구니를 써댔다. 곡은 대부분 3분 이내에 끝났고 쓰리코드를 고집하는 경우도 많았다. 크라잉 넛의 (1996·이상혁 작사 작곡)을 들어보자. 왜 펑크라 불리는지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주4】
E A E A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환하게 밝았네
E A E A
가벼운 아침 발걸음/ 모두 함께 콧노래 부르며
D A D A
밝은 날을 기다리는/ 부푼 마음 가슴에 가득
D A D A
이리 저리 지나치는/ 정다운 눈길 거리에 찼네
1절 가사
그런가 하면 ‘머니코드’라는 코드 진행이 있다. C장조 기준으로 C-G-Am-Em-F-C-F-G로 나가는 캐논 변주곡 코드를 말한다. 캐논은 바로크 시대 독일 작곡가 파헬벨이 만든 실내악인데 대중음악으로 다양하게 편곡돼 굉장히 친숙한 선율이다. 더 짧게는 C-G-Am-F 진행으로 간다. 머니코드란 이름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코드라 많이 팔리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간단히 4 Chord로 부른다고 한다.
이 진행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노래는 무척 많다. 이문세의 (1988·이영훈 작사 작곡), 김현식의 (1991·오태호 작사 작곡), 임재범의 (2000·채정은 작사, 신재홍 작곡), 부활의 (2002·김태원 작사 작곡) 등이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머니코드가 꼭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코드의 큰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또 코드란 것은 연주자의 취향과 곡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G D Em Bm Em C D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G D Em Bm Em Am7 C D G D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G D Em Bm Em C D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을 모르고
G D Em Bm Em Am7 C D G G7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C D G Bm Em Am Am7 Am A D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G D Em D C G Am D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G D Em D C G D7 G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하략)
가사
【주1】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조용필 207쪽
【주2】김창남 엮음, 김민기(한울, 2004) 484쪽
【주3】이영미, 한국대중가요사(민속원, 2006) 기타와 화성중심적 사고 235쪽
【주4】윤호준,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바람의 아이들, 2011) 170쪽
첫댓글 전 그런 간단명료한 코드나열이 정말 쪼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