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내(勘耐) 를 화두로 어려움 이기자. / 법광 스님
결사(結社)
결연(缺然,모자라 서운함)한 상황일 때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정진 모임을 갖는 것을 결사라 한다.
그것이 단체든 개인이든 간에 굳은 의지로 일정기간 실행한다면
결사로 명명해 왔다.
사회에서도 단호한 결심으로 일을 도모하면 왕왕 결사란 말을 하는데,
요즘 국회에서 ‘결사항전’이란 말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결사(結社)란 정녕 결연(決然)한 모습인 것이 분명하다.
역사적인 예로 결사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신라시대 만일회(萬日會)는
31명의 스님과 동참한 신도들이 1만일 동안 염불하여 기도 성취를 했고,
고려 때 지눌스님은 시대적 혼란과 수행의 혼돈을 바로 세우고자 정혜결사(定慧結社)를 했다.
근래에는 천축사 무문관과 기림사 무문관을 들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결사한 대표적인 예로는 성철스님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선원에서 일정기간 산문 출입을 하지 않고
가행정진(加行精進, 하루에 14시간~18시간 정진)이나
용맹정진(勇猛精進, 하루에 18시간 이상 정진)을 하면 결사라 한다.
안팎으로 처해진 현실 감수하고
극한도 인내하겠다는 마음 내야
1993년 겨울이었다. 지리산 반야봉 근처에 있는 조그만 암자에서
4명이 동안거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일종의 결사였다.
결사에 앞서 신심 있는 거사(당시 ‘산사나이’)와 함께
노고단에서 반야봉까지 꼬박 보름동안 한 철에 필요한 용품을
등짐으로 날랐다. 아침에 나오는데 4시간, 등짐 지고 오르는데 6시간
그렇게 하루 10시간씩 옮겼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열정으로 지금껏 지탱해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흔히 출가해서 5년간은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별반 거칠 것이 없다가
10년이 되어서는 어딘가 조심스러워 진다는 말을 선배 스님들로부터 들어왔는데,
당시 출가한지 10여년이 가까운 나로서는 실감을 했다.
해서 그해 늦봄 법주사 강원에서 5개월여 강의하던 어느 날
홀연히 걸망 하나 지고 만행 길에 올랐다.
겁이 났던 것이었다. 출가해서 강산이 한 번 변하는데도
이렇다 할 확신이 서기보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새삼 ‘도(道)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에서였다.
그때의 의문이 지금에 와서는 ‘삶이란 무엇인가?’로 바뀌었다.
급작스레 강주 소임을 놓다 보니, 그것도 안거중인지라 부딪힌 현실이
그대로 화두가 되어 버렸다. 당장 5톤 짐차로 가득한 책이 문제였다.
디지털 세상에 구태한 모습 같아 자못 씁쓸했다.
거처를 옮겨야 했다. 홀로 취사하는 일에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맞닥뜨린 일이기에….
마침 원고 청탁이 왔다.
매주 ‘선(禪)’에 대해 에세이 형식(경험을 바탕한)으로 기술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참에 그간의 이력을 정리하는 자세로 임하고자 한다.
다소 생소한 생활로 불편함이 있다.
그래도 밖에 있는 이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호사스런 느낌이 든다.
요즘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다 같이 결사하는 마음으로
확실한 화두를 제시하고자 한다.
‘감내(勘耐)’다. 처해진 현실 속에서 이것을 감수하고
극한에 있어서도 인내한다는 것이다.
법광스님 / 전 백양사 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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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광 스님은
1985년 진철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통도사 승가대학과 율원,
은해사 승가대학원 1기로 졸업했다.
해인사. 법주사 승가대학 강사를 거쳐 백양사 승가대 학장을 지냈다.
해인사 송광사 동화사 정혜사 등에서 12안거를 성만했고,
봉암사 기본선원 선감 소임을 보았다.
2003년 전 교육원장 원산스님으로부터 전강을 하고
‘법광’이라는 호를 받았다.
2009. 1. 10.
불교신문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