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길위의 인문학' 이라는 주제로
도서관에서 실내 특강과 현장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함께 했던 분이
후기를 직접 써서 메일로 보내주셨네요.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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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상용 선생님,
전 산수도서관의 길위의 인문학
" 빛고을의 맛과 멋"이라는 강의를 듣고
또 현장 답사도 했던 할머니입니다.
선생님의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해설이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은 바로 광주의 정신을 깨우는 향기입니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새벽처럼 밝아오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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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광주정신
양○현
인품에서 풍기는 향기는 오래도록 남아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인품, 광주를 빛냈던 인품에는 광주정신이 스며있다. 이 정신은 세상에 향기가 되어 종소리처럼 울려 퍼질 것이다.
도서관에서 “빛고을의 맛과 멋”이라는 주제로 광주의 혼을 일깨우는 박상용 선생님을 만났다.
광주의 멋은 광주의 정신에 있다는 강의를 듣고, 또 그 현장 답사도 하였다.
그 분의 말씀인즉 도시 이름에 ‘정신(精神)’이란 단어가 합성된 도시가 있다. 바로 ‘광주의 정신’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도시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다. 오직 광주에만 있는 정신이다.
그러면 그 정신은 언제부터 이어져 지금까지 내려왔는가.
고려 말부터 조선을 거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가까이는 5.18 민주화운동까지 물처럼 스며들어 지금까지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을 이어주는 넝쿨 줄기 같은 광주의 도로, 광주의 일번지라고 불리는 충장로,
이 도로의 이름은 김덕령장군의 시호에서 따온 이름이고,
금남로 역시 정충신에게 임금이 내린 군호, 금남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죽봉로로 불리는 이 길은 의병장인 죽봉 김태원의 항일정신이 서려 있고,
서암로로 불리는 이 길은 의병장 서암 양진여의 혼이 깃든 길이란다.
필문로는 이선재(이조판서), 제봉로는 제봉 고경명(의병장), 하서로는 하서 김인후(필암서원),
설죽로는 설죽 양상기(양진여의 아들),
이 도로의 이름들은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우신 분들의 호를 따랐고,
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큰 의미가 들어있는 길이란다.
박상용 선생님은 이게 다 광주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박상용 선생님의 해설로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능주, 조광조의 적려유허비(謫廬遺墟碑)가 있는 곳이다.
파격적으로 정치개혁을 시도했던 조광조, 훈구파들의 농간으로 반역죄로 몰려 유배되었고 죽임을 당했던 곳이다. 임금이 행여나 다시 불러줄까 기다리다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 물거품이 되었다. 사약을 앞에 놓고 마지막 절규하듯 절명시(絶命詩)를 지었다고 한다. 정의를 부르짖다 죽임을 당했던 5.18 항쟁, 그날의 하늘처럼, 오늘 능주의 하늘에도 정암의 못다 핀 한이 서려 서럽도록 푸르다. 5.18에 사라진 영령들의 광주의 정신은 정암의 억울하게 당한 죽음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때 정암의 나이 38세였다고 한다.
愛君如愛父 憂國如憂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 했고 / 나라 걱정을 내 집 걱정하듯 했노라.
밝은 해가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 내 충성된 마음을 환히 비추리라.
개혁의 수장이었던 조광조, 그 후 49년 만에 신원이 복원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죽수서원(竹樹書院)이라는 편액을 사액(賜額)받았다. 대원군의 서원 철패로 된서리를 맞아 없어졌다가 1986년 전라남도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정암의 혼이 깃든 죽수서원(竹樹書院)에 들러 주위를 거닐면서 광주정신이라는 사행시를 지었는데 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광-광주의 정신이 빛나는 것은 / 주-주인의식이 투철하기 때문이다.
정-정의가 물같이 흐르는 사회 / 신-신의가 꽃같이 피어나는 사회.
우리는 다시 담양군 남면에 있는 원림(園林), 독수정(獨守亭)으로 향했다. 광주의 정신이 서려 있는 정자 독수정, 고려 공민왕 때 병부상사를 지낸 전신민이 고려가 망하자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고 하며 벼슬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북쪽을 향해 정자를 짓고 혼자서라도 나라 지킬 것을 다짐하여단다. 아침마다 송도(북쪽)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고 한다. 전신민의 나라 지키는 충성, 바로 광주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소쇄원으로 향했다.
스승인 조광조가 죽임을 당하자 제자인 양산보, 그는 회색빛 보이지 않는 세상을 벗어 던지고 낙향했다고 한다. 조선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소쇄원, 물을 뿌려 청소 한 듯 맑디맑은 소쇄원, 사각사각 부딪치는 댓잎 소리, 졸졸 물 흐르는 소리, 비온 뒤 갠 맑은 하늘의 가을밤, 양산보는 광풍각에 앉아 달이 뜨는 풍광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양산보의 달빛에 띄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상상을 해 본다. 꼭 달밤에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소쇄원이었다. 양산보의 깨끗한 마음, 그게 향기 나는 광주정신이다.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의 전투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충장공, 선조 28년, 반란을 일으켰던 적장과 내통했다는 억울한 죄목으로 체포 되었으며 그해 옥중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때 장군의 나이 29세, 영조 때 죄가 없음이 밝혀져 병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정조대왕은 충장공 시호를 내렸다. 아! 충신들은 왜 억울하게 죽임만 당하는가. 광주의 정신에도, 조광조, 김덕령도 모두 그렇다.
광주를 빛 낸 사람들, 광주에는 광주의 정신을 일깨우는 명사들이 참으로 많다.
이 정신은 향기 나는 세상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그들도 그러하였겠지만 우리도 오늘 좋은 선생님 만나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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