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코의 미소>(최은영, 문학동네, 2016)
최은영의 데뷔작 <쇼코의 미소>는 <작가세계> 신인상 중편소설에 당선작이다. 최은영은 1984년 생으로 광명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작가의 말’에 언급하고 있다. <쇼코의 미소>는 ‘쇼코의 미소’를 비롯해 ‘씬짜오, 씬자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한지와 영주’,‘먼 곳에서 온 노래’,‘미카엘라’,‘비밀’ 총7편이 수록되어 있다.
쇼코는 한국에 일주일 동안 견학학생으로 오게 된다.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문화 교류’ 행사로 초대된 쇼코는 ‘소유’의 집에 일주일간 머무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쇼코의 방문은 소유의 집에 활력을 준다. 엄마는 외국어를 배우겠다고 하고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일본어를 구사하며 쇼코와 대화를 나눈다. 일본으로 돌아간 쇼코는 소유와 소유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주고받다가 고교 졸업 후에는 연락이 끊긴다.
사실 쇼코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다. 당장 쇼코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쇼코는 내 고용인도 아니었고,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대학 동기도 아니었고, 가까운 동네 친구도 아니었다. 일상이라는 기계를 돌리는 단순한 톱니바퀴들 속에 쇼코는 끼지 못했다. 진심으로,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p.25)
그까짓 편지 교환이 무슨 그리 큰 의미였다고. 그것도 쉰 살이나 차이 나는 외국인과의 펜팔이었다. 쉰 이후로는 돈도,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살아왔지만 자기를 굽히는 법을 모르던 사람이 쇼코의 침묵 앞에서는 체념했다. 쇼코의 편지를 모아놓았던 거실 협탁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우편함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쇼코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31)
할아버지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유일한 매개체가 쇼코였다. 지금까지 자신의 욕구를 분출시키지 못하다가 쇼코를 만나면서 자신이 원했던 욕망을 드러낸다. 미스터 김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쇼코와 할아버지는 현해탄을 넘어 펜팔친구가 된다. 소유할아버지에게 쇼코는 손녀와 나눌 수 없었던 진솔한 대화를 하게 된다. 쇼코도 자신의 할아버지는 지긋지긋해하면서 소유 할아버지에겐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 쇼코에겐 가까운 친구가 없었다. 쇼코는 자살시도도 했고 우울한 기질을 가졌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고모와 살고 있는 쇼코는 결손가정에서 자랐다.
쇼코에게는 가까운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어울리는 사람들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쇼코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내밀한 우정을 쌓는지 알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속을 열어 보이지 못하는 대신 살을 부딪치며 만날 필요가 없는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편지로 써서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내가 일본인이었고 쇼코의 주변에 사는 사람이었다면 쇼코는 내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든가,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자주 보고 정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쇼코의 경우에는 달랐다.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어야 쇼코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p.17~18)
소유는 할아버지를 이렇게 바라본다. “늘 무기력했고 사람을 사귀는 일에 서툴렀던”(p.14) 사람으로 손녀를 제일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껌 한 통 사준 적 없다. 늘 잔소리만 늘어놓는 할아버지 그러나 할아버지는 손녀가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영문과를 졸업한 소유는 방송국 영화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카메라 촬영을 배우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독립영화제에 작품을 내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고 시나리오 공모전도 떨어진다. 창작이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소유의 결심은 돈 문제로 현실에 부딪치게 됩니다. 꿈은 죄라고 말하는 소유.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나는 네가 이렇게 큰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서울에 가서 공부도 하구 영화감독도 되구. 힘든 대루 손 벌리지 않고 네 힘으로 살구. 까짓 것 다 무시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난 그거, 멋지다고 본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커피 깡통에 비벼 끄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에 대한 안쓰러움을 숨기는 얼굴이었다. 감정을 숨기는 연습이 잘 안 된 사람이어서 그런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비쳤다. 할아버지는 내가 수렁에 빠진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나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라도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겠지. (p.38)
쇼코는 외로운 아이다. 소유의 할아버지도 그랬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둘은 소통하고 치유했다. 소유는 이 사실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알게 된다. 쇼코와 소유는 세 번을 만난다. 17살 때 24세 때, 30대에 말이다. 자주는 만나지 못하지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는 말을 한다. 여러 가지 마음을 탐구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쇼코와 소유의 관계, 소유와 할아버지, 쇼코와 소유 할아버지, 쇼코와 할아버지, 소유와 엄마..
차가운 미소, 서늘해진 미소, 따스한 미소, 온화한 미소.. 미소 뒤엔 숨은 감정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쇼코의 미소는 차갑고 서늘했다. 그렇지만 편지는 진실했다고 보인다. 세상을 향한 자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서평-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