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신32:1-7)송구영신예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니체가 말했다는 사람도 있고, 단재 신채호 선생이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누가 말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역사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교훈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미국 대통령이자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인 토마스 제프슨은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을 평가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 미래를 판단하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역사라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비록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과거의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내일을 예측할 수 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모든 현상 역시 과거의 결과입니다.
과거라는 뿌리가 현재라는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말해주는 사건이 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했습니다.
지난12.3 비상계엄령 선포가 바로 그렇습니다.
똑같이 군사반란을 일으켜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노태우가 군부독재시대를 연장시킨 역사를 보았을 것이고, 그 말로가 어떠했는가를 반세기도 전에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여는 이 시대에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불의한 독재 정치권력을 계속 이어가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불의 항거하고 막아선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지난 과거 불행했던 역사를 경험했지만
지난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는 사람과 그 역사를 우습게 여긴 사람의 극명한 태도를 우리는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합니다.
지난 과거라고 우습게 여기거나 쉽게 생각하면 이런 불행이 답습되고 반복되어 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불행한 역사를 또 경험할 수 밖에 없는가?....
그렇게 군사무력으로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도 그 주범들을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한 구테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는 설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공한 쿠테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고 철퇴를 가했더라면, 오늘 이 같은 일이 반복되었을까? 불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집니다.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나서 일제청산을 제대로만 했다면
오늘과 같이 곳곳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었을까......
아직도 일본의 만행을 미화시키고 일본 식민지 지배 때문에 대한민국이 발전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할 수 있을까?.....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자가 조선침략의 선봉에 섰던 자위대 창설기념식에
참석하고도 당당하게 얼굴을 내비치는 나경원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같은 사람은 그 할아버지가
일본에 충성하는 친일사관을 가진 집안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친일사관을 가진 자가 지금 국민희 힘당에 얼마나 많습니까?
왜 그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좌우지 하게 놔둡니까?
역사의식이 없고, 역사에 무지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가 쌓여 오늘이 되고, 오늘이 쌓이면 미래가 됩니다.
오늘의 나를 보면, 과거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수 있고,
오늘의 나를 보면 내일의 내가 어떨지가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만큼 과거라는 것은 중요한 자산이며, 정보이며,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면 안 되며,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국가도 그렇지만, 개인에 있어서도 똑 같습니다.
누구나 때로 잊고 싶은 과거도 있습니다.
기억조차 하기 싫고, 지우고 싶은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흑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나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흑역사를 까먹을 수는 있지만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과거든 불행한 과거든 그 과거를 무시하거나 잊어서는 안됩니다.오히려 과거를 소중히 여기고 반면 교훈을 삼아 살아야 합니다.
왭니까? 과거를 잊어버리면, 그런 흑역사를 반복하기 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미래를...희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역사를 무서워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승정원일기라는 왕명의 출납을 기록한 역사책이 있습니다.
또한 사초가 있고, 실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은 아무리 왕이라고 함부러 보지 못했고, 더더욱이 고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더 무서워 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야사라는 것입니다.
궁에서 사관이 기록하는 사초나 실록과 다르게 일반 백성이 왕을 바라보며 기록한 책입니다.
뭡니까? 왕이라도 그만큼 과거역사에 대한 엄중함을 알게 했고
그가 어떤 왕으로 역사의 기록에 남겨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왕노릇 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뿐 아닙니다. 우리나라 양반들은 집집마다 족보를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족보는 그 가문의 역사책입니다.
그래서 자기 가문을 소중히 여기고, 명예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역사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차츰 역사에 대한 두려움과 소중함을 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역사의 준엄함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자기 가문에 대한 역사도 잘 모릅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가문의 명예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족보를 이야기하면 터부시하고, 시대착오적 사고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이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성경이 뭐가 필요합니까?
성경이 수천년 전에 기록된 것이라고 무시합니까?
왜 수천년 전의 일을 기록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까?
이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의 정체성이며, 아이덴티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수천년이 지나고 수만년이 지나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이요,
성경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과연 부끄러움을 알고 살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겠습니까? 내 멋대로, 막살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시대에, 한국교회에 사라진 것이 바로 부끄러움입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당당합니다.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왭니까? 역사를 우습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경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란 엄중함이며,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그 두려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됩니다.
역사가 오늘 우리를 어떻게 기록할지를 의식하게 됩니다.
지난역사는 미래의 예언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역사는 모든 학문의 기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괴테는 역사를 모르고 산다는 것은 흑암에서 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또한, 역사를 무시하면 과거 불행했던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고 가르쳐준 성경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경이 바로 사사기 아닙니까?
사사기에 보면, 반복된 패턴이 하나 있습니다.
사사기에는 대략 12사사가 나오는데, 사사마다 반복된 패턴이 뭐냐하면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어져 나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 그 죄의 댓가로 고난을 당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는데, 또 얼마 못가서 죄를 짓고,
또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구해주시고,
또 얼마 지나 그 자손들이 부모들과 같은 죄를 반복하는 이런 패턴이 사사기 내내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옵니다.
왭니까? 지난 역사를 잊어버리는데서 오는 불행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역사서입니다.
왜,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으로 남기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지나온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역사를 통해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곧 역사이십니다.
역사가 곧 하나님의 임재임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그것이 곧 성경입니다.
그래서 잊지 말고 후손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의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행위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목숨처럼 여긴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목숨처럼 여긴 것은 하나님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2가지를 유언처럼 남깁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지난 과거 역사를 잊지 말라는거 아닙니까?
역사를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과거 없이 어찌 오늘이 있었겠으며, 오늘이 없이 어떻게 미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말한거 아니겠습니까?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과 그 역사를 귀 담아 듣고
또 어른들에게 물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과거 불행했던 조상들의 불신앙의 죄를 반복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속에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그런데, 부모가 역사에 무지합니다. 자식들도 무지한게 당연한 겁니다.
옛날을 기억하라.....그냥 단순히 옛날을 기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과거 역사를 기억하라는 겁니다. 이 말씀이 계속 반복되어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읽은 이 신명기가 무슨 책인지 아십니까?
무엇을 기록한 책인지 아십니까?
과거 출애굽에서 광야에서 있었던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입니다.
신명기란 거듭명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재차 반복해서 말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매몰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무시해서는 더더욱 안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거가 없이 현재의 내가 없는 것이고,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우리교회에 일어났던 일을 간략하게 만이라도 늘 사진을 찍어놓고 또 컴퓨터에 기록으로 남깁니다.
10년 전에는 10사를 저 뒤 게시판에 기록해 놨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올해는 20년이 되는 햅니다.
그래서 저 뒤에 보시면 20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두란노교회가 10년 20년 아니 그 이상으로 계속 대를 이어서 존재할 수 있을까?
또 그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그 생각을 많이 해 봅니다.
과연 우리두란노교회의 미래는 어떨까?....
그 미래는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어떻게 믿음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24년이 가고 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어떤 한해가 될지가 기대됩니다.
24년보다는 더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한해로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작년 한해를 잊지 말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고치고 바꾸어 나가서 작년에 했던 후회가 올해는 반복됨이 없도록
발전되고 성숙한 성도로서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