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은 반드시 '라틴' 인종은 아니며 순전히 '아메리카' 인종도 아니다
CIA-2015년 중요한 글로벌트렌드중 하나-안데스지역, 칠레, 중미, 멕시코 남부 원주민의 잠재적 도전
사파티스타 봉기 (1994년 멕시코에서 시작)
북미무역협정이 발효되는 1월 1일 발생-자유와 지식의 탈식민화를 위한 500년 동안의 투쟁을 강조
지배적인 것이 반드시 헤게모니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각성
사파티스타 투쟁의 배경 ― 멕시코의 정치적 환경
1911년 멕시코혁명의 전설적인 지도자이자 ‘사파티스타’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는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철저한 토지 재분배와 공동체적 토지소유를 내걸고 무장혁명을 일으켰다. 사파타는 멕시코의 대부분을 장악하였으나 카란사에게 암살당하며 혁명은 미완으로 끝난다.
카란사는 1917년 멕시코 민족주의 혁명 헌법을 마련했고, 이를 뒤이은 까예스 정부가 1929년 국가혁명당(현 제도혁명당)을 결성하는데 이는 최근까지도 멕시코 정치사회의 기본틀로 유지된다.
제도혁명당은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71년간 멕시코를 지배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멕시코노동자연맹 전국농민동맹 등 대부분의 대중조직들과 군부가 조직적으로 제도혁명당에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체제에서 대통령과 여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대신 당의 동원세력인 대중조직과 군부의 상층에게는 유리한 정책, 법률, 물질적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후원과 수혜의 끈끈한 관계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멕시코는 전 사회적으로 부정부패와 민중억압이 구조화되었지만 이에 저항할 대안세력이 부재했다.
사파티스타 투쟁의 배경 ― 멕시코의 경제 상황
한편 멕시코의 경제체제는 오랫동안 국가자본주의 형태를 갖고 있었다. 멕시코는 강한 민족주의 성격을 띄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한 자립경제 달성을 목표로 했다. 강력한 국가개입과 보호주의 아래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 1970년대 중반 석유 매장 발견 이후에는 석유산업주도형 발전전략을 추진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국제유가 폭락, 국제금리 상승으로 멕시코는 천문학적인 외채 위기에 봉착한다.
결국 멕시코는 1982년 집권한 마드리드 정권부터 미국과 IMF의 요구대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보호무역은 폐지되고 수출허가완화, 관세인하, 적극적 외자유치 등 일련의 대외개방 정책이 추진된다. 1985년에는 GATT에도 가입한다.
1988년 살리나스가 집권하면서 개방기조는 더욱 가속화된다. 북미를 자유무역지대로 만드는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이를 통해 미국자본의 투자를 확대시키고, 미국의 무역장벽을 제거함으로써 대미시장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10여년에 걸친 잇따른 무역자유화조치가 가져온 결과는 기대와 달리 더욱 불어난 무역적자와 외채위기 뿐이었다. 결국 1994년 멕시코는 외국자본의 연쇄적인 철수로 인한 페소화 폭락으로 경제위기를 맞았고, 마침내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시행되면서 국내기업의 도산과 해외자본의 잠식으로 이어졌다.
이후 멕시코는 초긴축정책으로 인해 외면상으로는 경제가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외국자본에 의해 경제의 전 부문이 장악되었으며, 국내산업의 도산으로 광범위한 실업자군이 양산되었다.
치아파스 인디오가 사파티스타가 되어 봉기하기까지
치아파스 주는 원래 커피와 코코아가 많이 생산되며, 목축업과 수력발전이 성하고, 특히 라칸돈 우림지역에서는 목재가 많이 생산되는 등 자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주였다. 하지만 치아파스는 최근 수십년 동안 멕시코의 최대 빈곤지역이 되어 버렸다. 풍부한 자연자원에도 불구하고 치아파스의 생활수준은 멕시코에서도 가장 낮고, 심지어 학교·병원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공공서비스 시설조차 대단히 열악한 상태에 머물렀다.
치아파스의 인디오 농민들은 1940년대 수입대체 산업화와 함께 정부가 대토지 소유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면서 라티푼디오라고 불리는 대농장에서 쫓겨나 라칸돈 정글로 밀려났다.
그런데 1972년에 정부는 다시 이 지역의 대규모 벌목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것을 강요한다. 치아파스의 인디오 농민들은 이주를 거부하고 이 때부터 20년 동안 토지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며 투쟁을 벌인다.
그러나 1992년 살리나스 대통령은 민영화조치의 일부로 헌법 27조가 보장하고 있던 ‘토지 공유제’를 폐지시켜 인디오 농민들이 토지소유권을 주장할 근거를 박탈한다.
여기에 더해 1990년대 정부가 취한 일련의 개방화 조치는 그나마 취약해진 인디오 공동체 경제에 마지막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NAFTA를 준비한다는 명목 아래 멕시코 정부는 옥수수 수입제한, 커피가격 보조금 등의 조치를 폐지하였다. 이로써 목재·목축·커피·옥수수 등에 기반한 치아파스 경제는 해체되고야 만다.
생존권이 극도로 악화된 농민들은 1992~3년에 평화적으로 대규모적인 항의시위를 벌였지만 아무런 대답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전략을 바꾼다. 1993년 중반부터 농민들은 농사짓기를 그쳤고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그 돈으로 무기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4년 1월 1일 NAFTA의 발효와 동시에 봉기한 것이다.
사파티스타가 전 세계에 던진 새로운 저항운동의 상상력
전 세계의 진보진영은 사파티스타의 놀라운 투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M16 소총과 목총이 전부인 그들이 전 세계 자본주의의 맹주 미국의 앞마당에서 탱크와 대포, 전투기로 무장한 정부군에 맞서서 저렇게 잘 싸울 수 있는가?”
사파티스타의 투쟁은 전 세계 진보진영에 새로운 저항운동의 상상력을 던져 주었다. 또한 인터넷을 활용한 홍보전략으로 인간성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풀뿌리 국제연대를 이끌어냈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반대를 최초로 선포한 투쟁
“신자유주의는 수백만의 인간 존재를 억압하고자 하며, 잉여 인간으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바로 그 쓰레기 인간들이 이제 반항을 한다. 이 저항의 주머니에는 여성, 어린이, 노인, 청년, 원주민, 생태주의자, 동성애자, 노동자 그밖에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운행에 방해가 되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렇듯 ‘현대화’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저항을 하는 것이다.”(사파티스타 마르코스 부사령관)
사파티스타는 멕시코의 한 정글 속에서 자신들이 처한 문제가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공세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달았고, 그렇게 배제당한 모든 이들로부터 저항과 투쟁이 시작되어야 함을 공공연히 선언했다.
아래로부터의 조직화, 철저한 민주주의 ― 멕시코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끌어낸 원동력
사파티스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받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복종함으로써 지도한다’는 원칙 아래 “운동의 지도자들은 조직의 구성원에게 복종해야 하며, 중요한 사항의 결정은 조직 구성원 전체의 집단적 의사결정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다.
과만 포마 데 아얄라-비판적 탈 식민 사유. 마르크스와 같은 위치.식민지 지배논리 와 산업자본의 착취논 리의 정체 드러냄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원주민 지식인들과 지도자들-1990년대 초 상호문화성이란 개념 사용시작-서로 다른 두개의 우주론 작용. 인식의 권리에 대한 근본적인 요구. 지식과 존재의 탈 식민화
아마우타이 와시 -원주민 상호문화대학-공존의 패러다임 제시.원주민 문명에 대한 주체적인 이해 교육과정에 포함
카라콜- 자율적인 사회경제적 조직 출범
-사회적 정치적 법률적 조직을 발명하기 위해 공동으로 행동하며 보조를 맞추는 원주민 공동체모임
경제구조- 경젱적인 시장보다는 상호성에 토대. 상호부조를 통해 형성
카라콜을 구성하는 개별적 집햅체의 이름-좋은 정부의회
카라콜과 아마우타이 와시는 공존의 패러다임을 부각시키고 근대의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이상적 모델과 그것이 식민지에 미친 결과를 넘어서서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힘으로써 이성의 지도를 바꾸고 있음
공존의 패러다임,
1 차별성을 갖는 권력은 두개가 아니라 세개이다(스페인, 원주민, 흑인)
2 스페인 포르투갈 식민지 개척자들의 대열에 네델란드인, 영국인, 프랑스인 가세
3 원주민과 유럽인과 흑인이 뒤섞이면서 무수한 다양성 만듬
라틴 아메리카는 실체없는 문명인가?
오늘날 개념으로서의 라틴 아메리카-근대적 식민적 세계라는 상상의 공간에서 모호한 위치
1.서양의 세 꼭지점인 서유럽,남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차별적인 정체성으로 인식되는 라틴 아메리카인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정부관료, 신문기자, 지식인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상상의 공간
2.크리올, 메스티소, 유럽의 이주자들에게는 증가하는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기술적 침략에 맞서는 연합전선의 역할
3.흑인과 원주민 공동체-
이브야 알라의 이름으로 투쟁
흑인-노예 생활의 기억, 이주민들에게 맏은 인간이하의 취급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
유럽(장소중심적) -백인(인종 중심적)중심적 이성을 변환시키는 것은 헤게모니적 질서를 위협하는 행동
새로움의 패러다임(민주주의, 자유, 시장을 확산시키는)을 위협하는 사유를 통제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지식의 지정학을 변화시키는 무슬림과 라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