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반올림 26
마리나 부도스 지음 | 김민석 옮김
신국판 변형|240쪽|값 9,000원|바람의 아이들 펴냄
ISBN 978-89-94475-13-4| 2010년 12월 30일 출간
∎ 출판사 리뷰
9.11 테러, 그리고 미국의 불법체류자 가족
2001년 9월 11일 평화로운 화요일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뉴욕 시민들 머리 위로 한 대의 민간 항공기가 나타났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낮은 고도, 그리고 설마 하는 순간, 그 비행기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중 한 곳에 충돌했다. 총 4대의 민간 항공기 탑승객들을 포함해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낸 9.11 테러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테러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거대한 폭력 속으로 몰아넣었다. 전쟁은 탱크와 미사일을 앞세우고 명명백백하게 벌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미국 이민자 가족의 악몽 같은 한때를 그려 보인다.
피부색이 검지 않다면, 이슬람국가 출신이 아니라면, 어엿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면, 9.11 테러는 그저 먼 데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디라의 가족은 8년 전 관광비자로 입국한 이후 불법체류 중인 터라 하루아침에 불안한 처지에 놓이고 만다. 이민국에서는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수색을 강화하고, 반인권적인 법률이 속속 만들어지는 상황에서는 아빠의 돈벌이도, 최고 우등생인 언니 아이샤의 대학 입학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캐나다로 망명을 신청하는 가족, 하지만 망명이 불가능해지자 미국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고, 이미 만료된 여권을 지니고 있던 아빠는 국경에서 체포된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아이샤와 나디라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을 수가 없다. 자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학교에 다니며, 아빠 곁에 남은 엄마를 대신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해결 방법을 찾아본다. 변호사를 찾아가 설득하고, 당국에 편지를 쓴다. 자신들은 앞으로 국가에 기여할 만한 인재가 될 거라고 호소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변호사는 건성이고, 국가 기관은 묵묵부답이다. 이제 뭘 해야 하지?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의 힘으로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아이샤는 차츰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다. 당장 강제출국이 될지도 모르는데 대학 입학 원서가 무슨 소용이며, 졸업생 대표가 된들 무엇할까. 이제껏 가족의 등대처럼 반짝이던 언니가 우울하게 가라앉자, 이제 남은 건 나디라뿐이다.
마침내 나디라가 해낸 일
나디라의 가족에게 미국의 패권주의나 테러 집단의 증오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빠는 두 딸에게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 주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했고, 8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향수병에 시달리던 엄마도 차츰 미국 생활에 적응하며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폈고, 언니 아이샤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샤는 선생님, 학생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학교의 스타였으니까. 언니에 비하면 나디라는 뚱뚱하고 아둔한 둘째로 별로 존재감도 없었다. 수학을 잘하고 참을성과 끈기를 지녔지만 언제나 언니 그늘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외부 상황의 변화 때문에 아이샤가 시들어갈 때 끝까지 기운을 잃지 않는 사람은 나디라다. 나디라는 누구도 발견해내지 못한 서류상의 오류를 찾아내고, 판사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그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디라의 가족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불법체류자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다. 불법체류 노동자가 없으면 유지해나갈 수 없는 경제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이민을 공론화하려면 사회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반발이 거셀 게 분명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보이지 않는 사람 취급한다. 8년 동안이나 미국 아이들과 똑같이 교육받고 미국에서의 미래를 꿈꾸어 온 아이샤와 나디라, 그들이 누군가 자신들에게 질문을 던질까 봐 노심초사한 까닭도 그 때문이다. 질문을 받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다른 미국 아이들과 같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이에게 인정받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에 넘치던 아이샤가 금세 허물어져버린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정체성과 그 자긍심이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디라는 불법체류자라는 정체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되묻는다. 이름의 철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자녀의 학비를 위해 모은 돈을 수상한 단체의 기부금으로 치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이제껏 미국에서 미국 아이로 자라온 아이들에게서 꿈을 빼앗으려고 하며, 그 아이들의 자긍심을 무너뜨리려고 하는가? 나디라의 용기가 희망적인 것은 미국인이든 방글라데시인이든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미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끝까지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는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반인권적 상황에 대한 개별 사례로 읽을 만하다. 불법체류 노동자나 다문화가정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우리에게 참고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청소년 독자라면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보다 보편적이고 깊은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나디라의 가족에게 불행이 닥치기 전, 그때는 누구도 나디라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나디라는 해냈다. 그러니, 너도 포기하지 마라. 네 안에 지닌 가능성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거기, 바로 너!
∎ 작가 소개
글쓴이 마리나 부도스
마리나 부도스는 두 편의 성인 소설과 한 편의 넌픽션 작품인 『리믹스: 이민 청소년과의 인터뷰, Remix: Conversations with Immigration Teens』을 출판했다. 그녀의 첫 번째 청소년 소설인 『Ask Me No Questions』은 북리스트와 혼북의 주요 서평 도서로 선정되었으며, 각종 명예 도서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리나 부도스는 윌리엄 패터슨 대학교의 영문학과 조교수이다.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뉴저지 주, 메이플우드에 살고 있다. 그녀는 새로운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다.
옮긴이 김민석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뒤 청소년들에게 정의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을 찾아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손도끼』 『바람의 딸, 샤바누』 『내 사랑 옐러』 『로베르토』 『이 숲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감나무 아래서』 『조이』 『모스 가족의 용기 있는 선택』 『손도끼를 든 아이』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정상에 오르기 3미터 전』 『시타델의 소년』 『손도끼의 겨울이야기』 『종이 도시』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