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진료
최봉호
얼마 전에 오른쪽 어금니가 반 떨어져 나가고 많이 상한 것 같아 치과에 갔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왼쪽 어금니 뿌리도 염증이 심하다고 한다. 간호실장이 ‘양쪽 어금니를 동시에 발치하면 약을 한 번만 먹어도 되고 좋다’라고 권유해 동의를 했다. 그런데 양쪽 어금니를 동시에 빼고 보니 간호실장의 말과는 다르게 상당히 불편했다. 오른쪽 어금니는 많이 상한 이로 ‘앓던 이가 빠지면 시원하다’는 속담처럼 잘 뺀 것 같다. 그러나 왼쪽 어금니는 상하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는데, 생니를 뺐다고 생각하니 빼는 것을 엉겁결에 동의한 것에 대한 후회와 억울함이 컸다. 그래서 간호실장을 찾아갔다. 그녀도 궁금한지 먼저 나에게 치아 상태를 확인했다
“손님, 괜찮으세요?”
나는 그녀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양 어금니를 뺐더니 많이 불편합니다. 왼쪽 어금니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괜히 뺀 것 같아요. 상실감이 무척 큽니다.”
“불편하세요? 어차피 왼쪽 어금니 뿌리에 염증이 심해 빼야 했어요.”
“전에 원장님이 몇 년은 더 쓸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나를 응시한다. 그런 간호실장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팔에 염증이 있으면 팔을 짤라야 하나요? 짜르지 않고 약으로 치료하는 사람이 명의라고 들었습니다. 왼쪽 어금니를 뺀 것은 과잉진료인 것 같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 하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도 한마디 거든다. 아내도 부실한 치아가 많다.
“여기 원장님을 임플란트가 전공이신가요? 여기 치과로 옮기려고 했는데 옮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상황이 바로 치과원장에게 보고가 되었다. 나는 원장에게 동시에 양쪽 이를 빼니 상당히 불편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원장은 본인이 빼는 것에 동의했으니 뺀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의심이 되면 경과를 지켜보고 연말에나 치료를 받으러 오란다. 치료를 안 해주겠다는 표현이다. 치료를 계속 받느냐, 중단하느냐 둘 중 뭐가 좋을까 고민이 들었다. 치과에 가기 전에, 챗GPT에게 과잉진료에 대해 고소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물어보았더니, 자료준비가 중요하다는 답을 얻기도 하였다.
어떤 지인도 송곳니 한 개를 빼려고 치과에 갔는데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다른 송곳니와 앞니 세 개가 문제이니 발치를 권유해 무려 다섯 개나 뺐다고 한다. 지인도 발치에 동의했는데 그 과정이 석연찮다. 지인은 ‘치아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의사님은 전문가시니 당신의 말을 따르겠습니다.’고 말했단다. 모든 대화는 시술대에서 이루어졌고, 상담실에서 따로 설명을 듣거나 무슨 계약서에 서명한 것은 없다고 한다.
어쨌든 이 말이 끝나자마자 의사는 서둘러 마취를 하고 가운데 아랫니 세 개와 양 송곳니를 발치하였다.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당한 것 같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고교동창인 치과의사에게 엑스레이 사진 등을 얻어 보내 자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동창 의사는 판독결과 치아를 뺄 정도는 아니라고 하면서, 전형적인 의료사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그 후 지인은 의료분쟁조정원에 문의를 했고, 그 치과원장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서를 작성하였다.
이후 과잉진료문제를 더 파고들기 위해 나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의도적으로 치과에서의 발치 문제를 종종 꺼내곤 했는데, 당했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 나의 의심이 합리적 의심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빨 문제 외에 신장 한 개를 떼어낸 사례도 듣게 되었다. 그녀는 큰 병원의 전문의가 한 쪽 신장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떼어내는 게 좋겠다고 권유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받고 난 후 아무래도 잘못 떼어낸 것 같다고 생각해 소송을 준비하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그녀의 얼굴표정에서 후회와 억울함이 물씬 풍겼다.
전문의사와 싸움하면 이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의사가 작성한 자료들을 받아 다른 전문의한테 의뢰해 발치나 제거가 잘못된 것이라고 판정을 받아야 승산이 있다. 그러나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집단 이익을 위해 내게 유리한 판정을 해주지 않을 것 같다.
송사를 하면 거기에 매달려야 하고, 이기기 어렵다고 하면서 말리는 지인들이 많다. 그래서 소송 거는 걸 포기하고 대신 두 가지를 추진하고자 한다. 하나는 “과잉진료 피해연대”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것 같다. 두 번째는 민법에 의료계약 조항이 없어 문제라고 하는데, 이 조항 신설에 매진해볼까 싶다.
그리고 아버지가 생전에 말씀한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이 고사성어는 효경(孝經)에 나오는 것으로 ‘우리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훼손하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런 유교적 생각에 빠져있는 내가 멀쩡한 생니가 빠졌다고 생각하니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는 자책감이 든다.
첫댓글 최봉호 수필가님 수필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방문해 좋은 글 올려주셔요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