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산성과 금마 저토성(익산) (12-27회 : 연번 150회차) 답사 결과
용화산(342m) 정상부에서 산성의 흔적을 찾아내기 까지는 여러 번 묻고 해서 발견하게된다.
성태봉(城胎峰) 정상에 있다해서 성태봉산성이라고 적혀있는데, 많은 등산객들에게 물어도, 현지 주민이라는 사람조차도 생전 처음 들어본다며 의아해 한다.
용화리에 있는서동공원의 학예연구원실에 들러 물어보아도, 용화산 등산길만 안내받는다.
용화산 정상은 서동공원에서 2.6km지점에 있고, 거기서 또 2.6km를 더 가면 아리랑고개로 이어지고 미륵사지 뒷산인 미륵산 (461m)줄기와 이어진다. 빨리 갈 욕심으로 지름길이라고 여겨지는 용화리 용화사 옆의 용화산 선바위암 뒤로 길도 없는 산속을 10여분 헤집고 올라가서 주 등산로를 만난다. 119 등산구조안내표지를 보니 구간번호1-5 서동공원까지 1km라고 쓰여 있으니 정상까지는 1.6km가 되는 셈이다. 서동공원에 주차하고 등산하고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제법 북적인다.
헬기장에 다가가니 남쪽으로 미륵산 정상이 보이고 동쪽 나무숲 사이로 천호산도 보인다.
헬기장을 돋운 부분이 혹시 성터인지 의심도 해보면서 둘러도 보고는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헬기장에서 정상 가는 중간쯤 급경사지에 설치한 줄받침이 있는 부분에 이상하게 급경사에 박혀있는 돌들이 성돌만 같아보인다. 동문지가 아닌가 의심하면서 결국은 정상까지 올라간다. 정상에는 민간인 묘 1기가 훼손을 방지하기위해서 둘레에 줄을 친채 자리하고 있었다.
용화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서동공원, 아리랑고개까지 거리가 각기 2.6km임을 안내해주는 푯말만이 서있다.
혹시나 해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내려가면서 성터를 찾아보면서 지나가던 주민이라는 사람에게 물어도 본다.
용화산에 산성이 있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다는 말에 어이도 없고, 나중 다시 만났을 때 '찾았느냐'고 물어왔을 때까지도 답답하기만 했다.
산정상에서 따가운 햇살에 좌우 사방을 둘러보며 땀을 식히다 아무래도 아까 오르던 문지로 추정되는 높이의 부분으로 내려가본다. 경사진 정도나 산 언덕 형상이 틀림없는 성벽의 형태인데 잡목 숲에 확인할만한 것이 눈에 뜨이질 않는다. 마침 조금 큰 나무 밑에 성돌 부스러기 같은 것이 보이고, 개이빨(견치석)같은 성돌이 삐죽하게 낙엽사이로 보인다. 낙엽과 풀을 헤집고 이웃한 돌까지도 드러나게 해보니 분명 성돌, 기단부이다. 오른쪽으로 조금 더 찾아보니. 제법 성벽 기단부로 보이는 부분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비로서 성임을 확신하게 된다. 성지기까지 합세해서 본격적으로 더듬어서 확인하게 된다. 마침내 성벽다운 부분까지 보고서야 용화산성의 실체와 만난 감격을 맛본다. 산성있다는 말은 선생한테 처음 들었다는 마을 주민에게 알려주고픈 생각이 문득 든다. '유레카'
동북쪽 천호산성이 마주 보이는 지점에서 다시 올라와 마음 놓고 산지기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갈증어린 목을 축인다.
마음조리며, 답답해있던 심사가 풀린다. 미륵산 일대를 다시 조망해보고는 오던 길로 내려간다. 오른쪽 등산로 옆길에서 성벽 허물어진 부분까지 확인하게 된다. 올라올 적에 의심했던 부분이 성문지일 가능성이 한층 확실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허물어진 성벽위로 지나다녔음에도, 성인줄도 모르고 지나다닌 것이다.
용화산성 안내판 조차 없으니 당연하리라.
풀숲에 파묻히고 그저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니 오는이 가는이 밟기만 한 것이리라.
수많은 성돌들은 다 어데로 사라진 것일까?
동남쪽 아래로 금마저수지가 보인다.
제자와 함께 점심을 들고 난 후에 금마저수지에 올라 용화산 모습을 바라본다.
금마저수지에 드리운 용화산의 산그림자속에 무슨 사연이 있을까?
건축년도를 보니 1941년도 일제시대에 축조한 저수지, 그렇다면 저 산의 성돌들이 사용된 것은 아닐까?
점심후에 금마저토성을 찾아나선다.
일명 도토성이라고도 하고, 굿대숲 토성이라고도 하고, 서낭당이 있었고, 여단도 있었다는 곳, 거기에는 보기 힘든 굵은 대나무 밭이 둘러쳐져 있었다. 정자 아석정(我石亭)을 보고나서 대나무 숲을 헤치고 찾아간 곳에서는 한참 대나무 벌채 중이었다.
토성 벽에는 왕대나무가 밀림을 이루고 있다. 토성벽이 이중으로, 삼중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태풍에 대나무도 쓰러져 있고, 소나무는 찢어져 있고, 관리가 안된 산 속 여기저기 예비군 참호진지 흔적만이 많다.
오래 전에 세운 도토성 안내표지판을 발견한 곳에서 북쪽으로 난 물없는 해자인 황(隍) 부분과 토성벽을 확인한다.
산지기의 열성때문에 덤으로 보게된 토성 그곳은 할 얘기가 많이 담고 있을 백제식 토성이다.
<미륵사지를 앞에 품고 있는 미륵산(461m),
동쪽에 용화산(342m), 북쪽 산북리 너머 낭산리에 낭산이 있고, 용화산 동쪽 산줄기에는 천호산이 천호산성을 이고 있다.>
<대동여지도로 본 용화산, 낭산, 미륵산 일대 산세 >
<1:5만 지형도로도 본다>
<서동공원안에 있는 관광 안내지도에는 용화산성이 없다. 미륵산성, 낭산산성, 금마 도토성은 있어도,>
<서동공원 안에 있는 마한관, 월요일이라 박물관은 휴관중이라 옆의 사무실에 들려 자료를 얻다>
<용화리에 있는 용화산선바위암(굿당) 뒤로 해서 용화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잘 난 등산로길을 따라 정상 못미쳐서 만난 헬기장. 나무에 가리는 정상보다 이곳에서 미륵산, 천호산, 금마 일대 조망이 좋다.>
<정상 못미쳐서 급경사에 보조밧줄이 있는 곳: 성돌로 의심되는 데다 경사가 성벽의 모습이다.>
<용화산 정상. 산성 안내는 어디에도 없다.>
<정상에는 민묘가 장대지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 서동공원, 아리랑고개로 가는 이정표 푯말이 서있다. 멀리 산아래로 금마저수지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미륵산성이 있는 미륵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아리랑고개 쪽 기슭을 더듬어본다. 혹시 성의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 까해서, 천호산성에서 본 숫돌 형태의 암석만이 나뒹군다. 여산면의 여자가 숫돌 여(礪)자라는 생각이 난다.>
<한참 만에 성벽 추정되는 근처에서 성돌 모습을 보고 찾아내기 시작한다.>
<성벽 잔해들>
<제법 성벽 모습을 갖춘 부분을 발견하다.>
<이어서 동벽의 북쪽으로 돌아올라가면서 더 크게 나타나는 성벽의 흔적들>
<성벽 위의 경사진 면으로 성지기가 올라간다.>
<남쪽 성벽의 잔해들 : 바로 위로는 등산길이 나있지만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동문지로 추정되는 곳 또한 성벽의 잔해들임이 확인된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남쪽 미륵산의 북쪽 산모습>
<금마저수지(1941년 왜정시대 축조됨)에서 바라본 용화산: 우측 높은 봉우리가 정상.
저수지 건너 오른쪽에는 마한관이 있는 서동공원이 있다.>
*(금마저토성(=도토성) 자료는 추후 다시 올릴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