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에서
이영주
나는 여름이 되면 방 창문을 다 열어놓고 잔다.
밤에 더위를 피해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문을 닫으면
요즘은 너무 방음이 잘되어 자연을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침 새벽 여명이 밝아 올 때 쯤 만물이 소생하는 기를 느끼고,
하루시작을 알리는 자연의 알람소리를 듣기위해서다.
조잘대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새 종류들도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새들의 합창소리에 더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나는 새들의 오페라 소리를 들으며 잠결에 나와 여명이 밝아오는
오봉산과 용화산을 감싸고 있는 산들을 바라보며 지구를 흔든다.
내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2.500대의 고추군단을 바라보며
명령만 내리면 진군하겠다는 힘찬 진군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일복으로 갈아입고 오늘의 일을 시작하기 전 제일 먼저
맨손 체조를 하고 앞 비탈에 달린 산딸기와 도랑 옆으로 나열한
오디 열매를 따 입에 넣고 고추밭을 사열하는 것으로
하루의 문을 연다.
며칠 전 까지는 앵두가 나를 반겼지만
이제는 앵두는 열매는 마무리 했다.
저 산딸기와 오디가 얼마있어 끝물을 알리면 집 뒤로 나열한
복숭아와 자두 그리고 돌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고추와 절임배추에 제일 관심이 간다.
작년 고추농사는 농촌의 삶에 보람이 되었고,
내가 이곳에서 어느 농작물을 선택해야 내가 내 적성에 맞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매년 고추농사와 절임배추로 일 년을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요사이 농산물 가격하락으로 농촌을 힘들게 하지만 고추 가격이
바닥을 친다고 해도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이 하락의 조짐이 보이면 고추를 따서 고추 말리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집주변에서 말리면 된다.
그리고 동생들이 횟집을 하는 2곳 식당으로 보내주면 되고,
내가 최선을 다해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면 판로는 크게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리를 작년에 충분이 터득했기 때문이다.
상품에 신뢰만 있으면
사람과 사람의 입소문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도 알았다.
병풍산에 등산을 왔던
등산객들이 우리 집 앞으로 내려오면서 말린 고추를 직접 택배로
보내달라고 주소를 적어 놓고 가시는 분이 많았다.
상품만 좋게 만들면 판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집에 있을 적에는 대부분을 집 앞 고추밭에서 보낸다.
책을 보고나, 음악을 들을 때도 집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앞에 있기에 고추에서 싱싱하고 건강한 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농약을 최대한 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고
풀 죽이는 제초제도 치지 않는다.
고추고량에는 풀이 나지 않도록 부직포를 깔았다.
작년에 1200대의 고추를 수확했지만 올해는 배가 되는
2500대의 군사를 거느렸다.
올해 모 사리하고 고추 끈을 매주지 못했는데 바람이 불고
밤에 비가 왔는지 아침에 나가니 고추들이 쓰러져 있었다.
우리부부는 비의 무게는 못 견디는 고추를 십분의 일 정도는
세우고 서울을 다녀왔다.
낮에 해가 무더웠는데 집에 오니 다 언제 그랬냐고 굳게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침에 우리부부가 무게를
못 견딜 거라고 비를 털어 준 고추들은 완전이
고개를 처 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자연보호로 구나 생각하며
자생력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지금 자라는 어린이들도 부모들이 너무 과잉보호해서 자생력을
잃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듣다.
5월 중순에 심은 이 자식들이 이제는 주인인 나보다
더 큰 것 같다.
새소리들과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의 삶을 튼튼하게 가꾸어
가리라고 믿는다.
이제 저 무더위와 장마철이 지나면 밤에는 달빛의 속삭임과
별들의 이야기를 들을 테고 주변에 한창 핀 호박꽃 달맞이꽃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반딧불이 창공을 나르며 축하비행과 함께
붉은 색으로 무장하고 진군의 합창소리가 우렁차게 들릴 날도
차츰 다가오고 있다.
고추밭 고추 지지대에는 페인트칠을 한 곳이 몇 군대 있다.
이것은 나만이 알 수 있는 나만의 표시다.
동네 고추농사를 오래지신 분들도 방식이 다 다르다.
어느 분은 어느 약이 좋다고 가르쳐주고, 어느 분은 또 다른 농약을
처야 된다고 가르쳐준다.
심지어 물주는 방식도 다 나름대로 다르다. 어떤 분은 아침에,
어떤 분은 저녁에, 또 농학박사라는 분은 점적 호수를 설치한 밭에는
낮에 물을 줘야 된다고 설명을 해준다.
그러다 보니 같은 성분의 약이 몇 개나 되고,
아직도 뜯지 않은 농약도 몇 개가 남아 있다.
산비탈 조그만 터에 심은 고추는 실험삼아 약을 전혀
주지 않은 것도 있다.
수확할 때 과연 농약을 준 것과 안준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고 싶고, 또 농약별로 어떤 차이가 나는지
비교해 보기위해서다.
지금까지 농약을 친 것과 안친 것이 차이가 나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직까지는 별로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곳에서 고추농사를 제일 오래지신 노부부는 고추에는
제일 무서운 병이 역병과 탄저병이라면서 이 병을 막는 약 밖에는
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집은 영양제부터 고추에 좋다는 것은 다 치는 편이다.
그런데 수확을 할 때 보면 별 차이가 없다고 하며
동네 분이 귀 뜸을 해준다.
나는 약을 많이 치다보면 시간이 갈수록 약을 줄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 약을 덜 치면 마음에 불안을 느끼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농산물을 생산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나만의 농사법을 터득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실험을 해보고 있다.
새벽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다.
오늘 부터는 여름이 한복판인 칠월이다. 남쪽해상에서 머물러 있던
장마전선이 본격적으로 많은 비를 선사하려는지 새벽하늘을
검은 비구름이 몰려와 덮고 있다.
우리2500대의 고추군단도 힘찬 투지로 장마를 대비하고 있는 듯하다.
(20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