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5월 9일 화요일 비
“형, 애들하고 애 엄마 영주권이 나왔어. 이젠 걱정 없어. 형이 걱정해준 덕분이야” 12살 차이가 나는 막내동생 영표의 전화다,
5년 전 애들하고 3남매를 미국으로 공부하러 보내고,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생명과학연구소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이영표 박사다.
“정말이냐 ? 그래 잘됐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더니 결과가 좋아서 정말 좋구나.” 영주권이 나오면 학비 등 여러 가지로 혜택을 본단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았는데 이젠 한 숨을 놓겠다.
작년 후반기에 모르는 사람의 전화가 왔다.
“이영표 팀장님과 함께 근무하는 사람인데요. 팀장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유성 선병원까지 모셔드리긴 했는데요. 형님한테 연락을 드리라고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안사람과 함께 급하게 달려갔다.
침대에 누워 인사불성인 동생을 보니 가슴이 찡했었다.
“영표야. 왜그래 ? 어디가 안 좋아서 그래 ?
“형 왔어 ? 미안해. 형 나 추워. 이불 좀 덮어줘”
나하고는 달리 착실했던 동생이지만 처자식을 모두 외국으로 보내고 혼자서 밥 챙겨먹기 등 생활이 쉬웠겠나 ? 외로운 건 또 뭐라 표현할 수 있겠나.
여러 가지 검사 결과 괜찮다는 통보를 받고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왔지만 혼자 있는 동생을 한 번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형으로서 가슴이 저렸었다.
“영표야. 우리 집에도 좀 들려라. 식사라도 같이 하고, 반찬이라도 나눠먹자”“형 괜찮아. 주말마다 엄마한테 가서 국이고 반찬이고 가져와, 난 잘 있어. 걱정 마” 항상 긍정적이던 동생의 태도로 잘 있는 줄만 알았지 속으로 골병 드는 줄은 몰랐었다. 막내아들이 조지아 대학에 합격했지만 영주권 승인이 나오지 않으면 대학에도 입학하지 못할 사정이었으니 얼마나 따갑게 지냈을까 ?
내 일처럼 기쁨이 가슴 속에서 밀려온다. ‘정말 다행이다’
“형 나 내일 투표일이라 노는데 형 농장에 일하러 가도 돼 ?”
“일은 ? 시골 가서 일하고 왔대매. 너도 쉬었다가 출근해야지. 형 걱정은 마”
“형, 엄마 집에 가서 일해 드리느라고 형을 한 번도 도와드리지 못해서 그래.”
“그럼 일 한다 생각 말고 한 번 놀러 와”
“응. 형 내일 몇시쯤 출발해 ?” “8시쯤 될거야” “8시 ? 형 요샌 6시면 밝어”
이 게 어제 저녁 전화다.
“형, 출발했어 ?” 7시도 안 돼 재촉한다.
“영표야. 지금 비가 와” “비오면 어때. 우비 있잖아” 죽어도 올 기세다.
“나 지금 밥 먹어, 20분 후에 출발해라”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하나 ?’ 빗속에서 함께 할 일을 찾기가 애매하다.
‘좌우지간 가 보자. 정산에는 안 올지도 모르잖아’
정산에 도착해서 우비부터 사고, 참으로 빵과 우유도 준비했다.
영표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둘이서 우비를 입고 나섰다.
비 오는 날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전지하느라 잘라서 나무 밑에 흩어 놓은 나무 토막을 치우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이 걸 치워야 예초기도 하고 비료도 줄 수 있다. 혼자서는 너무 힘들 것 같아 망설이던 일이었다. 미끄러운 산 속에서 칙칙하게 비를 맞으며 무거운 나무토막을 들고 던지고 나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영표는 주말마다 시골집에 가서 일하면서 단련된 솜씨인지 척척 잘 한다. 외려 나보다 더 잘하네.
‘자식, 비 오는 날 일 시켜서 미안하구나. 너 때문에 나도 힘이 난다’
참을 먹으며 집안 걱정도 나누다 보니 ‘이게 형제구나’ 생각이 든다.
12살 차이. 커가면서 항상 형을 어려워하며 자라던 모습도 사라졌다.
나 한테 말 걸기도 어려워 했었는데 이젠 스스름 없는 대화의 장도 펼쳐진다.
점심을 먹고서는 빗속에서 일을 시키기가 미안해서 “영표야. 오늘 수고했다. 비도 계속오고 하니 그만하자. 나도 쉬었다가 출근해야지”
“아냐 형. 이왕 온 거 몇 시간은 더 해야지. 형 혼자 하려면 어렵잖아”
굳이 고집을 부린다. 오후 늦게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젠 안 되겠다.
“영표야. 이젠 그만하자. 충분히 도와주었어. 내가 며칠을 할 걸 다했다.”
4시 반. 구름 속의 하늘은 훨씬 더 느즈막히 느껴진다.
“아냐. 형. 한 시간만 더 할게” “비가 많이 와. 그만 하자. 나도 쉬고 싶어”
차 한 잔 하라는 것도 뿌리치고 대전으로 떠난다. 이 게 형제구나.
저녁에 처남이 막걸리를 따라 준다.
“동생이 빗속에서 고생 많이 했지 ? 일 많이 하고 갔어 ?” 장모님께서 대견해 하신다. “뭘, 형이 공부 다 가르쳤다매. 그 정도는 해야지. 우리 형이 그랬다면 나는 더 했을 거야”
갑자기 가슴이 꽉 메인다.
밖으로 나와 빗방울이 떨어지는 구름으로 꽉 메워진 하늘을 바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