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회 소속으로 50년간 한국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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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수현(가운데) 신부가 2000년 아이들과 함께 소풍에 나서고 있다. |
"우리 모든 것이 하느님 손에 있습니다."
1일 선종한 기수현(Rinaldo Facchinelli, 리날도, 살레시오회) 신부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남긴 유언이다. 그의 여든여덟 해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기 신부는 평생 하느님 뜻에 따라 살며, 수도회 설립자 요한 보스코(1815~1888) 성인처럼 언제나 어린이들 곁에 있었다. 선종하기 하루 전까지도 그는 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에서 쓰레기를 줍고, 화단을 정리하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1920년 이탈리아 트렌토에서 출생한 기 신부는 1944년 종신서원을 한 뒤 1950년 사제품을 받고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됐다. 8년 뒤 한국으로 선교지를 옮겨 광주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61년부터 광주 살레시오 중ㆍ고등학교 교장을 지내고 1965년에는 서울 살레시오 공동체로 옮겨와 1966~68년 수련장을 역임했다.
1970년부터 5년 동안은 그가 서울 대림동에서 선교사로서 활약을 펼쳤던 시기다. 당시 대림동에는 성당이 없어 신자들은 도림동성당에 가서 미사를 봉헌해야만 했다. 기 신부는 살레시오회 대림동 공동체를 개방해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주일미사를 마치면 대림동 신자들과 쉬는신자 가정방문, 어려운 가정 어린이 돌보기 등에 나서 200명에 불과하던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1400명으로 늘어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75년부터 서울대교구 구로3동본당 보좌신부로 사목했고, 1982년부터는 20여 년간 서울 신월동 살레시오회 공동체 주변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작은 공부방을 운영했다. 수도회에선 이를 오라토리오라고 하는데, '오라토리오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이때 붙었다. 또 한센병 정착 마을인 성진마을과 동혜원을 40여 년 동안 방문해 환자를 돌보고 미사를 봉헌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기 신부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왕요셉(살레시오회) 신부는 "요한 보스코 성인이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천국에서 쉬겠다'고 한 말처럼 기 신부님은 언제나 행동으로 아이들을 돌봐왔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장례미사는 3일 서울 영등포 신길6동 살레시오회 관구관 7층 성당에서 봉헌됐으며, 유해는 전남 담양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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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규만(가운데) 주교가 3일 살레시오회 관구관 7층 성당에서 기 신부 장례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제공=살레시오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