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열었다. 생각지 못한, 아니 까마득히 잊었던 두 옛일이 가방 속에 살아있다.
서류를 찾다가 잊고 있던 젊은 날의 출장 가방이 떠 올랐다. 하여, 옛 출장 007가방을 꺼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출장 잦던 직장 퇴직 후, 언제 다시 쓸 줄 몰라 책꽂이 뒤 빈 곳에 넣어두었었다. 손길 안 가는 공간이라 가방의 겉면이 모두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끼었다. 때를 한참씩이나 닦아냈다. 가방 안에는 ‘1993학년도 후기 00 대학원 학생모집 요강’과 ‘입학지원서’, ‘추천서’ 양식까지 고스란히 들어있다. 30여 년 전의 원서라 생각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가방 안이라 종이가 별로 탈색되거나 헤지지도 않았다.
그뿐 아니다, 가방 속엔 사랑했던 꽃의 씨앗 봉투가 다섯 개나 들어있었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필연 같은 만남으로 자신도 모르게 들국화로 좋아하게 되었던 꽃이다. 1999년 2월, 6월, 12월에 씨앗을 받았다고 각각 봉투에 적혀있다. 6월과 12월은 2개씩인데 특히, 6월의 두 개에는 ‘5월 개화’, ‘6월 개화’가 각기 씌어있다. 그러니까 봄부터 초겨울까지 피었던 들국화 곧, 구절초의 씨앗을 모두 받은 것이다.
군 제대 후 공채로 시작한 직장, 대기업의 대졸자와 고졸자의 차별 대우는 군대 조직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런 상황이 나를 주경야독 세계로 내몰았다. 직장이 야간대학이 없는 곳이기에 방송통신대학이 설립되자마자 지원, 공부를 시작했다. 초대 과정을 마치고, 대학 편입학 자격시험도 붙었다. 같은 대학에 학사과정이 생겨 편입하여 30대 후반에 경영학사가 되었다. 숨 가쁜 삶을 살아내던 중년까지 배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그 학교에 편입, 50대 후반에 문학사도 받았다.
푸르른 산 자드락 작은 공장엔 희한하게도 대문간에 연보라 구절초꽃이 봄부터 초겨울까지 튼실하게 피었다. 하늘과 땅, 해와 달, 별과 구름, 바람과 눈비 같은 이야기들을 해맑은 지성으로 단장한 구절초꽃과 텔레파시로 나누었다. 어느 봄날, 한 직원이 시퍼런 낫으로 잡풀과 함께 구절초를 베어내려고 했다. 깜짝 놀란 나는, “잡풀만 베고 구절초는 꼭 남겨두라”하고 명령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직원은 따랐다. 지금 돌아보니 일터 대문간에서 가냘프지만, 꽉 찬 존재 구절초꽃이 올곧고 청초한 누리로 나를 인도했다. 다섯 봉 씨앗은 구절초 벗의 미련으로 남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자락에 그림자 하나씩을 품고 사나 보다. 그림자는 사람마다 다르게 불릴 테지만, 나는 그 이름을 ‘미련’이라 부른다. 미련은 현재나 과거의 어떤 순간에 서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소리 없이 붙잡기도 한다. 나는 종종 그 그림자와 잘 지내려고 속삭이기도 한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아쉬움, 애틋함, 그리움이 꼭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 미련이기 때문이다.
중년 시절 자주 찾던 바닷가가 있다. 몽돌들이 넓게 차지한 곳이다. 마음 일렁일 때마다 그곳에 가 문학잡지 한 권 손에 들고 바다를 멍때리곤 했다. 세파에 시퍼렇게 멍든 바닷물이 몽돌들을 덮쳤다가 빠져나가는 소리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멈추게 하는 미련의 소리로 들렸다. 잡지 글자들은 어느새 몽돌들과 하나 되고, 바닷물과도 하나가 되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자리였지만, 앉아 숨 돌리던 바닷가는 내 푸른 안식처였다. 그때 알았다. 내가 그토록 붙들고 있던 건 잡지도, 바다도, 몽돌도, 바람도 아닌, 세월을 함께 견뎌낸 ‘순간, 순간의 나, 미련과 하나 되는 나’였다는 사실을….
한때 나는, 미련을 단순히 ‘못 잊는 마음’이나 ‘붙잡는 감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엔 ‘지나간 시간은 흘려보내기만 하면 되고 미련은 나약한 사람의 몫’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련은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미련이 드는 것은 언제나 내가 사랑하고, 간절히 바라던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련이 남는다는 건, 그만큼 마음 다해 살아온 시간이었다는 뜻이었다.
미련은 이렇게 세상에 나타났다. 과거를 그리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아직 매듭짓지 못한 마음, 미처 건네지 못한 말,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용기, 또는 서툴게 지나친 선택들이 남아 있는 세계였다. 하여, 미련은 말하지 못한 이야기처럼 내 마음에 깊게 자리 잡았다. 비록, 망각의 뒤주 밑에 꼭꼭 숨겨두어도 기어코 사라지지 않는….
‘사람과의 사이’에도 미련은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오래전 오누이처럼 가까운 사람이 있었다. 속마음을 나눌 만큼 깊고도 조심스러운 사이였지만 기어이, 자존감 한 뼘을 좁히지 못하고 오누이로 남자는 이유를 붙여 이별을 선택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잊을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그 사람의 표정, 말투, 웃음, 다정함, 함께 걷던 길에서 느끼던 아우라와 실루엣, 자연, 날씨까지도 마음속에 별빛처럼 남게 되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묘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람을 완전히 잊지 못한 게 아니라, 그때의 나를 다 보내지 못한 것’이었다. 미련은 결국, 자기의 이야기였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더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덜 두려웠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의문이 이어지며 과거의 자기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사이를 내려놓은 슬픔보다, 용기를 내지 못한 스스로가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었던 거다.
이제 나는, 품은 미련들에 대해 예전처럼 감추려 하지 않는다. 미련은 실패나 후회의 결과가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온 힘을 다해 살아왔다는 증거였으니까. 증거가 때로는 아프고, 때론 슬퍼도 따사함과 기쁨으로 남아 있음이 더 클 뿐이다. 중요한 것은, 미련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다루는가이다. 변명으로 삼을 수도 있고, 힘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언제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미련은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지만, 결국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동기가 된다. 미련이 남는다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삶을 꿈꾸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꿋꿋이 살아낸다면, 미련은 아픔이 아니라, 삶의 큰 목표인 자아를 이루어내는 밑천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게 되리라.
보내지 못한 미련을 품은 삶의 길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은 이 한마디이다.
“그래. 나는 아직 잘 살아내고 있어. 가방 속 미련을 품고….”
- <수필 미학) 2026. 여름호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