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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8.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기사 요약 우리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식민사관증명 학술대회 열렸다.
강원도 춘천시 국립 춘천박물관에서 한국 고대사학회와 한국상고사학회의 연합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장을 요약하면 서기 238년경,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 위나라가 낙랑, 대방이 설치된 서북한 지역을 넘어 충청, 전라, 경상도까지 접수했다는 뜻이다. 사실상 중국 <삼국지> 조조 위나라의 지배를 받았다는 얘기다. 바꿔말하면 중국 땅이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313년 평양에 있던 낙랑군이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을 받고 사라질 때까지 중국 땅이었던 셈이다. 서울대학교 김장석 교수는 서양 고고학 이론을 가지고 강원도 지역을 풀려고 했다. 이날 발표에서는 중국의 공손씨가 평양의 낙랑군 아래 황해도에 대방군을 설치했다고 보았다. 충북대학교 사학과 전진국 박사는 중국 공손씨가 대방군을 이용하여 ‘한반도(마한, 진한, 변한)를 지배했다고 말한다. 그의 발표문 밑바탕에는 조선총독부 식민주의사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발표 초반부에 “시기적으로는 그 지역에서 3세기 하한까지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백제라는 국가는 없었다는 말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백제가 BCE 18년에 개국했다고 한다. 또 개국 초기에도 분명히 강력한 왕권이 작동하는 고대국가를 암시하는 기록들이 나온다. 이날 발표자들은 강원도 지역을 중국 사료, <삼국지>를 기준으로 풀려고 했다. 실제 충북대학교 전진국 발표자는 강원도 지역 교류관련하여 중국사료를 써서 발표하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엉겹결에 실토했다. 우리 사료인 <삼국사기>는 중국 사료, <삼국지> 해석을 위한 보조자료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삼국지>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인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삼국사기>를 보면 삼국초기역사를 불신할 이유가 없다. <삼국사기>에는 같은 시기에 강력한 고대왕국을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삼국지>는 촌락수준의 작은 국가들이 난립할 뿐 강력한 고대국가로써 고구려, 백제, 신라는 보이지 않는다. 이날 도시개발공사에 적을 두고 있는 윤용구씨는 낙랑군과 대방군이 강원도는 물론 이하 지역을 지배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의 발언을 직접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관구검 때 한번 다 뒤집어 엎고 낙랑과 대방, 2군에서 동예사람들을 다 징발을 했다. 요약하면 평양과 황해도에 설치된 중국 식민기관 낙랑군과 대방군이 강원도 영서지방까지 지배했다는 얘기다. 이 지역에 있다던 동예사람들을 전쟁에 쓰려고 징발하고 경상도에 있다던 진변한의 철도 낙랑대방군에 공급케 했다는 말이다. 인천 도시개발공사에 적을 두고 있는 윤용구 박사는 이날 중국 식민기관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강원도는 물론 이남지역도 '통치'했다고 보았다. 충북대학교 사학과 전진국 박사는 “낙랑, 대방군을 접수한 조조의 위나라의 군 태수는 삼한의 수장들에게 인수를 내려주고 읍장의 벼슬을 더해준다.” 라고 주장했다. 한 토론자는 고구려가 산성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3세기 후반 4세기 넘어서라고 했다. 여기에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숨어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강원도의 고대 정체성에 대한 공정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충남대학교 박순발 교수는 학계에서 여러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을 '공정'이라고 한다면서 중국 동북공정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했음을 드러냈다.
박순발 교수가 ‘공정’이라는 말을 일부러 쓰면서 벌이고 있는 춘천강원지역의 정체성 찾기가 중국 동북공성과 일치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발표회가 끝나고 방청석에 질문할 기회를 짧게 주었다. 춘천 중도 선사유적지대책 이야기도 나오나 기대를 하고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있었다.
또 중도유적지의 가치를 외국 유명학자들이 중요 유적으로 평가한다는 얘기도 전했다. 그러면서 살아있는 유적지를 앞에 두고 탁상공론이나 벌이는 것이 말이 되냐며 주최측을 질타했다. 질문도 했는데 중도유적지 환호시설이 언제적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이에 박순발 교수가 ‘원삼국’ 시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고조선 유적지라는 것이 중론인데 서기 4세기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춘천 중도유적지 보존투쟁을 벌이고 있는 현혜신선생은 방청석 질문시간을 이용해서 춘천 중도유적지 가치를 강조하고 이에 무관심한 학술발표 개최측을 강하게 질타했다. 살아있는 역사가 여기있는데 탁상공론만 하고 있으냐고 꾸짖었다. 이어 김종문 춘천 중도유적 보존단체 대표가 유적에 대해 한 몇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관련 전문학계에서 발표한다기에 기대하고 왔는데 기대에 못 미쳤다고 비판했다. 이에 박순발 교수는 답변을 거절했다. 같은 유적지인데 환호는 원삼국시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고인돌과 대규모 집터, 유물을 제시하며 물으니 이렇게 모르쇠로 회피한 것이다. 분명히 고고학자, 상고사학회가 동원된 발표회다. 그런데도 이런 대답을 내놨다. 춘천 중도유적지를 고조선 것으로 인정하기 싫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날 발표 마지막 발언은 국민대학교 김재홍 교수가 했다. 그는 ‘춘천과 강원도 지역문화를 전국에 확산하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로 확산하는 게 목적’ 이라고 했다. 또 ‘강원도 고대문화를 외부에 알리지는 것이 가장 큰 목적’ 이라고 했다. 이제까지 발표내용을 보면 결국 강원도는 물론 한반도가 중국지배를 받았다는 중국 동북공정보다 더 심한 ‘공정’ 문화를 퍼뜨리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춘천 중도유적 보존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종문 대표가 개최측에 소감을 내놓고 있다. 또 춘천 유적지 보존가치를 알렸다. 경희대학교 강인욱 교수는 발표문을 통해서 강원도 문화는 외래영향을 받아 생겨났다는 관점을 철저히 관철 시켰다. 특히 러시아 연해주 크로우노프카 문화가 들어와 강원도 문화를 이끌었다는 논조를 유지했다. 발표주제는 ‘옥저계 문화의 확산으로 본 강원도 중도식 토기문화의 정체성과 대외교류’였다. 정인성 영남대학교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세 번째 발표는 전진국 충북대학교 박사가 맡았다. 발표주제는 ‘중국 문헌을 통해서 본 3세기 이전의 한반도 중부지역’이다. 국립 춘천박물관 중앙 왼쪽 석기시대 전시관 입구에 새겨놓은 우리역사 머리부분. 어김없이 중국 식민기관 낙랑군을 새겨놓았다. 우리역사가 사실상 중국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역사학을 지배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은 낙랑군을 우리역사 주 무대에 올려놓는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부터 전국의 모든 국립박물관이 이렇게 해 놓고 있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식민사관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중국 북경 국가박물관에도, 일본 역사관련 모든 박물관에도 이렇게 새겨놓고 있다. 신광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사도 낙랑군 재평양설을 철저히 바탕에 깔고 논리를 전개했다. 강원도 중심의 사관을 외쳤지만 내용은 결국 중국 식민기관 낙랑군이 중심이었다. 다섯 번째 발표자 광진구청 윤성호박사도 마찬가지로 중국 식민기관 낙랑군을 첫 머리에 내세웠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음 전제하고 낙랑군이 소멸되자 고구려와 백제가 만나게되어 충돌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발표에 앞서 김상태 국립 춘천박물관장이 환영사를 했다. 지난 2018년부터 진행하는 이 대회는 올해를 이어 다음해에도 하겠다고 알렸다. 강원도 중심 역사를 조명하는 것이 개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정용 강원학 연구센타장이 말을 이어갔다. 강원도가 오래된 미래라며 강원문화 정체성 찾기를 하겠다며 향후 학술총서를 발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발표된 동북공정보다 더한 내용을 담은 것을 책으로 내서 알리겠다는 것이다. 공적기관에서 동북공정을 찬양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이어 한국 고대사학회장 이수훈 부산대 사학과 교수가 인사말을 했다. 그는 이날 발표회가 여러단체가 연합해서 뜻이 깊다면서 지역찬양, 미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자료와 고증으로 엄밀함을 바탕으로 오늘 학회를 주관하게 되었다고 자부했다. 국립 춘천박물관에 전시된 토기류들. 쌓여 있다고 할 정도로 발굴된 토기들이 많았다. 정교함과 다양성, 물량면에서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특히 도구에서 고도로 발달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물들이 종류별로 일관성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공동체를 다스리는 수장이 갖는 상징물이다. 중국이나 일본 등 우리와 역사전쟁을 벌이는 지역에서는 이런 일관된 우수한 유물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전역에 걸쳐 출토되며 충북 소로리에서는 1만5천년전 물 벼농사를 한 볍씨가 발굴되어 세계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놀란 것은 또 있다. 토기들이다. 강원도에서 그렇게 많은 토기들이 나왔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형태의 대형 뾰족 토기부터 시루토기에 이르기까지 가히 토기백화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이런 유물을 놓고 볼 때 어떻게 중국의 <삼국지>와 중국 식민기관, 낙랑군, 대방군을 북한 평양과 황해도로 설정해 놓고 강원도를 온통 중국 식민기관 지배를 받았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는지 말문이 막힌다. 고고학을 전공했다고 하는 교수들 모두 낙랑군 재평양설에 서 있다. 이들은 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설사 중국제 유물이 몇 개 보인다고 할지라도 박물관 유물 앞에서는 감히 끼여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그 몇 개 유물로 중국이 강원도는 물론 남부지방까지 영향을 주었다거나 지배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소설보다 더한 망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이들에 의해서 조선총독부와 동북공정하는 중국 공산당 지배를 받고 있다. 우리정신세계가 그들의 손아귀에 있다. 석기시대 맷돌인 갈돌과 갈판이 이채롭다. 사진 오른쪽 하단 두번째 곡식이 놓인 도구다. 이 도구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퍼져 있다. 주로 집중 발굴되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 홍산문화지로 알려진 요녕성 서쪽과 내몽골 적봉지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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