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첼(1900-1949)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남긴 미국의 소설가이다. 그녀는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 남북전쟁이 끝난 후 복원 과정에 있는 애틀란타의 풍속도를 묘사했다. 작가 본인이 남부 출신인 점도 있고, 당시 사회(특히 남부 지역)의 분위기 탓도 있고 해서 흑인에 대한 인종적 차별이 느껴지는 장면이 드물지 않다는 점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미첼은 26세이던 1926년부터 3년 동안 이 소설을 썼다. 그 이후에 남긴 작품은 없다. 그러므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첼의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단 한 작품으로 세계문학사에 이름을 아로새겼으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 어쩌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소설을 탈고한 후 19년, 출간 후 13년을 더 생존했으므로 차기작을 창작할 시간은 충분했는데 말이다. 그녀는 불과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이 소설을 다 쓴 후 6년 동안 집에 그냥 두었다가 1936년에 이르러 뒤늦게 출간했는데 단숨에 미국을 휩쓰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퓰리처상도 받았다. 뿐만 아니라 3시간40분이나 되는 긴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 세계 인류 2억 명 이상이 관람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0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받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애틀랜타에는 미첼의 이름을 붙인 거리와 초등학교가 있어 고향 도시가 미첼을 성심껏 숭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생가가 남아 있지 않아 답사자들을 일견 허전하게 만든다.
그래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박물관이 세워져 있어 ‘닭 대신 꿩’을 즐기는 재미는 짭짤하다. 이 박물관에서는 1939년 12월 15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가 애틀랜타 극장에서 처음 상영되었을 때 미첼 여사와 영화의 남자 주인공 클라크 게이블이 나란히 앉았던 빨간 의자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작가 미첼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기억할 때마다 떠오르는 몇 가지 생각이 있다. 앞에 잠깐 언급했지만, 미첼이 왜 다음 소설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그 첫 번째 생각이다. 그에 관한 전문적 글을 본 바가 없어 조심스럽지만, 아마도 ‘위대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자신의 진정한 운명이나 사명을 피하려는 (인간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탓’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는 ‘모든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대부분은 위대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스스로 대성의 길을 포기하는데, 왜냐하면 위대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남보다 돋보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톰 보틀러의 견해에 바탕을 둔 추정이다(미주1). 미첼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너무나 놀라운 성공에 스스로 부담을 느낀 탓에 스스로 다음 작품을 발표하는 일에 엄청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말이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교통사고에 관한 것이다. 미첼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지금도 애틀랜타 피치트리 스트리트 1401번지 도로변에는 그녀가 이곳에서 세상 사람들과 영원히 작별했음을 말해주는 동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동판 하나라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남긴 소설가가 한창 나이에, 그것도 허망하게 교통사고로 생을 마쳐야 한단 말인가? ‘달리는 흉기’의 무서운 성질과 반인간적 광기가 새삼 두렵다. 결국 사람이 무섭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명체도 아닌 자동차에 무슨 자유의지가 있을 리도 없으니 교통사고 희생자는 모두 사람이 죽인 일종의 살인의 피해자이다. 인구 비례로 볼 때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거의 매년 세계 최다 수준인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새삼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는 해결 과제 앞에 우리는 놓여 있다.
또 한 가지 생각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전쟁소설은 아니고 전후소설이라는 데서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남북전쟁의 원인인 인종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사회소설이라고 볼 수도 없다. 남녀 사이의 애증에 천착하고 있는 풍속소설이자 심리소설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후 복구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덕분에 이 소설이 독자들의 흥미와 공감을 훨씬 더 넓고 깊게 불러일으킨 듯하다. 황폐한 삶속에서도 뭔가 이루어보려는 여주인공 스칼렛의 불굴의 의지를 독자들은 조엘 오스틴이 말한 ‘긍정의 힘’으로 신뢰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례는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쓴 인구 5만의 도시 스타라야 루사가 유명하다. 이 소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단 3채의 집만 온전히 형체를 유지하고 나머지 집들은 전파되거나 반파되었다.
그 와중에도 위대한 작가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쓴 집과 책상, 그가 누워서 세상을 떠난 소파 등은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 ‘도스토옙스키 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 모든 것이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 처절한 환경이 닥쳐도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존재는 그것이 사람이든 아니든, ‘이름을 불러주든 불러주지 않든(미주2)’ 모두가 한결같이 아름다운 ‘꽃’이다.
(미주1) 톰 보틀러,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이정은 역, 흐름출판, 2015, 52-55쪽.
(미주2) 김춘수 시 〈꽃〉에 빗댄 표현.
위의 글은 현진건 현창을 목적으로 발간하는 <빼앗긴 고향> 원고로 집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