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 소리가 있었다(열왕기상 19:12)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성탄이 더 가까이 왔다는 것이지요. 저에게는 가까이 온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손자 지후 첫돌이 다가옵니다. 일 년 동안 손자 때문에 참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큰 아들 말처럼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참 이쁘더라고요. 말은 그래도 주관적이겠지요.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 그저 감사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해마다 이때쯤이면 마음의 하늘에 잿빛 구름이 밀려옵니다. 편하지 못하고 우울한 생각들이 많이 든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금년 한 해 무엇을 하면서 살았을까?’, ‘무엇이 남았을까?’, ‘왜 그랬을까?’ 와 같은 잿빛 생각들입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성탄절이 지나고 새해가 되면 또 맑아지고 그렇습니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노래 한 곡이 나오는데 그렇게 마음 속 깊이 들어오고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반복해서 틀어달라고 말을 하는데 목이 메었습니다. 무슨 노래인데 그랬을까 하시겠지요. 노래 가사입니다. “저 바람 속에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있어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은 이 길은 끝없는 추억의 길, 길가에 서있는 무성한 나무와 나무들 가슴에 남겨놓은 잊지 못할 그대의 눈동자”
이별한 연인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일 것인데, 그 연인이 제게는 우리 주님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 속에 내 이름을 부르는 주님이 계신데 내가 그 소리를 무심히 들었구나. 그래서 여럿이 같이 있어도 외로웠구나. 그런 생각인데, 쓰고 보니 좀 어색하고 유치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노래가 바람이 되어서 잿빛 구름을 저멀리 내보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 속에 ‘말씀’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호렙산의 엘리야 생각이 났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은 지진 속에, 불 속에 계시지 않고 세미한 소리 속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말씀입니다. 그 세미한 소리를 ‘저 바람 속에’라고 해도 되겠지요. 늘 제가 생각하고 말했던 것인데 구름에 가려서 잊고 있었습니다. “작고 소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서 산다” 그런 생각을 빼앗기지 않고 성탄절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아기 예수님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마굿간에 오신 것처럼 그렇게요. 편지를 쓰는 것도 마음을 참 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씁니다. (제가 들었던 노래는 1976년에 발표된 박인희님이 부른 ‘나무 벤치길’인데, 1971년에 모나코 가수가 부른 노래를 번역해서 부른 것으로 숨어있는 좋은 곡입니다.)
첫댓글 나무벤치길 들어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