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경제, 경제현실, 그리고 경제학 원문보기 글쓴이: 경세지략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원제 L’empire de la honte
장 지글러 (지은이), 양영란 (옮긴이) | 갈라파고스
정 가 : 15,000원
반양장본| 362쪽| 223*152mm (A5신)
마이리뷰
지금 보여야 하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용기이다.... - 탐욕의시대
http://blog.aladdin.co.kr/765172125/2473986 jjjang 2008-12-22 15:14
추악한 부채
후투족과 투치족이 인구를 거의 양분하고 있는 르완다에서, 1994년 4월부터 6월까지 후투족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정규군과 인터함웨 (함께 죽이는 사람들이라는 현지어) 용병들은 몇천명의 후투족을 포함, 투치족 100만영 이상을 살육한다. 이유는? 바퀴벌레만도 못 한 것들에 대한 인종청소다 (이건 혹시 기회가 되면 “호텔 르완다”라는 영화를 만나기로 하고..) 이 사태는 7월 투치족의 애국전선군의 반격에 의해 진정되고, 이들로 구성된 새 정부가 수립된다.
그런데, 새 정부는 지난 정부가 외국 (특히 프랑스)로부터 차입한 차관에 대한 상환을 요구 받는다. 이 부채의 대부분은 전정권의 부패와 자신들을 도륙하려고 구입한 중국제 칼을 구입하기 위해서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주도하고 있는 채권단은 부채상환 중지 요청을 보기 좋게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르완다의 농부들, 모진 고문과 학살에서 기적적으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동족을 죽이는데 든 비용을 고스란히 갚느냐고 “매일 등골이” 휜다. 에릭 투생이 처음 사용했다는 “추악한 부채”의 용어설명이 가장 적절한 한 예이다.
몇 년 전 몽골을 여행한 적이 있다. 밤늦게 도착한 공항에서 수도 울란바트르의 중심가로 이동하는 국도, 미니버스는 곳곳에 패인 아스팔트 도로 덕분에 마치 놀이공원에 온 듯 불규칙적인 춤을 추었다. “만일 정부관료들이 도로 건설을 위한 차관의 가로채기가 무자비하게 심하지만 않았더라도 도로 사정이 이렇게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시니컬하게 얘기해 주던 가이드의 말을 들으면서, 그냥, 어디든 부패는 있겠지 하고 씁쓸해 한 경험이 있다.
흔히 경제 패권을 기준으로 지구를 나눈다면 북반구와 남반구로 나눌 수 있다. 세계 190여개 국가 중 소위 제 3세계라고 지칭되는 후진국들 120여개국은 대부분 남반구에 몰려 있다. 그리고 오늘 날 이 120여개국의 대부분은 많게는 국가 일년 예산의 40%이상을 외국으로 빌린 부채의 원금 및 이자를 갚느냐고 허덕대고 있다. 교육, 위생 등 사회부문의 비용은 고작 4%에서 15%에 불과한데 말이다. 지난 20여년동안 갈수록 높아져 가는 이 부채상환의 수치는 이 지역에서 주력하고 있는 농산물 가격은 해마다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 들여야 하는 공산품가격은 최고 6배나 폭등하면서 부채를 갚기 위한 차관도입이 반복적으로 자행(국가적인 “카드깡” 사례다)되고 있으며, 그나마.. 정권을 잡고 있는 자들이 이렇게 도입된 차관의 “삥땅”까지 감안해 보면, 아마 세계은행의 인류애적 자비심이 발동되지 않는 한 해당 국가들의 국가파산은 뻔한 이치일 것이다.
특히나, 이들 차관은 부채상환, 그리고 도로, 통신, 항만등 사회간접자본에의 투자에 국한되어 있는데, 편협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겠으나, 그건 그 도로 등의 시설을 이용하게 될, 현지외국자본 법인과 “삥땅”으로 기업 등을 소유하고 있는 권력자와 주변 “파리”들을 위한 것이다. 만일, 채무국가에서 국민의 교육, 의료, 위생 등에 차관을 도입하겠다고 하면, 세계은행은 바로 “미쳤다”라는 답변을 줄 것이다.
지불능력에 따라 이자율이 변동되는 이 만고진리의 법칙에 따라 점점 더 조건이 악화되는 이 추악한 부채를 벗어나는 길은 당장 아무런 방법도 없어 보인다. 한가지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처럼 “내 배를 째라”하고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데, 그게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시달려야 하는 사채업자의 잔혹성이 국가간에서도 매양 한가지이므로, 용기를 낸 국가가 모든 재화를 자급자족하고, 관광을 포기하고도 살 수 있으면 모를까, (멕시코의 미국자본 국유화, 쿠바의 사례등은 이미 아주 오랜 전설일 뿐이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괘씸죄에 걸려 더 혹독한 차관 및 상환조건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네슬레
어디 네슬레 뿐이겠나, 글러벌 기업, 소위 세계 100대 기업, 대부분 북반구에 본부를 둔, 기업성공의 수많은 신화를 창조하고 미래인류에의 기여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에 대한 얘기겠다만....
커피는 에디오피아의 주된 수출품이다. 에디오피아 9개주 정부 중에서도 케냐와 수단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SNNPR Southem Nations, Nationalities and People's Region 주 주변의 시다모 지역 및 카피 지역을 떠올려 보자, 갈색콩에 커피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카피”라는 지명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 가? 이 지역은 아열대지역이다. 즉 기름진 황토와 적당한 강수량, 그리고 녹색의 수풀은 강의 언저리 흙들을 쓸어갈 정도로 물결이 센 강물이 옆에 있으며, 참마, 수수, 콩 등이 풍성하게 쌓여 있는 곳이다. 커피는 이 지역에서 아주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의례이다. “커피의식”이라는 이 의례는 직접 볶은 콩을 정성을 다해 손님에게 대접하고, 손님은 거푸 세잔의 이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다.
에디오피아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95%가 가족중심의 소단위 농사법에 의해 생산되는 것을 전제하면, 2004년 3월, 100년만에 처음으로 발생한 원두값의 폭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뻔한 일이다. 200년에서 2003년까지 원두 1Kg 당 3달러에서 86센트로 떨어졌다. 1990년 전 세계의 커피 생산국들은 110억달러의 원두를 수출한다. 그 해, 이 원두를 가공한 커피재벌들의 판매액은 300억달러였다. 2004년 원두수출은 양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55억달러로 감소하였는데, 도리어 소비자들은 전세계에서 700억달러를 커피소비에 사용했다. 그럼 네슬레, 사라 리, 프록터 앤드 갬블, 치보, 크래포트 등의 5대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은? 그럼, 2000년에 한 푸대에 현지 화페로 670비르에 팔던 커피를 2004년에 150비르로 팔게 된 농민들의 삶은?
많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는 북반구에서 금지된 광고판을 볼 수 있다. 백인 산모들이 아주 해맑은 얼굴로 분유를 아이에게 먹이는 장면인데, 이 광고를 본 많은 아프리카 여성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유럽여성”과 같은 짓거리를 함으로써 은연중에 스스로 신분상승의 꿈을 꾼다. 모유를 중단하고 없는 돈 긁어가며 몇 숟갈 사들인 분유는.. 비위생적인 물에 섞여 아이에게 공급됨으로 해서 결국 도리어 영아 사망률을 부추긴다. 이건 지구 어디서나, 몸매를 중시하는 우리 여성들의 지고한 의식과 네슬레의 전략과 일치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출산과 함께 분유먹이기 실시, 그리고 퇴원시 기념으로 주는 우유병에 의해 아이들은 아무 염려 없이 네슬레 분유의 건강한 보호아래 튼튼하게 자라간다.
몇 년 전, 파키스탄의 언론에서는 카라치나 물탄,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라왈핀디 등의 공공상수도를 통해 공급되는 식수가 얼마나 비위생적이고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지를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렸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기준에 합당했던 이 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부추김을 받은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한편에서 이 비위생적인 식수에 국민들의 건강이 잠식되어 가고 있는 이 곳에 네슬레의 “퓨어 라이프”라는 낱개들이 생수가 신제품으로 시장에 나왔으며,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어 가기 시작했다. 이익의 극히 일부만이 국내 현지 법인에게 돌아가고 현지화로 벌어들인 나머지 이익은 중앙은행을 통해 달러로 환전되어 본국으로 송금되면서 말이다. 물론, 이 캠페인과 네슬레사는 아무런 연관도 없고, 관계 지어지지 않았다.
식품회사 뿐인가? 2004년 8월에 독일의 이노테라포이틱스라는 거대 다국적 기업은 신생아들의 호흡곤란을 치유하는 “스티코시디”라는 천연가스에 대한 특허권을 발동했다. 이 특허권이 없던 시절, 스위스의 의사들은 같은 질병에 대해 같은 가스를 처방하였는데, 환자들은 보통 4 -5일의 치료기간동안 치료비 100유로내외로 치유가 가능했다. 그런데, 특허권이 발동된 다음 같은 증상을 치료함에 있어, 독일기업이 팔고 있는 “이노막스”라는 상용화된 치료를 위해서는 스위스 소아과 병동에서 청구되는 치료비는 평균 2만유로를 웃돌고 있다.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가?
“수치의 제국 L'empire de la Honte” 이란 원제를 가지고 있는 “탐욕의 시대”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스위스 태생의 장 지글러의 최근 저서이다. 프랑스 혁명의 간단한 소개를 시작으로 하는 이 책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빈궁과 기아, 그리고, 국가의 몰락을 신흥봉건주의 - 즉 오직 극단의 이익추구의 기업의 지상과제를 충실히 지켜나가고 있는 다국적 기업 -과 그의 이익을 대변하고 하수인인 된 세계은행 등의 자본, 그리고 그의 하수인인 제 3세계 국가의 절대 권력들의 파렴치한 행위로부터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와 분석.. 그리고 저작의 양심을 들어 집필한 책이다. 이 책 소개에 앞서 장황하게 인용 또는 편집, 그리고 나름의 내 경험들을 먼저 소개한 것은 이 책에서 보여 주고 있는 그 다양한 사레들은 어쩌면 이 짧은 요약글들에 의해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을 비슷한 경우들이기 때문이다.
“수치”는 부끄러움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 즉 “수치”를 버릴 수 있는 동기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의 경우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아니 끝없는 탐욕의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인간이고 지랄이건 간에” 자신의 목표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잔인하게 뭉갤 수 있을 때 나올 수 있을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도 배가 고파서,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과 아이들을 영양결핍, 아니 굶주림에서 벗어 날 방법이 없을 때, 최후의 수단, 모든 수치심을 버리고 도시 쓰레기처리장의 쌓여있는 폐품들과 함께 놓여있는 부패직전의 “음식물 쓰레기”를 조심스럽게 분류하여 가져 온 양동이에 담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이 수치의 제국은 이 두 가지 경우 중에 어떤 집합에 포함시킬 것인가. 되물을 필요도 없이 바로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한 다국적 기업군, 남의 불행이 자기의 행복이라는, 자신들이 수치를 깨닫고 제 정신으로 돌아 온 들, 그 틈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기업군에 의해 결코 세계는 아름다워지지 않는 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는 “신흥 봉건주의-다국적기업”들을 얘기한 것이다.
제 1부.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유토리아를 꿈꾸는 사람들/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가난/제국의 존재이유, 전쟁과 폭력/죽음으로 내몰린 국제법/제국과 성전주의자들의 야만성), 제 2부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가?(부채, 그 추악한 악성 종양의 실체/기아, 부조리와 파렴치의 극치), 제 3부 에티오피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부유한 전쟁과부, 알렘 체하이에/커피가격의 폭락,시다모의 부조리한 녹색기아/연대,저항의 또 다른 이름) 제 4부 브라질, 혁명을 계속된다(롤라, 가난한 노동자에서 혁명의 지휘관으로/민주혁명의 핵심사업, 기안 제로 프로그램/외채와의 전쟁) 제 5부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 되는가?(신흥 봉건제후,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유전무죄 무전유죄, 가진 자가 이기는 세상/유전자 변형생물, 불공정 경쟁의 대표주자/베베이의 파렴치한 문어, 네슬레왕국/노동조합은 안돼/돈 없으면 마실 수 없어요/후안무치한 제후들/인권도 좋지만 시장이 더 좋아!)로 구성된 이 책은 이런 세계화, 다국적 기업, 세계은행들이 연합해 제 3세계 국가들을 아니, 이익만 전제된다면 어떤 지역, 어떤 국가라도 굶주리게 만들 수 있는 제도적인 프로세스를 면밀하게 증언한 보고서이다.
그렇다. 앞 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 인류가 북반구의 잘나가는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종내 굶주릴 수 밖에 없는 결론을 가지고 오는 사례들이다. 인도의 라디크지역 처럼 자연이 무상으로 주던 모든 생필품들을 자기도 모르게 “돈”을 주고 사야하는 현실로 바뀌고.. 그 현실은 날이 갈수록 높은 수치로 인상되는 가격들로 인하여 자신도 모르게 궁핍생활자가 되는 과정의 세계화 모형이다.
예를 들자면,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가 2006년에 내놓은 보고서에서는 상세한 통계까지 곁들이면서 당시의 생산력을 고려하면, 유전자변형식품 없이도 별 문제없이 120억명을 먹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별 문제없이”란 성인인구 1명당 매일 2,700칼로리를 충족한다는 것인데, 당시 세계인구는 고작 62억명으로 추산되고 있던 즈음이었다. 그런데 이 자연적인 식량의 혜택을 부인하고 굳이 유전자 변형 식품을 마치 굶주리고 있는 인류의 숙제로 풀 수 있다고, 더 크고 많이 열리는 소위 “개량종”을 팔고 있는 회사들은 이 자연의 법칙처럼 징그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종자에 대한 기술이전료, 특허료로 가만히 앉아서 수억의 이익을 남기고 있는 이들에게 자연법칙이라는 것이 가당치나 한 소리인가?
작년에 미얀마여행을 준비하면서 얻은 정보 중에 미얀마 북부지역에 말라리아 등의 (비단 미얀마뿐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사소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입한 중국제 약을 처방한 환자들이 도리어 더 빨리 죽어가는 “짝뚱치료제”에 대한 것이 있었다. 왜? 약마저 가짜가, 그것도 아주 생명에 치명적인 가짜약들이 이렇게 팔릴 수 밖에 없는 가 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인류의 건강을 위해 24시간 잠들지 않는 많은 제약회사들이 빈민층들이 걸리기 쉬운 질병들을 위해 투자한 약소한 신약 개발비도 구매력없는 궁픽으로 인해 건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부자들을 위한 신약-주름제거제, 부호들의 건강증진, 그리고 다이어트등의 약-에 국한해서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으며, 몇 배에 해당하는 이익을 건져 올리고 있으니 어찌 그 사소한 신약에 비싼 인건비를 낭비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니, 이렇게 21세기에 들어 법치국가의 틀 속에서 모든 국가는 식민지의 굴레를 벗어나고, 모든 문화는 평등하며, 인권은 결코 훼손될 수 없다고 주창하고 있는 이 시기에, 여전히 한 해 기아와 상관관계를 가진 질병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3,600만명에 달하고 수천만명이 이미 북반구에서 정복된 전염병임에도 불구하고 치료제가 없어 죽어가고 있고, 900만명의 어린이가 오염된 물에 의해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 좀 더 자극적인 통계를 인용하자면, 지구상에서는 5초마다 10세 미만 어린이 한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비타민 A 결핍으로 인해 4분마다 한 명씩 시력을 잃고 있다. 62억명인 이 별에서 8억 5,400만명이 만성적인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 똑같은 시기에 다국적기업과 권력자들을 보호하고, 세계화 질서을 유지하며, 자국 기업의 진출을 위한 군비비출 총액은 7,8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온갖 생색을 다 내며 가난한 국가들에 대한 부채당감은 고작 300억달러이고, 기아 퇴치 프로그램에 190억달러, 난민정착에 50억달러를 사용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며 다 옮길 수 없는 각종 증거들을 대하면서, 간혹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장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에서 부끄럽게도 눈물을 비쳐야 했다. 단편적으로, 아니 그냥 피부적으로 느끼면서 지나쳤던, 이 지구라는 별의 다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거듭 말하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 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에 몸서리 쳐 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조국 한국은 어떠한 가? 과연 이 빈곤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린 숙명주의자들도 아니고, 시민사회가 성숙해 있고 하니 절대로 염려 없다고 안심하고 있을 것인가? 민영화, 중산층의 몰락, 그리고 갈수록 버겨워 가는 이 세태에 그냥 그대로 남미나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가 아닌 한국에서 태어난 이 “우연적 탄생”의 축복에 만족하고 있으면 다행인가 말이다.
잠시 감상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이 몰지각, 본문 속에서 인용한, 그리고 내가 다시 인용할 수 밖에 없다. 칸트가 말한 “온전한 삶에 대한 귄리, 인간이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인각에게 속하는 권리”, 이 권리를 구현하기 위해서 지식인들의 행동은 레지 드브레의 표현대로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 시키는 것이다”일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을 번역한 분이 후기에 밝힌 대로 이 책에서 소개(?)된 기업들의 제품들을 불매하는 운동이라도 벌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인데.. 그 용기가 과연 어떤 무늬를 띄고 드러나야 하는 지 전혀 감 잡을 수 없다고 넋두리 하는 것은, 내가 깊게 물들인 개인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져있는 왜소한 독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날 울린 사회과학서...
http://blog.aladdin.co.kr/775732156/2462650 누딘 2008-12-17 12:09
장 지글러의 전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내게는 여러모로 의미 깊은 책이었다.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굶주림'이라는 문제에 대해 막연한 인식만 하고 있었고
실제로 어느 지역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떤 이유로 밥을 굶고 사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책을 읽고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고, 세계를 지배하는 부조리한 질서에 몹시 화가 났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기도 해 몇날며칠을 그저 우울함과 탄식 속에 빠져 지냈다.
하지만 그 책을 계기로 기아와 빈곤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장 지글러라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 저자(1934년생이란다)의 행보를 존경하게 되었고,
인간의 존엄성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 <탐욕의 시대>는 국내에 소개되는 장 지글러의 두 번째 책이다.
당연히 주저없이 바로 샀다. 그리고 정말 잘 읽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되지만
그보다 훨씬 심도 있었고, 좀더 많은 정보들이 주어졌다.
구체적이었으며(네슬레를 비롯한 사악한 기업의 실명들이 좌르륵 공개된다. 양심없는 기업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읽는 내내 분노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었다.
소설보다 훨씬 빠르게 읽혔고 흥미진진했다.
허나 진짜 비극적인 건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책이 결코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전 손택이 이야기한 것처럼(비록 그녀는 '사진'을 들어 이야기했지만)
다른 이들의 비극이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일종의 유희거리(?)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내내 목까지 차오르는 슬픔을 참고 있었지만,
책 말미에 이르러 결국 울음을 떠뜨리고 말았다.
다음과 같은 지글러 할아버지의 토로 때문이었다(옮겨 적고 있는 이 와중에도 또 눈물이 나려고 하다니...)
좀 길지만 꼭 읽어주기 바란다.
-----------------------------
"출생의 우연이라는 수수께끼는 죽음만큼이나 신비롭다. 나는 왜 유럽에서 태어났는가? 어째서 잘 먹고, 가진 권리도 많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고문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백인으로 태어났는가? 나는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째서 뱃속에 기생충이 우글거리는 콜롬비아의 광부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까? 페르남부투의 혼혈인 카보클루는? 염산에 의해 얼굴이 일그러진 치타공의 벵갈 여인은?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는 올해에만 해도 아직 연말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아나 기아와 직접적으로 상관관계를 지닌 질병 등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간 사람이 3,600만 명에 달한다. 의학계가 벌써 오래전에 정복한 전염병에 걸렸지만, 약이 없어서 헛되이 투병하다가 죽은 사람들도 수천만 명이다. 오염된 물은 해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9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중략)
그들은 그렇게 사는데, 나는 왜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이들 우연의 희생자 한 명 한 명은 나의 아내,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나의 친구 혹은 나의 삶을 구성하며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다.
출생의 우연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나와 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갈라놓을 요소란 전혀 없다."
------------------------------
문득 이토록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아픈 가슴을 주체못하는
행동하는 지성인 어느 '학자(이자 전문가이며 활동가'라고 우석훈이 장 지글러에 대해 일컬은 바 있다)'가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구나 싶다.
나는 이 시대는 반드시 장 지글러를 읽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한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우선은 그것이 이 '탐욕의 시대'에서 남 모를 가해자로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정말이지 내 배를 채우는 것에만 관심 갖는 인간은 되지 말자.
첫댓글 저도 이 책을 읽었어요. 지금의 대세를 역류한다는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