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기
지게를 졌다. 큰 것을 등에 지니 땅에 질질 끌렸다. 좀 작은 것을 구해서 꼬리를 달고 지팡이를 들어 산으로 들로 뛰었다. 개울가 아카시아와 가까운 산기슭의 청솔을 찍어서 묶어 날랐다. 논밭에 나가서 갓 캔 감자와 나락 단을 져 나르기도 했다. 감자가 무거워 어깨가 내려앉는 것 같다.
양철 물동이도 졌는데 작달막한 지게 좌우에 달아 흔들흔들 앞뒤로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다녔다. 좁은 논두렁과 마을 고샅길을 잘도 걸었다. 그렇게 날라주면 한동안 부엌일과 소죽 쑤는 데 도움을 줬다. 마을마다 우물이 멀다. 논 밑이나 산기슭의 바위틈에 조금씩 나는 것을 퍼 왔다.
그것도 학교 파하고 친구들과 놀이 삼아 해봤다. 주로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다녔다. 아침 일찍 무더울 때나 추워 옹그릴 때도 비가 오나 눈이 와 미끌미끌할 때도 여 날랐다. 부모 농사일과 물 떠 나르는 일을 도와야 했다.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썰렁한 정지에서 일했다. 물 긷는 일이 먼저다.
똬리를 얹고 그 위에 버지기를 올려 희미한 새벽에 저 논 밑 우물로 간다. 무명 홑 치마저고리를 걸치고 종종 걸어가는 것을 봐왔다. 머리보다 몇 배 큰 펑퍼짐한 질그릇을 손으로 잡지 않은 채 쉽게 달랑달랑 동동걸음이다. 거름더미에 소변보러 나오면 벌써 한 동이를 이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이마로 흘러내리는 정한수를 손등으로 스치면서 부엌 문지방을 힘겹게 넘는다. 가득 담은 자배기 물이 출렁출렁 조금씩 넘치는가 보다. 건넛마을 불기는 언덕 아래에 있어서 이고 오를 때 헉헉하는 것 같다. 다들 먹는 물 나르는 일이 쉽지 않다. 논물이 좋겠나 온갖 거름을 하는 데 그 고인 물이다.
그것도 겨울엔 얼거나 말라 바닥이 드러난다. 할 수 없이 앞 개울물을 퍼먹는다. 그럴 땐 남자들이 져 나르거나 아이들도 물동이를 들어야 했다. 집집이 마실 물 때문에 다들 난리다. 그러니 세수는 각자 알아서 시냇물에 가 씻거나 그냥 지나야 한다. 목욕은 여름 한철 강 봇물에서 하는 게 다다.
우물을 만든 게 돌담으로 깊이 파서 둥글게 쌓아 올렸다. 엎드려 퍼담는다. 한 옹가지 담아서 바가지를 그 위에 얹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림이 줄어든다. 좌우 조그만 손잡이가 있는데 발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머리에 올려놓는다. 그때 똬리 줄을 입에 물고서 올린다. 이고선 간들간들 자박자박 걷는 게 위태롭다. 어머니 작은 머리를 짓누른 커다란 옹기그릇이 바위만 해 보인다.
부뚜막에 내릴 때도 벌벌 떨며 힘겹게 내린다. 이리 고생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지났다. 그걸로 밥 짓고 국 끓인다. 수시로 물 달라면 구차하단 싫은 눈치 없이 작은 부엌문으로 드나든다. 문지방이 닳아 닳는다. 소죽통에 옥수숫대와 콩깍지를 삶아 넣고 물을 흥건히 부어야 한다. 낮에도 뜨고 저녁에도 샘물로 가야 한다. 젖은 어머니 장배기 아니 정수리는 마를 날이 없어라. 가끔 ‘아들아 물 좀 떠와라.’ 해서 가면 한참을 내려다본다.
그 샘 안엔 작은 버들치가 오글오글 맴돌고 있다. 어린 새끼가 여길 어찌 들어왔을까. 어쩌다 꽤 큼직한 것도 어슬렁어슬렁 다닌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얼른 돌 틈으로 든다. 가재도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 그 물을 먹는다고 야단들이다. 물을 퍼담으니 흐르는 게 적고 좁은 도랑이 저 개울까지 긴데다 지지하다.
물고기와 가재가 거길 어찌 오나. 가끔 퍼낸다. 억센 남정네가 모여 후다닥 바닥까지 박박 긁어낸다. 그러면 한결 맑다. 내 얼굴이 흔들흔들 비친다. 여름철 소낙비가 쏟아지면 흙탕물이 들어와 형편없다. 어떨 땐 뿌옇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이 그럭저럭 마시며 지낸다. 마실 저 위 뒤 뜰에 대나무가 가득한 집은 멀어서인가. 부엌 옆에 깊이 구멍을 파 고인 물을 먹는다.
가물 땐 없는가. 여길 내려온다. 물고기가 있건 말건, 흙탕이든, 뿌옇든 생명의 물이다. 물 없인 하루도 못 산다. 자배기 아니 버지기를 방으로 들일 때가 있는데 콩죽과 밭 죽을 끓이거나 홍두깨로 민 칼국수를 했을 때이다. 또 나물죽을 만들면 물을 많이 넣어 흐물흐물한 것을, 이 그릇 저 함지박에 안기기 위해서다. 먹고 더 달라면 끝없이 준다.
자꾸 나오는 화수분이다. 어머닌 그 옹자배기 아니 옹가지를 안고서 달라는 대로 퍼 준다. 수런수런 물배로 가득 채워졌다. ‘초상에 팥죽 들어오는 버지기 수 헤아린다.’듯이 푸짐한 그릇이다. 미꾸라지와 모래무지가 꿈틀거리는 샘은 정초에 마을 청년들이 부엌 조왕신에 이어 용왕신을 위로한답시고 꽹과리와 징을 울리며 횃불을 들고 설쳐댔다.
새벽에 물 뜨러 온 아낙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웅성웅성 제사를 지냈네. 친척이 왔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네. 집안일을 아리송송 속닥인다. 옹기점에서 흙을 구워 아무렇게나 만든 자배기와 좀 작은 옹가지, 뚝배기가 여러 개씩 있다. 그것도 금이 가고 깨지면 손때 묻은 것이 아까워라. “자 버지기 고쳐요.” 소리치는 장수가 다닌다. 가는 철사를 붙여서 사방으로 질끈 잡아당겨 동인다. 단단한 게 괜찮다. 더 튼실해 보인다.
양철통이며 고무신도 고치러 다닌다. 이발사도 이 마을 저 마을을 지난다. 점쟁이와 푸닥거리, 고물상과 방물, 온갖 장수가 스쳐 간다. 거기다 이빨을 해주는 사람도 있다. 본을 떠서 싼 불에 녹여 금니와 삼뿌라로 끼워 넣는다. 아침저녁 문둥이도 얼굴을 싸매고 나타난다. 바지게에 여러 가지를 짊어지고 찰칵찰칵 가위질하며 “엿 사시오 엿 사.” 비누, 양잿물, 사탕 과자 하며 외친다.
생각해 보니 뻥튀기하는 사람도 풍로와 무거운 둥근 쇠를 지고 다니는 것 같았다. 자배기 아니 ‘버지기’로 샘물 나르던 그 시절이 아롱아롱 스친다.
첫댓글 잊혀져 가는 옛날 일들
개 고생했었던 그 시절
지금 사람 들 어찌 알겠어요
정월이면 농악 패거리가
동네 우물 당산 나무 상여 집 등을
돌며 지신 밝기로 한 달 내내
야단 법석을 떨었지요
출렁출렁 물 지게 지고 소 죽 끓이던 시절
버지기가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하겠어요
수고 하셨고 감사합니다
며칠 전, 식당에서 아주머니 몇 분이 버지기 얘기를 하곤 자지러지게 웃습디다.
경북 지방 친구들인 것 같습니다.
지금을 찾아볼 수 없는 버지기 그땐 철사로 칭칭 동여서 아껴 사용했습니다.
'버지기' 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샘의 이야기에서 어린날의 생활이 어림풋이 머리에 떠 오르네요.
물을 이고 지고 나르고, 강물에서 빨래를 씻던 경험한 일인데 소설인가 싶네요.
선생님의 기억력을 존중합니다.^^
해운대 음식점이 생각납니다.
백장로님 희망님 사랑님과 함께 한 시간이 벌써 몇 해 전입니다.
올해도 스르르 갑니다.
여기서 같이 모이니 참 좋습니다.
박회장님 카페를 잘 지켜주시니 이리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