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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라, 꽃동산
갑자기 뜨거워진 대기로 벚꽃은 이제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있다. 훈풍이 불어오자 꽃잎이 점점이 흩날리다 멈춘다. 꽃들은 미처 우릴 기다리지 못했음인지 동백과 목련, 제비, 앵초, 민들레, 진달래, 찔레가 풀이 죽어있다.
오늘 나는 가뿐 숨을 쌕쌕거리며 백우정에 오른다. 산도 서원도 그대로인데 사람은 달라졌다. 남자아이들은 훌쩍 키가 컸고, 유랑단은 새식구로 더욱 활기가 넘친다.
50명이 넘는 가족이 백우정을 꽉 메우니 화전팀을 6개조로 나누었다. 드디어 모두가 기다려 온 화전부치기에 열을 다하니 이 넘치는 에너지를 어찌 감당할까,
하얀 찹쌀가루에 들판에서 갓 따낸 꽃과 이파리를 붙이며 자기 조의 개성을 살려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연서엄마가 초청한 어린이집 팀은 아주 질서있게 둘러앉아 네 살 배기 아이들에게 정성껏 반죽을 설명하고 모양을 꾸민다.
11살 된 아이와 4살 된 아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같은 환경에서 11살된 아이들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성과 응용력을 나타내고 4살된 아이들은 지금의 경험을 고스란히 빨아들인다. 조물조물 반죽을 자랑하고 갖가지 울긋불긋한 꽃과 야생초가 어우러져 먹거리가 탄생하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경이로운 세계다.
- 이 노란 꽃도 먹을 수 있나요?- - 전 진달래꽃 처음 먹어봐요. 조금 이상한 맛이기도 하고- - 너무 먹고 싶어요, 제발 한 개만 먹게 해주세요. 네~~-
곧이어 심사위원들의 엄정한 심사가 시작되었다. 다빈이아빠, 영준아빠, 연서아빠, 지효아빠, 찬슬아빠로 구성된 심사단은 색, 향, 미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기로 했다. 접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시식하는 심사단의 모습은 마치 명인명품전을 떠올리듯 진지하기만 하다.
조별로 자신들의 화전을 이름짓고,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작품설명에 들어가고 6개의 접시가 뽐내듯 늘어서있다.(사진으로 꼭 감상하시길)
봄의 향연! 서로가 어우러져 꽃은 더욱 윤기나고, 반죽은 감칠맛나게 변신한 화전은 햇빛 아래 더욱 찬란하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요리 이자 생태요리가 아니겠는가!
나는 23살 여수 영취산에서 처음 진달래꽃전을 지지며 젊은 한 때를 만끽했었다. 바위 틈새로 아슬아슬하게 피어난 선홍색 진달래는 한 입 베어 먹을 때 마다 시큼한 향을 풍겼다. 화전은 배고파서 먹는 음식이 아니요, 봄의 물이 한껏 피어오름을 오감으로 느끼며 음미하는 멋스러움의 상징이다.
백우정 꽃동산에 웃음소리가 유쾌하게 울려퍼진다. 일등은 일등 대로 즐겁고, 함께 참여한 사람은 그만큼 만족스럽다. 태언이는 왜 참가상은 안주냐고 물어보면서 500원이라고 주면 좋겠단다. 자기네도 열심히 만들었으니 그 노력을 인정해달라는 뜻이리라.
내가 늘 마음에 두었던 그 숲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계곡의 물은 말랐지만 숲은 건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늘진 곳마다 고사리와 쑥, 머위, 야생화가 피어있고 사락사락 흙 밟는 소리가 기분을 좋게 한다.
고봉 기대승 선생의 묘소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좀 더 작은 아이들은 몸구르기와 나뭇가지 전쟁놀이, 눈 밝은 엄마들은 쑥 뜯고 머위캐기, 아빠들은 깊은 사색과 몸의 이완, 나는 쌕쌕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숲길을 따라 걷는다. 앉아서 쉬라는 당부를 뒤로 하고 기어이 동무들을 따라간다. 보면 볼수록 보고 싶어지는 마음은 참으로 신비롭다. 친정엄마 보다 더 자주 보는 사람들인데도 왜 자꾸만 보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은지 ..... 마치 오늘 이 자리가 아니면 다시는 못 볼 사람인 양 하나하나가 그립고 또 그립다.
황룡강 너머로 석양이 진다. 서서히 조금씩 기울어가다 어느 시점에 일순간 사라지는 태양을 우리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제 새롭게 떠남과 만남이 교차하는 시각이다. 온 몸에 풀과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유랑단 아이들은 잡은 가재를 놓아주고 동산에 이별을 고한다. 내년에도 가재가 돌틈에 있어주길 기대하고. 다음 유랑도 변함없이 신나고 즐겁기를 바라면서 ~~~
2009년 4월12일 최정아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