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12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정도 많이 들었던 진돗개, 진순이가 있었다.
얼마나 영리한지 낯선 사람이 오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짖어댔는데,
희한하게 펜션 손님들에게는 꼬리를 살살 흔들면서 재롱을 있는 대로 떨었다.
개가 어찌 이렇게 순하냐고 손님들이 물어보면,
“주인에게 돈 갖다 주는 사람한테는 절대로 안 짖어요.”
농담같이 대답하곤 했는데, 정말 우리에게 경제적 도움이 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용케 구분했던 건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몇 년 전 무더운 여름날, 진순이가 피부병에 걸렸다.
동물병원에서 먹는 약과 뿌리는 약 3주치를 받아와서 치료했지만
이상하게 차도가 없었다. 또 약을 지으러 가니 3주 동안 낫지 않은 걸 보니
노환인 것 같다고,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한다.
하루가 다르게 피부는 더 벌겋게 살이 드러나고, 가려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그 고통이 보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하루는 잠시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나를 쳐다보는 눈이 얼마나 애절한지,
곧 임종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와 보니, 눈을 뜨고 숨을 거둔 상태였다.
12년이나 정이 들었다보니, 정말 자식을 잃은 것처럼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얼마나 대성통곡을 했는지, 마지막 나를 쳐다보는 애처로운 눈빛이 자꾸만 생각나서
가슴이 아려오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만 12년에서 정확히 이틀이 빠지는 날, 진순이는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원 동산에 고이 묻어주고 잘가라는 인사를 하고,
이제는 이렇게 슬픈 이별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개를 절대 기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 마당까지 밥 주러 갈 일도 없고, 눈이 오거나 강풍이 부는 날도
걱정할 강아지가 없어서 몸도 맘도 편하게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 사람이 살면서 ‘절대’라는 말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12년 정들었던 진순이를 노환으로 보내고, ‘절대’ 개는 안기르겠다고 다짐했는데,
남편이 지인 집에서 족보있는 새끼 진돗개 한 마리를 입양해온 게 아닌가.
아직 새끼라서 그런지 인형처럼 작고 귀엽다.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고, 아직은 어리니,
거실의 따뜻한 난로 앞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쳐다볼수록 사랑스러운 게, 반려견들을 자식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진순이를 보내며 마음 아팠던 순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예쁜 새 식구와 동거할 생각에 신이 났다.
작명도 했다. 뽀얀 백구인데다, 백곡저수지의
'백'자와 미당리에서 '미'자 한글자씩 따서 ‘백미’라고 지어주었다.
산골의 겨울은 적막하다 못해 쓸쓸하다.
개 한마리쯤 자식처럼 키우는 것도 우리 삶의 기쁨이고 활력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백미와의 설레는 동거가 시작됐는데,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일이 자식 키우는 것처럼 힘들 줄이야!
보기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같이 너무 귀엽지만~
방바닥, 카펫, 가리지 않고 똥, 오줌을 마구 마구 싸대니...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이를 키울 때도 처음엔 의사소통이 안 되다가 점점 서로에게 적응해가듯이,
얼마 지나보니, 이제는 서로 사인이 통한다.
'똥마려운 강아지 같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똥마려울 때는 난리가 난다.
끙끙거리면서 현관문을 긁으면 볼일을 보고 싶다는 신호다.
신호를 보내면 현관문을 열어주고, 그럼 밖으로 나가 데크 한 곳에서 조용히 해결한다.
이 역시 자식이 똥오줌을 가렸을 때처럼 볼수록 기특하다.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내 운동화 끈과 겨울 신발을 물어뜯고,
또 어떤 날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낙엽, 솔가지 할 것 없이
현관에 물어다 놓아 너무 지저분해졌다.
백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니~
정말 이 나이에 막둥이 자식을 하나 더 키우는 기분이다.
이제 봄을 알리는 입춘도 지나고, 백미도 꽤 자라서
마당에 있는 자기 집으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한없이 귀엽고 아기 같던 백미가 우리집 지킴이 역할을 하니~뿌듯하다.
백미야. 잘 할 수 있지?
출처 :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
첫댓글 백미!
하얀 이쁜이!
옛날 쌀이 귀할때 하얀 쌀을 보면 정말 예뻤었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니
즐거움을 받는 만큼 수고도 하셔야겠지요~~
백미라고 남편이 지었지만
어찌 개 이름으로는 좀 합당치 않은 것 같기는 한데....
맞아요! 세상에 공짜는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