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2015년에 일주일 휴가 동안 매일 다른 산에 오른 기록을 보유했다. 2020년 시월 추석 연휴에 나흘 동안 매일 다른 산에 가보자고 말한다. 일주일도 해냈는데 나흘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냐고 설득한다. 그렇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거라고 엎치락뒤치락, 설왕설래를 반복했다."노고단에 야생화가 지금쯤 예쁠 텐데..."단박에 머뭇거리는 내 생각을 무지르는 말이었다. 야생화를 보러 간다는 말은 산행의 어려움들을 감수하고라도 나설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나흘 간의 산행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지리산 노고단, 장성 축령산, 화순 만연산, 집 뒤의 분적산으로 이어지는 휴가 명목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정상에 오르자'는 목표보다는 '가을꽃을 보자'라고 생각하니 산에 오르는 것이 덜 힘들었다. 닷새의 연휴를 기회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삼재 휴게소 주차장은 여러 곳이 있었지만 여유가 없어 도로까지 차들을 주차하고 있었다. 편도 일차의 구불거리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모여드는 사람들의 얼굴이 참 편안해 보였다.
노고단 오르는 길은 제1호 국립공원답게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았다. 30분쯤 걸었더니, 남편은 빠른 산행을 위해 왼쪽 계단으로 오르자고 한다."경사가 심해서 힘들 것 같아요.""또, 미리 겁먹는 말하네.""아까부터 많이 참고 올라왔어요.""금방이야, 저 앞에 할머니들도 잘 가시잖아."색색의 등산복으로 한껏 멋을 낸 할머니들이 보였다. 평소에도 등산을 자주 하시는지 단단해 보였다.다리가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색했다. 산에 오르다가 꽃이 보이면 쉬는 시간이다."이 꽃이 000이래요. 진짜 예쁘다."스마트폰으로 검색한 꽃이름을 알려주고 멋진 프레임을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바쁜 발길을 붙잡아 호들갑을 떨며 쉬는 것이다. 노고단 정상으로 오르는 데크길이 나오면 거의 다 온 것이다. 양쪽으로 야생화 꽃밭이라 눈을 돌리며 감탄하기 바쁘다.그 길에서는 재촉하는 손길도 멈추고 꽃과 눈을 맞추고 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땀을 식혀주는 바람과 흔들거리는 야생화들에 취해 늦장을 부려도 좋다. 마음 같아서는 구절초 옆에 앉아 땀도 식히고 다리 쉼도 하면 좋으련만 야생화 보호구역이라 정해진 인원만 올라가로 내려가는 방식이라 머물러 있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지리산의 야생화들
장성 축령산은 편백숲을 걷는 길이 좋았다. 정상 쪽 등산로는 좁았지만 자연적인 멋이 있었다. 물봉선과 산박하가 많이 보였다. 축령산은 국내 최대의 편백나무 숲이라고 한다. 암 환우분들이 실제로 치유의 숲에서 기거하면서 건강관리도 하신다고 들었다. 한국의 조림왕으로 불리는 임종국 선생님이 사재를 털어 1956년부터 1987년까지 숲을 가꾸셨다고 한다. 돌아가실 때도 축령산 치유의 숲에 영원히 머물 수 있도록 수목장을 원하셨다고 한다. (전남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 산 98)
화순 만연산은 고향이면서도 처음 가보았는데 구름다리도 멋지고 능선을 따라 걸으며 길 양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최고였다. 참취와 미역취가 선명한 빛깔로 발길을 붙잡았다. 장애인 및 노약자 등 보행약자들도 부담 없이 산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경사가 완만한 데크형 숲길로 무장해 숲길 코스도 있어서 내가 걷기에도 참 좋았다.
만연산 치유숲은 자연체험과 치유공간을 갖춘 산림문화단지로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심신의 쾌적함을 느끼고 면역력을 향상할 수 있는 산림휴양 공간입니다. 산림욕을 할 수 있는 소나무 숲의 기운이 가득한 다산 숲 속 체험장은 동구리 산림욕장 일대 약 5ha에 어린이를 위한 놀이시설과 수평네트로드 등 체험놀이공간과 데크산책로 등을 갖추고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 다양한 체험과 놀이를 통해 다산의 정신을 느끼며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습니다. - (화순군청누리집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진각로 357-44
분적산 입구는 편백향이 퍼져 숲으로 손짓한다. 큰 산들에 다녀온 후라서 가볍게 몸풀기로 다니는 정도가 외었다. 도토리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많은 산이라 가을에는 도토리와 상수리가 떨어져 있는 것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야생화들이 많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야생화들이 짙고 예쁘다.
분적산은 집 뒤의 산이라 그런지 다정한 산길이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란 그런 편안함을 준다. 큰 준비가 없이도, 물 한 병이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 마치, 우리의 정원이라는 마음이 든다. 산이 좋아서 모여 사는 사람들처럼 우리 마을분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 오르곤 한다.
이번 나흘 동안의 산행은 망설임으로 시작했지만, 산행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큰 불평 없이 마무리되었다. 매번 힘들기도 하고 덜하기도 한 산행에서 느끼는 것은 산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높은 곳에 숨겨 놓았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렵게 올라 간 정상일수록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한 걸음 한걸음 숨 가쁘게 올라가야 된다는 것을 느낀다.
휴가 동안 힘들어야 일상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가야겠다. 이제 곧 가을이다. 바쁜 일상이지만, 이번 가을에는 야생화를 만나러 노고단에라도 꼭 가자고 예약했다.
야생화들이 손짓하는 곳!
첫댓글 산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높은 곳에 숨겨 놓았다는 말과 힘들고 어렵게 올라 간 정상일수록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한다고 느낀 소감이 대단하네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기 위해 한 걸음 한걸음 숨 가쁘게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한마음으로 동행한 단란한 가족사랑에서 행복을 읽습니다. 휴가를 멋지게 보낸 지난 날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겠지요.
회장님! 꼼꼼하게 읽으시고 답글까지 올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리산 천왕봉 이후로 한라산 백록담을 보고 싶은데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정상에서 만나는 풍경들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