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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니까 새 사진을 찍어야지
음력으로 해가 바뀌고 첫 번째 강의다. 설날 전에 오셔서 공사하셨다고 하는데 법당에는 바닥으로 연결되던 전기선들이 말끔히 다 정리가 되어서 훨씬 가벼웠다.
“무선 마이크 시험하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들려요?”
큰스님이 무선 마이크를 들고 말씀하셨다.
회장스님이 이번에 전기선을 공사하며 새로 구입하신 무선마이크는 독일의 유명한 음향회사인 제나이저(sennheiser; 젠하이저)사에서 나온 마이크라고 했다.
“화엄회상이 되어놓으니까 뭐든지 푸짐하고 넉넉해.”
하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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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에서 오신 스님들이 큰스님께 인사를 올리셨다.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한지 25년이 되었다는 스님들이 함께 인사를 오셨다. 늘 공부하러 왔었는데 오늘 더 많이 오셨다고 했다.
그중에 한 스님이 동국대에 다니시면서 장학금을 탔다고 큰스님께 법보시를 올리셨다.
“큰스님, 화엄경도 좋지만 불교 성전도 한 번 더 강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끼고 다니는데 불자들은 그렇게 끼고 다닐 책이 없어요.”
하고 청도 올리셨다. 그러자 큰스님이 뒤에 계시던 운문사 학장스님에게 물으셨다.
“학장 스님 이리와 봐요. 이 말이 맞아?”
“아니요 안맞아요.”
틈도 없이 운문사 학장스님이 대답하셔서 모두 웃으셨다.
“그래 고마워요. 법공양에 잘쓸게요. 공부 잘 합시다. 운문사 졸업생이 저렇게 뭉쳤네, 뭉치면 산다”
운문사 학장스님이 ‘우리 청도의 특산품’인 곶감과 ‘부처님 좋아하시는 망고’를 가져오셨다고 하시면서 “이런 좋은 책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책상에 놓인 <화엄경 약찬게 작은 해설>책을 보고 인사하셨다.
“이거 용학스님 작품이야. 내용이 기가 막혀. 나도 용학스님한테 많이 사가지고 쌓아 놓을 거야. 일단 맛뵈기로 한 권씩 드리고.” 하고 큰스님이 책자랑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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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스님들이 선물을 가져오셨다.
“따로 이렇게 할 거 없는데. 아 설이 지났구나. 그렇다고 이렇게 오는구나. 하하하 왜 이렇게 갑자기 많이 주나 했지. 네 고맙습니다.”
하고 큰스님이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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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약속한 사진 한 장 찍어야지.”
하고 스님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셨다.
“염화실 까페에 들어올 줄 알지요? 거기와서 사진 올려 놓으면 퍼가면 돼. 스님 일로 와요.
새해니까 새로 찍어야지. 옛날에 찍었지만 새로 찍어야지”
하시면서 사진을 찍고 나서 큰스님이 스님들께 당부하셨다.
“새해에 공부 열심히 합시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35권 십지품 두 번째 권이 나왔다. 본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서문을 한 번 읽는 것으로써 점안식을 대신하겠다.
서문
그때에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였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미 초지(初地)를 수행하고 제2지에 들어가려 한다면 마땅히 열 가지의 깊은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이른바 정직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과 참을성 있는 마음과 조복하는 마음과 고요한 마음과 순일하게 선(善)한 마음과 잡란하지 않은 마음과 그리움이 없는 마음과 넓은 마음과 큰 마음이니라. 보살이 이 열 가지의 마음으로 제2이구지(離垢地)에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구지에 머물면 성품이 저절로 일체 살생을 멀리 여의어서 칼이나 몽둥이를 두지 아니하고, 원한을 품지 아니하고, 부끄럽고 수줍음이 있으며, 인자하고 용서함이 구족하며, 일체 중생으로 생명 있는 자에게는 항상 이익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느니라. 이 보살이 오히려 나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시끄럽게 하지도 않거늘 하물며 그에게 중생이란 생각을 내면서 짐짓 거친 마음으로 살해를 행하겠는가.”
이와 같이 사람 사람들의 진여불성은 본래로 살생을 멀리하며, 법성생명은 본래로 훔치는 일을 멀리하며, 참마음은 본래로 사음을 멀리하며, 차별 없는 참사람은 본래로 망어와 양설과 악구와 기어를 멀리합니다. 또 사람 사람들의 본래 부처인 경지와 본래 보살인 경지에서는 탐욕을 멀리하며, 분노를 멀리하며, 삿된 견해를 멀리합니다.
그러므로 거짓 나에게서 번뇌의 때를 멀리 떠나려 하지 말고 본래로 청정한 진여자성의 참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으로 번뇌의 때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본래로 때가 없는 진여자성을 깨달아 누리는 것이 번뇌의 때를 떠난 이구지(離垢地)입니다.
2016년 1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마침 십지품의 두 번째 권은 이구지에 대한 내용이라서 서문도 이구지 하나에 집중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십지품은 화엄경에서도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내용이다. 그런데 이 십지품이 기본이 되어서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등각 묘각 이런 52위 지위점차가 벌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또 십지품에 대해서는 십지경론(十地經論)이니 해서 인도에서부터 주석서가 많이 있었다. 좀 마음 담아서 알뜰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또 오늘 우리가 <화엄경 약찬게 작은 해설>이라고 하는 책을 공양 받았다.
우리도 약찬게를 열심히 외우고 있고, 한국불자라면 약찬게를 모르거나 외우지 못하는 불자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있는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범어사 강주 용학스님이 이 약찬게를 아주 열심히 연구해서 지난번에 <화엄경 약찬게 요해>도표도 우리가 받았고, 법공양실에 아직 많이 쌓여있다.
약찬게 하나를 제대로 파악하면 화엄경을 전부 파악하는 입장이 된다. 화엄경을 간략하게 편찬한 게송이라고 해서 이름도 약찬게다.
너무 간략하게 편찬해 놓으니까 뜻을 파악하기가 어려운데 요렇게 작은 해설을 통해서 어지간한 사람이면 화엄경 전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머리말의 분량이 좀 있지만 워낙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으므로 우리가 천천히 한 번 읽는 것으로써 이 책을 점안해야 되겠다.
우리나라하고 화엄경이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이 머리말에서 주로 밝히고 있다.
돌아가서 이 책을 열심히 읽을 분도 있겠지만 여기서 안읽으면 전혀 안읽을 분도 간혹 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전무후무하고 정말 귀한 책이라서 우리가 머리말을 천천히 마음에 새기면서 같이 읽도록 하겠다.
<화엄경 약찬게 작은 해설>
머리말
우리나라에 유명한 산들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대부분 이름이 비로봉(毘盧峰)입니다. 반석반옥(半石半玉)으로 일컫는 금강산 최고봉도 비로봉이며, 보현보살이 상주한다는 묘향산,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오대산, 팔만대장경 경판이 모셔진 해인사 가야산도 비로봉이며, 소백산, 치악산, 칠보산, 팔공산 등도 모두 비로봉입니다.
그 많은 산봉우리가 비로봉이라는 같은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화엄경 세주묘엄품에 비로자나불의 성불(成佛)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비로자나불과 같은 깨달음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존귀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상징하여 최고의 산봉우리 이름을 모두 비로봉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금강산과 묘향산은 산 이름마저 바로 화엄경에서 비롯된 말이며, 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산 지리산(智異山)의 화엄사 각황전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듯이, 해인사의 대적광전이나 통도사의 대광명전이나 범어사의 비로전 등 대찰(大刹)들은 으레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 있으며, 아니면 비로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암자라도 있습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가 화엄국토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불교의식의 많은 부분이 화엄경에서 기인되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새벽 도량석으로 화엄경약찬게를 합니다. 그리고 새벽 종성 “나무비로교주 화장자존 연보게지금문 포낭함지옥축”1) 은 화엄예문(華嚴禮文)에 나오는 구절이며, 상단불공(上壇佛供)의 청사(請詞) “어제병고 위작양의 어실도자 시기정로 어암야중 위작광명 어빈궁자 영득복장”2) 은 화엄경 보현행원품 항순중생(恒順衆生)의 구절이며, 탄백(歎白) “찰진심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허공가량풍가계 무능진설불공덕”3) 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끝부분 게송입니다.
또한 매일 예불 끝에 화엄신중단에 반야심경을 봉독하는 것도, 매월 초하루 신중기도와 매년 설날 향수해례(香水海禮)와 화엄성중 정초기도를 하는 것도 화엄경 세주묘엄품과 화장세계품 등에서 근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큰 법회의 회향게(廻向偈) “아차보현수승행 무변승복개회향 보원침익제중생 속왕무량광불찰”4) 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마지막 게송입니다.
영단(靈壇) 시식편에 “원아임욕명종시 진제일체제장애 면견피불아미타 즉득왕생안락찰”5) 은 화엄경 보현행원품 원생정토(願生淨土)의 구절이며, 어느 정도 불교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6) 는 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의 게송입니다. 또한 천도재 마지막에 염불하는 법성게(法性偈)는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담은 시가(詩歌)입니다.
우리나라 불교문화 속에서 보편화된 화엄사상은 이 외에도 건축이나 회화 등 다양한 형태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화엄사상의 뿌리가 매우 깊어서 그야말로 화엄경은 한국불교의 조종(祖宗)이라고 할 만합니다. 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화엄경에 관한 연구는 보편적인 것도 특수한 것도 이미 끝이 났다고 해도 지나친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토록 중요한 경전임에도 그 분량이 워낙 방대하여 체계적으로 완독하며 공부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산문(山門)에 든 지 오래된 사람이라도 실제로 화엄경을 제대로 본 사람이 드물고, 그 이치의 묘미와 희유함을 아는 이는 더욱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그동안 화엄경을 배우는 중에 비망록 삼아 경문의 대강을 초록(抄錄)하였던 대장경에 있는 역대(歷代) 종장(宗匠)들의 고귀한 한문 논저들을 근거하여, 이해를 돕기 위해 천착해서 보기 쉽도록 도표를 함께 실은 책을 엮어 보았습니다.
물론, 서툰 졸납(拙衲)의 역량으로 대방광불화엄경의 정확한 뜻을 전달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 작은 책이 계기가 되어서 누구나 쉽게 화엄경의 숲을 수월하게 헤치고 다닐 수 있는 오솔길을 마련해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의 구성을 간략하게 잘 요약하고 있는 「대방광불화엄경 약찬게」를 근간으로 하여 80화엄경 7처 9회 39품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단락으로 대강 편집하였습니다.
첫째, 화엄경의 제목과 용수보살과 삼신불(三身佛)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둘째, 세주묘엄품 인물들이 설법한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셋째, 제1회에서 제9회까지 설법의식(說法儀式)에 관한 내용을 짚으면서 부처님의 방광과 설법주의 삼매를 설명하고, 넷째, 입법계품 선지식들의 설법 의미를 설명하고, 다섯째, 제1회에서 제9회까지 39품의 대의(大意)를 요약해서 설명하고, 여섯째, 유통정법(流通正法)의 발원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부록으로 해인사판 화엄경 약찬게(略纂偈)와 광약찬게(廣略纂偈), 그리고 한글음이 병기된 광약찬게 한글음 원문을 실어서 현재 일반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시중(市中) 본(本)과 교감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수행인들의 근기가 훌륭하여 작은 것을 가르쳐도 크게 깨닫고, 마음 씀씀이가 훌륭했던 까닭에 굳이 대승불교가 이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세 중생은 큰 것을 가르쳐도 깨닫기는 더 힘들고, 옹졸한 다툼만 치열한지라 대승불교를 더 펼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저마다 조잡한 피리를 불어대는 바람에 불협화음이 심각하여 더욱 만파식적(萬波息笛)의 화쟁사상(和爭思想)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부디 이 책이 고리타분하게 도서관의 전시목록으로만 남지 않고 대중소설처럼 일반에 널리 읽히기를 바라며 길게 목을 내밉니다. 이 책을 만난다 하더라도 여전히 화엄경 본문에 접근하기는 수월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인연으로 대방광불화엄경 본문을 맹구우목(盲龜遇木)의 심정으로 만나신다면 부처님의 막대한 은혜에 작은 보답이라도 될 듯합니다. 화엄회상에서 희유한 불법(佛法)의 묘락(妙樂)으로 보배로운 인생길이 열리시기를 발원합니다.
2016년 12월 15일
신라 화엄종찰 범어사 패엽실
용학 화남(和南)
1) 南無毘盧敎主 華藏慈尊 演寶偈之金文 布琅函之玉軸
2) 於諸病苦爲作良醫 於失道者示其正路 於暗夜中爲作光明 於貧窮者令得伏藏
3) 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
4) 我此普賢殊勝行 無邊勝福皆廻向 普願沈溺諸衆生 速往無量光佛刹
5) 願我臨欲命終時 盡除一切諸障碍 面見彼佛阿彌陀 卽得往生安樂刹
6)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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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깜짝 놀랄 일 한 가지가 화엄경 광약찬게가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보통 ‘약찬게 약찬게’ 해서 약찬게만 하는데 광약찬게를 우리 강주스님이 어떤 기묘한 인연에 의해서 발견해 내고 그것을 여기 실었다.
그 내용은 비슷한데 훨씬 더 자세하고 이름도 광약찬게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이다.
작은 일이 아니고 아주 놀랄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비록 작은 책자이지만 상당한 의미가 있다. 머리말을 읽어 보니 더 빨리 책 전체를 읽고 싶을 것이다.
여러 스님들께서 그동안 화엄경과 인연을 깊이 맺었기 때문에 이 책을 가지고 신도님들에게 한구절 한구절 설명하며 약찬게 법회를 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한 번 하고나면 화엄경 강설책도 있으니 다음으로는 화엄경 전체를 강의하고 싶은 용기와 욕심, 열정도 생길 것이다.
일단 이 <화엄경 약찬게 작은 해설> 이 책을 가지고 스님들이 각자 사찰에서 꼭 강의 하시기 바란다. 강의하기 좋도록 되어 있다.
스님들이 그동안 공부하신 실력도 쌓였겠다 얼마나 좋은가?
아까 입승스님이 이 책을 소개하면서 박수를 쳤는데 학장스님에게 박수 한 번 더 치고 은혜를 갚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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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엄경 본강의 195쪽(화엄경 제2권 민족사 刊) 저 밑에 하단에서부터 할 차례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五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三
四,十廻向
8, 第六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
(18) 燈明布施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施諸燈明호대 所謂蘇燈과 油燈과 寶燈과 摩尼燈과 漆燈과 火燈과 沈水燈과 栴檀燈과 一切香燈과 無量色光燈이니 施如是等無量燈時에 爲欲利益一切衆生하며 爲欲攝受一切衆生하야 以此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願一切衆生이 得無量光하야 普照一切諸佛正法하며 願一切衆生이 得淸淨光하야 照見世間極微細色하며 願一切衆生이 得離翳光하야 了衆生界가 空無所有하며 願一切衆生이 得無邊光하야 身出妙光하야 普照一切하며 願一切衆生이 得普照光하야 於諸佛法에 心無退轉하며 願一切衆生이 得佛淨光하야 一切刹中에 悉皆顯現하며 願一切衆生이 得無碍光하야 一光遍照一切法界하며 願一切衆生이 得無斷光하야 照諸佛刹하야 光明不斷하며 願一切衆生이 得智幢光하야 普照世間하며 願一切衆生이 得無量色光하야 照一切刹하야 示現神力이니라 菩薩이 如是 施燈明時에 爲欲利益一切衆生하며 安樂一切衆生故로 以此善根으로 隨逐衆生하며 以此善根으로 攝受衆生하며 以此善根으로 分布衆生하며 以此善根으로 慈愍衆生하며 以此善根으로 覆育衆生하며 以此善根으로 救護衆生하며 以此善根으로 充滿衆生하며 以此善根으로 緣念衆生하며 以此善根으로 等益衆生하며 以此善根으로 觀察衆生하나니 是爲菩薩摩訶薩의 施燈明時에 善根廻向이니 如是廻向에 無有障碍하야 普令衆生으로 住善根中이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등을 켜서 보시하거나, 이른바 우유등불. 참기름등불. 보배등불. 마니등불. 칠(漆)등불. 불[火]등불. 침수향등불. 전단향등불. 온갖 향등불. 한량없는 색등불이니, 이렇게 한량없는 등불을 보시할 적에 일체중생에게 이익하게 하려 함이며, 일체중생을 포섭하려 함이니라. 이 선근으로 이렇게 회향하나니, 이른바 일체중생이 한량없는 빛을 얻어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두루 비추며, 일체중생이 청정한 빛을 얻어 세간에 극히 미세한 색을 비추어보며, 일체중생이 가리움 없는 빛을 얻어 중생계가 공(空)하여 아무 것도 없음을 알며, 일체중생이 그지없는 빛을 얻어 몸에서 기묘한 광명이 나서 온갖 것을 두루 비추며, 일체중생이 두루 비추는 빛을 얻어 부처님들의 법에 퇴전하는 마음이 없으며, 일체중생이 부처님의 깨끗한 빛을 얻어 모든 세계에 다 나타나며, 일체중생이 장애 없는 빛을 얻어 한 빛으로 모든 법계에 두루 비추며, 일체중생이 끊임없는 빛을 얻어 여러 부처님 세계를 비추어도 광명이 끊이지 아니하며, 일체중생이 지혜당기(幢記)의 빛을 얻어 세간을 널리 비추며, 일체중생이 한량없는 색광명을 얻어 모든 세계를 비추며, 신통력을 나타내지이다.
보살이 이렇게 등을 켜서 보시할 때에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고 일체중생을 안락케 하기 위하여서, 이 선근으로 중생을 따르며, 이 선근으로 중생을 포섭하며, 이 선근으로 중생에게 분포(分布)하며, 이 선근으로 중생을 어여삐 여기며, 이 선근으로 중생을 덮어주어 기르며,이 선근으로 중생을 구호하며, 이 선근으로 중생을 충만케 하며, 이 선근으로 중생을 염려하며, 이 선근으로 중생을 평등하게 이익 주며, 이 선근으로 중생을 관찰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등불을 보시할 적에 선근으로 회향하는 것이니, 이렇게 회향하는 데 장애가 없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선근에 머물게 하느니라,"
*
등명보시(燈明布施): 등을 켜서 보시하다
*
절에서는 명등 또는 장등 여러 가지 말을 쓰는데 등불을 켜놓은 경우는 전부 이 명등에 해당된다.
등불을 보시한다. 등불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 요즘은 전기가 발달해서 작은 등불의 가치를 잘 모르지만 옛날에 전기가 없을 때 그 어두운 밤길에 등불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가는 초발심자경문에도 나와있다.
‘여인(如人) 이 약이인악고(若以人惡故)로 불수광명(不受光明)하면 타갱낙참거의(墮坑落塹去矣)라.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등불을 들고 길에 도착했다. 그 사람이 동네에 소문난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그 등불의 빛을 받지 않는다면 결국은 구렁텅이에 나가떨어질 수가 있다. 사람은 비록 나쁘더라도 그 사람이 들고 있는 등불은 소중한 것이니 그 빛을 받아서 바른 길을 다치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잘 가도록 하라.’
그 내용이 기가 막히다. 얼마나 깊은 교훈이 있는가?
우리가 법문을 할 때 신도님들에게 으레 그 말부터 해야 된다.
‘나는 비록 볼품없지만 내가 전달하는 부처님의 말씀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야 뭐 별 볼 일 없지만 내가 배워서 전하는 이 화엄경 약찬게 내지 경전의 말씀은 아주 값지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니 나를 보지 말고 내가 전달하는 경전의 말씀을 듣도록 하라.’라고 먼저 밝힐 수 있다. 중노릇을 잘못해도 법문할 때 변명하기가 좋다.
경전이 등불이나 마찬가지다. 등불에는 그렇게 의미가 많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을 등불 하나 밝히는 것으로써 다 표현한다. 부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하신 일을 하나로 표현하자니 등불을 밝힌 것이다.
*
오늘 창녕 인양사 스님이 연씨로 만든 염주를 대중공양 올렸다. 전번에도 올리고 이번에 또 올려주셨다. 염주에 대해서 내가 크게 욕심을 안내는데 근래 그 연씨 염주 가지고 상당히 욕심을 부리고 있다.
연씨 하나에 불교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펼치면 팔만대장경이고 좁히면 연씨 하나로 다 설명이 가능하다. 불교가 그렇게 간단하다. 등불하나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구지화상은 평생 손가락 하나 세우는 것으로써 법문을 다했다.
불교는 자유자재하고 거침이 없다.
우리가 늘 불교 안에 살지만 불교가 다른 철학이나 다른 종교보다 아주 우수하다고 하는 사실을 깜짝 깜짝 놀랄 정도로 느끼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의 위대함을 스스로 느낄 때 공부가 더 깊어진다.
‘아 불교 참 위대하다. 어찌 이런 가르침이 세상에 있는가’ 할 때마다 자기 공부가 깊어진다.
*
불자(佛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시제등명(施諸燈明)호대: 여러가지 등불을 보시하되
*
소위소등(所謂蘇燈)과: 소위 요즘은 여기 전기등은 없지만 소등
유등(油燈)과
보등(寶燈)과
마니등(摩尼燈)과
칠등(漆燈)과
화등(火燈)과
침수등(沈水燈)과: 이건 침수향을 가지고 등불을 켠 것 같다.
전단등(栴檀燈)과
일체향등(一切香燈)과
무량색광등(無量色光燈)이니 : 이러한 등등으로써 보시를 한다.
*
시여시등무량등시(施如是等無量燈時)에 : 이와 같은 등 한량없는 등불을 보시를 할 때
위욕이익일체중생(爲欲利益一切衆生)하며: 무엇 때문에 하느냐? 일체 중생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한다.
불보살의 마음은 자나깨나 일체중생에게 있다. 무(無)자가 화두가 아니고 이뭣고가 화두가 아니다. 불보살의 화두는 일체중생이다.
갓난아기를 둔 어머니는 자나깨나 아기 생각 뿐이다. 잠들어도 잠은 설잠을 자면서 아기가 이불이라도 제대로 덮고 자는지 울지는 않는지 늘 마음이 아기에게 가 있는 것처럼 불보살님의 마음도 그와 같다. 그저 끊임없이 일체중생을 생각한다.
‘일체중생이 유익케 하기를 원하라. 일체중생이 이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보시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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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욕섭수일체중생(爲欲攝受一切衆生)하야 : 일체 중생들을 섭수해서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이 선근으로써
여시회향(如是廻向)하나니 : 이와 같이 회향을 한다. 어떻게 회향하는가? 회향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그것은 소원을 비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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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원일체중생(所謂願一切衆生)이 :소위 일체중생이
득무량광(得無量光)하야 : 한량없는 광명을 얻어서
보조일체제불정법(普照一切諸佛正法)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정법 널리 비추기를 원한다. 등불을 보시하면서 ‘이 등불은 얼마나 의미 깊은 것이냐? 어두운 길을 환하게 비추듯이 부처님의 정법으로써 우리 어리석음의 어리석은 미련을 환하게 비춰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럴 때 허공 가득히 복이 쏟아진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이 된다. 이것이 회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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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청정광(得淸淨光)하야 : 청정한 광명을 얻어서
조견세간극미세색(照見世間極微細色)하며: 세간에 아주 미세한 물질까지도 환하게 비춰보기를 원하라. 크다고 눈여겨보고 작다고 무시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다 진리가 있고, 이치가 있으니 지극히 미세한 물질까지도 놓치지 말고 낱낱이 환하게 조견하기를 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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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이예광(得離翳光)하야 : 가림을 떠난 광명을 얻어서
요중생계(了衆生界)가 : 중생계가
공무소유(空無所有)하며: 공무소유함을 깨닫기 원하라. 중생계가 텅 비어서 있는 바가 없다. 중생으로 더불어 있지만 중생의 근본은 공무소유하다는 사실도 궁극에는 깨달아야 한다.
중생이 공무소유하다. 공(空)해서 있는 바가 없다고 하는 것은 공관(空觀)이다.
중생이 중생이다 라고만 보면 가관(假觀)이고, 중생이 본래 부처라고 보는 것은 중도관(中道觀)이다. 중도관은 진관(眞觀)이고 참다운 관법(觀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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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무변광(得無邊光)하야 :무변광을 얻어서
신출묘광(身出妙光)하야 :몸에서 미묘한 광명을 내어서
보조일체(普照一切)하며 : 일체 존재를 보조 널리 두루두루 비추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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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 중생이
득보조광(得普照光)하야: 널리 비추는 광명을 얻어서
어제불법(於諸佛法)에 : 모든 불법에
심무퇴전(心無退轉)하며 : 마음에 퇴전함이 없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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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불정광(得佛淨光)하야 : 부처님의 청정한 광을 얻어서
일체찰중(一切刹中)에 : 일체 세계 가운데서
실개현현(悉皆顯現)하며 : 환하게 다 나타나기를 원하며
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득무애광(得無碍光)하야 : 무애광을 얻어서
일광변조일체법계(一光遍照一切法界)하며 :한 광명이 일체세계를 두루두루 비추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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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득무단광(得無斷光)하야 : 끊어지지 않는 광명을 얻어서
조제불찰(照諸佛刹)하야 : 모든 불찰을 비춰서
광명부단(光明不斷)하며 : 광명이 끊어지지 않기를 원하며
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지당광(得智幢光)하야: 지혜의 깃대 지혜의 깃발 광명을 얻어서
보조세간(普照世間)하며 : 세간을 환하게 비추기를 원한다.
보조스님 그 호가 참 좋다. 흔히 불일 보조국사를 ‘화엄학자다’라고 표현한다.
화엄경에는 보조스님 이름이 여러 수백 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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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무량색광(得無量色光)하야 : 무량색광을 얻어서
조일체찰(照一切刹)하야: 일찰나를 비춰서
시현신력(示現神力)이니라: 신력을 시현하기를, 일체세계를 비춰서 신력을 나타내기를 원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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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여시(如是) : 이와 같이
시등명시(施燈明時)에 : 등불을 보시할 때에
위욕이익일체중생(爲欲利益一切衆生)하며 : 일체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며
안락일체중생고(安樂一切衆生故)로: 일체중생을 안락하게 하고자 하는 고로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 이 선근으로써
수축중생(隨逐衆生)하며: 중생을 따라다니며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이 선근으로써
섭수중생(攝受衆生)하며 : 중생을 섭수하며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 이러한 선근으로써
분포중생(分布衆生)하며: 중생을 두루 널리 분포하며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 이 선근으로써
자민중생(慈愍衆生)하며 : 중생들을 자민히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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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 이 선근으로써
부육중생(覆育衆生)하며: 중생들을 덮어서 길러주며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이 선근으로써
구호중생(救護衆生)하며 : 중생들을 구호하며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 이 선근으로써
충만중생(充滿衆生)하며 : 중생계를 충만히 하며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 이 선근으로써
연념중생(緣念衆生)하며 : 중생들을 연념하며 반연해서 늘 잊지 않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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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이 선근으로써
등익중생(等益衆生)하며: 중생들을 평등하게 이익하게 하며
이차선근(以此善根)으로 : 선근으로써
관찰중생(觀察衆生)하나니 :중생들을 잘 보살피나니
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시등명시(施燈明時)에 : 등불을 보시할 때의
선근회향(善根廻向)이니 : 선근회향이니
여시회향(如是廻向)에 : 이와 같이 회향함에
무유장애(無有障碍)하야 : 장애가 없어서
보령중생(普令衆生)으로 : 중생으로 하여금
주선근중(住善根中)이니라: 선근 가운데 머물게 하는 것이니라.
불교의 많고 많은 말 가운데 제1번을 선택하려면 선근회향(善根廻向)이다. 나는 그런 표현을 종종한다. 사람들에게 보탬에 되고 도움이 되고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선근회향이다. 무엇인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큰 것으로 돕는 것도 좋지만 자질구레하고 작은 것이라도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이 선근회향이다.
등불보시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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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본래로 때가 없는 진여자성을 깨달아 누리는 것이 번뇌의 때를 떠난 이구지(離垢地)입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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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불교방송에서 무비스님의 강설이 막 끝이 나서 다른 방송으로 채널을 돌리니 혜거스님께서도 화엄경을 강설하고 계셨습니다. 그 강의 중에 하신 말씀,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이 가장 수승한 福이라고.. 佛法을 만나게 해주신 할아버지와의 因緣, 무비스님. 혜거스님... 큰 스승님을 만난 因緣이 더없이 소중했고.. 거기에 慧明華님과 같은 도반의 정성으로 가장 좋아하는 염화실지를 공부하고 있으니 참! 福이 많습니다. 제 책상위에는 佛經과 한암스님의 열반 사진이 ' A Life Remembered. '라고 쓴 작은 액자속에 모셔져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보고 느끼고 기억하고 있으니 前生. 今生에도 전 분명 佛子입니다...ㅎ
동감입니다. 佛法이 진리이니... 진리의 삶속에 생활이... 이 以上 행복은 없다고 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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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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