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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덩이의 산행기 원문보기 글쓴이: 산거북이
15년만에 재개방된 한라산 돈내코 코스
[돈내코 - 남벽분기점 - 윗새오름 대피소 - 어리목광장 : 13.8 킬로]
2009. 12. 6.
아들과 둘이서
서귀포.
내게 가장 제주도다운 곳. 그 이름만으로 뭍과의 완벽한 단절이 뼈저리게 느껴지던 곳. 포구나 관광 단지의 아름다움보다
가장 멀어진 곳에서 더이상 어디로 갈 곳도 없는 끝마을의 안락감을 주던 곳. 어두운 바닷가에서 유람시절의 서귀포를 추
억해본다.
영실이건 성판악이건 어느 계절이었건간에, 한라산 산행을 위해서는 중문단지와 제주시에서 출발했었는데 서귀포 바닷
가에서에 하룻밤을 지내는 기분은 따끈하고 진한 커피맛의 느낌이었다. 돈내코 코스는 서귀포의 것이라는 느낌이다.
▼[돈내코 탐방로 입구]
이른 새벽. 컵라면과 어제 준비했던 보온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택시로 돈내코탐방로 입구를 부탁했다. 어쩌나......!
기사님이 정확히 모르신다. 무전기로 연락하여 위치 파악을 해가며 이동하는데 인근에 다다르니 이틀전 행사를 치렀던 깃
발들이 도로변에 무수히 휘날리고 있다. "축" 돈내코 탐방로 재개방, 행사장 입구 등등......
▼[언덕에서 내려다본 서귀포 방향]
윗 사진 한가운데 승용차 열서너대 주차해둔 공간이 보일 것이다. 바로 저곳이 돈내코 탐방로 들머리. 다른 시설물들은 아
도 없고 주차공간도 45대로 알려져있어 영실, 어리목, 성판악에 비해 아직은 좁고 황량하다. 저곳에서 충혼묘지를 가로질
러 산행 안내판을 확인하고 길을 꺾으면 새로 지은 관리동 한채가 반긴다.
관리동 목조건물 부근에는 화장실도 있고 바로 뚫린 임도를 버리고 좌측 탐방로로 90도 꺾어 진행하면 잠시 후 바로 이곳
넓다란 공터언덕에 도착한다. 이틀전 재개방 축하 기념식을 바로 이곳에서 한 사진들을 확인하였다. 이제부터 한동안 목
계단으로 친절하게 탐방로를 인도한다
▼[밀림지대, 돈내코 기점 0.8 km]
▼[15년을 보호받은 수림과 산길]
▼[붉은 빛 비추는 아침햇살]
▼[썩은물통, 돈내코 1.72 km 지점]
해발고도 700 m 를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자 "썩은물통" 지점이 나타났다. 바로 뒤에 이런 늪이 보이는데 한눈에 이곳을 지
칭하는 것인 줄을 알아보았다. 지난날 한라산 기슭에서 방목하던 말과 소들을 물먹이던 곳이라는데 이제는 퇴적이 심해져
서 이와같은 늪이 된 모양이다.
표지점치고는 꽤나 소박하고 규모가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 굴거리나무와 제주조릿대 많은 두터운 낙엽길]
15년을 출입제한을 하였으니 15년만에 다시본 이의 눈에 수림은 무척 울창해졌을 것이다. 성판악이건 영실이건 간에 늘
푸르게 보이는 이 나무가 제주 굴거리나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조릿대도 제주특산(?)이다. 겨울이 되면 키높은 나무들
의 이파리가 떨구어지니 햇살을 잘 받아 겨우내 광합성을 열심히하여 그 싱그러움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겨울의 굴거리 나무가 여름의 굴거리 나무보다 훨씬 더 싱그러운 초록의 느낌이다.
▼[두터운 이끼가 낀 돌계단...... 발길이 잦아지면 이또한 변하리.]
큰 아이는 뒤에서 천천히 따르고, 나는 앞장 서 온갖 구경 다하고 사진 찍고...... 널널한 유람산행의 중간중간에 내 뒷모습
이 아이의 카메라에 자꾸 담긴다. 20대 중반의 아이에게 아비의 뒷모습을 어떨까. 나는 결코 바라볼 수 없었던 그 나이의
아버지.....
▼[내 눈에는 서어나무가 가장 많이 보인다.]
▼[해발 1000 미터, 제주굴거리나무]
▼[본격적인 적송지대, 그리고 특징적인 제주조릿대]
▶[살채기도, 돈내코 기점 4.0 km]
내내 완만했던 밀림 속의 탐방로는 살채기도 표지석 지점에서 우측으로 꺾이면서 가볍게 경사를 이루게된다. 살채기도에서
배낭을 풀고 이른 아침식사로 벌써 허기진 배를 채웠다. 숙소에서 만든 따끈한 커피도 식기 전에 마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살채기"...... 말과 소가 함부로 내다니지 않도록 나무로 대충 엮어 만든 문을 가르키는 제주지방의 토속어이고, "도"는 입구
를 칭하는 말이다.
▼[둔비바위, 돈내코 기점 4.7 km]
둔비바위 지점,
부근에 큰 바위가 있나 두리번거려도 울창한 수림 뿐,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설마하면서 맞은편 사각바위를.....??!! 힐끔쳐다
보고 지나가는데 뒤에 오던 제주사람인듯한 부부가 마치 우리더러 들어라는 듯...... '둔비라고 하는 것은 두부를 말하는 것이
다'라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지나갔다. 오..... 두부바위라......
역시 표지점치고 더욱 소박하고 자그마하여 미소......
이곳이 해발 1300 m. 이미 해발 1000 m지점에서 내리기 시작한 싸락눈은 카메라를 꺼내기 힘들 정도로 많이 나부꼈다.
▼[아! 싸락눈 내리는 두터운 운무...... 아쉽다!]
눈과 함께 두터운 개스가 주위를 완전히 덮었다. 1700 m 능선에 올라가면 이 눈구름대 위로 벗어날 수 있을까. 평궤대피소
1500 m 지점을 돌파하면 시야가 조금 나아질까...... 불안감과 실망감이 엄습.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연의 변화를 유람객의
안타까운 소망으로 쉽게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을......
▼[평궤대피소]
평궤대피소 인근에 이르면 비로소 밀림 속에 가렸던 하늘이 열리고 사방천지 시야가 트이면서 태평양과 한라산 정상을 바
라볼 수 있다는 기대는 하얗게 뭉게졌다. 참호와 같이 만들어진 평궤대피소 안은 굴 반, 지붕구조 반으로 이뤄진 독특한 건
축이었다. 원래 "궤"라는 것이 바위와 절벽으로 이뤄진, 푹 파인 굴이라는 뜻이라고 한단다.
▼[더욱 짙어지는 개스...... 결국 안개 속에서 싸락눈만 맞아야하나보다.]
▼[남으로 태평양, 북으로 남벽이 보여야할 대피소 위 전망대...... 안개에 잠겼다.]
▼ [남벽 갈림길 부근, 돈내코 기점 6.38 km..... 어????? 구름이 갑자기 걷힌다!!]
남벽이 바로 바라보이는 위치 쯔음이라 생각되는 곳. 두터운 운무를 탓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이는데 갑자기 북쪽하늘
이 밝아지면서 산사면이 빛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멈춰선 걸음에 숨까지 막히는 장면이 이어졌으니...... 마침내
남벽이 서서히 열리는 것이었다. 소리없는 장중한 음악이 평원을 뒤흔들고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경이로운 남벽 쇼]
남벽은 이렇게 말했다......!!
저기가 방애오름인가......
뒤를 돌아보니......
다시 남벽의 춤.
......
!!
다시 밀려오는 운무...... 30분간 지속된 남벽 쇼를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 다시 잠겨드는 것을 보고 남벽분기점에서 윗세
오름 방향으로 향했다. 15년 전 남벽에서 한라산 정상부까지의 등산로에 어떤 상처가 깊었을까? 지금도 폐쇄된 이 구간
에 암벽의 손상이 엄청났다고 하던데...... 돈내코-남벽에 초행인 나로서는 짐작할 길이 없다. 아마도 지리산 천왕봉 중
봉 인근의 산사태와 사면 훼손과 같은 상태가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 [남벽분기점을 지나 방애오름으로]
아이젠을 할려고 하다가 손에 들고 간 것을 끝으로 어리목까지 착용하지 않고 진행했다. 눈이 미끄럽지 않았고 깔창이 새
것이어서 충분한 안전판 역할을 해 주었다. 방애오름 향하는 탐방로는 두터운 가스에도 불구하고 무척 경치가 좋았다.
▼[다시 짙은 운무 속으로]
▼[전망대와 방아오름샘]
방애오름과 웃방애오름 사이로 윗새오름으로 향하는 고갯길이 있다고 했는데, 저기 전망대 바로 앞에 방아약수터도 있다.
안 켠은 완전히 얼었지만 한 쪽 고인 물은 맑게 고여있어서 한모금 쭈욱 들이켰다. 찐빵만한 상고대를 툭툭 분질러 아이스
크림처럼 녹여먹으면서 왔는데 물 맛 또한 기가 차다.
그러나 곧이어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개스가 밀어 닥친다.
윗세오름쪽으로 내린 서북벽 모서리만을 보여주는 절묘함.
그럼 저 멀리 윗세오름인가?
▼[방애오름과 웃방애오름 사이, 윗새오름으로 향하는 고갯길]
큰 애는 어찌할바를 모르겠다며 연신 감탄이며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를 못한다.
하긴 생전 처음 보는 고산지대의 설경이니......
저 목책길을 걸으면서 왼편으로 영실에서 오르는 선작지왓의 광활한 풍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멀리 푸른 바다도 얼핏 비쳤다.
▼[꽁꽁 얼은 서북벽 통제소와 서북벽]
▼[드디어 윗세오름 !]
그러니까 남벽분기점에서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은 바로 이 '윗세오름 휴게소 정상석' 뒤편으로 이어져있었다. 전에는
이곳에 나무의자와 나무장승이 서 있었다고 기억된다. 이제는 어리목이나 영실에서 올라 이 길 따라 남벽분기점에서 돈내
코로 하산하는 등산객들도 많아질 것이다.
▼[윗세오름 광장과 한라산 정상 서북벽]
▼[만세동산 내려보이는 광활하고 완만한 하산로]
▼[텅 빔...... 아무도 없는 하얀 적막]
▼ [어리목 주차장까지 줄곧 눈덮힌 어두움]
어리목 주자장까지 하얗게 눈이 덮혔다. 한라산의 남쪽에서 올라 북서쪽으로 내리왔으니 윗세오름-어리목에 눈이 두터울
수 있었을 게다. 어리목 주차장에 대기 중인 택시기사님의 말로는 어제밤와 오늘 오전 내내 눈이 나렸다고 한다. 서귀포의
날씨와 비교되지 않는 변화가 새삼 신기했다.
남벽코스, 윗세오름 주변의 1600-1700m 고도에서 구름이 잠시 걷혀준 것은 정말 '자연스런' 겨울의 자연현상이겠지만 마
치 간절한 바램을 들어주신 한라산의 신령하심으로 느껴졌다. 산과 나무와 풀과 숲과 자연 속의 생명을 사랑한 작은 정성
을 갸륵하게 여겨주심으로 느꼈다.
돈네코 탐방로가 생태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오랫동안 한라산의 품격있는 탐방로로 존속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END
첫댓글 설경이 너무너무 기가막힘니다.언제 한번 가죠?번개한번 때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