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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해 1월부터 제주올레 코스를 걷기 시작했는데, 길을 걸으면서도 4.3의 아픈 역사가 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때문에 아름다운 풍광보다는 곳곳에 4.3의 흔적과 동굴, 무덤, 오름 그리고 과거와 현재 제주 사람들의 생활을 좀더 가까이서 엿볼 수 있는 마을과 돌담, 밭담 등에 관심이 더 갔다.
올레 18코스, 경관이 수려한 별도봉을 지나 만나게 되는 잃어버린 마을터 곤을동에서는 그곳에서 실제 살았던 어느 할아버지로부터 당시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었고, 어느 민박집 할머니로부터는 광치기 해변, 성산일출봉 주변에서 자행된 학살 목격담을 직접 듣기도 했다.
10코스 아름다운 송악산 주변, 예비검속에 의해 무참히 생매장 당한 학살의 현장 섣알오름과 백조일손지묘,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희생과 꽃같은 어린아이들 주검이 형상화돼 있는 19코스 북촌 너븐숭이...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쁜 정방폭포, 그러나 동굴 속에서 숨어지내던 마을사람들이 마침내 발각되고..., 바로 이 폭포 위에서 굴비엮듯 손이 묶인 채 까마득한 폭포 아래로 비명에 간 슬픈 역사를 떠올린다면 마냥 아름다운 풍광만으로는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제주4.3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에, 4.3을 다룬 이번 지슬의 개봉은 내게 좀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제주에서 개봉 첫날 아내랑 이 영화를 보고 뭔가 미진함이 남아있어 엊그제 다시 한번 관람하게 됐다. 이 영화는 직유법이 아닌 은유와 상징이 많아 딱 한번 보고 감독의 의도나 메시지가 금방 와닿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1948년 11월 중순경 제주도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해안선 5km 밖의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흉흉한 소식에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마을사람 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어디서부터 일어나고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토벌대를 피해50여일 동안 ‘큰넓궤’라는 동굴에 피신을 하며 겪게되는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주4.3을 직접적으로 들춰내는 것보다는 많은 은유와 상징법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4.3을 조명하고 있다. 이를 테면 연기, 지슬(감자), 폭낭(팽나무), 도새기(돼지), 까마귀, 동굴, 오름, 정길이, 어린아이... 등이 그것이다.
또 흑백영화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영화의 뼈대를 최대한 단순화시키며, 반복적인 대비를 통해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절제미와 영상미가 매우 뛰어난 예술성과 완성도 높은 영화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무겁고 우울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람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과, 제사형식을 빌어 억울하게 희생당한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해원 解寃)하고, 미래지향성을 제시(상생 相生)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사진적 시각에서 흑백사진의 특징 활용과 은유, 상징법의 효과성을 음미하고 배우기에도 매우 훌륭한 영화라 생각된다.
인트로 (도입부)
운해가 가득한 제주 상공. 마치 1만 8천여 신들이 머무는 구름 위에서 신의 시선 하이 앵글로 저 아래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영화는 시작되는데, 그 아름다운 영상미에 혼이 쏙 빠진다. 이 영화의 기획이 故 김경렬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로부터 비롯됐음을 보여주는 메시지와 함께...
이어 연기가 가득찬 모두가 피난을 떠난 텅빈 집. 마루바닥에 제기가 나뒹굴고, 음산하게 칼가는 소리..., 그 사이를 헤집는 한 사내가 얼쩡거린다. 마치 귀신이 제삿밥을 먹으러 온 집안을 배회하는 형상으로...
섬뜩해 보이는 칼로 배를 싹둑 잘라 걸신들린 듯 먹기를 탐하는 두 사내. 이 칼이 나중에 살인을 맙먹듯 저지르며 손맛을 즐기는데 이용되는 칼이라는 걸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두운 세계에서 울부짓는 원혼들을 대변하듯 잿빛 하늘로 향한 앙상한 마른 나뭇가지, 휘몰아치는 바람소리, 무섭게 밀려드는 거친 파도는 조만간 제주에 불어닥칠4.3의 비극적인 운명의 파고를 예고하는 듯 하다.
한편, 난리와 피난 와중에 미제 총을 훔쳐 가지고 온 만철이와 주변 사람들의 주고받는 일상 이야기, 일본과 친하게 지냈던 마을 삼춘과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듯 너그럽게 넘어가는 마을사람들, 일제 강점기에도 별일이 없었다며 아픈 다리 때문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무동이 어머니...
이런 소소한 장면들은 자칫 무겁고 불편할 수 있는 제주 4.3에 관한 이 영화가 사건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제 영화는 안덕면 동광리 큰 넓궤에 숨어지내는 마을 사람들과 마을을 점령한 토벌대를 중심으로 반복적인 대비와 프레임을 단순화시켜 제사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신위 神位 : 죽은 사람의 영혼을 모셔 앉힘>
토벌대가 점령해 있는 어느 마을. 온통 눈으로 뒤덮인 마을 한 가운데서 헬멧을 쓰고 발가벗긴 채 벌을 받고 있는 한 병사의 씬으로부터 첫 챕터가 시작된다.
도화지 같은 순백의 하얀 눈 속에 까만 선으로 이어지는 돌담과 초가집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왔을 폭낭(팽나무) 한그루. 눈시리게 아름다운 광경에 압도가 되지만, 이내 가혹하고 잔인한 상황을 인식하고 혼란에 휩싸이며 잠시 맨붕 상태가 되기도 한다.
아마 현재 제주도의 외형적인 아름다운 풍광 이면에 감취진 슬프고 고통스런 제주의 역사를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의 숨은 의도가 있는 듯 하다.
통시(야외 화장실) 옆 헛간 같은 곳에 삐죽 튀어나와 바르르 떨고 있는 사람의 발과 상사의 명령에 따라 이어진 사살. 빨갱이를 아직 한 놈도 못잡았다며 혹독한 추위에 벌거벗긴 채 찬물을 끼얹는 등의 가혹행위. 토벌대가 점령한 그곳에는 잔혹한 살인과 폭력이 일상적으로 행해짐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추운 눈밭에서 새로운 피신처가 될 동굴을 찾는 마을주민 들. 실소를 자아내는 의미없고 실없는 대화, 도새기 밥을 걱정하는 이웃 삼춘.... 살벌하고 늘 긴장이 감도는 토벌대의 상황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느슨한 분위기이다.
다시 토벌대. “너 사람죽일 수 있어?” 여기 있으면 죄없는 사람도 다 죽여야 해“ 신참 군인들의 대화에서 당시 어쩔 수 없이 상부,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만 하는 선량한 군인들의 처지와 그들 역시 4.3의 피해자이자 희생양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상사들은 빨갱이에 이를 갈며 쉼없이 칼을 갈거나, 마약에 중독돼 “밥(마약)을 달라” “기집애라도 잡아오라”며 온갖 악행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 당시 학살을 일삼던 제주 9연대 정보과장은 매일 몰핀을 맞아야 하는 마약중독자였고, 제주 출신의 군경이 진압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북한에서 빨갱이에게 피해를 입은 이북출신의 서청(서북청년단)이 대거 제주도에 투입되었다.
다시 주민 쪽. 내일 모레면 금방 나갈거라며 위안을 삼고 도새기 접붙이는 이야기, 노총각들의 여자 이야기,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렇듯 토벌대와 피난민 양쪽의 대비는 흑백사진에서 특징적으로 보여지는 뚜렷한 명암의 대비, 필요한 부분만 단순화시켜 주제에 집중하는 방식을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신묘 神廟 : 영혼을 모시는 장소>
두 번째 챕터는 지슬의 포스터 장면이 된 용눈이 오름의 분화구에서부터 시작된다. 눈 시리게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과 그 안에서 여리고 무고한 순덕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신참 일병의 갈등. 아름다운 풍광과는 다르게 현실은 너무나 슬프고 비극적이다.
4.3의 잔인했던 참상은 이번 씬에서 더욱 고조된다. 백상병은 신참들에게 “밥쳐 먹으려면 폭도들 목따오라”며 압박하고, 빨갱이 색출에 혈안이 된 서청단 간부는 순덕이의 젓가슴에 칼을 그어대며 “너 같은 빨갱이는 씹어먹어도 성에 안찬다”면서 겁탈을 하고, 마약쟁이 상사 또한 낄낄대며 차례로 겁탈을 일삼는다.
을씨년스런 분위기 속에 초가 위의 까마귀 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알리듯 처연하게 울어댄다. 그러고 보니 일찌기 변시지의 그림 속에서도 제주 초가와 까마귀는 단골로 등장하고 있었다.
패륜적 악행을 목도하며 백일병은 “저런 여자도 폭도입니까?”라고 대들다 신참과 함께 원산폭격 기합을 받고..., “차라리 쏴버렸어야 한게 아니야?” “아니, 그래도 사는게 나아” “폭도가 있기는 있는거냐?” “폭도 때문이 아니라 좃같은 명령때문에 생고생하고 있다”며 문답을 주고 받는다.
순덕이에게 연민을 느낀 백일병이 한밤중 순덕이에게 지슬(감자)을 주러갔다 자신을 겁탈하러 온 군인으로 오인받아 순덕이가 쏜 총에 맞아죽고, 순덕이는 다시 상병의 총에 사살된다. 사살된 순덕이를 확인한 마을의 만철이와 상표, 분노와 오열을 삼키며 오름의 능선을 미친 듯이 뛰어 올라간다.
아름다운 오름의 능선과 별 총총한 밤하늘, 숨진 순덕이의 봉긋한 젓가슴이 천천히 디졸브되며,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숨막히게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가슴 속에 남는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고 할 만큼 오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각각의 오름마다에는 제주 사람들의 얼과 혼이 서려있다. 오름은 마을을 잉태하고 목축업의 근거지가 되고 제주 개벽의 신화를 창조하고 항쟁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인터넷 인용). 감독은 이런 오름의 의미를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상기시켜 주고싶었나 보다.
이어 군인과 서청단원은 광기어린 살인을 자행하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마을을 불사르고..., 잔인한 상황 들을 차마 보여줄 수 없어 화면은 온통 뿌연 연기로 처리된다. 目不忍見 참상의 진실이 여태 감춰져 왔기에 아마 감독은 이런 기법을 택하고 있는 것일게다. 모든 과정을 목격하는 정길이,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음복 飮福 : 제사음식을 나눠 먹음>
학살과 방화 와중에 신참 군인은 양민을 피신시키고 총을 맞아 부상을 입는다. 마을 주민들이 군인을 따뜻하게 맞고 보호하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순덕이의 죽음 과정을 지켜본 만철이는 군인을 죽여야 한다며 울먹인다.
토벌대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져 은신처가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경찰의 아들인 순진한 청년 상표는 군인들을 유인하겠다며 뛰쳐나가 천방지축 오름을 뛰어다니다 결국 붙잡히고 만다.
상표가 갇힌 헛간 안은 처참한 살육의 현장. 필시 도새기 밥을 주겠다며 내려온 이웃 삼촌의 시체였을 터. 상표는 기겁을 하고 모든 걸 다 불테니 살려달라고 절규를 한다.
긴박한 외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이 은신해 있는 동굴 안은 그저 평화롭고 차분하다. 마치 무덤 속에 갇힌 듯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서로 “군인은 다 나쁜 사람이 아니다.” “순덕이 빨리 찾아야 하는데...” 소곤 소곤 담소를 나누다 이미지화되어 반딧불 마냥 동굴 안을 부유한다. 風前燈火와도 같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이들의 앞날을 상징화한 것이다.
빨갱이 색출에 혈안이 돼 있는 서청단원은 칼로 할머니를 살해한다. 왜 총대신 칼일까?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살맛이 나지 않는다며 늘 칼을 갈며, 손맛을 유지(?)하는 서청단원의 엽기적 행각 때문이다. 이런 설정은 결코 허구가 아니다. 제주4.3 평화공원을 방문해보면 당시의 이런 상황들이 생생히 기록돼 실제였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빨갱이가 뭐길래...” 칼에 맞아 쓰러져 가면서도 할머니는 자기를 찾아올 아들을 위해 지슬을 가슴에 품고, 살육과 겁탈과 방화가 휩쓸고 간 마을은 잿더미만 남는다. 어머니를 다시 모시러 온 무동이는 처참한 광경과 불에 타죽은 어머니의 품안에 지슬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해하며 고개를 떨군다.
그 주위를 예의 그 까마귀는 변함없이 울어대고,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하늘을 향해 머리를 풀어헤친 폭낭은 구천을 떠도는 원혼의 형상으로 비수처럼 가슴에 꽃힌다.
황망한 상황에서도 무동이는 산 자를 위해 구워진 지슬을 챙겨 동굴 안 마을사람들에게 전하며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 애써 속내를 감추고 슬픔을 깊이 삼킨다. 그 지슬은 바로 무동이 어머니의 제사음식인 셈이다.
<소지 燒紙 : (죽은 영혼들의 편안한 안식을 염원하며) 종이를 태움>
동굴 안의 마을 사람들은 죽음을 예감한 듯 그동안 가슴 깊숙이 아껴왔던 말들을 어둠속에서 주고 받으며 화해를 이룬다.
여태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물길러 나르고, 심부름만 하던 정길이는 악행을 일삼던 상사를 가마솥에 넣어 끓이며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에게 “이제 그만 좀 죽이세요. 잘가요.”라며 읊조린다. 영화내내 감독은 혹시 자신을 정길이로 투영시켜왔던 것은 아닐까?
은신처인 동굴이 발각돼 마을사람 들은 매운 고추를 태운 연기로 토벌군의 진입을 저지하려는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고..., 만삭의 몸으로 함께 피신을 하지 못하고 이전 동굴 안에 남아있던 무동이 아내의 주검과 새로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교차한다.
이제 죽은 자와 산 자, 아픈 과거와 미래의 희망이 교차되며, 구천을 떠도는 가엾은 영혼들이 편안히 하늘로 올라가 안식할 수 있도록 지방을 태우는 소지 의식이 엄숙히 진행된다.
동굴 안 모자의 시신 위에, 악마와도 같았던 상사가 들어간 가마솥 위에, 겁탈 군인으로 오인받아 사살된 선량한 박일병 위에도, 도새기를 가족의 일원으로 여겼던 마을 삼춘과 순덕이, 할머니 그리고 인트로에 보였던 제기가 널부러진 방안에도....
영문도 모른채 비명에 간 수많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가 돋보이는 이 숙연한 하이라이트 씬 소지의식. 레퀴엄과도 같은 장엄한 음악이 무겁게 흐르건만..., 심란해진 마음은 좀처럼 수습되지 않고, 영화를 볼 때면 주책맞게 자주 흘리던 눈물조차 지금은 나오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의 4.3사건에 대한 최초 진상조사 언급과 특별법 제정 관철, 국가공권력의 인권유린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등 공식적인 천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3 폄하와 역사왜곡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진한 여운으로 가슴이 먹먹한 가운데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향토색 짙은 주제곡 ‘이어도 사나’의 애잔한 가락과 함께 잔잔히 흐르며 감동을 더해주고 있다.
앞으로 이 영화를 보는 분들이라면 성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엔딩 크레딧이 다 끝날 때 까지 자리에 앉아 진중하게 음미해 볼 일이다.
☞ 제주에 지슬이 개봉되던 날 사진 슬라이드 http://youtu.be/KfJG7x-YwLE
첫댓글 victor님.. 지슬 영화 리뷰 감사합니다. 저도 영화 보고 나서, 어떻게 전달해 드려야 할지 고민 이였는데..
자세한 리뷰 작성보고서 저도 또 한번 보러 가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주나폴레옹님, 반갑습니다. 언제 한번 뵙고 싶군요. ^^
네, 아주 자세한 내용을 보니, victor님께서도 제주도에 계시나요?
혹시 저의 연락처 남겨 드립니다.. 010-6362-2753입니다...
네. 직장에서 제주도 발령받아 작년부터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때 드빙 열혈 팬이었는데...,
최근 제주도 웰빙여행 방이 만들어진 걸 보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연락처 고맙습니다. 연락 리지요. ^^
빅터님 지금 제주도에 계시나요?
지난번 제주도 갈때 뵐걸 그랬네요.
이번에 가면 꼭 뵈어야겠습니다. ^^
허여사님, 방가 방가^^
제주생활 2년째 접어들었어요. 네, 꼭 함 뵈요.
근데 미국생활은 끝내고 들어오신건가요?
드빙에 워낙 오랜만이라 허여사님 소식을 잘 몰랐어요.^^;;
슬픈 과거사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오름에 올라 일몰을 보면서 아름답다만 생각했는데 슬픈영혼을 생각하는 시간도 가져야겠군요.기회가 되면 영화 보겠습니다.
네, 호응에 감사드리고요,
저예산 독립영화이지만 예술성과 완성도가 높은 영화로 평가받고 있으니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