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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문학기행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 문학기행 중에서
일시:2010.3.1.월~12.금 11박 12일
여행국가: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
2010년 3월 5일 금요일 스페인 타리파에서 아프리카 모로코 탕헤르로 이동
* 스페인 타리파에서 모로코 탕헤르행 배 승선
타리파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서 아프리카 북부 도시 탕헤르로 간다. 페리호에 승선했다. 버스도 통채로 배 안으로 들어간다. 2층으로 올라갔다. 드넓은 선실 내부에는 매점과 의자들이 승객을 기다린다. 중앙에는 갑판으로 나가는 계단도 있다. 줄을 서서 검색을 받았다. 검색원의 동작이 느려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40분 정도 걸리는 승선시간을 검색대열에서 기다리다가 거의 다 보냈다.
지브롤터 해볍의 바다에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어둠의 바다, 선창에는 빗물이 흐르고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다.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올 때는 낮 2시 배를 탄다하니 그때 풍경을 보면 되리라. 호기심 많은 나는 배의 곳곳을 다니며 둘러보았다. 꽉찬 의자들, 화장실, 음식을 파는 가게 등 세련된 선실의 정경이다. 모로코에도 삼성, LG 등 한국제품이 들어와 있단다. 저 멀리 아프리카 땅의 항구도시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 모로코 탕헤르 항구 하선
어둠 속에서 아프리카 모로코 땅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비가 와서 바닥이 축축하다. 모로코는 스페인보다 1시간, 한국보다는 9시간이 늦다. 타리파에서 7시가 모로코 시각으로는 6시다. 입국수속을 밟고 여객터미널을 나왔다. 아프리카 모로코의 교포 가이드 김이랑을 만나, 버스가 사람보다 늦게 나오는 관계로 한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여기는 북서 아프리카 나라 모로코다. 이슬람교인의 전통 옷인 히잡을 두른 여인들이 많다. 남자는 꼴두기 모양의 질라바 옷을 입은 사람도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항구도시다.
모로코 사람들은 스페인에 와서 1년을 벌면 10년을 살기 때문에 아이들은 버스의 타이어에 끼어서 목숨 건 탈출을 시도한다. 비참한 현실이다. 한국의 7배, 사하라 분쟁지역까지 합하면 9배의 나라다. 이동거리가 많다. 아랍국가로 아랍어를 쓴다. 이곳은 방언을 사용한다. 프랑스 식민지여서 프랑스어도 쓰고, 스페인어도 쓴다. 호텔로 이동하며 모로코에 대하여 들었다. 내일은 모닝콜을 5시 30분, 그리고 6시까지는 짐을 싸서 방문 앞에 내놓으란다. 포터 가이드가 버스로 이동해준단다.
탕헤르 호텔레 도착하여 전통식 고기에 올리브유를 뿌려서 먹는 '따진'을 먹었다. 한국의 뚝배기 개념인데, 고기를 많이 담아다 주었다. 따진은 그릇 이름이다. 우리의 메뉴는 비프따진이었다. 쇠고기의 육질이 단단한데, 참 맛있었다. 지금까지 먹은 쇠고기 식사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모로코의 음식문화를 칭찬했다. 치킨따진도 있다. 호텔 직원들도 상당히 친절했다. 우리 곁을 맴돌며 더 달라고 하는 음식을 즉시 갖다 주었다. 모든 것이 열악하다고 들었던 모로코, 오늘 본 바로는 아니다. 인간적인 아주 정겨운 나라다.
2010년 3월 6일 토요일 모로코 탕헤르, 페스, 라바트, 카사블랑카
* 모로코 탕헤르 호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창밖은 아직 어둡다. 호텔 룸에서 어젯밤 골목에 보이던 슈퍼도 문이 닫혀있다. 로비의 나무 인테리어가 아프리카의 향기를 발한다. 육중한 분위기다. 비가 줄줄 내린다. 지난밤 심히 내렸다는데, 나는 곤한 잠으로 몰랐다. 아프리카 모로코, 호텔문을 함부로 나가지 말라던 선여행자의 말이 떠올라 현관문 앞까지만 나가서 둘러보았다. 시가지의 주택들은 다부져 보인다. 아침식사는 호텔식이라서 음식은 빵과 과일로 무리없이 잘 먹었다. 오늘은 페스, 라바트, 카사블랑카까지 간다. 페스에서 좁은 골목을 많이 걷는데 당나귀 똥을 밟을 수 있다고 끌리지 않는 바지를 입으라하여 가볍고, 기장이 짧은 바지를 입었다. 기대되는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이다.
* 모로코 탕헤르 들녘
비가 계속 온다. 모로코의 애절한 빗방울들이 차창을 때린다. 따닥따닥, 따닥따닥, 빗소리가 크다. 강이 아닌 곳이 잠겨 있다. 탕헤르는 낮은 지대라서 더욱 그렇다. 오늘이 모로코 최악의 날이란다. 우리는 어제 배 타고 잘 들어왔단다. 오늘은 폭풍우친다는 일기예보란다. 포르투칼도, 스페인도, 모로코도 한국방송은 커녕, CNN 방송도 안나와 우리는 전혀 세상 소식을 모른다. 영어로 말을 해도 유럽식 영어라서 아메리칸 영어를 배운 우리는 못 알아 듣는다. TV를 켜도 잘 이해를 못 한다. 온도는 15도~24도라는데 조금 쌀쌀하다. 오늘이 절반 여행이다. 스페인 간다는 희망을 갖고 여행하란다. 오늘은 최장거리 투어다. 페스를 거쳐, 라바트를 거쳐, 카사블랑카까지 차를 타야 한다. 차 타는 시간만 10~13시간이다. 탕헤르에서 페스까지는 6시간 걸린다. 모로코는 한국의 7배 국가다. 서부 사하라까지 포함하면 9배 국가다. 남북 끝과 끝이 2700Km의 길이다.
들녘은 비가 많이 와서 물에 잠긴 곳이 많다. 소박한 농촌 풍경이 정겹다. 한국의 60~70년대의 삶 모습이다. 사람들은 일찍 나와서 일을 하기도 하고, 집 주변 목장에서 양을 돌보기도 한다. 드넓은 땅의 농작물과 얕으막한 집들, 긴 옷을 입은 사람들, 도로변에서도 한가로이 풀을 뜯는 동물들, 모두 이색풍경이다.
* 모로코 탕헤르 휴게소
싱그러운 아프리카 땅을 밟는다는 기쁨에 이곳 저곳을 걸어다니며 가슴에 정경을 담았다. 야자수가 아시아의 외인을 반긴다. 들에는 무성한 초지 위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끝없는 광활한 땅이다. 모로코는 인구가 3300만명이다. 수도는 라바트다. 1달라는 이곳 화폐단위로 8디람이다. 가장 큰 도시는 카사블랑카다. 오늘 점심은 페스에서 전통식 '꾸수꾸수'를 먹는다. 양고기와 생강가루, 견과류, 밀알갱이를 섞어 만든 찜이란다. 모로코는 아랍국이고, 프랑스어를 공용으로 사용한다. 이베리아 반도와 맞닿는 북부는 스페인어도 쓴다. 내 조국은 아직 봄이 일어서지 않은 건조한 들녘인데 파란 풍경들이 평화롭다.
* 모로코 탕헤르에서 페스 가는 고속도로
아프리카의 도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고속도로가 쭉 뻗어 있다. 얼마 전에 개통된 유일한 고속도로다. 울창한 나무들이 스쳐 지나가고, 들녘은 푸르고 참으로 아름다운 여정길이다. 모로코의 원주민은 베르베르 민족이다. 7~8세기 이슬람포교 활동으로 중동 아랍민족이 들어왔다. 그래서 베르베르인과 아랍인, 베두인까지 섞여 있다. 혼합인종이 많다. 순수 베르베르인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한다. 1920년대 식민지시절의 오래된 집들이 많다. 와곽은 1950년대에 지었다. 모로코는 교통사고 최다국이다. 반드시 가이드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1년 사계절 있지만 현재는 우기다. 올해는 특히 비가 많이 왔다. 탕헤르에서 카사블랑카까지의 철도가 끊겼다. 택시는 두 종류인데 아이보리 색의 그랑택시 7인승과 쁘랑택시 소형이 있다. 끝없이 열린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린다.
* 모로코 페스 가는 도로변 코르크 나무숲
포르투칼에서 많이 보았던 코르크 나무를 모로코에서 본다. 이제 코르크 나무를 완전히 알게 되었다. 울창한 고속도로변에 코르크 나무 군락이 광범위하게 있다. 모로코에는 가죽공장이 많다. 특히 페스에 가면 유명한 가죽 염색공장을 볼 수 있다.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3월은 한국의 여름처럼 녹음이 짙푸르다.
* 모로코 페스 가는 길의 농촌 풍경
아무리 보아도 넓은 땅이다. 간간이 보이는 집은 한국의 60년대 수준이다. 허름하고 낡은 벽과 지붕이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에 감사한다. 폐허 속에서 일어선 내 조국이 아닌가. 우리 국민 모두는 산업 역군이었다. 모로코의 농촌에도 빛이 보인다. 부지런히 일구는 농작물과 목장이 풍요롭다.
감자를 심은 밭도 있다. 비닐하우스도 있다. 하얀 새들도 있다. 비닐하우스 큰 것은 바나나 재배하는 것이고, 작은 것은 감자 재배하는 것이다. 지중해성 기후라서 올리브 나무도 많다. 로마 식민지 때 올리브유와 밀이 필요해서 경작이 시작되었다. 올리브 숲 농가가 비경이다. 해, 구름, 비가 반복된다. 먹구름이 우람할 때도 있다. 농촌마을에 말이나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보인다. 마차도 보인다. 선인장과 올리브 나무가 밭의 경계선 울타리로 사용되고 있다, 선인장 열매는 먹는다. 들녘 풍경이 스페인과 유사하다.
농가주택은 중산층이 살고, 천막은 빈민층이 산다. 교육은 초등은 의무교육인데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의 카사블랑카에서만 가능하다. 부유층은 캐나다, 프랑스로 유학 보낸다. 모하메드 대학에 진학하기도 한다. 주식은 밀가루 빵, 홉스다. 밀가루, 물 , 소금만 넣고 천연으로 구운 빵이다. 한국의 '너 밥 먹어야지'가 모로코에서는 '너 빵 먹어야지'다. 이곳의 빵은 한국의 밥과 같은 개념이다. 초지의 양떼들, 목부, 멀리 산이 보인다. 모로코에 대하여 배우며 농촌 풍경을 보며 보람된 여행이다.
* 모로코 페스 가는 길 들녘의 천막집
들녘에 천막집이 있다 사람이 사는 집이다. 가난한 현장을 본다. 초지나 밭 가운데 천막을 두르고 산다. 사람들은 소를 몰고 다니거나 밭일을 한다. 쇠고기 1Kg에 7유로, 비싼 편이다. 유목민족이어서 고기도 먹는다. 향신료를 다량 사용한다. GNP는 3천불, 가난한 나라다. 서민은 고기 먹기 힘든다. 모로코의 주요산업은 관광업, 광업, 어업, 농업, 상업이다. 원양어선 어업에 종사하는 한국인이 300명만 남고 어려워서 다 돌아갔다. LG, 삼성 주재원, 대사관 가족, 선교사, 원단장사 등 한국인이 약간 있다. 한국인이 적어서 한인식당이 한군데 밖에 없다. 드라마 '대장금'을 번역하여 방영한 후 한국음식을 조금 이해하나 잘 모른다. 생활수준이 낮아서 외식을 못한다.
인구는 부자와 가난한 자로 양분화되어 빈부차가 크다. 부자는 3억짜리 집에서 살고, 벤츠차 2~3대 소유하고 산다. 가난한 자는 한달에 소득이 100유로, 전기와 수도 없이 산다. 농촌일수록 학교가 멀어서 차가 없으니 도보나 나귀 타고 학교에 가야하는데 거의 못 간다. 특히 여자는 집 밖에 못나가서 문맹이다. 작당한 나이 18세쯤 되면 가정부 노릇한다. 1개월에 100유로 소득이다. 이 가난한 나라의 고리를 어찌 끊을까. 무심히 보면 낭만일 저 막사가 생의 아픈 현실이기에 어서 툭툭 털고 일어서길 빈다.
* 모로코 페스 휴게소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했다. 버스의 열을 식히려면 30분은 쉬어야 한다. 11시 20분에 출발한다. 여기서 50분만 가면 페스다. 페스에는 12시경 도착할 것이다. 참 많이도 달려왔다. 아름다운 휴게소다. 의자도 멋있게 정리해 놓았고, 색상도 곱다. 쉬는 동안 물과 오렌지를 먹었다. 올리브 나무와 알로에 나무가 인상적이다. 그 귀한 알로에 나무가 들녘에 자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온통 푸른 들녘이 진정 아프리카다. 모든 식물이 크고 우람하다. 모로코의 멋진 휴게소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모로코 페스 들녘 목장
푸른 초지가 많다. 끝없는 초지 지평선이다. 소, 말, 양, 목장이 매우 많다. 그래서 가죽제품이 많은 것이다. 페스는 양가죽 제품이 많다. 페스에서 가공된다. 페스산 가죽의 질이 제일 좋다. 한국의 한복처럼 페스산의 가죽옷을 입는다. 아득한 초지의 목장이다.도로변에 동물이 많아 뛰어들 때는 급제동을 하게 되고 상당히 위험하다. 벨트를 꼭 매야 한다. 끝없는 평원에 초지와 목동 그리고 양떼들이 고운 수를 놓는다. 수려한 작품이다. 올리브 나무와 알로에로 경계선 울타리를 만들은 곳도 있다. 도로변인데도 차소리에 길들여진 것일까. 동물도 목동도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그들만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정적에 행복이 깃들어 있다. 다른 세상을 모르는 천진한 사람들, 그러나 어깨에 행복을 지고 산다면 축복의 삶이다.
* 모로코 페스 톨게이트 자가용
모로코 페스로 진입하는 톨게이트에서 통과하기 위해 멈춘 자가용을 보았다. 엄마인듯한 여자가 운전하고 뒤에는 어린 남자 아이가 앉아 있다. 자가용은 한국의 대우 마티즈 같은 소형인데 모로코에서는 부자만이 탈 수 있다는 차다. 내 조국에서라면 흔히 보는 풍경인데 저 아이가 참 행복한 삶을 산다고 생각되었다.아이가 낯선 이방인이 탄 버스를 올려다 본다. 이곳은 도로 표지판이 영어와 아랍어로 가재한다. 이 나라는 이름이 '모하메드'가 많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동일한 글이 쓰여진 사무실이 있다. 영어로 표기되어서 읽을 수도 있다.
* 모로코 페스 왕궁
모로코 최초의 왕조인 페스 왕궁을 보았다. 유태인 거리, 무슬림 거리를 지나서 왕궁에 갔다. 왕궁은 외부만 보는데 무늬가 모두 이슬람 전통방식이다. 구멍 뚫린 성벽이다. 지푸라기를 섞어서 흙을 버무려 성벽을 만들 때 일부러 통풍이 잘 되도록, 또 그곳을 밟고 올라길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이다. 왕궁은 외부만 보았다. 모로코의 모자이크 양식의 문양이다. 참으로 곱다. 성문 양쪽에는 모로코의 국기를 걸어두고 성문은 잠겨 있다. 모로코 국기는 빨간색 바탕에 별 하나가 있다.
모로코는 왕권제 있다. 왕이 있고, 수상, 상하 양원 내각제다. 현재 왕은 모하메드6세다. 왕의 아버지는 핫산이다. 공공 장소에서는 반드시 왕의 사진을 걸어야 한다. 모하메드6세왕은 문화사업에 주력한다. 각종 리조트, 아파트를 계속 외곽에 건립 중이다. 기반 산업을 프랑스 식민지 때 건설했다.
핫산은 1952년부터 시작된 독재자다. 왕은 핫산 1세-모하메드1세-핫산2세-모하메드2세-핫산3세-모하메드3세......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름이 반복된다. 현재는 모하메드6세가 왕이다. 다음 왕은 핫산6세다. 다음 왕은 반드시 조부 이름을 써야 한다.
* 모로코 페스 도심 풍경
페스 도시에 들어왔다. 중앙분리대가 야자나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도로구조다. 이곳은 지금 초봄이다. 시람들이 아직 춥다고 가죽옷을 입고 다닌다. 학교 시간인가보다. 도로변 중고생쯤 되어 보이는 청소년 학생들이 많다. 기아 프라이드, 현대 자동차가 이곳에도 있다. 톨게이트에서도 보았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우리에게 몰려와 신기한 눈으로 영어로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도심 식당에서 전통식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 무렵 비가 많이 온다. 식당의 천정에 따닥따닥 세차게 내린다. 밖에 나가보려고 하니 문입구에서 두 남자가 손에 물건을 들고 사라고 한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방법이다. 식사 후 가죽 공장에 간다.
결혼 할 때 여자는 옷7벌, 남자는 옷2벌을 갈아 입고 예식을 치른다. 여자는 금반지 2개(큐빅,그냥), 남자는 은반지를 주고 받는다. 여자는 결혼식에서만 공주 대접을 받는다. 전에는 일부다처제가 가능했으나 2004년 개정법으로 지금은 불허다. 예외는 있다. 첫째 부인이 생산 못할 때, 그 부인한테 허락 받으면 새 부인을 맞을 수 있다. 모하메드왕은 부인이 10명이다. 한 남자에게 4명의 부인까지 허락했는데 그때는 똑 같은 사랑을 해주고, 똑같은 물건을 사주어야 했다. 코란에 명시되어 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공평한 사랑을 해줘야 한다. 다처제 허용 이유는 여자가 생활능력이 없어서였다.
지금은 자녀교육이 힘들어서 1명의 부인만 얻는다. 대학은 다 국립이지만 부자는 프랑스나 캐나다로 유학 보낸다. 이곳 여자들은 뚱뚱하다. 출산하면 우대하여 잘 먹어서 그렇다. 닭고기, 기름빵(우리가 아침에 먹은 사각빵) 을 주로 먹는다. 모로코 남자는 여자의 엉덩이를 많이 본다. 엉덩이이가 큰 여자를 좋아한다. 그것은 항상 긴 옷을 입고 있어서 엉덩이의 움직임 밖에 볼 수 없어서다. 다른 나라에서 남자들이 여자의 긱선미에 관심을 갖는 그런 격이다. 페스의 보수적 가정은 여자들이 검은 옷을 씌워 집에서만 살게 한다. 더러는 서양식 의상을 입는 여인도 있다. 여기는 페스의 번화가다. 넓은 로터리 거리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다.
* 모로코 페스 금속공예 공장
중식 후, 메디나 신,구 시가지 구경하며 미로를 따라 염색공장에 갔다가 라바트로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미로 안에 있는 왕의 무덤과 회교성당도 본다. '하만'이라는 모로코 현지 가이드를 따라 갔다. 비가 와서 우산을 들고 다니느라 좀 질척거린다. 나는 우비를 입었다. 먼저 금속공예 가게에 들렀다. 가게의 문 입구 위 벽면에 현재 왕과 그 아버지 사진을 걸어 두었다. 현재 왕은 모하메드6세다. 모로코에서는 저렇게 공공장소에는 반드시 왕의 시진을 걸어 두어야 한다. 금속공예가 발달된 나라. 금속판에 눌러 문양을 새기고 색상을 입힌 제품들이 황홀하게 아름답다. 값은 비싸다. 견학만 하고 나왔다.
* 모로코 페스 미로도시 메디나
페스는 1200년 전 건설되었고, 아랍권 나라 중 가장 오래된 도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페스의 도시 메디나는 두 군데로 분리되는데, 오래된 페스와 새로운 페스다. 오래된 구시가지를 뜻하는 메디나는 1200년 전에 성벽을 세우고 거주지로 구성된 도시로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새로운 페스 도시는 1300년 이후 다시 수도를 재건한 도시다. 하지만 이곳도 고전 도시다.
페스 메디나는 허술하고 좁은 길이 많다. 1~2m의 좁은 도로에는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당나귀로 물건을 운반한다. 페스에는 미로 전문 가이드가 있다. 그 사람을 잘 따라 다녀야 한다. 당나귀 똥과 오물을 조심해야 한다. 바닥에 끌리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한다. 미로의 길이 많은데 조금 큰 골목이 300~400개, 소로의 좁은 골목이 1000개가 넘는다. 정말 잘 따라다니지 않으면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미아가 되면 언어가 아랍권이어서 언어소통이 안되어 위험하다. 벽이 높은 도시로 바람을 잘 막아준다.
메디나는 시장을 형성했다. 원래는 도시인데 요즈음은 옷, 때밀이 타올, 향신료, 생강가루, 오렌지(지금은 끝물) 등을 파는 장터다. 모로코의 대중교통은 버스, 택시, 자가용이다. 택시는 요금이 비싸다. 버스 사정이 열악하다. 봉급은 800디락, 한화 40만원 정도다. 그래서 도시락을 지참하고 출근한다. 부잣집은 엄마차, 아들차가 있다. 그래서 교통체증이다. 그래서 지금 전철공사 중이다. 이태리 전철처럼 트램을 구상 중이다. 공사비가 많아서 6년 뒤에나 개통될 예정이다. 돌고 돌아도 끝나지 않는 미로는 대단했다. 두팔을 벌리면 닿는 협소한 골목에서부터, 구불거리는 골목길이 계속 이어진다. 상가의 지붕이나 창문 장식을 옛정취 그대로 둔 곳도 있어 역사를 배우며 걷는다. 비가 와서 우의를 비고, 우산을 받고 페스의 구시가지를 현지 가이드를 따라 걸었다.
* 모로코 페스 왕의 무덤
메디나 구시가지 미로에서 왕의 무덤이 있는 건물을 만났다. 저 안에 실제 무덤이 있다.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 현재 왕의 아버지인 핫산 왕 때까지는 독재였다. 닫힌 사회로 가택연금과 숙청도 했다. 그런 일 없애고 뿌리 뽑자고 숙청 풀어주고 망명자들을 회복시켰다. 외화유치 노력으로 영화사업을 육성한다. 키가 큰 모로코 현지 가이드는 영화배우였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왕궁에서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상당히 키가 컸다. 왕의 무덤을 도심에서, 그것도 건물 속에 있는 현장을 본 것은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모로코의 면면히 이어오는 역사의 탄탄한 끈이라 여겨졌다.
* 모로코 페스 회교 성당
페스의 메디나 미로에 2만명 수용하는 사원이다. 당시의 이슬람의 센 영향력을 본다. 비무슬림인은 사원 안에 못 들어온다. 문이 열려 있으면 볼 수 있으나, 닫혀 있으면 우리도 못 본다고 알고 왔는데 역시 문은 닫혀 있었다. 정오의 기도시간이 끝난 것이다. 아쉽지만 이슬람 문양의 아름다운 아치형 사원의 문만 보았다.
이슬람의 5주가 있다. 5가지를 지켜야 한다. 첫째, 신앙고백이다. 알라신만 있다고 기도하며 고백한다. 둘째, 하루 5번 기도해야 한다. 동틀 때, 정오, 오후 3시, 해질녘 6시, 잠자기 전, 이렇게 5번 기도한다. 셋째, 빈민구제로 조세제도 자카트다. 25%를 세금으로 낸다. 넷째, 라마단 단식이다. 이슬람 특유의 음력을 사용하는데 1년이 359일이다. 9번째 달에 하는 단식이다. 이때 모하멧이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다. 라마단은 동틀녘(흰실과 검은 실이 구분될 때)에서 해질녘까지 금식이다. 침도 뱉으면 안된다. 금연이다. 일몰 후 식사가 가능하다는 방송이 나온다. 97%가 무슬림이다. 2~3%만 카톨릭, 기타 종교다. 임산부, 노약자는 금식에서 제외다. 여행자도 제외하므로 그 기간에 여행하는 사람도 많다. 싸움, 교통사고가 많은 나라다. 오히려 살이 더 찐다. 낮에 못 먹은 것르로 저녁에 더 먹어서다. 다섯번째, 성지순례다. 이슬람역으로 12번째 달에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성지 순례를 떠난다. 일생에 한번은 꼭 가야 한다. 40일간 손톱, 발톱, 머리, 수염 안 깎고 고행한다. 천연모습으로 신전을 7번 돈다. 우물에 돈 던지며 재물을 바치고 온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교리는 같다.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의 두 자손 이스마엘(첩소생)과 이삭(본처소생)을 함께 믿는다. 40일간의 고행은 이스마엘을 살리려고 했던 그의 어머니(첩)하갈이 노력한데서 유래했다. 녹색이 이슬람 색깔로 중동사막에서는 생명을 상징한다. 종교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 모로코 페스 가죽염색 작업장
페스는 모로코의 도시 중 세번째 큰 도시다. 카사블랑카가 제일 크고 다음은 라바트다. 페스의 인구는 100만 명이다. 1200전 년의 도시로 이슬람 왕조의 역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런 도시에 가죽염색 공장이 있어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페스의 구시가지 미로를 수없이 돌고 돌아 찾아왔다. 앞에서 페스 미로 전문 현지 가이드, 아주 키가 작은 할아버지를 따라 열심히 따라 갔는데 도중에 일행 8명이 떨어져 길을 잃어서 고생했다. 나는 그래도 앞부분에서 잘 따라가서 문제가 없었는데 낙오되었던 일행은 어떤 모로코의 아이가 간신히 가죽염색공장을 찾아주었단다. 한국에서 따라간 가이드도 페스 메디나의 미로에서 길을 잃으면 대책이 없다.
한동안 걸어서 갔다. 골목의 짐승 분유물 악취도 역겨웠고, 수많은 상점들의 호객행위도 체험했고, 그리고 높은 2층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 가죽염색 작업장을 볼 수 있었다. 주변은 온통 가죽제품을 파는 상가들이다. 상가의 난간에서 아래로 염색장을 내려다 본다. 염색장은 화려한 색상을 풀어놓은 그릇들이 많다. 처음에 가죽을 담그는 비둘기 뽀얀 똥물도 있었다. 모로코의 광활한 들녘 초지에서 자라는 양, 소, 말 등의 동물이 많아서 발달한 산업이다. 맞은 편으로 페스의 허름한 가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지붕마다 TV위성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맑은 하늘 아래 모두가 정겨운 풍경이다.
* 모로코 페스 가죽을 지고 가는 사람
가죽 원단을 어깨에 메고 가는 사람을 보았다. 무거운 가죽을 메고, 또 곁에서 부축하고 가는 모습이 안타까운데 저것은 이곳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이다. 미로여서 차가 들어오지 못해 저렇게 물건을 운반한다. 상가마다 가죽제품이 많다. 신발, 가방, 옷 등 다양한 물건들이 즐비한 상가에 진열해 놓고 판다. 견과류 생산지라서 그런 상품도 많다. 완전히 상가 거리다. 그 옛날의 건물 그대로 모습으로 역사가 배인 메디나의시장이다.
* 모로코 페스 시가지
페스를 떠나 라바트로 간다. 조금은 어수선하고, 불편하고, 지저분한 여정이었지만 이 시대에는 볼 수 없는 연민의 도시를 떠난다. 참 많이도 걸었다. 차량진입이 불가능한 좁은 골목이어서 페스의 메디나를 걸어다녔다. 모로코에서 역사가 잘 보존된 도시기에 그 만큼 많은 것을 배운 소중한 체험이다. 여기도 부동산 폭등이 일고 있다. 외곽으로 가면 잘 지어놓은 주택단지도 있다. 버스 안에서 뒤를 돌아보니 모로코형 붉은 소형 택시가 따라 온다. 페스의 허름한 아파트가 외객을 배웅한다.
* 모로코 페스 회교 공동묘지
무덤은 회교적으로 한군데를 향해 바라보도록 한다. 죽어서도 그들의 신을 향해 있다. 이런 풍경은 스페인에서 보았다. 산비탈에 무덤이 질서있게 나란히 놓여 있다. 그런데 정말 모두 한곳을 향하고 있다. 무덤의 문화도 신기하고, 그들의 종교에 사후에도 충실한 모습이 신기하다.
* 모로코 페스 왕궁 성벽
성벽이 뾰족하다. 페스를 둘러싼 유적이다. 페스는 정신적인 도시로서 종교행사가 많다. 한국의 안동 같은 도시다. 페스는 중산층의 사람이 사는 도시다. 유서 깊은 가문, 자수를 잘 놓는 여인 등 덕망 높은 사람들이 많다. 모로코에서는 페스 출신의 '벤' 성을 갖은 사람이 최고 신분이다. 페스에서 라바트로 가는 중에 가까이서 성벽을 보았다. 여기서 라바트까지는 3시간시간 소요된다. 라바트에서 모하메드5세 왕릉을 볼 것이다. 이슬람 왕조의 뾰족한 성벽을 따라 버스는 달리고 있다.
* 모로코 페스에서 라바트 가는 길
들녘에 밭의 경계선으로 선인장 울타리를 한 곳이 많다. 올리브 나무 울타리 들녘이 보인다.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 해가 나왔다가 비, 구름, 해, 비, 우박을 반복한다. 하루에 사계절을 보는 나라다. 잠시 휴게소에서 우박을 맞으며 화장실에 갔다. 초지 위의 빨간 벽돌 주택마을이 아름답다. 나무가 있는 곳은 나무가 아주 크고, 초지가 있는 곳은 평화로운 목장, 또는 기름진 농토다. 전원의 향수가 물씬 배인 땅이다.
* 모로코 라바트 가는 길 무지개
비가 억수로 로더니, 유리창에 물결치며 한치 앞도 분간 못하게 하더니 비가 그치고 개인 하늘에 고운 무지개가 떴다. 이것이 모로코의 전형적인 날씨다. 무지개가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다. 하늘에 반원을 커다랗게 그리며 마음껏 칠보 색상을 분무하고 있다. 들녘에느 밭의 경계선으로 선인장 울타리를 한 곳이 많다. 내 조국에서는 화분용으로나 기르는 화초가 아프리카에서는 들녘 야생 식물이다. 신비롭다.
* 모로코 라바트 들녘의 농부와 당나귀
초지 사이로 당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다. 들녘의 교통수단이다. 목장을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걸까. 아니면 이웃 마을에 다녀오는 걸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좁은 길만 빠끔히 뚫린 드넓은 초지 위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진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저 멀리 집을 향해 가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롭다.
* 모로코 라바트 들녘의 농부와 마차
들녘에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물건을 싣고 운반하는 것일까. 아니면 장을 보러 가는 것일까. 나무와 식물들이 울창한 농촌이다. 모로코의 전통 빵을 먹으며 간다. 아직도 마차를 볼 수 있다니, 40여년 전의 내 조국 시골 풍경이다. 아버지를 따라 장에 갈 때 보았던 유년의 회억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 모로코 라바트 시가지 거리 풍경
라바트는 왕이 사는 도시다. 라바트 인구는 120만 명이다. 초대의 왕에서 현대의 왕까지 수도로 지정한 도시다. 무역항 역할을 했다. 로마 식민지 때부터 포도주 등을 수출했다. 수도로서 큰 역할은 못했으나 무역 도시로 기여했다. 도시에 큰 강이 있는데 대서양과 만난다. 그 강이 도시를 이등분한다. 나무도 많고, 시가지와 대형 마트, 자동차들, 도로 등 잘 가꾸어진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다. 현대적 향기가 감돈다.
* 모로코 라바트 모하메드5세 왕릉
라바트에 도착하여 맨처음 간 곳이다. 길 이름에도 '모하메드'가 있다. 모하메드5세가 1962년에 사망했는데 우리는 그 무덤에 간다. 아들이 건설했다. 현재 왕의 할아버지다. 현재 왕의 아버지는 핫산2세다. 왕릉 내부와 외부를 모두 보았다. 천정과 벽면의 예술장식이 대단히 아름답다. 내부의 사진촬영도 가능하여 무덤과 벽면과 지키는 병사와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실내 정경이 엄숙하고 웅장하다. 저 아래에 놓인 왕의 무덤관을 사방으로 돌면서 보았다.
외경도 왕의 무덤이라기보다 수려한 예술 건축물처럼 곱다. 이슬람 상징의 초록색 지붕이 인상적이다. 1912년부터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로코를 1956년에 독립시킨, 독립의 아버지다.왕위 계승이 장자 상속인데 모하메드5세는 셋째 아들인데 왕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고의로 무능할 것 같은 셋째 아들 모하메드5세를 왕으로 세웠다. 그런데 그 모하메드5세 왕이 독립운동하여 모로코를 해방시켰다. 그 왕릉 앞 광장에는 핫산의 탑이 높이 서 있다.
* 모로코 라바트 왕릉에서 바라본 시가지
페스는 외곽은 신도시, 안쪽은 구도시인데 라바트는 수도라서 잘 정리된 도시다. 프랑스 식민지 때부터 현대까지 수도다. 카사블랑카는 정신 없는 도시다. 왕이 있는 라바트와는 전혀 다르다. 라바트에서만 보는 풍경은 공원에서 운동하는 시민들 모습이다. 현대와 과거의 풍경이 함께 있는 도시가 라바트다. 라바트를 양분하는 강이 멀리 보인다. 해적이 많다. 1700년대 중반부터 해적을 적출했다. 1956년에 모로코가 독립했다. 바라만 보아도 아름답다. 나무와 도시의 조화가 환상이다. 넓은 들녘도 평화롭다.
* 모로코 라바트 하산 탑
하산 탑은 66m높이인데 미완의 탑이다. 쌓다 멈춘 탑이 오롯하다. 뚜르 하산 왕이 사원을 짓다가 죽어서 그냥 멈춘 것이다. 하산 왕이 성벽을 쌓고 백성을 이주시키고 독립하려 했는데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기둥이 서 있는 곳도 모스크 부지다. 수많은 기둥들이 열을 지어 올곧게 서서 하산 타워를 받들고 있다. 하산 탑 맞은 편에는 모하메드5세 왕를이 있다. 같은 광장 안에 두 명소를 동시에 본다. 우리는 축복받은 여행단이다. 우리가 다 구경한 후 버스에 탔을 때 비가 많이 왔다. 빗속에서 라바트를 떠나왔다.
* 모로코 라바트 하산 탑 성벽
모하메드5세 왕릉과 하산 탑이 있는 광장의 울타리차럼 도로변에 성벽이 높이 있다. 하산 탑이 마완의 탑인 것 처럼 이 성벽도 미완이다. 어설픈 모습이다. 성벽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 이유는 진흙과 석회로 벽들을 만들어 쌓았는데 통풍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사람이 올라가도록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성벽 위에는 비둘기들이 많이 앉았다. 페스에서 가죽염색 작업장에서 처음에는 가죽을 비둘기 똥물에 담갔다가 염색한다는데 저 비둘기들이 모로코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모로코 라바트에서 카사블랑카 가는 길
라바트에서 카사블랑카까지는 1시간 30분 소요된다. 두 도시는 모두 해변에 있다. 카사블랑카는 라바트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간다. 라바트를 이등분하는 강이 들녘을 가르며 흐르고 있다. 라바트에서 왕릉과 하산 탑을 볼 때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았는데, 출발하지마자 비가 주룩주룩 세차게 온다. 유리창문에 빗물로이 무섭도록 세차게 흘러내린다. 이런 날씨는 모로코뿐만 아니라 포르투칼과 스페인에서도 수없이 보아온 날씨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가는 길 일몰 비경
모로코의 날씨는 변화가 심하다. 비가 오더니 그치고 하늘이 개이고 구름이 한가득이다. 해는 석양을 구름 사이로 내뿜는다. 검은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이 분무한다. 잠들지 않는 푸른 하늘도 웅장하다. 아프리카의 일몰이 장관이다. 버스가 빠른 속도로 가서 카메라에 담기가 힘들었지만 잘 포착하여 사진으로 담아왔다. 모로코는 황홀한 밤으로 접어들고 있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버스는 모로코의 남쪽 도시 카사블랑카로 달리고 있다. 카사블랑카 영화를보면서 간다. 오늘의 저 장엄한 하늘은, 아프리카의 비경으로 오래도록 내 가슴에 저장 되리라.
* 모로코 카사블랑카 도착
모로코 카사블랑카에는 캄캄한 밤에 도착했다. 사위가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아프리카 서부 도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여행지 중 가장 온도가 높은 지역이다. 밤인데도 기온이 포근하다. 카사블랑카는 인구가 500만 명으로 모로코 최대의 도시다. 호텔에 바로 투숙했다. 내일은 모인콜 5시, 호텔조식5시 30분, 출발 6시 30분이다.
2010년 3월 7일 일요일 모로코 카사블랑카, 탕헤르, 스페인 타리파, 미하스, 말라가
* 모로코 카사블랑카 호텔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젯밤 늦게 도착하여 잘 보지 못했던 호텔을 둘러보았다. 모로코는 치안이 잘 안되어 있어 호텔 밖에 나가면 안된다는 말을 선여행자로부터 들어왔기에 조심스레 호텔 입구에서만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곳은 경제도시로서 골목이 잘 정돈되어 있고 건물들이 다부져 보인다. 차령도 많이 주차해 있다.
호텔의 내부는 옛날의 풍물을 전시해두었다. 금빛 큰 주전자와 대형그릇이 로비에 있다. 식당에서는 한사람이 분주한 손길로 우리의 아침 식탁을 차리고 있다. 영어로 소통되어 좋았다. 고맙다는 아침 인사를 하고 카사블랑카의 아침식사를 했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모하메드5세 광장
오늘은 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로 가서 페리호 타고 스페인으로 건너가야 하고, 또한 미하스까지 올라가야 한다. 배 승선 예약시간 때문에 일정이 바쁜 날이다. 그래서 새벽 어스름부터 관광을 시작했다. 모하메드5세 광장은 1925년 건설되었다. 모하메드는 모로코 독립의 아버지여서, 라바트에 그의 무덤 건물이 크게 있더니, 이곳에는 그의 광장까지 잘 가꾸어 놓았다. 그가 생전에 얼마나 모로코의 큰 존재였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초대 총독의 동상도 있다. 주변에 유엔광장 등 주요 건물이 많다.
카사블랑카는 인구 500만 명의 모로코에서 가장 큰 도시로 경제중심지다. 카사블랑카의 대부분 건물은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것들이다. 이곳이 가장 붐비는 장소다. 바로 앞의 도로가 모하메드5세 거리인데 가장 붐비는 곳이다. 그 이유는 핫산2세(모하메드6세의 아버지) 거리가 만나는 곳이어서 그렇다. 아주 웅장한 카사블랑카의 도심에, 모하메드5세는 죽어서도 아름다운 기념광장을 소유하고 있다. 모하메드는 선지자라서 계속 나온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유엔광장
지금의 유엔과는 다르다. 1930년에 건설한 국제회의장 건물이다. UN광장은 대단히 웅장하다. 양쪽으로 카다란 건물이 둘이 서 있고 중앙의 광장도 상당히 넓다. 바로 도로 건너편에는 모하메드5세 광장이 있어 더욱 빛난다. 카사블랑카에서 가장 번화가이며 주요 건물이 많은 곳이다. 비둘기가 새벽부터 광장을 메우며 모로코 평화의 아침을 열고 있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하산2세 모스크
카사블랑카 항구도시의 바닷가에 비경으로 솟아 있다. 10만 명을 수용하는 모스크다. 세계에서 세번째 큰 모스크다. 하산2세 타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210m의 거대한 첨탑이다. 그곳은 이슬람 교인이 올라가서 기도의 부름을 외치는 곳이다. 15번 외친다. 모스크 탑이 높은 것은 바로 이런 이슬람 사원의 전통적인 특징 때문이다. 모든 문이 아치형이고 건물 또한 아치형으로 둘러서 있다. 해안의 타워와 모스크, 광장의 비둘기 등이 고운 정경이다. 하산2세는 현재 왕의 아버지인데 독재자였다.
주변주택단지에 TV 위성안테나를 설치한 가정집이 300~400가구다. 부유한 환경임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곳은 은퇴자들이 많이 산다. 대서양 해변가의 오롯한 첨탑이 예술적인 시각만으로도 비경이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해변 비경
대서양 끝 해변이다. 곧장 나가면 아메리카 대륙이다. 나는 이 바다를 건너 남아공에서 브라질로 간 적이 있다. 태평양을 보고 살아온 아시아인, 나는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바다 앞에 서 있다. 하산2세의 모스크와 그 첨탑이 비경이고, 카사블랑카의 항구도시 풍경이 비경이다. 이곳 주택단지는 은퇴자들의 부촌이어서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답다.
남편과 나는 문인이다. 나는 김윤자 시인이고, 남편은 유기섭 수필가다. 그래서 동일한 시각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함께 문학의 길에서도 보람을 찾는다. 바라만 보아도 가슴 설레이는 저 풍경을 어떻게 시로 그릴까. 시로, 수필로 세계를 담을 수 있는 우리 부부는 참으로 행복하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현대식 항구도시
스페인, 포르투칼인들이 와서 보고 하얀 집들이 많더라, 하여 '하얀 집'이란 뜻으로 '카사블랑카'란 도시로 이름을 지었다. 정원이 고운 집들이다. 한국의 압구정 거리를 지나간다. 주차료가 비싸 곳이다. 해변 부촌도시다. 7세기까지 베르베르 민족이 살던 곳이다. 이슬함의 반대로 전쟁도 치렀다. 은행 건물이 현대식이다. 유럽식 건물이다. 항구도시의 구도로 복잡한 곳에는 지하를 뚫어 지하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카사블랑카에 성당이 8개다. 모로코인들은 아프리카의 유럽인이라고 자칭한다. 실제로도 잘 산다. 나이지리아인들이 여기 왔다가 유럽으로 들어간다. 모로코는 중산층이 없다. 극부자 아니면 극가난자로 양분되어 있다. 어업으로 통조림을 수출한다. 모로코 약국 상호가 신기하게도 첫글자가 'P'로 시작된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는 'F'로 시작되었었다. 모로코는 유럽형 도시인데 미국식의 상호를 쓰고 있다. 카사블랑카 도심의 높고 웅장한 빌딩들을 보며 이곳이 아프리카냐고, 그 가난한 나라 모로코냐고, 물을말큼 눈과 가슴이 놀라고 있었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하얀 집
카사블랑카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고속도로변 아파트가 흰색이다. 카사블랑카, 하얀 집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푸른 초지 위의 하얀 집이 참으로 곱다. 유럽의 가까운 나라 스페인에서, 포르투칼에서 이곳에 들어올 때 하얀 집들이 많아 그렇게 이름이 탄생된 도시다. 영화 '카사블랑카'도 이곳 도시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버스에서 상영해 주었으나 흑백화면에 화질과 글씨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기회가 되면 그 영화를 볼 것이다. 예쁜 이름의 도시를 이제 떠나가고 있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들녘 선인장 울타리
선인장 무리들이 들녘에 한가득 자라고 있다. 울타리용으로 밭 가장자리에 울을 쳐서 심어 놓았다.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온통 푸른 초지다. 푸른 나무와 푸른 들녘을 보며 탕헤르로 달리고 있다.
모로코의 결혼문화에 대하여 들었다. 보통 2~3주 걸려서 전통예식으로 치른다. 결혼 전 남자가 여자 집에 청혼하러 간다. 쌍방합의가 되면 신부 집에 친척들이 모여 신부를 상석에 앉혀놓고 봉숭아와 같은 헤나라는 식물의 물을 들여준다. 헤나가루와 레몬즙을 섞어 손등과 손바닥 피부에 주입하여 침투시킨다. 미혼은 손만, 기혼은 발까지 그렇게 한다. 신랑은 친척집을 빌려 꾸민다. 신부화장은 하객과 드레스 도우미를 초대하여 저녁 9시에 한다. 결혼비용이 한화로 1천만원~7천만원 정도 든다. 테이블, 웨이터 모두 대여한다. 친척 위주로만 초청한다. 꽹과리와 현악기로 구성된 모로코식 밴드도 초청한다. 비디오도 촬영한다. 신부신랑 입장할 때 알라신이 당신을 축복해주라고 축하의 말로 반긴다. 축의금, 꽃 등을 증정한다. 연회복 입고 음식 먹고 춤춘다. 장신구, 옷 등 빌려서 치장한다. 화려한 결혼식이다. 모로코는 가난하지만 카사블랑카나 라바트는 무유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충분히 그런 결혼식을 치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짙푸른 선인장과 나무 숲이 남국의 풍경으로 싱그럽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방대한 수풀림
카사블랑카에서 라바트 사이의 고속도로변에 거대한 숲이 있다. 13만ha의 방대한 스풀림이다. 올리브 나무, 유칼립투스 나무, 코르크 나무 등 키도 크고 울창하다. 방목사여 가측을 기르기도 하는 곳이다. 나라에서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나무 숲이다. 드넓은 대륙에서 작은 풀들의 초지 평원만 보다가 전혀 다른 밀림지대를 만난다. 이곳 구간만 그렇다. 나무도, 초지도 아프리카는 우람하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휴게소
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시간을 갖었다. 바나나 나무에 바나나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보았다. 줄기 사이로 바나나 꽃이 핀다. 올리브 숲속도 잇고, 한국의 코스모스 비슷한 노랑색과 분홍색의 꽃이 예쁘게 피었다. 울창한 숲의 향기 속에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 가는 길 농촌풍경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다. 차가 없어서 빠른 속도가 가능하다. 고속도로변에 양몰리 가는 두 아이가 있다. 공부를 해야하는 시간에 모로코 아이는 목장에서 양을 몰며 살아가는 현실적인 방법을 배운다. 저것이 이곳에서는 이론보다 더 큰 학습이리라. 비닐하우스 농사도 있고, 대형 농경지에는 스프링쿨러로 물을 주기도 한다. 차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부농이다. 감자농사가 많다. 들에서 농사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비가 오더니 그쳐서 맑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 가는 길 휴게소
페리호 승선 시간 관계로 점심을 도시락으로 준비하여 이곳 휴게소에서 먹었다. 한식이어서 김치도 맛있고 반찬이 우리들 입맛에 맛아 잘 었다. 아름다운 후게소다. 하와이무궁화라 불리는 빨간 무궁화꽃이 함박웃음으로 외인을 반긴다. 우리 일행 외에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길손이 많이 모여서 정오의 휴식을 취고 있다.
* 모로코 카사블랑카 휴게소 언덕 양떼들
휴게소 언덕 위에 양떼들이 있다. 곁에는 두 소년이 목동으로 지키고 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양을 키우고 있다. 그 아이들은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환경에 따라서 살아가는 방법이 다름을 본다. 나무 사이로 소도 보인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 모로코 탕헤르 들녘
아프리카의 기름진 강이 흐르고 강가의 풀밭에는 동물들이 많다. 농토의 토지도 드넓게 전개되고, 민가 주변에는 목장도 많다. 탕헤르에 가까이 온 듯하다. 멀리 바다와 항구도 보인다. 모로코의 북부도시 탕헤르 들녘은 푸른 초지는 아니다. 농토와 크고 작은 나무들이, 또 집들이 골고루 있다. 비가 많이 와서 물에 잠긴 들녘이 많다. 그래도 물가에서 소떼들은 풀을 뜯고 목동은 그 곁을 맴돈다. 지난번에는 탕헤를를 저녁에 도착해서, 다음 날 새벽에 나오느라 어둠에서 잘못 보았는데 오늘은 정오의 한낮이어서 잘 보인다.
* 모로코 탕헤르 항구도시
모로코 항구도시 타리파에 들어왔다. 카사블랑카 그 먼 남부 도시에서 줄기차게 달려왔다. 탕헤르는 지브롤터 해협을 바라보고 있는 모로코 북쪽의 해안도시다. 유럽 스페인 땅에서 아프리카 모로코 땅에 올 때 지브롤터 해협 바다를 건너 첫번째 발을 딛는 아프리카의 관문이다. 도심을 관통하여 항구로 간다. 어느 유럽의 거리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건물도 아름답고, 주변 풍경도 깔끔하다. 누가 이곳을 아프리카라고 할까.
바다가 보이는 도시에서 시민들은 한가로이 쉬기도 하고, 전통의상으로 온 몸을 감싼 채 걸어다니기도 한다. 약국의 상호가 'PHARMCIE'라고 씌여 있다. 그리고 아랍어로도 병행하여 써 있다. 나의 작은 아들은 약사다. 그래서 나는 세계여행할 때마다 약국의 상호 표기를 꼭 담아간다. 유럽은 거의 'F'로 시작하는 상호가 아메리카 식의 'P'로 시작하는 것이 신기하다. 야자수 고운 풍경을 보며 탕헤르 항구로 간다.
* 모로코 탕헤르 여객터미널 주변풍경
2시 페리로 스페인 간다. 여객터미널에서 기다렸다. 여객터미널 주변의 탕헤르 도시는 하얀 빛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곱게 자리잡아 앉아 있다. 아주 커다란 집단의 도시 군락이다. 항구도시가 이렇게 클까. 촉촉한 풍요다. 한자으이 밝은 태양빛이 모로코를 축복하고 있다.
아프리카 모로코는 애완견 개는 기르지 않는다. 더럽다는 생각을 갖고 않는다. 그 대신 고양이를 기른다. 고양이는 대접받는 나라다. 고양이 7마리를 기르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먹이 비용 때문에 못 기른다. 여객터미널에 고양이 한마리가 돌아다닌다. 아무도 쫓아내지 않는다. 더불어 함께 지낸다. 낯선 이방인엑도 따라 다닌다. 우리 부부에게도 와서 고개 들고 바라보고 있다. 만져도, 꼬리를 잡아도 가만히 있다. 해변에는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다. 투명한 터널의 긴 복도가 승객을 태우기 위해 쭉 뻗어 있다.
* 모로코 탕헤르와 스페인 타리파 왕복운항 페리호
모로코 탕헤르에서 스페인 타리파로 가는 배는 벌써 항구에 들어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페리호는 거대한 배다. 아랫층에는 버스, 자가용 등 차량이 들어가고 위층 2,3층에는 계단으로 사람이 들어간다. 맨 위는 갑판이다. 아프리카의 배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웅장하고 시설도 좋다. 솔직히 한국에서 여행 출발하기 전에는 이 배에 대하여 조금 두려운 생각도 갖었었다. 그러나 2일 전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이 배를 타고 들어오면서 기우였다는 확신이 섰다. 지난번에는 밤에 들어와 야경을 보았으나 오늘은 낮에 가니 아프리카와 스페인의 국경을 이루는 지브롤터 해협의 비경을 제대로 보리라.
* 모로코 탕헤르에서 스페인 타리파행 배 승선
배는 한동안 정박하고 있었다. 그 동안 배의 내부에서 외부까지 돌아보았다. 내부는 곳곳에 편리한 시설을 해놓았다. 안내책자가 있는 테이블에서 책도 보았다. 화장실도 상당히 깨끗하다. 아늑한 페리호의 실내 계단을 올라 갑판 위로 갔다. 바다 위로 보이는 탕헤르 항구도시를 보았다. 비스듬한 언덕을 타고 집들이 있고 멀리 산줄기에도 집들이 보인다. 이제 아프리카를 떠난다.
* 모로코 탕헤르 배에서 본 비경
페리호는 아프리카 모로코를 뒤로 하고 스페인 타리파로 출발했다. 서시히 배가 움직이자 탕헤르 도시가 더 선명하게 큰 폭으로 보인다. 안온한 바다에 커다란 함선도 떠 있다. 해안의 건물들이 비경이다. 높은 건물 숲이 아프리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빌딩과 주택들이 외객을 놀라게 한다. 구름도 웅장하다. 기름진 항구 도시다.
* 모로코와 스페인 사이 지브롤터해협 비경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옥빛 바다가 정녕 비경이다. 아프리카 모로코가 점점 멀어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지브롤터 해협이 이어졌다. 광활한 바다를 페리호 홀로 쾌속 질주한다. 이 바다는 14Km 정도로 그리 긴 항로는 아니다. 잠시 보는 망망대해다. 나는 주로 갑판에서 지브롤터해협의 풍경을 보았다. 미국에서 온 청년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아프리카쪽과 스페인쪽을 번갈아 보며 눈에, 가슴에 그 정경을 담았다. 어느새 스페인 영토가 보인다. 산줄기가 차음에 드러나더니 곧 타리파 항구에 다달았다. 날이 맑으면 타리파에서 모로코가 보인다고 하더니, 오늘 같은 쾌청한 날에는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스페인 타리파 항구 도착
아프리카 모로코를 떠난 페리호는 스페인 타리파에 안전하게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웅장한 배에서 나와 타리파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지난번 아프리카로 갈 때도 이곳에서 배를 승선했다. 이곳은 공항 같은 곳이다. 국경을 넘어가는 여객터미널이어서 입출국 수속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입국수속을 밟으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우리의 버스가 모로코에서 승선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함께 와야할 버스가 모로코에서 떠어지고 우리만 승선한 것이었다. 연락해보니 우리의 버스가 문제는 아니고, 모로코항에서 승선하는 차량들의 철저한 검색과정에서 출항시간을 넘겨 뒤에 줄서 있던 죄없는 차량까지 타지 못한 것이다. 우리 일행은 버스가 다음 배로 온다하여 안심했다. 여기는 유럽 스페인 영토 타리파 항구다.
* 스페인 타리파 항구 공원
스페인 타리파에서 2시간의 여유시간이 생겨 주변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아프리카에서 우리와 같이 타야할 배가 낙오되어 다음의 페리호로 오는 관계로 이런 시간이 탄생된 것이다. 다음 여행일정에 차질을 주지만 스페인 항구 공원에서 자유로이 보내는 시간도 좋았다. 공원 의자에 앉아 야자수의 낭만 속에서 오가는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상을 눈여겨 보았다. 가정적인 사회다. 가족단위로 행복한 걸음을 하는 시민들 표정이 밝다. 타리파의 장군 동상도 높이 서 있다. 먼 훗날까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고운 풍경들이다.
* 스페인 타리파 페리호에서 내리는 유로버스
다음 페리호가 올 시간에 맞춰 다시 타리파항으로 갔다. 우리의 배를 함께 타지 못하고 다음 배로 오는 버스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배가 항구에 입항하고 드디어 커다란 버스가 후진으로 나오고 있다. 참으로 반갑고 안심이 되었다. 모로코에서 여객터미널에 1시간 일찍 와서 승선 수속을 밟았는데도 왜 버스가 승선하지 못했을까, 교포 가이드는 이상하다고 했다.
모로코는 차들이 승선할 때 통관을 거치는데 검색대가 고장나서 일일이 사람이 검색하느라 시간 지연되었고, 몇 대만 타고는 그만 뒤의 차들은 배에 오르지 못했던다고 버스 운전기사가 말했다. 이색체험, 이것도 후일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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