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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석가모니 부처님은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나 궁정에서 화려한 생활을 누리며 성장했다. 그러나 29세에 출가 수행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80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오로지 길 위에서 삶을 살다가셨다.
부처님의 생애는 한 인간이 태어나 출가하여 진리를 깨치고 부처가 되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부처가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부처님 같이 하면 반드시 부처가 될 수 있다. 불교를 믿고 행한다는 것은 부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부처님을 닮아가 결국에는 부처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부처님의 탄생, 청소년기의 고민, 출가 성도, 전법과 교화방법, 교단의 성립, 주요 제자들, 열반 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이를 통해 영원한 인류의 스승이며 등불이신 부처님의 생애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부처님을 본받아 부처님과 같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1. 싯달타의 탄생
1) 룸비니의 기쁜 소식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히말라야산 기슭의 작은 왕국 카필라에 커다란 경사가 생겼다. 마흔이 넘도록 후사가 없던 정반왕에게 왕자가 태어난 것이다. 마야 왕비는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중 잠시 들른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나무 가지를 잡고서 아기를 낳았다. 마야 왕비가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서 열 달 뒤의 일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동서남북의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내가 가장 존귀하다. 온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다 해결해 주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는 말을 하였다. 소식을 전해들은 정반왕은 태자의 이름을 ‘싯달타’라고 지었다. ‘싯달타’는 모든 것을 이룬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자식을 낳은지 이레 만에 마야 왕비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왕은 마야왕비의 여동생인 마하프라자파티에게 싯달타의 양육을 맡긴다. 마하프라자파티는 그 후 정성을 다해 싯달타를 보살폈다.
왕자가 태어나자 왕은 곳곳에서 오랫동안 수행해온 선인들을 궁으로 초대하여 왕자를 선보였다. 궁으로 초대받은 선인들은 한결같이 왕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왕자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였다.
“왕자께서는 앞으로 훌륭하게 자라나셔서 온 세상을 덕으로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궁을 떠나 수행자의 길을 택하신다면 깨달음을 이루어 세상에 빛을 비추는 부처가 될 것입니다.”
정반왕은 사랑하는 왕자가 혹시라도 궁을 떠나 구도자가 될까 걱정스러워 왕자의 성 밖 출입을 막고 궁에만 머물게 했다. 그리고 왕자의 주변에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일만 이어지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였다. 덕분에 싯달타 왕자는 자라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고 부족한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호사스런 나날을 보냈었다. 아버지의 왕궁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온갖 빛깔의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런 것들은 모두가 나를 즐겁게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나는 카시 지방에서 나는 향밖에 쓰지 않았다. 내가 입던 옷도 역시 카시산 이었다. 내가 밖으로 나갈 때는 언제나 양산을 들어주는 시종이 따랐다. 게다가 나는 겨울과 여름과 장마철에 그때 그때 편리하도록 꾸며진 궁전을 세 채나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장마철에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불교성전>
2) 남달났던 어린 시절
(1) 부족함이 없던 소년 시절
왕자는 매우 영특하였다. 왕자가 6살이 되자 궁궐의 법도에 다라 스승에게 가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는 스승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는 64개의 언어가 있는데 스승님께서는 어떤 언어로 학문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어린 왕자가 64개 언어의 이름을 하나씩 대면서 정중하지만 당당하게 질문을 던지자 스승은 자신의 한계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왕자님, 죄송합니다만 저는 두 가지 언어밖에 모릅니다.” <불설보요경-현서품>
또한 왕자는 무예에도 능해서 왕가의 소년들 중에 그를 따를 자가 없었으며, 다른 왕가의 후예들은 그런 싯달타 왕자를 언제나 부러움과 공경, 질시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싯달타 왕자는 자주 깊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부족한 것 없고 오직 쾌락만이 넘쳐나는 궁전에서 지내면서도 종종 알 수 없는 사색에 몰두하였다.
(2) 농경제의 명상
화창한 봄,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며 풍작을 기원하는 농경제에 정반왕과 싯달타 왕자가 참석했다. 농부들의 힘차게 땅을 갈자 겨우내 굳어있던 흙이 따뜻한 햇살 아래 파헤쳐졌다. 그러자 땅속에 숨어 있던 애벌레들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매 한 마리가 애벌레를 낚아채어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환희에 찬 봄날에 왕자는 약육강식의 현실을 목격한 것이다. 왕자는 그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생명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다른 생명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하지만 매도 그것을 먹지 않고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지 않는가.’
왕자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한참 후 축제에 정신이 팔려 있던 보모들이 왕자를 찾으러 왔을 때, 그들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을 목격하였다.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해를 따라 그늘을 옮겨가는데 왕자가 앉아 있는 나무 그늘은 움직이지 않고 사색에 잠긴 왕자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광경을 목격한 정반왕은 자기도 모르게 아들인 싯달타 왕자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3) 세상의 실상을 목격하다
싯달타 왕자가 자주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을 우려한 왕은 서둘러 아름다운 여인 야소다라를 왕자의 배필로 맞아들였다. 싯달타가 19세 되던 해였다.
어느 날 왕자는 말을 타고 성의 동문 밖으로 나갔다가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아주 괴이한 사람과 마주쳤다. 그의 얼굴은 주름투성이인데다 눈물과 콧물, 그리고 침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몸을 지탱하기위해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등이 활처럼 굽어 사지를 덜덜 떨고 있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기는 왕자에게 마부가 말했다.
“왕자님, 저 사람은 노인입니다. 왕자님이나 저 역시 나이가 들면 저렇게 늙어갈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싯달타는 노인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였지만, 자신도 저런 모습을 피할 길이 없다는 마부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왕자는 남문에서는 병자를, 서문에서는 죽은 이를 차례로 만났다.
‘대체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을 수는 없단 말인가?“
“누구나 저 시체처럼 죽을 수밖에 없단 말인가?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 것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저리도 슬피운단 말인가? 늙거나 병들거나 죽음이 없도록, 괴롭지 않도록 하면 되지 않는가?‘
다음날 왕자는 북문으로 나갔다가 남들과는 차림새가 다른 사람을 만났다.
“저 사람은 사문(沙門)입니다. 행복을 찾아서 집을 떠나 수행을 하고 있는 사람이지요.”
여기서 행복이란 바로 니르바나(nirvana)이다. 니르바나란 ‘불어서 끄다’라는 뜻이다. 불이 꺼지듯 번뇌의 불이 꺼지는 것을 말한다. 늙음과 병듦, 그리고 죽음이라는 고통의 불에 몸과 마음을 태우며 신음하는 사람들의 괴로움이 고요히 사라진 상태이다. 싯달타는 행복이란 말에 가슴 가득히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세상에는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넘어선 행복의 경지도 분명히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태어난 자는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생로병사의 엄연한 사실에 눈을 감게 하고 더 큰 쾌락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부딪혀야 할 존재의 결말에 대해 인간은 두려워하고 피하다 끝내는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는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이런 괴로움의 순환이 시작되었을까?
이상 왕자가 네 문에서 보았던 일들을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 한다. 싯달타 왕자의 사문유관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유하기 시작하는, 즉 머나먼 구도를 위한 항해의 시작을 암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출가와 고행
1) 출가를 결심하다
(1) 아들의 탄생과 출가의 결심
사문을 만나고 돌아오는 싯달타 왕자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윘다. 반면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정반왕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혔다.
과연 정반왕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그 후로 싯달타왕자는 부왕에게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여러 차례 청하였다. 그러 때마다 왕은 완강하게 거절하며 이렇게 달랬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 꼭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좋은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왕자의 결심은 확고했다.
어느 늦은 밤, 홀로 궁전을 거닐며서 언제쯤 출가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싯달타는 자신의 아들이 태어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싯달타 왕자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식하였다.
“아 , 네게 큰 장애가 생겼구나.”
왕자는 아기의 이름을 라훌라라고 지었다. 라훌라는 장애, 방해라는 뜻이다. 홀가분하게 가족과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려던 그에게 자식이 태어 났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출가를 막는 장애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일은 오히려 싯달타의 출가를 재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더 큰 애착이 생기기 전에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보고 떠나려던 왕자는 자칫 그들을 깨울까 봐 그만두었다. 그는 모두가 잠든 밤에 가족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성문을 나섰다.
(2) 성을 나서다
싯달타는 말을 타고 서둘러 성을 빠져 나왔다. 정반왕이 이상한 조짐을 눈치채고 있던 터라 몇 겹으로 성문을 잠가 두었지만, 싯달타의 출가를 막을 수 없었다.
마부는 울면서 마지막까지 싯달타를 말렸다. 심지어는 악마까지 나타나서 이렇게 속삭였다.
“이제 7일만 지나면 당신은 세상을 다스릴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7밀만 꾹 참고 기다려라. 그러면 온 세상의 부귀 영화가 모두 당신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악마의 속삭임도 왕자의 출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왕자가 탄 말발굽 소리가 정반왕과 도성의 사람들을 깨울까 봐 하늘의 신들이 말발굽 밑에 자신들의 손을 깔아서 소리가 나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성을 나온 싯달타는 말과 마부를 돌려보낸 뒤, 가지고 있던 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고 지나가던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었다. 이제는 누가 봐도 완벽한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바이샬리를 향해 길을 떠났다.
왕위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와 아들 라훌라마저 뒤로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와 간 이 날이 태자 나이 29세 되던 해 음력 2월 8일이었다.
2) 스승을 찾아서
(1) 요가행자를 찾아가다
부처님이 태어나실 무렵의 인도사회에는 매우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펴져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도는 계급제도가 엄격한 곳이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주로 종교는 브라만교였다. 당시 사람들은 태초에 브라만이라는 신이 있어 열을 일으켜 하늘과 땅을 낳고,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해냈다고 믿었다. 따라서 브라만은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이고, 우주의 본질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브라만 신을 찬양하는 의식을 집전하고 제사를 올릴 수 있는 자격은 사회의 최상위 계급인 바라문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바라문 사상을 부정하며 나타난 혁신적인 종교 수행자들은 ‘부지런히 수행하는 사람’ 이라는 뜻으로 사문(沙門)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바라문교의 성전인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고, 집을 떠나서 걸식 생활을 하며 수행하였다. 이들은 당시 신흥 도시의 왕후, 귀족, 부호의 정치적. 경제적 원조 아래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경전에는 당시 대표적인 사상가 여섯 명을 육사외도(당시 인도지방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6인의 철학자. 종교가의 유파)라고 부르며 여러 차례 소개하고 있다.
수행자 고타마(최상의 소란 뜻으로 부처님이 성)는 성을 나온 뒤에 이러한 사상가들이 대거 몰려 있는 바이샬리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요가의 대가인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찾아가 그들이 궁극의 경지라고 이야기하는 높은 선정의 단계를 체험하였다. 하지만 이 선정을 통해서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었다. 선정에 들었을 때는 번민도 괴로움이 사라지지만 선정에서 나오면 여전히 욕심과 어리석음의 존재 그 자체로 돌아갔다. 자신들의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고타마에게 그들은 자신들의 교단에 남아 함께 제자들을 가르쳐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고타마는 거절하고 그들 곁을 떠났다.
(2) 6년간의 치열한 고행
이제 고타마는 당시 많은 수행자들이 걸어갔던 치열한 고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고행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치열했다.
"나는 하루를 대추 한 알로 보냈으며, 멥쌀 한 알을 먹고도 지냈으며, 하루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윽고 이레에 한 끼를 먹고 보름에 한 끼를 먹었다. 그래서 내 몸은 무척 수척해졌다. 내 볼기는 마치 낙타의 발 같았고, 내 갈비뼈는 마치 오래 묵은 집의 무너진 서까래 같았다. 내 뱃가죽은 등뼈에 들어 붙었기 때문에 일어서려고 하면 머리를 처박고 넘어졌다. 살갖은 오이가 말라비틀어진 것 같고, 손바닥으로 몸을 만지면 몸의 털이 뽑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아, 싯달타 태자는 이미 목숨을 마쳤구나. 이제 곧 죽을 것이다'라고 ..."<불소행찬>
고타마의 고행은 6년이나 이어졌다. 그의 길고도 혹독한 고행은 그를 죽음 직전의 상태로까지 몰아갔다. 정반왕이 아들을 염려하여 보냈던 다섯명의 청년도 고타마와 함께 수행자로서 고행을 하였다.
당시 출가 사문이나 인도 사람들은 고행을 함으로서 욕망을 억제하고 정신생활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행을 한 사람은 신비하고 초인간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타마는 고행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게 되었다. 고행은 육체를 극단적으로 학대하기만 할 뿐이었다. 몸의 피폐는 정신의 피폐를 가져왔고, 그 상태에서 맞게 되는 행복의 경지는 결코 진정한 열반의 단계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고타마는 고행을 포기하였다. 그것은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풍조는 고행을 매우 중시 하던 터라 고타마의 고행 포기는 다른 수행자들로부터 ‘타락한 사문’이라는 모진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3. 성도와 초전법륜
1) 보리수 아래로 가다
고타마는 고행으로 지친 몸을 보살펴야 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네란자라강으로 가서 깨끗이 목욕을 했다. 때마침 그곳을 지니던 수자타가 고타마에게 정성이 담긴 우유죽을 공양 올렸다. 고타마는 우유죽을 마시고 기력을 되찾았다.
그 광경을 본 다섯 명의 수행자들을 경악하였다.
“저럴 수가 있는가? 고타마는 타락했다. 고행하는 자가 목욕을 하고 우유죽까지 마시다니 ... 이제 저자는 동료가 아니다.”
그들은 고타마를 비난하며 바라나시 녹야원으로 떠나갔다. 동료들마저 떠나자 고타마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았다. 그의 머릿 속에는 어떻게 하면 바르고 완전하게 행복한 경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고타마는 보리수 한 그루를 발견하였다. 마침 근처에서 꼴을 베던 사람이 자리에 깔고 앉을 짚을 공손하게 바쳤다. 경전에서는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고타마를 '보살'이라 부르고 있다. 보리수 아래에 짚을 깔고 앉은 보살은 결심하였다.
“바른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2) 악마를 물리치다
보살이 보리수 아래에 반듯하게 자리를 잡고 앉자 악마가 나타났다.
“일어서라, 수행자여. 그곳은 네 자리가 아니다.”
악마는 부처님의 일생 중 여러 번 출현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를 부처님이 인간적인 내면의 속삭임 또는 갈등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이끌기 위한 문학적 장치라고도 한다.
악마가 나타나 보살에게 온갖 공세를 퍼부으며 어서 보리수 아래에서 떠나라고 협박하자 보살은 차분하게 말하였다.
“나는 전생에 착한 일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
그러자 악마가 기세등등하게 물었다.
“그대가 전생에 지은 착한 일을 누가 증명하겠는가? 주변을 둘러보아라. 그대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연 악마의 위세에 눌려 보리수 주변에 있던 모든 신들마저 도망치고 아무도 없었다. 보살은 철저하게 혼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보살은 겁에 질리거나 당황하지 않고 참선 자세에서 조용히 오른손을 풀어 손가락을 땅을 가리켰다.
“이 대지가 내가 지난 생에 선업을 쌓아온 것을 증명하리라.”
그러자 대지가 크게 진동하였다. 이에 놀란 악마와 그 무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고 사라졌다.
악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보살은 이윽고 고요히 삼매에 들었다.
3) 부처가 되다
'사람은 왜 그리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가?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소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왜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태어나기 때문이다. 태어남이란 왜 생겼을까? 그것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보살은 자신이 품고 있던 의문들을 하나씩 사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찾아낸 근원에는 바로 존재에 대한 무지, 어리석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어리석음이 있기에 생명들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의 시간 속에서 나고 죽기를 반복하였던 것이다.
보살은 깊은 선정에 잠긴 채 천천히 사색해 나갔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는 연기의 진리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토록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 다니며 괴롭혔던 악마도 물리쳤고 세상은 지금 깊은 잠에 잠겨있다. 적막한 세상 속에서 보살만이 홀로 깨어 있었다.
그리하여 새벽별이 반짝이는 순간 보살에게는 더할 나의 없이 눈부신 세계가 문을 열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어가며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이 사바세계로부터 생사가 사라진 해탈열반의 세계가 보살을 향해 문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진 존재인지를 확연하게 아는 순간, 보살에게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렸다. 지금까지 지녀왔던 세상과 존재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에게는 밝은 지혜만이 자리 잡았다. 오직 지혜로만 충만해졌다. 그에게는 이제 나고 죽는 일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보살은 이제 깨달았다. 그는 부처가 되었다. 이 때가 부처님이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이었다. 이 날은 성도절이라 하여, 사실상 ‘불교’가 시작된 매우 뜻 깊은 날이다.
4)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오직 깨끗한 기쁨만이 가득 치올라 49일 동안 보리수 아래에서 진리를 깨달은 자로서의 완전히 기쁨을 만끽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을 누리던 부처님에게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가족과 제대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궁을 나선 것, 이제나 저제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정반왕, 그리고 그를 따르던 무수한 사람들, 깨달으면 이내 찾아와서 그 소식을 전해주겠다고 약속한 사람들..... .
마침내 연꽃 같은 눈을 들어 사방을 천천히 살피며 가장 먼저 이 가르침을 들을만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지 찾아보았다. 부처님은 자신을 성을 나와서 찾아갔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기억해 냈지만,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부처님은 다음으로 마지막까지 고행을 함께하였던 다섯 명의 수행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이 고행하고 있는 녹야원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녹야원에서 고행하고 있던 다섯 수행자들은 부처님이 다가가자 처음에는 무시하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부처님의 위엄과 자비에 압도 되어 자신들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난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친구여.”
그리고 부처님은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그들이 현재 닦고 있는 고행이 왜 그릇된 것인가를 지적하기 위해 ‘중도’의 가르침을 펼치셨다.
천천히 눈이 뜨이고 마음이 열리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부처님은, 곧이어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사라짐, 괴로움을 사라 지게 하는 여덟 가지 바른 길(팔정도)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를 들려주셨다. 다섯 명의 수행자 중에서 교진여가 가장 먼저 모든 번뇌를 완전히 없애 버린 성자의 경지에 들어 갔다. 곧이어 네 명의 수행자가 차례로 번뇌의 속박에서 완전히 풀려나 아라한이 되었다.
며칠 뒤 야사라는 청년이 친구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 법문을 들었다. 야사와 그의 친구들은 법문을 듣는 순간 마음이 열려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부처님과 그 제자인 60명의 아라한이 생겨나게 되었다. 아들을 찾자온 야사의 부모도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었다.
이리하여 세상에는 법을 설하는 부처님과 진리 이 가르침, 그리고 그 진리를 수행하는 제자들이 세 가지 보물, 즉 삼보가 갖추어졌다. 나아가 출가 제자와 재가신자가 모두 갖추어져 수행공동체인 승가가 이루어졌다.
부처님은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간과 신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전도를 떠나되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
인도의 북쪽 땅, 녹야원에서 구르기 시작한 진리의 수레바퀴는 이제 세상을 향해 튼실하게 자취를 남기며 그르기 시작하였다. 진리의 수레가 닿는 곳이면 사람들은 더 이상 슬픔과 괴로움과 번민의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내고 괴로움을 소멸할 수 있는 묘약이 수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4. 제자들의 귀의
1) 가섭 삼형제의 귀의
전도선언을 한 부처님은 마가다국 우루벨라도 향하였다. 그곳에는 마가다국의 위대한 종교가인 가섭 삼형제가 살고 있었다. 불을 숭배하며 제사를 지내면서 사람들의 두터운 신망과 귀의를 받고 있던 가섭 삼형제는 자신들을 추종하던 천 명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고 귀의하였다.
젊은 청년 석가모니(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으로 깨달은 후의 고타마 싯달타를 말한다)가 이들 모두를 교화한 사건은 마가다국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부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 자신이 벨루바나 동산을 기증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불교 최초의 절 죽림정사이다.
2) 십대 제자
(1) 지혜제일 사리불과 신통제일 목련
사리불과 목련존자를 비롯한 뛰어난 수행자들의 귀의도 이어졌다. 사리불과 목련존자는 어려서부터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진리의 스승을 찾아 함께 집을 나섰다. 둘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런 분을 만나면 서로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어 한 스승 아래에서 제자가 될 것을 약속하였다.
사리불은 지혜가 매우 뛰어나서, 부처님께서 간략하게 법을 설하시고 자리를 뜨면 도반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교화한 뒤에 열반에 들었다.
목련존자는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그는 신통력으로 중생이 죽은 뒤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는지를 환희 볼 수 있었다. 살아생전 악행을 일삼았던 자신의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우란분재를 올린 주인공이다.
부처님은 이 두 사람을 가리켜 중생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라고 칭찬하셨으며, 두 사람이 부처님보다 앞서 열반에 들자 법회의 자리가 텅 빈 것 같다는 탄식을 하실 정도로 슬퍼하셨다
.
(2) 두타제일 가섭과 다문제일 아난
‘두타’는 먼지를 털어내다는 뜻으로, 원리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수행한 가섭존자를 상징하는 말이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그는 아름다운 아내를 맞아들인 뒤에 아내와 함께 스승을 찾아 출가하였다. 부처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의 옷을 부처님께 바치고 부처님의 허름한 가사를 무려 받았다. 가섭존자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난 후 부처님이 가르침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5백 명의 아라한을 칠엽굴에 모이게 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모두 모으는 데 앞장섰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시자이다. 서서히 노년에 접어든 부처님이 아난을 시자로 삼고 싶어 하자. 자신에게 주어질 특혜를 거절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시자가 되었다. 온화한 성품의 아난은 부처님을 지극히 시봉하는 데에 자신의 출가생활을 다 바쳤다. 특히 기억력과 집중력이 매우 뛰어나 부처님 열반 직후 열린 결집에서 교리에 관한 부분을 전부 암송해내는 역할을 맡았다.
(3) 밀행제일 라훌라와 지계제일 우팔리
라훌라는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 낳은 아들이다. 처음에는 수행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많이 방황하였으나 부처님의 일깨움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정진에 임하여 큰 깨달음을 이루었다. 남의 눈에 뛰지 않을 때도 은밀하게 스스로 행할 바를 실천하여 밀행제일 이라 한다.
우팔리는 본래 석가족의 이발사였다. 석가족의 왕자들이 부처님을 따라나설 때 그들의 머리를 깎기 위해 함께 나섰다가 출가한 사람이다. 신분이 낮은 만큼 행동거지에 더욱 세밀하게 신경을 써 조금이라도 규율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 부처님 열반 직후 거행된 결집에서 율을 암송하는 큰 역할을 맡았다.
(4) 천안제일 아나율과 해공제일 수보리
아나율이 눈이 멀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다가 꾸벅꾸벅 졸던 아나율은 부처님의 꾸중을 듣고 평생 잠들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결국 시력을 잃고 말았지만 그 대신 사람들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생겼다.
수보리는 ‘공’의 이치를 가장 잘 이해한 제자이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하늘에 있는 생모인 마야 왕비에게 법문을 하고 내려오신 적이 있었다. 그때 모든 제자들은 부처님을 맞이하러 몰려 나갔다. 하지만 수보리는 육신의 부처가 아닌 공한 성품으로서의 세존을 맞이하는 것이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아 고요히 선정 속에서 부처님을 가장 먼저 맞이한 일화로 유명하다.
(5) 논의제일 가전연과 전법제일 부루나
가전연은 부처님이 활동하던 지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서인도 출신으로, 불교가 전파 되지 않았던 변방지역에 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퍼뜨린 사람이다. 특히 까다로운 교리에 대해 치밀한 의견을 개진하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부루나는 전법의 상징이다. 거칠기 짝이 없는 지역에 포교하러 갈 때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혀 부처님 마저 감탄하게 한 제자이다.
3) 비구니 교단이 만들어지다
부왕인 정반왕의 간곡한 요청으로 이루어진 부처님의 귀향은 카필라국 사람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왕가의 왕자들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였고, 싯달타 왕자를 길러준 마하프라자파티와 아내인 야소다라를 비롯한 카필라국 여인들도 부처님을 따라 출가제자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맨발로 부처님을 따라나섰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하락 받지 못하였다.
다행히 아난존자가 그들을 대신하여 부처님께 간곡하게 청하였고, 부처님은 여덟 가지의 조건을 내세운 뒤에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셨다. 이로써 마침내 여성 출가자, 즉 비구니 승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4) 승가의 정신
부처님께서 진리를 전파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앞다 투어 제자가 되었다.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이들은 하나의 수행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이것이 바로 승가이다. 온갖 강물이 제각각의 이름으로 불렸다가도 바다로 흘러들면 그 이름들을 모두 버리고 오직 바다라는 하나의 이름만을 지니듯이, 사람들은 출가하기 전에는 각자의 성과 이름과 계급을 지녔지만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면 부처님을 따라 ‘석’이라는 성을 갖는다.
승가에는 엄격한 계율이 적용되지만 부처님은 상황에 따라서 매우 탄력적으로 대응하셨다. 이런 부처님의 방침을 못마땅하게 여긴 데바닷다는 엄격한 계율을 내세우며 엄수할 것을 촉구하였지만, 부처님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하였다. 부처님은 규율과 귄위 아래획일화 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구성원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공통된 목표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울타리를 만들고자 하셨던 것이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실 때에도 후계자를 두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승가 구성원들의 자율성, 자발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승가의 덕목이 화합인 점, 의견을 수렴할 때는 만장일치제를 선택한 점 등도 승가에 대한 부처님의 운영방침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5. 길에서 만난 사람들
1) 급고독장자의 기원정사 건립
죽림정사와 함께 불교의 2대 정사로 꼽히는 기원정사는 사위국의 부유한 상인인 급고독장자가 부처님께 기증한 절이다.
급고독장자는 마가다국의 친구 집에 들렀다가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전률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부처님을 찾아가 설법을 듣고 크게 감화를 받아 고향으로 부처님을 초대 하였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건립된 기원정사는 불교의 거점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급고독장자는 평생 동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으며, 마음속 깊이 부처님을 향한 신심을 품은 재가불자이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부처님은 그런 급고독장자에게 대중들을 거느리는 네 가지 방법인 보시하고, 다정한 말을 건네며, 이로운 일을 하고, 함께 일을 하는 사섭법을 갖춘 사람이라고 친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는 재가불자의 가장 완벽한 본보기로 경전에 자주등장하고 있다.
2) 똥치기 니이다나를 만나다
인도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신분제도가 매우 엄격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성제도이다. 이 네 가지 계층에도 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상위 계급의 사람들은 부정탄다하여 그들과의 접촉을 아예 금하고 있었다. 똥치기 니이다나는 바로 그런 불가촉 천민이었다.
어느 날 아침, 부처님은 그런 니이다나에게 다가가셨다. 그는 부처님이 다가오자 당황하여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결국 등에지고 있던 오물을 쏟고 말았다. 부처님이 니이다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일부러 그대를 찾아왔는데 나를 피해 어디로가려 하느냐?”
“제 몸이 더러워 감히 부처님을 가까이 할 수없습니다. 저같이 천하디 천한 죄업 중생도 도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헤아릴 수 없시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하면서 부처가 된 것은 바로 죄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이다.”
교단에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올곧게 수행하여 깨달은 이들이 많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가 전생에 무엇을 했으며 어떤 팔자를 타고 났는가 보다는 현재 그가 어떤 생각을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가장 중시하기 때문이다.
3)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주리반특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면 머리가 좋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부처님 당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제자로 승단에 들어왔으니. 그 이름은 주리반특이다.
그는 너무 머리가 나빠서 아무리 간단한 가르침를 주어도 단 한 마디도 외우지 못하였다. 결국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승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자신의 처지가 가여워 슬피 우는 주리반특에게 부처님은 빗자루를 건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라 ‘먼지를 털자’라는 말만 반복해서 외워라.”
주리반특은 그날부터 오직 ‘먼지를 털자’라는 말만 반복해서 외웠다. 하지만 머리가 나빠서 ‘먼지’를 생각하면 ‘털자’라는 말이 생가나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그 두 단어만을 생각한 결과, 그는 먼지가 마음 속의 번뇌를 가르키며, 털어낸다는 것은 오직 지혜를 닦음으로써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서서히 뛰어난 경지를 다가갔던 것이다.
진리를 깨우치는 데에는 머리가 좋고 나쁜 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온 몸과 마음으로 절실하게 체험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것만이 성자의 길에 제대로 들어서는 길임을 부처님은 가르쳐주신 것이다.
3) 희대의 살인마 앙굴라마라
앙굴라마라는 스승의 아내의 모함으로 스승에게 무시무시한 지시를 받았다.
“백명의 사람을 죽여서 그들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라. 그러면 그대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너무나 순수했던 앙굴리마라는 스승의 지시를 어길 수가 없었다. 그는 이내 칼을 들고 거리로 나섰으며 결국 99명의 목숨을 빼앗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 백 번째 희생자로 자신의 어머니를 해치려고 하였다. 그 순간 부처님이 그곳으로 나아가서 앙굴리마라의 끔찍한 살인을 막았다.
희대의 살인마를 잡기 위해 당시 군대까지 동원될 정도였지만, 부처님은 평온하고 담담한 보습으로 앙굴리마라의 손에서 흉기를 내려놓게 하였다. 그리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 진리 속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출가 후에 탁발을 하러 나간 앙굴리마라는 사람들의 모진 비난과 매질을 받아야 했지만 자신의 죄업에 대한 과보로서 기꺼이 받아들였고, 완전한 참회를 통해 새롭게 수행자의 길을 걸어 갔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는 귀한 목숨이라는 사실을 입중해준 사례이다.
5) 물싸움을 조정하다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와 이웃 부족인 콜리야는 로히니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양쪽 부족 사람들은 물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해 강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몇 사람의 입씨름에서 비롯된 싸움이 급기야 군대까지 동원 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접한 부처님은 서둘러 분쟁지역으로 달려 가셨다. 그리고 이렇게 물으셨다.
“그대들은 물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하오?”
“물보다는 사람이 훨씬 소중합니다.”
“그런데 물 때문에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버리려고 합니까? 그건 옳지 못한 일입니다. 부디 마음 속에 원한을 품지 말고 살아가시오. 원한을 벗고 고뇌도 벗고 탐욕도 벗어 좋고 살아가시오.”
부처님의 중재로 싸움은 끝났다. 하마터면 피로 물들 뻔한 로히니강은 다시 두 부족의 소중한 식수원이 되었다.
부처님은 세속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떠난 분이셨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먼 곳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현명하게 중재를 하셨고, 이런 부처님의 교화로 인해사람들은 마음 속에서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의 불길을 끌 수 있었다.
6) 부왕의 임종
부처님 당시에는 가장 높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출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분이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족과 집안의소중한 인연을 소홀하게 여기기 십상이었다.
부처님이 고향을 방문하였을 때 카필라국의 왕족들이 부처님께귀의하여 출가하였다. 홀로 남은 정반왕은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야 했고 노년에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부처님은 그 당시 마가다국에 머물고 계셨는데 부왕이 위독하다는 소리를 듣자 한걸음에 고향으로 달려가셨다.
임종을 앞두고 사랑하는 아들을 만난 정반왕은 부처님께 자신을 극락세계로 인도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부처님은 부왕의 이마에 손을 얹고서 고요한 목소리로 이렇게 축원하셨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왕의 덕은 청정하며 마음의 때도 없어 졌습니다. 조금도 걱정하거나 괴로워 마십시오. 지금까지 들어온 진리와 선행을 기억해 내십시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십시오.”
정반왕은 아난과 손자인 라훌라를 비롯한 뛰어난 수행자들에게 둘러 싸여 부처님의 손을 잡고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부처님은 후세에 사람들이 포악해서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는 불효자들이 많이 생길 것을 우려해, 몸소 부왕의 관을 메고 화장터로 가려 하셨다. 그 때 하늘의 신들이 부처님의 뜻을 알고 부왕의 관을 자신들이 메기를 청하였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향로를 들고 관 앞에 서서 화장터로 향하였다.
7) 귀한 인연을 놓친 사람들
부처님은 누구를 만나든 단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법을 설하였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종종 아쉽게도 그 귀한 인연을 놓친 사람들에 대해소개하고 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직후 녹야원의 다섯 수행자를 만나려 가기 직전에 우파카라는 이교도를 만났다. 우파카가 부처님께 물었다.
“당신은 얼굴이 매우 환하게 빛이 납니다. 대체 어느 분 밑에서 수행을 하십니까?”
부처님 대답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긴 자요, 모든 것을 안 자이다. 나를 견줄 만한 자도 없고 나를 가르친 자도 없다. 나는 깨달은 자 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파타는 “어, 그래요?”라고만 대답하고는 지나쳐 가버렸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 그 나라에 80세가 된 부자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관찰해 보니 이 사람은 그날 이 다가기전에 세상을 떠날 목숨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줄도 모르고 열심히 집을 증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부처님 그를 찾아가서 물으셨다.
“노인장, 얼마나 고생스럽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집들은 누가 살려고 이렇게 화려하게 증축하십니까?”
“사랑채는 손님용이고, 별당은 내가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식솔들을 모두모아서 각각 방을 하나씩 줄 것이고, 하인들이 잘 방도 마련 중입니다.”
그런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노인장의 이름은 익히들어 왔습니다. 마침 생사와 관견된 중요한 게송이 하나 있어 들려주고 싶은데, 잠 깐 일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아, 제가 지금 너무나 바쁩니다. 뒷날 다시 오시면 그 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노인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부처님의 설법을 거절하였다 부처님께서 안타가운 심정으로 그곳을 떠나셨고, 잠시 후 노인의 머리위에 서까래가 떨어져 노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법구비유경>
불교는 그 무엇보다도 자발성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자신에게 생로병사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아무리 채워도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법문을 들어도 단지 듣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법문이 자기 것이 되고 내면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때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왜야하면 부처님은 그런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길은 안내자일 뿐, 나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6. 위대한 최후
1) 부처님 말년의 슬픈 일
사람들에게 괴로움과 번뇌, 탐욕과 성냄을 벗어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함 설법을 해온 부처님도 어느덧 노년에 달셨다. 그러나 부처님이일생은 순타하지만은 않았다. 노년의 부처님에게는 세가지 불행한 일있었다.
코살라국의 유리왕이 카필라국을 치기위해 군대를 몰고 간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서둘러 길을 나섰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큰 길 한가운데에 고요히 정좌하시고 코살라국 군대가 오기를 기다리셨다. 부처님을 발견한 유리왕은 마차에서 내려 절을하고 여쭈었다.
“길가에 서늘한 나무 그늘이 있는데도 어찌하여 길 한가운데 뙤약볕 아래에 계십니까?”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친족의 그늘이 나무 그늘보다 더 시원합니다.”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린 유리왕은 군대를 돌렸다. 이렇게 하기를 세 차례, 하지만 카필라국이 빌미를 제공한 터였으므로 부처님도 유리왕을 더이상 말릴 수 없었다. 결국 카필라국은 멸망하였다.
두 번째는 부처님이 너무나 소중하게 여겼던 사리불과 목련존자가 부처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건이다. 사리불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집에서 최후를 맞이하였고, 목련존자는 이교도들의 박해를 받아 순교하였다. 부처님은 두사람이 떠난 후 교단을 둘러보며 매우 허전해하시면서 세상의 덧없음을 거듭 말씀하셨다.
세 번째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인 데바닷다가 교단을 분열시킨 일이었다. 그는 마가다국의 왕자 아사세를 부추겨 왕위를 찬탈하게 하고 자신이 교단의 제일인자가 되려고 계획하였다. 아사세는 부왕인 빔비사라를 추출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데바닷다는 끝내 부처님을 해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사촌이자 제자인 데바닷다가 교단을 분열시키고 부처님에게 해를 가하려 한 것은 부처님의 일생과 교단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2) 마지막 여정
부처님께서 35세에 깨달음을 이루신 뒤 45년의 세월이 흘렀다. 45년 동안 부처님은 인도 곳곳을 맨발로 다니시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 자비의 마음으로 가르침을 펼치셨다. 어느덧 80세에 이른 부처님은 이제 마지막 전법의 여행에 나셨다. 아직까지 부처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파하면서 천천히 쿠시나가라로 나아가셨다.
어느 날 시자 아난은 두 손으로 부처님의 발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탄식하였다.
“거룩하신 몸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심하게 주름이 졌습니다.”
그러자 주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대의 말과 같다. 지금 여래의 몸은 온통 주름 투성이다. 오늘의 이 몸은 예전의 몸과 다르다 몸이란 병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병들어야 할 중생은 병의 핍박을 받고, 죽어야할 중생은 죽음의 핍박을 받는 법이다. 지금 여래는 나이 80이 넘었구나.” <증일아함경>
이 세상에 영원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아무리 불생불멸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 육신은 인연에 따라 무너지기 마련이다.
또한 틈나는 대로제자와 신자들에게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자주 들려주셨다.
아난이여, 나는 이제 늙고 지쳤다. 인생의 기나긴 길을 걸어와 어느 새 노령에 이르렀다. 여든 이 되니 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의 도움으로 간신히 움직이는 것과 같구나. 세상은 이 처럼 덧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부디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섬으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하라.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마하파리닙바나경>
부처님의 이와 같은 유언은 [대반열반경]에도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 (自燈明 法燈明 자등명 법등명)
스스로에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 (自歸依 法歸依 자귀의 법귀의)
인간은 덧없는 준재이다. 그러면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렇게 불완한 자기 자신이 바로 깨달음을 이루어가는 중임을 거듭 강조하셨다. 부처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 믿고 의지할 만한 대상은 자기 자신과 부처님이 남겨놓은 법 밖에 없다는 말씀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부처님은 서서히 최후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리셨다. 어느 날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
아난은 부처님 안 계신 세상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디 가서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듣고, 마음 속 의문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만연했던 것이다. 마지막 당부를 거듭 간청하는 아난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수행자들은 내게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나는 안팎의 차이를 두지 않고 진리를 설하였다. 제자들에게 마지막 진리를 숨기는 ‘스승의 주먹’은 내게 없다. <마하파리닙바나경>
한 종교의 지도자가 마지막까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심오한 경지를 끝가지 제자들에게 일러 주지 않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마지막 경지를 알기 위해 스승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이요, 이를 통해 스승의 권위를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활짝 열었다. 그르침을 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도 숨김없이 그대로 설명해주었다. 주먹 속에 뭔가를 감추어 두고서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강조하는 다른 교조들과는 처음부터 달랐다.
나아가 부처님은 자신이 떠나고 난 뒤 제자들이 당황하거나 방황할 것을 우려하여 틈틈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이미 경과 율을 말했으니 너희들은 그것을 잘 받들고 실천해라. 그러면 나는 항상 너희들 속에 있는 것과 같으리라. <불반니경>
3) 최후의 안식
이제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대장장이 춘다에게 공양을 받으신 뒤 에 부처님은 혹독한 병에 걸리셨다. 병든 몸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쿠시나가라의 조용한 들판, 사라나무 두 그루가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는 곳이었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이르셨다.
“피곤하구나. 내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저 나무 사이에 깔아다오. 누워야겠다.”
부처님은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우셨다. 아난은 슬픔에 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부처님을 가까이 섬긴지 25년. 그 에게 있어 부처님은 위대한 진리의 스승이기 이전에 따뜻한 피가 통하는 형님과도 같은 존재,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늙고 병들어 최후를 향해 가고 있는 부처님을 지켜보는 일은 그 에게 고통이었다. 아난은 부처님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통곡을 하였다. 부처님은 사람을 시켜 아난을 불러온 뒤에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셨다.
아난아, 슬퍼하지 말라. 내가 이미 사랑하는 것과는 헤어지게 마련임을 말하지 않았더냐? 생겨난 것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아난아, 그대는 오랫동안 자비롭고 순수하고 한결같은 몸과 마음으로 고타마를 보살펴 왔다. 그대는 내게 참 좋은 일을 해주었다. 머지않아 번뇌의 티끌이 사라진 사람이 되리니 쉬지 말고 정진하라. <마하파리닙바나경>
사람들은 자기 마을에 부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들은 병석에 누운 부처님을 꼭 한 번만이라도 뵙고 말씀을 듣고 싶어 하였다. 아난은 쇠약한 부처님을 염려하여 그들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부처님은 그런 아난을 말리며 사람들에게 가르침를 베푸셨다.
그 후 부처님은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물어셨다.
“수행자들이여, 무엇이든 물어 보아라. 훗날 여래가 세상에 머무셨을 때 물었더라면 하고 후회하지 말고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지금 물어 보아라.”
그 지리에 있던 제자들은 이미 성자의 경지에 들어 있었기에 아무도 부처님께 질문하지 않았다. 잠시 제자들의 대답을 기다리다 부처님은 마지막 말씀을 베푸셨다.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름 피지 말고 정진하라.”
그리고 나서 조용히 선정에 드신채로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셨다.(음력 2월 15일)
이때 사라나무가 홀연히 아름다운 꽃을 치우더니 열반에 드신 부처님 몸 위로 향기로운 꽃을 흩뿌렸다. 길에서 태어나 일평생 맨발로 길을 다니시며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의 가르침을 베푸신 인류의 스승, 위대한 성자는 그렇게 길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것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래가 세상에 나올 때에는 다섯 가지 일을 하니, 첫째는 법의 바퀴를 굴리는 일이요, 둘째는 부모를 제도하는 일이요, 셋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을 믿음의 땅에 세우는 일이요, 넷째는 보살의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 보살의 마음을 내게 하는 일이요, 다섯째는 장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다. <증일아함경>
이 다섯 가지 일을 모두 이루고 우리 곁을 떠나신 석가모니 부처님. 만약 내게 부처가 될 자질이 없었다면 이 때에 서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여 법을 펼칠 이유는 없다. 아직은 마음 속에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가득차 세상과 자꾸 다툼을 벌이며 괴로워하는 중생이지만, 팔십 평생 부처님이 살아가신 길과 베푸신 말씀을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내 생명의 참주인인 진정한 자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중생인 내 자신에게도 여래와 같은 지혜가 있음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부처님은 이 땅에 오셨고 그렇게 열반에 드셨다. <법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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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부: 차익(찬다카)-> 부처님도 생애에서 어쩔 수 없었던 가장 골칫거리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