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좋은 몫을
내가 종종 다시 읽어보는 우화 중에 노턴 저스터의 <점과 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직선 하나가 자기와는 다르게 생긴 점의 매력에 끌려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의외로 점은
선에게 '너는 막대기처럼 뻣뻣하고 둔해.
자기 속에만 얽매여 있고 갇혀 있잖아.
외곬인데다 꼭 막혀 있어.
착 가라앉아 가지고 답답하단 말이야.
자기 감정을 짓밟고 억누르고 꼼짝도
못하게 하지'라고 쏘아붙이며 거칠고 단정치 못한 헝클이 하고만 어울려 다니곤 했다.
그래도 직선은 좌절하지 않고 점이 감탄하게 되리라고 생각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리저리 애를 써봐도 별도리가 없어
'이젠 어쩔 수 없다' 고 포기를 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커다란 집중력과 자제력으로 각을 하나 만들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도 구부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놀라 밤잠도 설쳐가며 연습을 해서 정사가형, 직사각형, 삼각형, 평행사변형, 사다리꼴,
십각형 등 원하기만 하면 무슨 모양으로든지 자신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점은 비로소 힘차고 재치 있고 새로운 모습의 선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점과 선은 무책임하고 불확실한 헝클이를
따돌리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너는 막대기처럼 뻣뻣하고 둔해. 자기 속에 얽매여 있고 갇혀 있잖아.
외곬인데다 꼭 막혀 있어'라고 내뱉은 점의 말이 꼭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해서
혼자서 얼굴을 붉히게 된다.
가뜩이나 마음 그릇이 크지도 못한 데다 소임에서의 경험의
폭도 넓고 깊지 못하여 참으로 융통성 없고 답답한 자신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수 십년의 수도 연륜에 비하면 턱없이 미성숙하고 덕이 부족한 나를 독자들이 글만 보고
아름답게 생각하거나 이상적인 표현을 하가나 하면 나는 정말이지 모둘 바를 몰라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뻣뻣하고 지루해 보이는 규칙생활이 늘 새롭고 즐거운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좋은 몫을 찾아내어 꾸준히 지속해 온 노력 덕분이라고 확신하다.
그 작지만 좋은 몫이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잇지만 또한 잊혀지기도 쉬운 평범한
일들이다.
예를 들며 어떤 사람이 빨간 수실이나 바늘, 천조각, 또는 헌 우표 등이 필요하다고 혼잣말처럼
말할 경우 꼭 내게 부탁한 것이 아니더라도 잘 기억해 두었다가 갖다준다든지,
어떤 모임이
있을 대는 그것에 관계되는 자료들을 미리 찾고 공부해 간다든지, 어떤 공동장소에 며칠씩
잊혀진 채 놓여 잇는 물건들을 유심히 보아 두었다가 그 주인에게 챙겨준다든지 하는 것 등등이다. 다름 일들로 바쁠 땐 약간 귀찮게 생각될 때도 없지 않지만 이렇듯 조그만 사랑의 행위들을 통해서 삶은 단조롭고 지루할 틈이 없어진다.
우화 속의 직선이 점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발성을 발휘하여 온갖 모양을 만들어내듯이 우리 또한 매일의 삶 안에서 우리와 관계를 맺는 가족, 친지, 이웃을 위해 끊임없이 다양하게 자기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뻣뻣한 자신을 구부릴 줄 하는 적극성과 능동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교만은 겸손으로, 고집스러움은 온유함으로, 옹졸함과 인색함은 관대함과 너그러움으로 굴곡을 만들어가는 곡선만능가가 된다면 그만큼 즐거운 삶이 될 것이고 기쁨을 나눌 벗들도
많아질 것이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해야 할 바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평범한 사람의 잔잔한
행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새해엔 나도 곡선을 더 많이 그리는 겸손과 부드러움으로
매일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공초 오상순님의 평소의 말씀을 구상 시인이 정리했다는
'꽃자리'를 다시 외워본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이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노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꽃삽중에서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